소와 젊은 부부 -한암스님이 말씀하신 환생이야기
- 중략 -
이것은 있었던 이야기인데 지금부터 8~90년 전에 오대산에 가면
한암스님이라고 있었습니다. 방한암스님, 유명한 선사입니다.
6.25동란 때 스님들이 전부 피신을 갔는데
방 한암스님만 상원사에 앉아계신 것입니다.
인민군이 와서 상원사에 와서보니 스님이 떡 앉아 계시단 말입니다.
“스님! 왜 피신 안하고 여기 계십니까?”
“내가 왜 피신을 하느냐? 나는 여기 절을 지킨다.”
밥해내라 뭐 해라 하는 것을 스님이 다 심부름을 했습니다.
인민군이 가만히 보니까 이 스님이 대단해요. 큰 스님이야.
그래서 그 절에 불사질렀다고 보고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문짝을 다 떼어다가 밖에다 불을 지르고 도망가 버렸어요.
그런 한암스님인데
이 스님이 한 40여세 때에 평창의 진부리라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유명한 스님이지요. 항상 걸어다니셨으니까..
지팡이를 짚고 마을에 가는데 한 젊은 부부(화전민들)가 소로 밭을 가는데
남자가 너무 많이 소에다가 욕을 합니다.
이랴~빌어먹을 놈의 소니, 무슨 소니,하면서 온갖 상스러운 소리를 다 해 붙여요.
그래서 저 사람이 무슨 속상한 일이 있나?
걸어가시니까 한참 들을 것 아니어요?
어디를 갔다 오시는데 보니까 또 소를 때리고 욕을 해.
참 괴이하다. 아무리 짐승이지만,
소가 밭 갈고 논 갈고 새끼 낳아 돈을 주고 하는데
아무리 짐승이지만 저렇게 때리면서 밭을 갈고 참 무슨 인연인가?
거기서 선사가 관해 보니까 큰일 났어요.
그 소가 자기 어머니야.
다음에 또 일부러 내려갔어요. 여전히 때려요.
이랴~ 뭐 같은 놈의 소니 뭐니 하면서
그래서 그 친구한테 “여보시오 젊은이 아무리 그렇지만
말 못하는 소를 그렇게 때리고 그러면 되겠느냐? 불쌍하지도 않느냐?“
“불쌍하기는 뭐가 불쌍해요. 짐승인데”
그렇게 하고 있다가 한2~3년 됐는데 스님이 일이 있어서 평창을 나갔습니다.
평창에 나가니 우시장에 그 소가 나와 있어요.
이 젊은이가 소를 팔러 나왔어요.
어지간하면 팔지 말지..
에이 이 놈의 소 보기도 싫고 말도 안듣고 팔아서 고기집에 넘겨야지
시장에서 소를 파니 소가 울어서 눈물을 철철 흘려요.
그날로 소는 팔려가서 도살장에서 죽었다.
선사님께서 떡 보니까 이것 난리났구먼.
한 3년 지난 후에 그 집을 떡 가니까 아들이 하나 있어요.
그 아들이 누구죠? 어머니입니다.
아들이 보통 강짜가 아닙니다.
말을 안듣습니다. 앙앙대고
점점 크면서 아버지한테 욕을 하고 어머니한테 욕을 하고
나를 뭐를 해 줬다고 공부도 안하고 완전히 깡패입니다.
10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 길에서 그 농부를 만났습니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는가” 물으니까
“스님 저 고민 좀 들어 주시겠습니까?”
“무슨 고민이냐?
“내가 애들도 그 하나인데 그 녀석 때문에 내가 지래 죽게 생겼습니다.”
“어떤데?”
“나를 욕하고 지어미를 욕하고 그랬사니 내가 살수가 없습니다.”
“아들 저것 하나인데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고
차라리 아들 안 낳았으면 좋았을 것인데..“
“니 업장이다.”
“그렇지요. 제 업장이 두껍지요.”
“이 놈아 네 업장인 것을 알기나 하냐?”
“예.” 알긴 뭘 알아. 아무 것도 모르지
또 얼마가 지났습니다.
6.25동란이 떡 끝나고 났는데 스님이 뉴스를 들으니까
진부리 아무개 아들이 술 먹고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살생했다.
그렇지 신문에 쫙 났어요. 근래에 있었던 일입니다.
인과라는 것은 무섭습니다.
내 자식에게도 욕해도 안 되고, 이웃에게도 욕해도 안되고,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면 안돼요.
언제 어떻게 나에게 돌아와서 원수를 갚을지 몰라요.
그래서 항상 내 가족, 나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한테 잘해 줘야 해요.
그렇게 살아야 그 사람이 나 한테 잘 하지요.
내가 미국사람한테 잘하면 미국사람이 나한테 잘해 줄까요?
안 그러지요?
내가 일본사람한테 잘하면 일본사람이 나한테 잘해 줄까요?안 그럽니다.
바로 내 눈 앞에서 보이는 사람한테 잘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한 생각을 딱 놓으면 밝은 세상이 딱 보입니다.
그런데 한 생각을 놓지 못하면 온갖 망상에 소용이 없습니다,
옛날 제가 소싯적에 대각사에서 살았습니다. 1969년부터..
69년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모를 것이고..
대각사에서 살았는데 명창이 대각사 건너에서 살았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인간문화재라는 것이 제정이 되어서 71,2년도에 시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명창이라는 분과 아들하고 일주일이면 한 서너번씩 싸웁니다.
그런데 처음에 서로 이놈 저놈 하길래 서로 남인 줄 알았어요.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그렇게 싸웠습니다.
제가 또 대구 2군 사령부에 잠시 살았었습니다. 군인으로..
스님도 군대 가라 해서 가서 살았습니다. 출퇴근, 군법사 그러지요.
그 옆집에 또 아버지 하고 이놈 이년 저년하고 또 싸워요.
술만 먹으면.. 제 정신으로는 못 싸우지요.
그 때 무슨 생각을 했느냐하면
“그래 저런 사람들을 구해야 되는데 저렇게 싸우고
저 한 생각을 못 바꿔서 세상을 어떻게 살까?“
우리 불자님들은 금년에는 한 생각을 딱 놓고
하루에 108참회만 하세요... 많이 하지 마세요. 건강도 좋아집니다.
다섯 번째 삼팔제액(三八除厄) 삼재팔난, 액난이 다 끊어진다.
삼재가 뭐지요? 화재 수재 풍재.
불나도 안 되고 홍수 나도 안 되고, 바람 불어도 안 되고.
팔난, 여덟 가지 난, 전란 군란, 또 고소고발,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이런 것이 다 끊어진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고소 건수가 1,000명당 일본의 배이고,
미국의 3배랍니다. 보통일이 아닙니다.
어지간하면 참을 줄 알아야 됩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하지요? 한번 져보세요.
기분 좋습니다. 지고 사세요..
이 만큼 이기고 살았으면 이제 지고 사세요.
이기려고 하지 마세요.
스님한테 이기려하고 선생님한테 이기려하고 대통령한테 이기려하고
이기려하지 마세요.
손자한테도 져주고 손녀한테도 져주고
아들한테도 져주고 딸한테도 져주고
국민한테 져주고 다 져주면 세상이 편안해집니다.
이기려하니까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다 져줍니다.
여기까지가 참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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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불법회 | 108참회 10종공덕/ 2008년 입춘기도 법회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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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젊은 부부사이에 태어난 아들환생하는 이야기/불기2561년 생전예수재 3재 - 법회 > 설법 > 세존사 (sejon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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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충격적인 두꺼비 실험 결과 ㄷㄷhttps://youtu.be/-6VScsk2qYg?si=DIJk8PTi_LH3QN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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