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 염불/체험담2-여러기도

(효도이야기-모음)---:양산통도사 법사스님의 어머니/ 허운화상의 문수보살 친견기

아미연(阿彌蓮) 2020. 5. 18. 15:31

양산 통도사 법사스님 이야기 (어머니 이야기)

 

조선의 정조대왕 시절에

경남 양산 통도사에는 훌륭한 법사 스님이 계셨다.

 

그 법사 스님은 아주 핏덩이 일때

그 추운 겨울에 양산 통도사의 일주문 앞에

보에 쌓여 놓여 있었는데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스님 한 분이 통도사로 데리고 와

절에서 기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통도사 일주문 앞에 놓이게 된 것에는

사연이 있었다.

 

어느날 젊은 부인이 한 사람 찾아와

주지 스님을 친견 하였는데 그 때 갓난 아이를 보듬고 왔었다.

그 젊은 보살이 주지 스님에게 말 하기를

* 스님 제가 이 절에서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공양주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엄동 설한에 우리 모자는 굶어 죽지 않으면

눈 속에 얼어 죽을 것 같으니

해동을 할 때 까지 만이라도 제가 여기서 일을 하면서

이 갓난 아이와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

 

그 때 주지 스님은

대중 공사(사찰에서 말하는 일종의 재판 같은 회의를 말함)

모든 대중이 모인데서 붙혔다.

그 때의 결론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너무 젊다는 것이었다.

사부 대중이 많은 이 사찰에 살면서

헛 소문 만들기 좋아 하는 자들로 인하여

어떤 불미스런 헛 소문이 날지를 모른다.

젊은 스님 누군가와 눈이 맞아 애를 놓았다느니

아니면 젊다 보니 앞으로 있을 어떤 스님과의 연분이 생길

수도있기 때문에 이 곳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였다.

 

그 때 그 보살은 통도사를 빠져 나오다가

눈이 오는데 어린 갓난 아이를 일주문 옆에 두고서

떠나 버린 겄이었다.

그것을 다른 스님이 지나다 데리고 와서 키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크면서 얼마나 신통한지

스님들이 법문을 하실라 치면 늘 앞에 정좌하고 앉아서

요지부동도 않은체 듣는 즉시 외워 버리는것이었다.

그러다 나이 18 세에 훌륭한 법사 스님이 되셨다.

그 스님이 법문을 하실 때면

사방 천지에서 구름처럼 사람이 모여 들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날도

그 법사 스님이 법문을 하고 계실 때

법문을 듣고 있던 어떤 노 보살님이 혼자 말로

* 대체 저 법사 스님의 어미니는 어떤 분일까 ?

어떤 분이 어머니 이시길래 아들을 저리도

훌륭하게 잘 키우셨을까 ?

그렇게 혼자 말로 중얼 거리고 있는데

 

그때 옆에 앉아 있던 한 보살이

** ~ 제가 저 법사 스님의 애미 입니다.

그 단 한 마디가 순식간에 법당 안과 도량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쫙 퍼진 것이었다.

 

마침내는

법사 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는 그 사이에 듣게 되었다.

법문을 마치고 나온 법사 스님이

그 어머니라는 사람 보고 좀 기다리라고 하고는

모든 사부대중을 불러 놓고 의논을 하였다.

** 지금 저기에는 내 어머니라는 보살이 와 있는데

모든 스님들의 생각은 어떠 하신지요 ?

제가 만나뵈어도 되겠습니까 ?

 

그러자

모두가 하나 같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 아니 그 엄동 설한에 눈까지 오는데 죽으라고

일주문 앞에 두고 갈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훌륭한 법사 스님이 되시니까

내 아들이네 하고 자랑을 하는것이 어디 애미된 도리 입니까?

그런 사람 이라면 불러서 혼을 내 주고 두 번 다시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대중공사가 그렇게 결정이 나자

법사 스님이 그 어머니 되는 사람을 들어 오게 하여서

마주 앉아서 하는 말..

* 정말 그대가 내 어머니가 맞소 ?

** ~ 제가 예전에 일주문에다 두고 갔었지요.

그러자 법사 스님

* 됐오.. 그러면.

이제 두 번 다시는 나를 아들이라고도 하지 말고

또 그대가 법사 스님의 엄니 이네. 하는 말도 마시오.

죽으라고 버리고 갈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내 아들이네~ 하는 것은 무슨 심보요.

그러니

앞으로는 내 법문을 들으러 오는 것은 좋으나

절대로 어디 가서 법사 스님이 내 아들이란 소리는 마시고

두 번 다시는 나를 아는채도 마시구려.

그러면서 어머니를 돌려 보냈던 겁니다.

 

그 무렵

정조 대왕의 귀에도 양산의 통도사에는

아주 훌륭한 법사 스님이 있는데 그 스님이 법문을 할 때면

사람들이 구름 처럼 모여 든다는 소문이 들린 것이다.

 

그 소문을 듣고 있던 정조 대왕이

* 그럼 그토록 훌륭한 법사스님을 낳으신 어머니가 있을 테니

양산으로 내려가서 그 어머니를 모시고 오도록 하시요.

어명을 받고 양산 통도사로 내려온 신하들이 다시

정조대왕 에게 이르기를...

* 그 어머니...............................

자초 지종을 모두 고하자

 

정조대왕이 통도사의 법사 스님에게 편지 한통을 전했었다.

*************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을 좋아 한다 사랑 한다 하여도

그 어찌 자신을 낳아준 어머님 만큼이나 하리오.

 

내가 듣기로는 그 추운 겨울에 스님을 버렸다 하나

그것은 그렇지가 않구려.

 

둘이 같이 다니면 얼어 죽고 배 고파 죽게 생겻으니

파리의 목숨도 귀하게 여기는 스님들은

자식을 여기 두고 가도 분명 살려 주었으면 주었지

어찌 산 생명을 죽도록 내 버려 두겠는가.

 

하는 생각 으로 살릴려고 두고 간 것이지

절대로 죽으라고 버리고 간 것이 아닙니다.

*************************

 

이 편지를 받아든 법사 스님.......

갑자기 오늘이 아니면 그 어머니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수소문 하여서 길을 떠나 찾아 다니기 시작을 했었다.

 

그러다 해가 거의 다 질 무렵

한 마을에 이르러 한채 뿐인 집에 들어가서 묻기를.....

* 혹시 이러 이러한 노 보살이 이 부근에 사시는거 모르시요?

그러자 그 집의 노인이 나와서 언덕밑의 집 한체를 가르키며

** 저기 저 집인데

오늘은 불이 켜 있지가 않군요.

불이 켜 있으면 그 노인네가 살아있거나 집에 있는 것이고

불이 꺼졌다면 약방에 갔거나 아니면 죽었을 것이요.

 

법사 스님이 그 소리를 듣고는

호롱불을 하나 빌려 숨이 목에 차도록 뛰어 갔다.

그리고 그 집안에 당도 하니

인기척이 없어 법사 스님이 주인을 불러 본다.

주인장 계시요 ?

주인장 계시요 ?

 

아무 대답이없자 법사스님이 토방을 올라 방문을 살며시 열어

보니 분명 누군가가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법사 스님이 호롱 불을 들고 다가가서 이불을 젖히니

어머니가 거의 죽어 가는 모습으로 누워 있는데

머리 맡에는 언제 먹었던 죽 그릇 인지는 몰라도

바싹 말라서 쩍쩍 갈라져 있었고

방안은 냉기가 흐르고 입에서는 입김이 솟아 나왔다.

 

그 모습을 보던 법사 스님이

* 어머니 ~~~~~~~~~~~~~~~~~ ~!

그러자 가물 가물 죽어 가던 어머니가

희미한 정신으로

** 뉘시요 ? ... 뉘시길래....

나 보고 어머니라 하시오........

그 호롱 불로 ...얼굴좀 비쳐 보구려...

 

그때 법사 스님이 호롱 불을 자신의 얼굴에 가까이 갖다 대자

어머니가 하시는 말 ...

** 이제...되었오... 어서 ...양산 통도사로 빨리 가시어....

더 많은 법문으로와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

부디 훌륭한 스님이 되시구려.....

 

이제.....나는....내 마지막 소원을 들었구려.....

어머니....라는 그 말 한 마디..........

못 듣고 죽을줄 알었었는데..........

 

법사 스님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어머니를 들쳐 업고는 양산 통도사로 뛰기 시작 했었다.

................................

통도사에 도착한 법사 스님이 있는 정성 다 들여

미음을 쑤고 약을 다리어 그 어머니를 살렸고

그렇게 지내던 어머니가 양산 통도사에 온지

3년이 되는 해에 세상을 뜨셨다.

 

그 때 법사 스님이 그 어머니를 위하여 49제를 드리는데

법문을 한 곡조 올린다.

**************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가장 귀한 부자 인가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가장 궁한 가난 인가

 

부모님이 살았을 때 가장 귀한 부자 이고

부모님이 안 계시니 가장 궁한 가난 일세

 

어머님이 살았을 땐 밝은 낮과 같더니만

어머님이 안 계시니 해가 저문 밤과 같네

 

어머님이 살았을 땐 마음 든든 하더니만

어머님이 안 계시니 온 세상이 텅 비었네

***************************

 

그렇게 49제 마지막 막제에서 법문을 하자

그의 어머니 음성이 다시 법당안을 멤돈다.

****************************

훌륭하신 법사 스님.....자랑스런 내 아드님.

어머니란 그 한마디 다 못 듣고 갈까봐서

조마 조마 하더니만 그 소원 이제 풀고

오늘 내가 떠나 가니 너무 성념 마시구려.

 

자랑스런 내 아드님 ..훌륭하신 법사 스님....

자식 옆에 두고 살며 어미 소리 못 들을 때

메어지는 그 가슴은 수만 개의 송곳 끝과 같고

그 어머니 소리 듣고 귀를 번쩍 떴을 때는

 

세상을 다시 얻었는데 이제 내가 가는 길에

훌륭 하신 법사 스님 그 법문에 감사하니

부디 부디 좋은 법문 많이 하여

세상을 환히 밝히소서.. 이제 나는 올라 갑니다.


춫처:양산 통도사 법사스님 이야기(어머니 이야기) http://cafe.daum.net/MRSB/Rj7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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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虛雲선사의 문수보살 친문기

 

허운선사, 정성이 지극하여 문수보살을 친견하다

 

허운(虛雲)선사는 근대 불문(近代佛門)에 이름난 스님으로서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것이 한이 되어 부모의 은덕을 갚으려고 오대산에 참배하기로 원을 세웠다. 광서(光緖) 8(1882) 71일 남해(南海)의 보타산 법화암을 떠나서 향로를 받들고 세 걸음마다 한 번씩 절하면서 오대산까지 가기로 하였다. 멀고 먼 길을 걸어서 이듬해 섣달에 황하의 철사 나루에 다다랐다.

 

나루를 건너 언덕에 올랐으나 날은 저물고 사방에 인가는 없어 갈 곳이 없었는데 길가에 다행히 헛간이 있어서 들어가 의지하였다. 밤은 춥고 눈이 퍼부어 날이 샐 무렵에는 유리 세계로 변하였는데 눈은 한 자가넘게 쌓였고 길을 분간할 수 없으며, 왕래하는 사람도 없어 방향조차 찾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쭈구리고 앉아서 염불을 하였으나, 추위와 굶주림은 점점 심했다. 헛간은 사방에 가리운 것이 없으므로 한 곳에 꼬부리고 엎드렸더니 눈은 퍼붓고 추위는 점점 심했다. 배는 더욱 고파서 실 같은 목숨을 겨우 부지하면서 이렇게 삼일을 지나니, 굶주리고 얼어서 꼼짝할 수가 없었고, 눈이 그치고 볕이 났으나 병이 심하여 일어날 수도 없었다.

 

홀연히 나타난 걸인이 선사가 눈 속에 누운 것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으나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얼어붙은 줄을 알고 눈을 헤치고 헛간에 덮었던 풀을 내려 불을 피우고 쪼이니, 따뜻한 기운이 돌며 깨어나고, 또 기장 쌀로 죽을 쑤어 먹이니 다시 살아났다.

 

걸인: 스님은 어디서 옵니까?

허운선사: 남해에서 옵니다.

걸인: 어디로 가십니까?

선사: 오대산에 참배하러 갑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요.

걸인: 문길(文吉)이오.

선사: 어디로 가시오?

걸인: 오대산에서 오는데, 장안(長安)으로 갑니다.

선사: 오대산에서 온다니 사중(寺中)을 여러 번 다니었소?

걸인: 나를 아는 이가 많지요.

 

걸인은 날이 샌 뒤에 기장 죽을 쑤려고 솥에 눈을 퍼부으면서 물었다.

남해에도 이런 것이 있습니까?

선사: 없습니다.

결인: 없으면 무엇을 먹나요?

선사: 물을 먹지요.

솥의 눈이 녹은 뒤에 걸인은 솥에 있는 물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이것은 무엇이요?

선사: 『……』

 

그 뒤에 선사는 전과 같이 절을 하면서 길을 걸어서 그 이듬 해에 회경부(懷慶府)에 이르렀다.

길가에서 자다가 그날 밤에 복통을 심하게 앓았다. 냉병까지 걸려서 설사와 이질을 앓으면서도 이튿날 간신히 길을 걸어 황사령(黃沙領)에 이르렀다. 다시 행보를 할 수가 없어서 영상에 있는 성황당에서 밤을 새우며, 음식을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하루에 수십 번을 설사하니 일어날 기운이 없었고 산마루인지라 왕래하는 사람도 없어 눈을 감고 죽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 깊었는데 문득 서쪽 담장 밑에 불을 피우는 사람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자세히 보니 문길이었다. 너무 기뻐서 여보시오하고 불렀더니, 문길도 알아보고 웬일이오, 당신 어째서 여기 있습니까?하면서 약을 내어 먹이고 똥물에 더러워진 옷을 빨아주고 기장 죽을 쑤어서 먹게 하니 몇 날 지나 병은 좀 차도가 있었다.

 

선사: 당신은 어디서 옵니까?

문길: 장안에서 옵니다.

선사: 어디로 가겠소?

문길: 오대산으로 가는 길이오.

선사: 나는 병이 아직 쾌차하지 못하고 또 절을 하면서 가는 터이니, 당신을 따라 갈 수가 없구려.

문길: 당신은 지난 섣달부터 오늘까지 겨우 여기 왔구려! 절하면서 걷는 길이라 많이 걷지 못하니 언제 오대산까지 가겠소. 게다가 병까지 걸려서 몸은 쇠약한데 아직도 길이 머니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요. 여기서 오대산을 향하여 예배만 하여도 마찬가지니, 오대산까지 갈 것은 없지 않소?

선사: 당신이 나를 염려하는 성의는 고맙소마는, 나는 나서부터 어머니를 뵙지 못하였고 어머니는 나를 낳고 돌아가셨으며, 아버지는 나를 외아들로 두었으나 나는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하였으며, 아버지는 도망한 나를 위하여 벼슬을 사양하시고 오래 살지도 못하였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 망극하기 수십 년 되었소. 그래서 서원을 세우고 오대산에 가서 보살께 예경하고, 보살의 가피를 입어 돌아가신 부모의 영혼이 이고득락(離苦得樂)하기를 발원할 것이니 가다가 죽더라도 죽은 혼이라도 오대산까지 가서 나의 소원을 달성하려 합니다.

문길: 당신의 효성은 하늘도 감동하겠소. 대단히 고마운 일이요. 나는 지금 오대산으로 가는 길이지만 바쁠 것은 없소. 내가 당신의 짐을 지고 갈 터이니 당신은 절을 하면서 오시오.

 

선사는 감사히 생각하고 동행하여 태곡까지 갔다가 그 절에 있는 스님들의 괄시를 받았다.

문길: 여기서는 오대산이 멀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갈 터이니, 당신은 천천히 오시오. 그러면 당신의 짐은 져다 줄 사람이 있을 것이오하며 먼저 떠났다.

그 뒤에 분주(汾州)를 지나가는데 호남성(湖南省)에 산다는 군인이 현통사(顯通寺)까지 짐을 실어다 주었다. 선사가 현통사에 가서 문길이 있는 곳을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고, 후에 어떤 노승에게 문길의 일을 말하였더니, 노승이 합장하며 히는 말이 아마 문수보살의 화현일 것이라했다. 선사는 그 말을 듣고 두 번 절하였고 두 번이나죽게 되었을 적에 보살의 화현을 만나 살아나서 오대산 참배의 서원을 성취한 일을 생각하고 감격하기 이를 데 없었다.

 

_문수대사영응록(文殊大士靈應錄)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출처:허운虛雲선사의 문수보살 친문기http://cafe.daum.net/MRSB/Rj7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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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심불심(孝心佛心)을 가르쳐 주신 어머님 - 혜인스님 http://cafe.daum.net/MRSB/RCpP/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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