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인이 응당 가져야 할 기본관념과 마음가짐 -혜정법사 강의, 정전스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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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지키고 절도가 있어야 한다
불교도로서 불교에 대해 각자 인연 따라 분수에 맞게 호지(護持)해야 하지만, 한 가지 원칙이 바로 자기 스스로 괴로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일을 하고 나서 매우 고되고 괴롭다고 느껴진다면 그 일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려면 자기 스스로 기쁨을 느끼고 가치를 느끼고 필요성을 느끼게 해야지, 그렇지 않고 괴로워하면서 일을 하다 보면 자기도 즐거워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으며, 또 많든 적든 사람들과 원한을 맺게 되므로, 이렇게 되면 이건 적절치가 않습니다.
염불인의 사회생활에는 하나의 원칙이 있는데, 바로 두 구절, 여섯 글자 “선을 지키고 절도가 있는 것(守大體、有分寸)”입니다. 선을 지킨다란, 이 말은 해도 되는가? 이 일은 해도 되는가? 이 사람과 만나도 되는가? 만약 그래서는 안 된다면, 이런 생각은 일으키지도 말고, 이런 말, 이런 행동은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만약 꼭 해야 한다면, 어느 선까지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절도를 지켜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선을 지키고 절도가 있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간에 선을 지키고 절도가 있어야 하는데요. 부부, 부자, 형제, 친구, 연우……서로 간에 모두 제각기 선과 절도가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선을 지키고 절도가 있어야 합니다. 한 번 선을 지키지 않고 절도를 잃게 되면 반드시 혼란을 초래하고 서로에게 괴로움을 가져다주게 됩니다.
출처: 정토종 (홍원염불회) | 선을 지키고 절도가 있어야 한다 - Daum 카페
만행을 의지 않고 염불만 의지함
따라서 염불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왕생이란 전적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에 의지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평소에 오로지 나무아미타불만 부를 것입니다. 이밖에 대인관계나 세상사에도 당연히 자신의 본분을 다해야 하는데, 염불한다는 핑계로 마땅히 다해야 할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자녀로서 당연히 부모님께 효도해야 하고, 부모로서는 마땅히 자녀를 잘 키워야 하고, 형제로서 서로 화목하고 우애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상대방을 되도록 포용하고 도우려 해야 하며, 인연 따라 분수에 맞게 힘이 닿는 데까지 자기가 할 수 있는 선행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실천하라”입니다.
다만 그에게는 하나의 명확한 관념이 있는데요. 바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왕생에 대해선 증감이 없고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단지 인연 따라 분수에 맞게 불자로서의 본분과 상황에 수순하여 “일체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실천하라”는 가르침을 따르고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은 이런 선행에 의지하는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지요.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데 필요한 모든 공덕은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 속에 이미 전부 갖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육자명호를 만덕홍명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여기서 이 “만”자는 백, 천, 만할 때 만이 아니라 이 “만”은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데 필요한 자량(資糧)을 원만히 구족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이 육자명호 속에 이미 모든 공덕을 원만히 구족하고 있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육도만행(六度萬行)의 일체 공덕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그가 평소에 “일체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실천하는 것”은 왕생에 있어 증가하지도 감소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런 것에 의지하여 왕생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가 한 이런 일들은 정행에 속하지도 않고 잡행에 속하지도 않으며, 자력에 속하지도 않고 타력에 속하지도 않습니다. 정행과 잡행, 자력과 타력은 왕생을 상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왕생과 무관하다면, 자력과 타력, 정행과 잡행의 구분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을 “자력이다. 타력이다. 정행이다. 잡행이다.”라고 말할 게 못 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염불하는 사람으로서 첫째는 인연 따라 과거의 업을 소멸하고 다시는 새로운 화를 짓지 않으며, 역경이 들이닥쳐도 순순히 받아들이고, 어떠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만족해야 하며, 둘째는 오로지 나무아미타불만 불러야 하고, 셋째는 극락세계에 왕생하길 발원해야 합니다.
출처: 정토종 (홍원염불회) | 만행을 의지 않고 염불만 의지함 - Daum 카페
염불하는 사람이 응당 가져야 할 마음가짐 -- 인과를 깊이 믿음
염불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란, 금생에 겪게 되는 모든 성패와 득실, 고락과 화복, 낱낱의 모든 일들이 백 퍼센트 우리의 과거 생과 관련 있고 세세생생 지은 업으로 인해 생겨난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세생생 그러한 원인을 지었기 때문에 금생에 어느 한 나라에 태어나서 아무개의 자녀가 되고, 아무개와 부부가 되어 자녀 몇 명을 낳으며, 몸이 건강하든 병약하든, 머리가 총명하든 어리석든, 사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처지가 좋든 안 좋든……이 모든 게 우리가 세세생생 자기가 지어서 받는 것이지 남들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염불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삼세인과와 선악응보의 이치를 믿어야 하고, 분수에 만족하여 본분을 지키고, 어떤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만족해야 하며, 역경이 들이닥쳐도 잘 참고 견디려는 마음이 있어야지 상대방에게 이에는 이로 갚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마음으로 염불해야 자재(自在)와 희락(喜樂)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약 염불하는 사람이 이런 선악응보와 삼세인과, 자작자수(自作自受)의 이치를 모른다면, 모든 일에 불평불만하고 질투하고 따지며 말다툼하고 원망하게 되지요. 이런 그는 염불하고 있어도 여전히 괴로워하고, 나아가 극단적인 행동을 하거나 심지어 최후에는 자살까지 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미 염불하고 있는 나를 어찌하여 자살의 길로 내몰 수 있느냐? 염불인인 내가 어째서 이 지경이 되었는가?”라며 아미타부처님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자기를 비호해 주지 않았다며 아미타부처님을 탓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다음, 우리의 몸이 여전히 이 가정환경 속에 처해있는 한 자손 권속들과 친척, 친구들과 서로 왕래하다 보면, 사람과 사람 간에는 본래부터 당연히 기본적인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태도나 관념에 오류가 있으면 스스로 괴로움을 초래하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본래 서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서로를 이해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려고 해야 하고, 태도 방면에는 되도록 친절하고 온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본인은 염불을 하고 있으면서도 습성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은 과격하고 성격은 충동적이어서 두세 마디 말만 하면 남들과 말다툼하게 되다 보니, 당연히 친척과 친구들, 이웃집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낼 수 없습니다. 이때 어떻게 부처님을 탓하면서 “내가 이미 염불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여전히 안 좋은 인연을 만나게 할 수 있는가?”라며 탓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염불하는 사람으로서 인연 과보의 이치를 알아야 하고, 분수에 만족하여 본분을 지키고, 어떤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만족해야 하며, 역경이 들이닥쳐도 잘 참고 견뎌야지, 이에는 이로 갚거나, 당신에 나에게 이렇게 하면 나도 당신한테 똑같이 하겠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또 다른 한 편으로, 우리는 우리가 겪게 되는 역경을 자녀, 며느리, 남편, 아내 혹은 다른 사람을 탓해선 안 되고, 마땅히 이것 모두 서로에게 빚을 진 것과 관계가 있기에 이 역경의 기연이 바로 우리가 빚을 상환할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 우리가 과거에 그들에게 빚진 것으로, 우리가 과거에 그들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해를 가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금생에 이런 대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남자가 그렇게 많고 여자도 그렇게 많은데 당신은 왜 하필 이 사람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살아야 하는 걸까요? 여기에는 모두 관련된 인과가 있습니다. 따라서 눈앞의 모든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하고 달갑게 받아들이려고 해야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으려 해선 안 됩니다. 안 그러면 앞서 지은 빚도 갚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새로운 업을 짓게 됩니다.
또 예를 들어, 이미 며칠째 밥을 못 먹어서 배도 고프고 위도 아프고, 심지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배가 고픈 데는 배가 고픈 인과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이때 “내가 염불을 하고 있는데도 왜 여전히 배가 고픈가?”라고 한다면, 이런 생각은 인과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또 예를 들어, 며칠 전에 기온이 낮음에도 일부러 얇은 옷을 입어 감기에 걸려 놓고서 “이미 염불하고 있는데도 부처님은 왜 나를 보호해 주고 건강을 주어 감기와 같은 병에 걸리지 않게 해주지 않는가?”라고 한다면, 이런 생각 역시 인과와 업보의 이치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불법을 배우고 염불하는 사람은 이 이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첫째는 “인연 따라 과거의 업(舊業)을 소멸하고, 다시 새로운 화(新殃)를 짓지 않을 것”이고, 둘째는 오로지 나무아미타불만 부를 것이며, 셋째는 극락세계에 왕생하길 발원할 것입니다. 이 극락세계에 왕생하길 발원하는 마음은 진짜이지 가짜가 아닌 백 퍼센트 극락세계에 왕생하길 발원하는 것으로, 이런 마음은 확고부동합니다. 다시 말해, 비록 우리가 이 가정에 대해 여전히 미련이 남아있고 평소에는 당연히 책임을 다하고 본분을 다했지만, 임종할 때가 되면 자연히 내려놓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번 생에 피차의 인연이 이미 다한 상황에서 당신이 아무리 어찌 해봐도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건 사실 잠시 내려놓은 것뿐인데요. 왜냐하면 극락세계에 왕생한 후에는 도리어 우리가 계속해서 권속들을 돌보겠다는 소원을 성취할 수 있고, 게다가 이런 소원을 성취할 때 범부의 마음이 없고 경계는 더욱 뛰어나기 때문이지요.
출처: 정토종 (홍원염불회) | 염불하는 사람이 응당 가져야 할 마음가짐 -- 인과를 깊이 믿음 - Daum 카페
문답14) 염불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역경과 재난을 만났을 때, 마땅히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직면해야 하는가?
14)
질문: 염불하는 사람이 가정과 사업, 감정 혹은 대인관계 방면의 여러 가지 역경과 재난을 만났을 때, 마땅히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직면해야 할까요?
대답: 마땅히 “빚을 갚고, 은혜에 감사한다”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전생의 원인을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받은 것이 그것이고, 미래의 과보를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지은 것이 그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과거에 행동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우리는 이미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생에서 받은 것이 고인지 낙인지, 환경이 좋은지 나쁜지 검토해 보면 과거 생에 선업을 지었는지 악업을 지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금생에 악연과 역경이 많다면 그것은 과거 생에 남에게 빚을 진 업이 있어서 이번 생에 이러한 과보가 있다는 걸 나타내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빚을 갚음”이 아니겠습니까?
이밖에 “감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금생에 불법을 배우지 않았으면 몰라도 불법을 배울 인연이 있는 한 설사 자기가 지금 한창 과보를 받고 있더라도 이것이 “무거운 과보를 가볍게 받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무거운 과보를 가볍게 받는 게 아니라면 갚아야 할 빚은 더 많겠지요. 따라서 빚을 갚을 수 있는 이런 기회와 인연이 있다는 것에 “감은”해야 합니다.
또 한편으로 우리가 과거에 지은 무거운 죄업은 이번 생에서 멈추고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번 생에 받은 과보가 많든 적든 간에 모두 숙세의 무거운 과보를 가볍게 받은 것이고, 이후 우리가 극락세계에 왕생하면 영원히 다시는 업보를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훗날 우리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때는 자비의 배들 되돌려 여기로 중생구제하러 올 것입니다. 이러한 관념이 있으면 자연히 남들과 따지며 분노하고 원망하거나 상대방을 이기려고 애쓰지 않고 나쁜 것도 잘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염불하는 사람은 모든 일에 먼저 자기 자신부터 반성해야 합니다. 만약 과거의 원인이 없었다면 지금의 과보도 없을 테니까요. 금생에 받은 하나하나의 과보들은 모두 다 자기가 만든 것이므로 원망하거나 따질 수 있는 대상이 없습니다. 만약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마음은 비교적 평온해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불평불만하고 따지기 좋아하며 시시비비도 갈수록 많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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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15) 가끔 세속적인 일로 짜증이 나곤 하는데, 염불해도 하면 할수록 더욱 짜증이 난다. 어떡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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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가끔 세속적인 일로 짜증이 나곤 하는데, 염불해도 하면 할수록 더욱 짜증이 납니다. 어떡해야 할까요?
대답: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조사님은 내가 죄악생사범부라고 하셨는데, 내가 왜 이렇게도 초조해할까? 설마 내가 성인이어서 모든 일에 나만 옳고 남은 다 틀렸을까? 꼭 내 뜻에 들어맞아야만 하는 걸까?” 이렇게 스스로 반성한 후에 “사실 나에게도 잘못이 있다. 이것은 내가 지은 업이어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마음이 차분해져서 자연히 분노하고 번뇌하지 않게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는 옳았고, 다 남들의 잘못이고 남들이 고의로 나를 모함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이것을 자기가 지은 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계속 불평불만을 하게 되고 화를 내며 따지게 될 것입니다.
불자라면 세간의 고락과 화복, 성패와 득실은 모두 우리가 과거에 지은 업이 드러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업을 짓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성인이 되고 부처가 되어 이 범부 세간에서 윤회하지 않겠지요. 범부 세간에서 윤회하는 것은 전부 과거 생에 우리가 여러 가지 업을 지었기 때문인데, 다만 우리가 잊어버렸을 뿐입니다. 그러나 인과가 분명하여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자연히 그 과보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설하시길 “전생의 원인을 알고자 하면 금생에 받은 것이 그것이고, 미래의 과보를 알고자 하면 금생에 지은 것이 그것이다.”라고 하신 것이지요. 선업이 많으면 사람으로 환생하고, 악업이 많으면 지옥으로 떨어지며, 아미타불을 칭념하며 불력에 의지하면 극락세계에 왕생합니다. 따라서 불자에게 근기와 법에 대한 깊은 믿음이 있으면 자연히 번뇌하지 않고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괴로운 경계에 대해, 우리는 그것을 순수하게 괴로움이라고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괴로움은 도에 들어가는 인연이어서, 괴로움이 없으면 우리가 해탈할 생각을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괴로움이 있으므로 인해 우리가 해탈의 길을 찾게 되므로 우리는 도리어 이 괴로움의 인연에 감사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역경을 만났을 때, 마땅히 각도를 바꾸어 볼 줄도 알아야 하는데요. 왜냐하면 괴로움이 있어서 우리가 경계심을 가지게 되고, 사바세계의 괴로움을 염리(厭離)하고 극락의 안락함을 흔모하는 마음이 더욱더 깊어지게 되므로, 응당 괴로움에 감사해야 합니다. 만약 이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괴롭다고만 원망한다면, 장차 이 괴로움에서 또 다른 괴로움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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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인이 응당 가져야 할 기본관념과 마음가짐
혜정법사 강의
정전스님 번역
1. 본론 강의
염불하는 사람이 사회생활을 할 때, 응당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염불의 궁극적 이익
염불에는 여러 가지 이익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염불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업장을 소멸하고 복과 지혜를 증장시켜며 재난을 없애주고 전화위복하게 한다거나, 수많은 일 중에 큰일은 작은 일로 만들고 작은 일은 없던 일로 만들어 어느새 사라지게 하고 원만한 결과를 얻게 해줍니다. 염불에 이러한 효과와 이익이 있으나 이런 것은 단지 세간의 이익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세간의 이익이 아무리 풍요로워도 무상한 것이고 완전하지 않은 것이며, 사람이 죽은 후에 다시 육도윤회 해야 하므로, 우리가 염불하는 주요 목적은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염불하는 사람은 반드시 극락세계 왕생을 구하는 것을 그가 불법을 배우고 염불하는 데 있어 가장 높고 구경적이며, 게다가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다른 효과와 이익은 모두 부수적인 것들이라는 겁니다.
부수적이라는 의미는, 염불하는 도중에 비록 모르고 추구하지 않았어도, 자연스레 우리에게 내려 준다는 것입니다. 마치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염불하면 자연히 이익이 있게 된다고 했는데요. 그러나 우리의 주요 목적은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이므로, 절대 다른 요인으로 인해 염불하겠다고 발원하는 우리의 마음이 퇴실(退失)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극락세계에 왕생하려는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백 퍼센트 확고하여 중도에 퇴실하거나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출처: 정토종 (홍원염불회) | 염불인이 응당 가져야 할 기본관념과 마음가짐 - Daum 카페
정토법문의 핵심 -- 원생심
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방금 말씀드린 그런 항복하기 어려운 마음이 우리의 극락왕생을 장애하진 않지만, 우리에게 반드시 다음과 같은 관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아직 이 세상에 남아있고 아직 극락세계에 왕생하지 못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불가피하게 범부의 마음이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권속을 탐착하고 심지어 모든 걸 탐착할 수도 있는데요. 이른바 견혹사혹(見惑思惑)이라는 탐진치와 또 미세한 진사혹(塵沙惑)과 근본무명(根本無明)을 항복하거나 제거하지 못했지만, 어찌 됐든 간에 우리는 반드시 극락세계에 왕생해야 한다는 걸 똑똑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탐착이 있을 수 있지만, 임명종 시 양자택일해야 할 때 우리는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걸 선택해야 할까요? 아니면 계속 이 사바세계에 체류하는 걸 선택해야 할까요? 당연히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걸 선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걸 선택하고 극락세계에 왕생하길 발원하는 이런 결정된 마음은 본래부터 이미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에게 매우 깊은 원생심(願生心)이 있긴 하나, 아직도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시종일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지금 당장 나더러 왕생하라고 하면 아마도 나는 인간 세상을 떠나기를 몹시 아쉬워할 수도 있는데요. 왜냐하면 자기는 아직 늙지 않았고, 자손들을 양육해야 할 책임도 다하지 못했으며, 심지어 자녀들 모두 이미 결혼하여 자립했음에도 여전히 손자가 크는 걸 지켜봐야 한다거나 기타 각종 소원을 아직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간략히 말해서, 우리가 비록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려 하지만, 어쨌든 아직 모두 범부이므로 틀림없이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거라는 겁니다. 그렇지 않나요? 물론 괴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예를 들어 질병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거나, 병이 나을 기미가 안 보인다거나, 가정형편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되도록 빨리 왕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염불인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극락정토에 왕생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삶이 그런대로 순탄한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아직 탐착하는 마음이 남았을 텐데요. 이러면 왕생을 장애할까요? 장애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왕생을 장애합니까? 본래 아미타부처님은 바로 이러한 중생을 구제하시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본래 우리가 바로 이런 중생이기에 극락세계에 왕생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꼭 극락세계에 왕생해야 할 필요 있을까요? 꼭 아미타부처님을 의지해야 할 필요 있을까요? 우리는 자기 자신만 의지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임종 시 양자택일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다시 세간의 일체에 대하여 조금도 탐착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지금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고 이 세상은 이미 당신과 무관하며 당신이 아무리 미련을 갖고 아무리 집착하고 아무리 이 세상에 남아있고 싶어 한들 전부 헛수고이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육신을 이제 우리 마음대로 지배하지 못하고 이미 임종에 이르렀다면, 이때 우리의 집착하는 마음은 반드시 전부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결정코 왕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순간까지 여전히 집착하여 내려놓지 못한다면, 이건 평소 극락세계에 왕생하겠다고 하던 마음이 거짓이지 진짜가 아님을 증명해 주고, 이러면 퇴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세히 알아봐야 하는데요. 당신에겐 당신 본인의 업이 있고, 당신의 자손들에겐 자손들의 업이 있는데, 우리가 죽은 뒤에 아직 극락세계에 왕생하지 못하였고, 아직 지옥에 떨어지지도 않았으며, 아직 천상계에 태어났거나 즉각 환생하지도 못했다면 지금의 이 상태가 바로 중음신 상태입니다. 중음신의 수명은 기껏해야 49일인데, 이 49일 이내에 지난 과거 생들과 금생에 지은 선업과 악업에 따라 윤회 환생하기 때문에 중음신(세간에서 보통 영혼이라 부름)이 영원히 이 가정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을 집착하여 권속과 이별하기 아쉬워하고 이 환경을 떠나기 서운해하거나 재산(동산, 부동산)에 미련을 갖더라도 절대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그 과보를 받아야 하니까요. 자손들과 영원히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신식(神識)이 세세생생 이 집 안에 머문다거나, 나아가 세세생생 환생하여 나의 자손들과 권속이 되려고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런 업보의 이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맨 마지막 결정적 순간에 양자택일할 때, 우리는 극락세계를 선택하고 다시는 사바세계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세생생 항상 이 사바세계에서 금생의 배우자와 부부가 되려고 하거나, 세세생생 자손들과 권속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개인의 업이 각자 다 다르므로, 이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육도윤회가 무상하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요. 무상의 본질이 바로 고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 공, 무상, 무아”입니다. 따라서 임종 시에는 반드시 완전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내려놓았다곤 하나 실제로 잃어버린 건 아닙니다. 왜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할까요? 왜냐하면 극락세계에 왕생한 후에는 도리어 신통력이 있기 때문에, 집에 돌아와서 후손들을 찾아 보고 싶으면 즉각 돌아와서 후손들과 과거 세세생생의 부모 권속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만약 그분들이 극락세계에 왕생하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육도에서 육회하고 계실 텐데, 그때 우리에겐 신통력이 있으므로 그들을 구제하여 극락세계에서 다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권속들을 떠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이렇게 해야만 그들을 볼 수 있고 신통력으로 그들을 구제할 수 있으며 후손들을 보살펴 줄 만한 충분한 공덕을 갖출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염불하는 사람으로서, 결정코 극락세계에 왕생할 사람으로서, 이러한 결심은 지금부터 임종 시까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생활하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 자손들의 곁을 떠나기 아쉬워하지만, 이런 마음은 자연스레 무의식중에 나타난 마음이므로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도래했을 때, 우리는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극락세계로 귀순해야 합니다. 어쨌든 염불하는 사람으로서 결정코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해야 하고, 왕생에 있어서는 오로지 나무아미타불만 부르고 오로지 나무아미타불에만 의지해야 합니다. 이래야만 진정한 염불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출처: 정토종 (홍원염불회) | 정토법문의 핵심 -- 원생심 - Daum 카페
먼저 오욕의 마음을 끊어야 염불할 수 있는가?
불자로서 성도문에 의지하여 수행하든, 정토문으로 들어오든 간에 최종적으로는 모두 무명을 항복하고 나아가 없애야 합니다. 다만 지난날 우리가 불법을 공부하던 과정을 되돌아보면 알 수 있듯이, 불법을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자기가 철두철미한 박지범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우리 모두 범부입니다. 비록 제가 출가를 했다지만 저 또한 여전히 범부이고,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도 여전히 범부입니다. 범부의 함의는 무엇입니까? 바로 탐진치를 구족하고 망상잡념을 끊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망상잡념이 있고 탐진치가 있기 때문에 오욕의 경계를 탐착하게 되는 것이지요. 범부라면 모두 이런 마음이 있고, 아직 이런 마음이 있으면 그가 바로 범부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박지범부일까요? 바로 자신의 탐진치 번뇌가 남들보다 더 치성하고, 망상잡념이 남들보다 더 많고 더 복잡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비록 불법을 배우고 있지만, 지금까지 자기의 힘으로 불법에서 말하는 계정혜를 닦을 수 없고 탐진치를 항복시킬 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육도윤회는 또 명백히 눈앞에 놓여있는데 이걸 어떡해야 할까요? 따라서 극락세계에 왕생하길 발원해야 합니다. 오직 극락세계에 왕생해야만 우리 같은 박지범부로 하여금 이번 생에 불법을 배워서 이번 생에 바로 불도를 성취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모두 박지범부입니다. 범부라면 모두 오욕락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고, 오욕을 추구하는 것이 곧 애정에 탐착하는 것입니다. 무슨 애정일까요? 바로 남녀 간의 애정, 권속 간의 애정, 그리고 명예를 탐하고 이익을 탐하고 권력을 탐하고 지위를 탐하는 등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극락세계에 왕생하려면 먼저 집착에 무심해야 하거나, 반드시 먼저 오욕의 마음을 끊어야만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문을 배우든 정토문을 배우든 간에 자기의 범부 마음을 조금도 항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탐착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자각했다면, 우리는 대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눈앞의 이런 무기력한 곤경을 타파해야 할까요? 왜냐하면 우리에게 이처럼 항복하기 어려운 탐착심이 있고, (이치대로라면 자기 스스로 항복시켜야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또 아미타부처님께서 바로 우리 같은 중생을 위해 발원하시고 수행하시고 극락세계를 건설하셔서 이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 만덕홍명을 완성 시키고 일체 중생에게 내려 주셨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가 비로소 진귀한 보물을 얻은 것처럼 염불에 의지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법문을 배우는 심정은, 금생에 반드시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그 어떤 환경이나 요인으로 인해 조금도 퇴전할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출처: 정토종 (홍원염불회) | 먼저 오욕의 마음을 끊어야 염불할 수 있는가?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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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마음을 알고 크게 편안해지다
따라서 염불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왕생에 대해 당연히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경전에서 이르기를 “광명은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면서 염불하는 중생을 섭취하여 버리지 않느니라.”라고 하셨듯이, 염불하는 사람은 시시각각 영원히, 지금부터 임종할 때까지 언제나 아미타부처님의 광명섭취 속에 있습니다. 이건 마치 물을 컵 속에다 담아두면 바깥으로 흐르지 않는 것과 같은데요. 염불하는 사람은 언제나 아미타부처님의 광명 속에 있고, 게다가 임종할 때가 되면 《아미타경》에서 이르기를 “그 사람의 임명종 시에 아미타부처님께서 여러 성중들과 함께 그 사람 앞에 몸을 나투시게 되느니라.”고 하셨듯이 아미타부처님께서 관음, 세지, 청정대중보살을 거느리고 우리의 앞에 몸을 나투시게 됩니다.
이렇게 아미타부처님께서 먼저 오시기 때문에 우리가 임명종 시에 마음이 전도되지 않고 정념이 현전하여 결정코 왕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아직 숨이 끊어지기 전 단계를 임종이라 부르는데요. 아직 숨이 끊어지기 전 임종 시에 우리 염불인들은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데, 그가 정신을 잃든 안 잃든 관계없이, 설사 정신을 잃었다고 해도 혼수상태에서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병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 역시 자기가 염불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지금 고통으로 인해 염불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때가 되면 아미타부처님께서 자기를 접인하러 오신다는 걸 알고 있기에 마음속에 위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조용히 아미타부처님이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이런 염불인의 경우, 이때 그의 마음속에는 매우 큰 안심이 있고, 환희용약하는 마음이 있으며, 인생에서 윤회의 고, 육체의 고, 세간의 고가 이제 곧 다하고, 현재 극락의 낙을 아무 조건 없이 그에게 주려고 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염불하는 사람으로서 아미타부처님의 구제에 대해, 부처님의 마음에 대해 이렇게 알고 있으면, 그는 임종 시 병고로 인해 염불할 수 없을 때도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위안이 있고 매우 큰 희락이 있습니다. 만약 염불하면서도 아미타부처님의 마음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아미타부처님의 자비와 지혜, 신통과 원력에 대해 잘 모른다면, 이렇게 되면 그는 매우 괴로울 것입니다. 많은 염불인들이 아미타부처님의 제18원 본원구제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비록 염불하고 있으나 불안해하고 임종할 때가 돼서도 여전히 괴로워해서 사람들이 그가 도대체 왕생했는지 못 했는지 걱정하게 만드는데요. 이건 그가 부처님 마음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처님 마음을 알고 염불의 이치를 안다면, 그가 어떻게 염불하든 간에 그의 마음은 언제나 편안하여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만 염불하면 됩니다. 당신이 무슨 근기면 당신 현재의 근기로 염불하고, 왕생과 관련해서 당신은 오로지 이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만 부르는 겁니다. 다만 인간관계나 세상사에 대해선 좀 담담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하고, 마땅히 다해야 할 본분은 여전히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염불인이 마땅히 갖춰야 할 근본적인 마음가짐입니다.
출처: 정토종 (홍원염불회) | 부처님 마음을 알고 크게 편안해지다 - Daum 카페
사농공상에서 염불
게다가 개개인의 근기와 인연이 각각 달라 출가자와 재가자가 있고, 사농공상(士農工商)에 종사하는 직장인, 그리고 정년퇴직하고 집에서 여생을 보내는 은발족(銀髮族)이 있으며, 근기가 뛰어나 염불하자마자 청정심을 얻은 이가 있고, 염불할 때 망상잡념이 매우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시방중생의 근기가 각각 다르지만, 모두 관계없이 그의 근기대로 염불만 하면 됩니다. 그가 어떤 근기면 아미타부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그를 구제해 줄 것이므로, 그가 재가자이고 염불할 때 망상잡념이 매우 많다거나, 혹은 매일 염불을 많이 하지 못한다고 해서 아미타부처님께서 그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미타부처님께서 중생의 근기가 각각 달라 어떤 사람은 염불할 시간이 비교적 많아 염불을 좀 더 많이 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시간이 별로 없어 염불을 좀 적게 하고, 어떤 사람은 비교적 정진하고 어떤 사람은 비교적 게으르며, 어떤 사람은 마음이 비교적 청명하고 어떤 사람은 비교적 번뇌가 많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것이 바로 천차만별의 시방중생입니다. 그러나 아미타부처님은 무연대자, 동체대비이시고, 원수와 친한 이가 평등하고 자타가 한 몸이어서 아무런 차별 관념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가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로 결심하고 전적으로 이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에 의지한다면, 모두 평등하게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염불인들은 서로 비교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비교하다 보면 괴로워하고 불안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개개인은 모두 자기의 신분과 능력에 따라 시간이 날 때마다 염불하도록 자기 자신을 단속하고 자기 자신에게 요구해야 하는데요. 아미타부처님의 제18원의 “내지 십념”이 바로 우리더러 자기가 낼 수 있는 시간에 따라 염불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에 수순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염불해야 합니다.
출처: 정토종 (홍원염불회) | 사농공상에서 염불 - Daum 카페
전심염불과 산심염불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한다면, 또 전심염불(專心念佛)과 산심염불(散心念佛)의 구분이 있는데요. 산심염불이란 곧 길을 걷든, 일을 하든, 언제든지 머리를 쓰지 않을 때, 우리는 항상 이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을 입으로 부르는데, 이렇게 부르는 것을 산심염불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이때 우리의 눈은 주위를 살피고 있고, 귀는 주변 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눈은 주변 환경을 보고 있고, 귀는 주변 소리를 듣고 있고, 손은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염불을 안 하지 않을 것이고, 염불만 할 수 있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염불할 것이므로, 이런 상황에서 하는 염불이 바로 산심염불입니다.
이 밖에 또 한 가지 염불이 전심염불인데요. 다른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 머리도 쓰지 않고 다른 일도 생각하지 않고…… 한가할 때 전심으로 염불하며 한 글자 한 구절마다 모두 뚜렷하다면, 이때 하는 염불을 전심염불이라 부릅니다. 따라서 우리가 법당에서 시간이 길든 짧든 상관없이, 설사 짧은 몇 분이라도 모두 전심염불하고 있을 때입니다. 왜냐하면 법당에 앉아 있으면 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몸은 정좌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눈을 감고 보지 않으며 자기가 염불하는 소리만 듣기 때문에 전심염불이라 부릅니다.
한 사람의 염불은 산심염불이 아니면 곧 전심염불입니다. 따라서 염불에는 산심염불과 전심염불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가 전심염불할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될까요? 24시간 중 여덟 시간은 일을 해야 하고, 여덟 시간은 잠을 자야 하며, 삼시세끼 밥 먹고 씻고 오락하고…… 이를 제외한 할 일 없고 머리 쓰지 않을 때, 우리는 하루 중 이런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초심자들은 자기 스스로 이런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수천 번, 수만 번씩 염불하는 것을 일과로 정할 수 있는데요. 이때 염불할 때 염주(계수기)를 돌리며 자기가 몇 번 염불했는지 숫자를 셀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숫자를 세야 마음도 부처님 명호에 집중할 수 있거든요. 한가할 때 이런저런 핑계로 허송세월하며 귀한 전심염불의 인연을 헛되이 낭비해서 안 되고, 또 자기는 입술을 움직이며 염불하고 있다고 해서 한가할 때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자기는 산심염불을 하고 있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한가한 시간이 있을 때, 우리는 전적으로 전심염불 하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따라서 산심염불을 하는 것은, 염불인으로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든 무슨 상황이든, 다시 말해 행주좌와를 막론하고, 시간과 장소, 어떤 인연이든 상관없이 당연히 염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심염불할 시간이 있으면 전심염불을 해야지, 단지 산심염불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심염불을 소홀히 해선 안 됩니다.
출처: 정토종 (홍원염불회) | 전심염불과 산심염불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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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의 고를 느낌으로 인해 자연히 염불이 이어지게 된다
이 밖에도 만약 극락세계에 왕생하려는 마음이 아주 간절하다면 다른 사람의 격려와 채찍질이 필요 없이 그는 자연스레 염불하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세상 모든 게 거짓이고 전도되고 진실하지 않으며, 오직 극락세계만이 진실하고 아미타부처님만이 진실하여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고, 일념으로 사모할 가치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그의 마음은 한결같이 자연스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싶어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일생 중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사업이 성공하여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가 높고 가정이 원만한 것이 아니라 염불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일체 부귀영화는 전부 개인의 인연과보일 뿐이고, 고락화복도 잠시일 뿐입니다. 더구나 사바세계는 고만 있을 뿐 낙은 없고, 낙이 다하면 고가 오므로, 낙의 본질이 곧 고입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반드시 철저히 이고득락하고 사바의 고를 싫어하여 버리려 하고 극락의 낙을 흠모하는 이런 관념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관념이 있는 한 그의 마음은 한결같이 자연스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염불이 바로 왕생의 정인이니까요. 만약 이러하다면 그가 바로 왕생이 결정된 사람입니다.
왕생이 결정된 사람이라면 임종할 때를 기다려서 그의 왕생 여부를 확정 지을 필요 없이 임종하기 전에 지금 당장 왕생의 신분이 결정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병으로 죽든, 자살로 죽든, 재난으로 죽든……어떤 경우든 막론하고 반드시 왕생한다는 점에 대해 그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미타부처님은 대지혜, 대신통, 대자비, 대원력이 있으셔서 염불인들 개개인에게 어떤 업이 있고, 그의 수명은 언제 끝나고, 어떤 상황에서 왕생하는지를 아미타부처님은 전부 알고 계시고, 때가 되면 아미타부처님은 반드시 그를 접인하러 오신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정토종 (홍원염불회) | 사바의 고를 느낌으로 인해 자연히 염불이 이어지게 된다 - Daum 카페
생소한 곳은 익숙하게 바꾸고, 익숙한 곳은 생소하게 바꿔라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하자면, 일체중생은 모두 마음이 있는데, 마음이 있는 한 염불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망상잡념을 생각하고 있고 염념마다 모두 업일 것입니다. 《지장경》에서 이르기를 “남염부제 중생의 행동거지와 일으키는 생각들은 업이 아닌 게 없고 죄가 아닌 게 없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이 점을 이해한다면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야 할 것입니다. 불자로서 시시각각 자기 마음을 관조해야만 불자라고 할 수 있는데요. 생각이 떠오를 때 자기가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하고, 생각을 알아차리는 즉시 생각은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생각을 사라지게 하는 능력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 생각을 바꾸어 나무아미타불을 부릅니다. 이것이 바로 염불이라는 정념으로 갖가지 망상잡념을 없애는 것입니다.
출처: 정토종 (홍원염불회) | 생소한 곳은 익숙하게 바꾸고, 익숙한 곳은 생소하게 바꿔라 - Daum 카페
염불의 방식
방금 오로지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불러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염불하는 방식에는 큰 소리로 부르는 “대성념”, 작은 소리로 부르는 “소성념”, 입술을 움직이며 본인만 들을 수 있게 부르는 “금강념”, 마음속으로 묵묵히 부르는 “묵념”, 이 네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평소 우리는 금강념을 위주로 해야 합니다. 금강념이란 입술만 움직이고 소리 내지 않으며 자기만 들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겐 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금강념으로 하면 비교적 힘들지 않아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긴 시간을 염불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그렇다면 대성념과 소성념은 필요할까요? 이건 상황을 봐서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 대중이 공수할 때, 사람들 모두 소리 내어 염불한다면 사람들과 함께 큰소리로 염불하고, 대중을 따라 염불하는 게 힘이 든다면 작은 소리로 염불해도 됩니다. 만약 개인이 일상생활 속에서 염불한다면 금강념을 위주로 하고, 가끔 자기가 큰소리 혹은 작은 소리로 염불하고 싶으면 자기 뜻에 따라 큰소리, 작은 소리 또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염불할 수도 있는데, 가장 주요한 것은 금강념입니다.
왜 우리는 금강념을 좀 더 장려할까요? 그 이유는, 금강념은 입술만 움직이므로 힘들지 않고 기가 상하지 않으며, 또 묵념의 단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범부의 습성은 망상잡념이 끊이지 않는 것인데요. 망상잡념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것이어서 견고하여 깰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자기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염불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사실은 왕왕 염불하고 있지 않다면, 그렇다면 자연스레 망상잡념 속에 떨어지게 되므로, 우리는 입술을 움직임으로써 우리의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따라서 평소에 가장 좋기로는 입술을 움직여 염불하는 습관을 길러서 길을 걷든, 일을 하든, 집에 있든…… 항상 입술을 움직이며 염불해야 합니다. 이런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출처: 정토종 (홍원염불회) | 염불의 방식 - Daum 카페
문답2) 염불은 여섯 자로 해야 하는가? 넉 자로 해야 하는가?
2)
질문: 평소 자기가 염불할 때 여섯 자로 불러야 합니까? 아니면 넉 자로 불러도 됩니까?
대답: 평소 염불은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 위주로 불러야 합니다. 법당 안에서 정좌할 때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길을 걸을 때도 나무아미타불을 불러야 하지만, 잠에 들기 전에는 아미타불 넉 자만 불러도 됩니다. 만약 병고에 시달려서 육자명호를 부를 수 없는 경우라면 아미타불 넉 자만 부르든가, 아니면 두 자, 한 자만 불러도 됩니다. 왜냐하면 여섯 자를 부르는 것도 아미타부처님 그 자신이고, 넉 자를 부르는 것 역시 아미타부처님 그 자신이기 때문인데요. 따라서 여섯 자를 부르든, 넉 자를 부르든, 두 자, 한 자를 부르든 전부 아미타부처님 그 자신입니다만 여섯 자가 좀 더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임종할 때가 돼서 염불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때 아미타부처님께서 반드시 접인하러 오실 거라고 믿기만 하면 똑같이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여섯 자에는 특별한 함의가 있는데요. 우리 중생과 아미타부처님은 한 몸으로 둘이 아니고, 부처님과 범부는 한 몸으로 기법이 일체임을 나타내고, 또한 아미타부처님께서 공덕을 우리에게 회향해 주시고 우리는 아미타부처님의 구제에 수순하여 피차 상호 작용하고 서로 호응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만약 넉 자를 부른다면 아마 이런 함의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평소엔 여섯 자 위주로 부르지만, 그렇다고 꼭 여섯 자만 불러야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종의 인연 속에서 완전하게 육자명호를 부를 수 없으면 넉 자, 두 자, 한 자로 바꾸어 불러도 됩니다. 다만 우리 현재 아직은 건강하므로 육자명호를 부를 수 있으면 당연히 육자명호 위주로 불러야 합니다.
비록 넉 자를 부르는 게 좀 더 간략하긴 하나, 이상에서 말씀드린 이런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흔히 자기도 모르게 자력에 치우치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넉 자로 부를 때 종종 부르면 부를수록 더 빨라지는데, 그의 목적은 마음을 집중하는 데 있고, 정해진 기한 내에 성취하기를 바랍니다. 여기에는 자력의 마음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자력의 성분이 없고 완전히 아미타부처님의 힘에 의지하는데, 다만 이런 방법으로 자기 마음을 조복시키려는 것이라면 이것은 괜찮습니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 칭명하든 다 괜찮지만, 결국 “완전히 타력에 의지하고 있는가? 완전히 아미타부처님을 의지하고 있는가? 제18원을 따르고 있는가?”를 봐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가장 근본입니다. 만약 이 이치를 이해하고 이런 신심이 있을 때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염불해도 다 옳은 것이고, 게다가 그는 평소 육자명호를 위주로 염불할 것입니다.
정토종 염불회에서 이미 많은 총서들을 출간했는데, 책은 작가의 지혜의 결정체입니다. 게다가 출간하기에 앞서 모두 자세히 수정을 거쳤고, 평소 말씀드린 정토종의 교리도 책 속에 비교적 완전히 갖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마치 선지식이 우리 곁에 있는 것과 같은데요. 보통 법문을 듣고 나면 흔히 바로 잊어버리는데, 만약 책이 있으면 수시로 반복해서 볼 수 있어서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복습하고 많이 듣고 훈습할 수 있는 것이 책의 효과입니다. 많은 이치들이 책 속에 이미 다 기록되어 있기에, 만약 이런 책을 가지고 있다면, 한가할 때 책을 펴서 읽다 보면 “이치에 밝으면 믿음이 깊어진다(理明信深)”, 이치를 분명히 알면 신앙도 자연히 견고해지고 깊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일체 생각과 행위는 모두 마음이 주도하여 추진하므로, 어떤 마음이 있으면 어떤 언어와 행위가 있게 되고, 어떤 운명이 생기고 어떤 결과로 변하게 됩니다. 물론 듣는 것도 필요합니다. 듣는 것에는 들어서 남은 인상이 있고, 듣는 것에는 들어서 얻게 되는 느낌이나 체득이 있지요. 다만 듣는 것은 단번에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다시 듣고 싶으면 녹음을 해두었다가 기계의 도움을 빌려 재생시켜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이 있으면 되도록 책을 보시고,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응당 더 많이 읽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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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3) 이전에는 종이돈을 태웠었는데, 지금은 염불회향만 하면 되는가?
3)
질문: 이전에 늘 초하루나 보름 또는 청명절에 조상님에게 제사 지낼 때 항상 종이돈을 태워드렸었는데, 지금은 염불하여 회향만 해드리면 될까요?
대답: 이전에 늘 초하루나 보름이 되면 세속의 풍습은 종이돈을 태우는 것이었는데, 우리 정토법문에서는 이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사는 여전히 관례에 따라 《아미타경》 일독한 후에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칭념하면 됩니다. 제사를 지내기 전에 조상님들을 소청하여 먼저 우리와 함께 독경하고 염불할 것을 부탁드리고, 아울러 조상님들께 먼저 정토법문의 관련 이치에 대해 법문해 드릴 수 있는데요. 이렇게만 하면 됩니다. 만약 시간이 부족하다면 《아미타경》도 독송할 필요 없이 직접 염불하여 회향만 해드리면 되고요. 초하루, 보름, 청명절……모두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성묘는 “부모상과 조상 제사를 경건하게 예를 다하면 민심이 순박하고 인정이 두터워진다(慎終追遠、民德歸厚)”라는 풍습에 따라 우리가 조상님에 대한 그리움과 효도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세상 사람의 마음을 충후(忠厚)하고 화목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따라서 청명절에는 여전히 조상님의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되, 채식을 해야 하고, 의식으로는 방금 말씀드린 독경과 염불 외에 다른 것을 할 필요 없습니다. 물론 현대적 관념도 있어야 하는데요. 조상님의 유해는 화장해야 하고 유골은 스님들이 보살피는 납골당에 안치해야지, 공동묘지가 좀 싸다고 해서 공탑(公塔)에 모셔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출가 스님들이 보살피는 납골당에는 조석으로 음식공양이 있고 독경도 있으며, 해마다 천도법회도 거행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의 조상님이 아직도 육도 속에 있다면 이런 천도법회가 돌아가신 분에 대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신의 처리 문제에 대해 타이베이에서 산골장(灑葬)과 수목장(樹葬)을 널리 시행하고 있는데요. 뼛가루를 나무 밑에 묻어서 비료가 되게 하는 이 방법은 아주 간단하고 비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나무 밑에 묻어놓고 대략 반년 정도만 지나면 비료가 되는데 이것을 수목장이라 부릅니다. 산골장이란 바로 뼛가루를 화초 밑에 뿌려서 비료로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산골장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돌아가신 분 중에 수목장을 한 경우, 간혹 그 나무가 자신의 묘지라고 집착하는 경우가 있는데, 만약 화장한 후에 산골장을 해버린다면 집착하는 마음을 없앨 수 있고, 우리로 하여금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 세상은 무상하여 최후에는 반드시 공으로 돌아간다는 이치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뼛가루를 밀가루처럼 가늘게 갈았으면 중생들과 인연 맺으려 할 때, 밀가루와 함께 섞어 산에다 뿌려서 야생동물과 연을 맺을 수 있는데요. 우리 모두 이전에 야생동물의 고기를 먹었던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바닷속에 뿌릴 수도 있는데, 우리가 이전에 물속에서 사는 수족(水族)들을 먹었던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정토종 (홍원염불회) | 문답3) 이전에는 종이돈을 태웠었는데, 지금은 염불회향만 하면 되는가? - Daum 카페
문답11) 빙의현상을 없애거나 개선할 방법은 없는가?
11)
질문: 어떤 사람은 빙의가 잘 돼서 너무 괴로워하는데, 이런 현상을 없애거나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요?
대답: 빙의가 잘 되는 사람은 보통 체질상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바른 지견이 있다면 빙의되지 않을 것입니다. 고인이 말하기를 “마는 마음에서 생겨나고, 요괴는 사람으로부터 일어난다. 마음이 바르고 진실하면 모든 삿된 기운이 침범하지 못한다.”라고 하였는데요. 빙의가 잘 되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은 체질이 좀 약한 경우입니다. 이런 체질은 음계와 좀 더 상응하기 때문에 산소나 장례식장, 병원 또는 어디에 귀신이 있으면 바로 느낄 수 있고 때로는 온몸이 불편할 수 있지만, 그에게 바른 지견이 있고 “마는 마음에서 생겨나고, 요괴는 사람으로부터 일어난다. 마음이 바르고 진실하면 모든 삿된 기운이 침범하지 못한다”라는 이치를 알고 전심으로 염불하며 부처님을 의지하면 결코 틀림이 없다는 걸 안다면 빙의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우는 정직한 사람을 두려워한다(狐怕正人)”라는 말이 있는데요. 요괴와 악마들은 모두 마음이 바른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마음에 정기(正氣)가 있어 단정하면 모든 삿된 기운이 침범할 수 없고, 나아가 마음이 안정된 사람은 호랑이도 그를 물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범부이고 그런 경계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염불합니다. 따라서 염불하든, 혹은 일반적인 독경을 하든, 혹은 선행을 많이 하든, 혹은 부모님께 효도하든, 이런 사람은 귀신도 그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빙의가 잘 되는 사람은 그의 체질 관계이기 때문에, 그가 이상 말씀드린 관념을 가지고 실천한다면 자연히 빙의되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귀신은 단정한 사람을 존경하고 요괴와 악마들도 그런 사람에게 접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요괴는 바른 사람을 두려워한다”,“사람은 귀신을 무서워하고, 귀신은 더욱 사람을 무서워한다”입니다.
출처: 정토종 (홍원염불회) | 문답11) 빙의현상을 없애거나 개선할 방법은 없는가? - Daum 카페
문답10) 먼저 얼굴빛이 좋아 보였다가, 다시 안 좋게 변했어도 왕생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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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가까운 친척 중 한 분이 막 숨이 끊어졌을 때 얼굴이 매우 좋아 보였으나 서너 시간 지난 후에 다시 눈을 뜨고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요. 이런 경우에 왕생했을까요?
대답: 이 망자는 왕생했을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신통력이 없기 때문에 그가 극락세계로 갔는지 아니면 다른 도로 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가 숨이 끊어지고 서너 시간 동안은 얼굴에서 빛이 났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로 입을 벌리고 눈을 뜨고 사지가 뻣뻣해지는 등, 앞서 매우 좋았다가 뒤로는 매우 좋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신식(神識)과 육체가 여전히 호응이 있고 감촉이 있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걸 나타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의 시신이 바다에서 떠다니다가 나중에 사람들에 의해 해변으로 건져졌으나 줄곧 그의 가족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칠 일이 지나서 그의 가족들이 찾아왔는데, 가족들이 시신을 보자마자 시신의 일곱 개의 구멍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이것은 그의 신식이 여전히 그의 몸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나타냅니다.
쟈아이 타이보시(嘉義太保市)에 임유방(林莠芳)이라 부르는 연우님이 계시는데, 며칠 전 저를 만나 이미 돌아가신 그녀의 큰오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는데요. “저의 큰오빠는 평일에 낚시를 좋아해서 쉬는 날만 되면 냇가나 바닷가에 가서 낚시하고 저녁 식사할 때가 돼서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1996년 정월 대보름 전날에도 큰오빠는 평소대로 낚시도구를 챙기고 가족들에게 가볍게 몇 마디 말하고는 낚시하러 나갔으나 그날 밤 집에 돌아오지 않아 가족들이 사방으로 찾아다녔습니다. 다음 날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즉시 경찰에게 수색을 요청하였고, 한 주정도 지나서 경찰은 마침내 인적이 드문 하천 옆에서 그의 시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인적이 드문 데다가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고 억새는 사람보다 키가 커서 누군가 일부러 들어가지 않은 한 이런 곳이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웠습니다.
그 당시 큰오빠의 죽은 상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머리는 수심이 발목까지도 안 되는 곳에 묻혀 있었고, 얼굴은 물속에서 너무 오래 담가져 있다가 보니 피부가 이미 벗겨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경찰은 시신을 찾은 후에 잠시 시신을 장례식장의 냉동고에 보관해 두고 가족들이 확인하고 인수하길 기다렸습니다.
삼 일 뒤 시신을 확인하고 인수하라는 통지를 받고 저와 어머님, 그리고 큰오빠의 자녀, 또 기타 가족들이 즉각 인수하러 갔는데, 그때 불가사의한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죽은 지 열흘도 넘은 데다가 이미 빳빳하게 얼어있던 시신이 저의 어머님이 도착하자마자 눈가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그리하여 불법에서 말하는 인과응보가 진실하여 거짓이 아님과 사람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중음신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깊이 믿게 되었으며, 그 뒤로 염불과 공수법회에 참가하는 일에 대해 더욱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죽은 뒤에 신식은 육신과 함께 소멸하지 않고 주변의 말과 행위에 대해 여전히 인지하고 있고, 게다가 아직 촉감이 남아 있어 좋다 나쁘다를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임종의 염불과 법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망자가 만일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였다면 그의 얼굴은 자상하게 바뀌고 몸도 흔히 유연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몸이 유연하지 않다고 해서 왕생하지 못했다는 게 아니라 대다수가 이러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방금 당신이 언급한 그런 현상을 두고 말하자면, 그가 왕생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얼굴에 빛이 있고 아주 밝게 웃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정토법문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처음 아미타부처님의 구제를 듣고 기쁨을 느끼고 위안과 희망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필경 그가 육도윤회의 고통과 극락왕생의 중요성에 대해 아직 이해하지 못했고, 선악과 은원(은혜와 원수)의 과보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고 내려놓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실제 상황을 우리는 모릅니다만, 일반적인 상황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왕생 여부에 대해선, 만일 계속 염불하여 그에게 회향해 준다면 아미타부처님께서 그를 기다려 주실 겁니다. 왜냐하면 그의 중음신 기간에 아미타부처님은 계속 그를 기다려 주시기 때문에, 그도 바뀌게 되고 왕생도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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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9) 돌아가신 분의 몸이 유연하다면 이것으로 이미 순조롭게 극락세계에 왕생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가?
9)
질문: 돌아가신 분의 몸이 유연하다면 이것으로 이미 순조롭게 극락세계에 왕생했음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대답: 사람이 죽은 후에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했다면 그의 몸은 유연해질 수 있고, 혹은 천상세계에 왕생했어도 몸은 유연해질 수 있고, 혹은 저승에서 신이 되었어도 몸은 유연해질 수 있고, 그가 평생 덕을 쌓고 선행을 닦고 나서 다음 생에 사람으로 환생하여 인간세상의 복보를 누리게 될 경우에도 몸은 유연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연하다는 것이 왕생했다는 유일한 인정 기준은 아닙니다. 왕생의 기준은 다음과 같은 두 종류가 있는데요.
첫째, 그가 평소에 반드시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로 결심하고 오로지 이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만 불렀다면, 그의 육신이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몸이 유연한가, 유연하지 않은가? 이런 것에 관계 없이 그는 반드시 왕생하게 됩니다.
둘째, 그가 평소 왕생하기로 결심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고, 전수염불을 했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임종할 때 누군가 그를 위해 법문을 해주고 조념을 해드렸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 아미타부처님께서 연꽃을 들고 그를 접인하러 오신 것을 보았거나,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그가 극락세계에 왕생한 것을 보았다면, 그가 왕생하였다고 확실할 수 있습니다. 만약 향기를 맡았거나 불광(佛光)을 보았다면, 이것으로도 극락세계에 왕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데요. 왜냐하면 불광이든 향기든 모두 부처님 혹은 극락성중이 오셨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돼서 그가 왕생하길 원한다면 즉각 자기가 이미 연꽃 위에 앉아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바로 왕생하게 됩니다. 만약 그에게 집착이 있다면, 이 집착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요. 바로 “애정(愛)”과 “원한(恨)”입니다. 만약 손자와 같이 있고 싶고, 어린 손자와 헤어지기 아쉬워하며……해서 “아미타부처님, 미안하지만 저는 아직 왕생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바로 애정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애정”에 집착하는 경우는 매우 많은데, 흔히 가정, 재산…… 등등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럼 원한에 대한 집착은요? “내 남편, 내 아내……를 원망하고 미워하여 절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세상에 어디 그리 쉬운 일이 있습니까? 저는 세세생생 그들을 따라다니며 빚을 받아낼 겁니다. 아미타부처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아직 부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돼도 역시 왕생할 수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집착이란 곧 애정과 원한 이 두 종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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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13) 어떤 것이 정확한 회향방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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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비록 본인이 인과의 도리를 깊이 믿고 있고, 늘 상인의 가르침을 들으면서 수행과 도업,인과에 대해 비교적 깊은 신심을 다지고 있지만, 항상 권속들을 걱정하게 됩니다. 특히 90세가 넘으신 모친이 계셔서 염불하는 방식으로 회향해 드리고 싶은데, 어느 연우님이 말하기를 마땅히 자기 업장에 회향하여 자기의 도업을 먼저 이루고 나서 다시 권속들에게 회향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정확한 건지 상인께 여쭙고 싶습니다.
대답: 당신과 그 연우님의 관점이 다른 것은 “회향”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회향”이란, 오늘 칭념한 만 번의 염불 또는 얼마만큼의 염불을 오직 한 사람한테만 회향할 수 있을 뿐, 다른 사람에게 회향할 여력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설사 한번 칭명하더라도 백천 만에 달하는 대상에게 회향할 수 있기에 자신의 원친채주들에게 회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조상, 자녀, 육친권속 및 인연이 있거나 인연이 없는 중생들에게 모두 회향할 수 있습니다. 다만 회향할 때 핵심을 잘 파악하여 서술해야 하는데요. 예컨대 모친의 신앙 및 왕생에 대한 심정, 그리고 자녀에 대한 교육, 그들이 정정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우리의 종교신앙을 계승할 수 있는지 등등에 대해 우리가 특별히 관심 가는 부분들을 열거하여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원이차공덕, 평등시일체, 동발보리심, 왕생안락국”으로 마무리하시면 모두 그 속에 포함됩니다.
“사람에게 진실한 마음이 있으면 부처님께서 감응이 있으시고, 사람에게 선한 원이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 “발원이 있으면 인연이 있다.” 우리에게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아미타부처님께서 다 아시고 최대한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설사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무거운 과보를 가볍게 받게 될 것이고, 아미타부처님께서 은밀하게 운용해 주시기 때문에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회향하고 나서는 아미타부처님의 안배와 아미타불의 운용에다 맡겨야 합니다.
이 외에도 어린이들의 눈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들의 눈은 마치 카메라와 같아서 부모의 삼업 행위들을 전부 그들의 머릿속에 입력해 두었기 때문에 그들은 부모의 행위를 보면서 자라게 됩니다. 공자님이 말하기를 “자신이 바르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행할 것이고, 자신이 바르지 않으면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고, 또 “자신부터 바르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는데요. 우리가 단정하게 한다면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몸소 행동으로 가르치는 게 말로만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을 교육하는 방면에서 몸소 모범을 보이는 게 더욱 중요하겠지요. 만약 자기부터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말로만 자녀들을 독촉한다면 그 효과는 크게 뒤떨어질 겁니다.
물론 자녀는 자녀대로 복이 있고 자녀는 또 자녀의 업장이 있기 때문에 어떤 업장은 설사 부모가 제아무리 거룩해도 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이때에는 바로 불력에 의지하여 부지런히 염불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염불하는 사람은 설사 그들에게 회향해 주지 않더라도 자연히 이 공덕이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데요. 이른바 “한 사람에게 복이 있으면 온 집안이 그 덕을 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복보가 집안의 어른이든 아이들이든 전부 그 혜택을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옛말에 또 이런 말이 있는데요. “한 사람이 득도하면 닭과 개도 승천한다.” 즉, 그 사람의 덕을 본다는 뜻입니다. 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선정에 들었던 산중의 초목을 먹은 소나 양의 털에서 광택이 난다.” 이 말의 의미는, 이 산에 아라한이 거주하신다거나 어떤 사람이 산중에서 수행하여 선정에 든다면, 이 산의 풀과 나무를 먹던 소와 양의 털에도 광택이 난다는 것입니다. 단지 산중에서 수행자가 선정에 들기만 해도 이 산의 초목들이 푸르싱싱해지고 돌들은 반질반질하게 빛나며, 이 풀을 먹은 동물들의 몸에도 이런 변화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으로 한 단체나 가정에서 복과 공덕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가족들도 그의 보우를 받아 어느새 가족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따라서 모든 일에는 자신부터 돌아보고 자신부터 실천해야 합니다.
출처 : 정토종 (홍원염불회) | 문답13) 어떤 것이 정확한 회향방법인가? - Daum 카페
문답12)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를 위한 길인가? 정토종 (홍원염불회) | 문답12)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를 위한 길인가?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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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4) 겉으로 드러난 언행을 통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가?
정토종 (홍원염불회) | 문답4) 겉으로 드러난 언행을 통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가? - Daum 카페
2. 문답1) 임종 시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하면 어떡해야 하는가?
정토종 (홍원염불회) | 2. 문답1) 임종 시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지 못하면 어떡해야 하는가?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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