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 염불/체험담2-여러기도

***책:《관세음보살영감록》 PDF화일 --->법보시 사이트:삼보제자 다음카페/ (*참고: 현대 한국 관세음보살 기도영험담모음)/

아미연(阿彌蓮) 2021. 2. 4. 18:39

--->클릭하세요:

관세음보살영험록-2차 편집본.pdf

목 차

1편 병고를 치료해줌 (발병고拔病苦) 13

2편 재앙과 재난을 구제해줌 (구액난救厄難) 55

3편 복과 지혜의 혜택을 줌 (흥복혜興福慧) 131

4편 극락에 왕생하여 성인이 되게 함 (도생사度生死) 199

5편 권선징악의 과보를 보임 (광권징廣勸懲) 217

6편 널리 이적을 드러내심 (보시현普示現) 275

부록>

1 대비수(大悲水) 308

2. 연지대사 왕생극락 발원문 311

 

--->***출처: 법보시 사이트: 다음카페 삼보제자 -《관세음보살영감록》 PDF화일  

https://cafe.daum.net/sambojeja/RQa7/1?svc=cafeapi

 

~~~~~~~~~

(*참고: 네이버블로그 상방대광명 -

현대 한국 관세음보살 기도영험담모음 (171~180)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lawandme/221290804957

현대 한국 관세음보살 기도영험담 모음(181~200)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lawandme/221307564638 )

~~~~~~~~~~~~~~~~~~~~~~~~~~~~~~~~~~~~~~~~~~~~~~~~~~~~~~~~~~~~~~~~~~~~

*내용발췌 :

 

제1편 병고를 치료해 줌 (발병고拔病苦)

 

7. 돌림병도 비껴간 마을

강서성 신건현 서향지방에 이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같은 성씨 천여호가 모여 사는 집성촌에 섞여 살고 있었다.

무인년에 그 지방에 돌림병이 발생하였다. 십 중 팔구의 사람이 죽어나갔다.

오직 이씨 집만 깨끗하였다. 모두들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며 틀림없이 그 집에는 무슨 비방이 있을 거라고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 집에 무슨 비방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집 한가운데 아주 정성스럽게 관세음보살님상을 모시고 있었다. 그리고백의경1천부를 발행하여 보시하였다.

이에 대중들이 다투어 그 집을 본받았다. 그 후로는 매번 천연두 돌림병이 돌 때에도 그 마을만은 별탈이 없었다.

-백의경근험白衣經近驗

 

65. 온역을 막은 관음경과 왕일광 -> 2편 재앙과 재난을 구제해줌 (구액난救厄難):
강서성 구강지방에 왕일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우연히 친척집에 갔
다가 인쇄된《관음경》을 보고 그는 친척에게 부탁하여 한 부를 집으로 
모셔왔다. 향을 피우고 공경스럽게 신감神龕 속에 모셔두었다. 당시 온역이 돌았다. 이웃의 왼쪽집 오른쪽 집 모두 전염되었다. 오직 
왕일광 집만은 무탈하였다. 온 마을 주민의 절반수가 사망하였다. 왕일광
의 꿈에 관음대사가 현몽하여 일러 말씀하셨다. 이 마을에 이런 무서운 재난이 휩쓸었는데 불쌍하지도 않느냐!? 너는 
시급히《관음경》을 인쇄하여 좌우 이웃에 모두 집집마다 한 권씩 보시하
거라. 그러면 그들도 자연히 역병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왕일광은 꿈에서 깨어나 크게 깨닫고 그의 친척에게 다시 부탁하여 
또 여러 부를 모셔와 이웃들에게 모두 돌려주었다. 역병에 전염되어 고생
하던 집들이 모두 치유되었다. 그 후 원근에서 모두 그를 본받아 집집마
다《관음경》을 모시고 신봉하였다. 모두 온역을 면할 수 있었다. -《관음경영험록觀音經靈驗錄》

 

33. 두 아들을 구한 주화경의 법보시 
산동성에 주화경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시어라는 벼슬을 지냈다. 그는 40세 이후에야 두 아들을 얻었다. 그 아이들은 아주 청수하여 보통 
아이들과 좀 달랐다. 아이들 둘이 동시에 천연두 돌림병에 감염되었다. 매우 위험하였다. 의사도 속수무책이었다. 두 부부는 땅을 치며 통곡을 
하였다. 두 부부는 하늘을 향해 말하였다. 만약 애들이 죽으면 우리 둘도 애들을 따라 함께 죽을 것입니다.
그날 밤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말하였다. 당신 부부는 사람들에게 하늘에 이르는 힘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소? 만약 즉시《관음경》1장을 보시하면 아무 탈이 없을 것입니다.
이튿날 아침에 두 부부는 함께 서원하였다.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모든 방편을 다 이행하겠다고 맹서하고 곧 경을 인쇄하여 돌렸다. 두 아
들은 곧 병이 나았다. 이 날부터 믿고 더욱 정성으로 보살을 모셨고, 보
시도 더욱 확대하였다. 후에 두 아들 모두 과거에 등과하였다. -《남해자항南海慈航》

 

4. 소신을 찾아온 배도의 제자
유송劉宋(남북조시대에 유유劉裕가 세운 송나라를 지칭함) 시대에 오흥 지방
에 소신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불법을 깊이 신봉하였다. 그가 장티푸스 
병에 걸리자 아무도 그 사람 가까이 가려하지 않았다. 그는 비통하여 통
곡을 하면서 입으로는 끊임없이 관세음보살님을 염하였다. 그때 홀연 한 스님이 나타났다. 그는 자칭 배도杯渡의 제자라고 하였
다. 그는 장삼 소매 속에서 가루약 한 봉지를 꺼내서 환자에게 먹였다. 병은 곧 나았다. -《고승전초집高僧傳初集》

 

41. 사중화의 딸을 위한 기도
청나라 때 사중화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삼보를 신봉하고 또 숭배하
였다. 그에게는 어린 딸아이가 하나 있었다. 아이는 아직도 어른 품안에 
있을 때인데 우연히 돌림병에 감염되었다. 호열자 증상인 것도 같고 그렇
지 않는 것 같기도 하였다. 병세가 심각해졌다. 치료방법이 없었다. 그때 홀연 관세음보살님은 대자대비하시여 두루 중생을 구제하시는데 
정성껏 빌면 반드시 감응이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에 곧 전심전력 지
성껏 머리를 조아리고 기도하였다. 뿐만 아니라 병만 낫게 해주시면《관
음경》1.000권을 인쇄하여 세상에 보시하겠다고 약속까지 하였다. 그 여자아이는 밤이 되자 편안히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보니 
아이는 건강이 회복되어 평상시와 같이 놀았다. -《남해일작南海一勺》

 

~~~~~~

--->(*참고 : )

33분의 관세음보살님 나타나시다.(01.양류관음)

01.양류관음

 

양류관음의 양류楊柳 '버들가지,' 버드나무 가지'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양류관음은 '버들가지 관음'인 것일까?

전해 내려오는 양류관음의 모습은 버드나무 가지와 병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양류관음이 이런 모습으로 표현된 것은 버드나무 가지와 정병을 들고 나타난 관세음보살이 전염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바이살리 사람들을 구해 주었기 때문이다.

 

어느날 인도의 바이살리에 갑자기 전염병이 돌았다. 사람들은 병을 물리치기 위해 여러가지 조치를 취했지만 전염병은 퇴치되지 않았다. 죽거나 병드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자 바이살리의 모든 사람들이 큰 고통을 받았다.

 

사람들이 모두 시름에 잠겨 있을 때 한 사람이 관세음보살님에게 기도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부처님 당시부터 불교를 믿기 시작해 대부분의 바이살리 사람들이 불교신자였으므로 그 아이디어는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집에서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적이 없는 바이살리의 거리에 아름다운 중년여인이 나타났다.

하얀 색의 사리를 입은 그녀는 역시 하얀 색의 두건을 쓰고 있었다.

그녀는 거리를 둘러보면서 오른손에 든 벼드나무 가지를 왼손에 든 정병 속에 넣었다 빼자 벼드나무 가지에는 맑은 물이 가득 묻어 있었다.

여인이 버드나무 가지를 휘두르자 맑은 물은 거리에 뿌려졌다. 그렇게 하면서 바이살리 거리의 구석구석을 돈 여인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집에서 여인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녀가 하루 종일 거리를 돌았지만 쓰러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하나둘씩 여인에게 모여들었다.

그러자 여인은 사람들에게 한 진언을 알려주면서 모두 외우라 하였다.

누군가가 용도를 묻자 여인은 전염병을 물리치는 진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울리며 저마다 열심히 진언을 외웠다.

그러는 가운데 중년여인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이윽고 역병이 사라지고 평온을 되찾자 사람들은 버드나무 가지를 든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고는 '양류관음'이라고 불렀다.

이후 사람들은 전염병이 생기면 양류관음상에 모여 기도하였다.

 

출처:28. 33분의 관세음보살님 나타나시다.(01.양류관음)https://cafe.daum.net/hwangsanjigong/JfzH/795?q=%EA%B4%80%EC%84%B8%EC%9D%8C%EB%B3%B4%EC%82%B4%20%EC%96%91%EB%A5%98%EA%B4%80%EC%9D%8C%20%EC%A0%84%EC%97%BC%EB%B3%91%20%EC%9D%B8%EB%8F%84%20%EB%B0%94%EC%95%84%EC%82%B4%EB%A6%AC

 

~~~~~~

22. 앉은뱅이와 관음보살상
양주골에 두 다리를 못 쓰는 앉은뱅이 불구자가 한 사람 있었다. 불
구가 된지 이미 몇 십 년이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연못가에서 도자기
로 된 관음보살 상을 한 존 얻었다. 그는 그것을 깨끗이 씻어 곧 방안에 
모셔놓고 매일 새벽 5시에 동은암에서 종 치는 소리가 나면 그도 일어나 
보살상을 향해 예배 드렸다. 힘들지만 부지런히 예배드렸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어느 날 밤 꿈에 한 노파가 나타나 그의 온 몸을 
안마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일어나라고 소리쳤다. 그때 그가 대답하였다. 내가 어떻게 일어선단 말이요!
노파가 말했다. 괜찮다. 너는 오늘부터는 걸을 수 있다!
깨어나니 꿈이었고 그는 과연 보통사람과 같이 걸을 수 있었다. 이에 
동은암에 들어가 삭발하고 스님이 되었다. 강도현 현관의 노부인께서 많
은 재물을 보시하여 동은암을 중건하여 <존제암存濟菴>이라 암자 이름을 
고치고, 그 도자기 관세음보살님 상도 암자에 모셨다.-《각세경설증覺世經說證》

 

27. 앉은뱅이의 기도 가피
명나라 숭정 신사년(1641) 무렵 당도현의 현 관아의 문전에 한 산동출
신 앉은뱅이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 발 대신 손으로 땅을 짚고 하체를 
끌며 이동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싫어하였다. 그 앉은뱅이는 사람들이 멸시하고 모욕하는 것을 혼자서 참아오다가 
당교암에서 수곡이라는 스님이 수도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스님
에게 구걸하는 어려움을 하소연하였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만약 발원하여 출가할 수만 있다면 보살의 자비하신 큰 위신력
으로 혹시 어떤 시주가 와서 너를 구제해줄 지도 모른다.
앉은뱅이는 스님의 말씀대로 하기로 하였다. 이에 곧 머리를 깎고 계
를 받았다. 비록 구걸은 하지만 고기나 훈채를 먹지 않았다. 누가 그를 
모욕한다하여도 그냥 참고 받아드렸다. 수곡스님은 그에게 관세음보살님 
명호를 염하는 법을 가르쳤다. 동시에준제진언을 겸하여 지송하도록 
하였다. 스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한 지 2년이 되었다. 무자년(1648) 가을이
었다. 어느 날 꿈에 홀연 한 노파가 나타나 그를 부르며 말하였다. 일어서거라! 일어서거라!하였다. 앉은뱅이는 대답하였다. 저는 앉은뱅이인데 어떻게 일어서란 말이요.
노파는 손으로 그의 두 발을 잡아당겼다. 그는 다리가 펴져 구부리지 
않고 직선으로 바로 설 수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장애의 앉은뱅이는 
없어지고 다 치유되었다. 의연히 훌륭한 스님이 되었다. 평애라는 법호를 
받았으며, 후에 수곡스님을 봉양하였다. -《당의지기구서唐宜之己求書》

 

17. 장효순과 손자
송나라 때 장효순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손자가 하나 있었
는데 5살이 됐는데도 걷지를 못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였다. 근래에 회전지방에 한 농부가 있는데 발이 마비되어 오래 동안 걷지
를 못했다오. 그런데 그는 매일 관세음보살님 명호를 부단히 지송하였소. 이에 관세음보살님을 감동시켜 보살님께서 현신하셨다오. 

관세음보살님은 네 구절의 게송을 남겼다오. 

대지발어심, 어심무소심, 성취일체의, 무고역무금
 大智發於心, 於心無所尋, 成就一切義, 無古亦無今
 큰 지혜는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에서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다. 
 모든 진리를 성취함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 농부는 이 사구게를 외웠다오. 꼭 100일이 되니 불치의 다리 병이 
저절로 완치가 되었다오.
그는 장효순과 그 손자에게 게송을 가르치고 지도하였다. 그 손자는 
할머니와 함께 목욕재계하고 게송을 염송하였다. 3개월이 지났다. 손자는 
걸음마를 배워 보통 사람과 같이 걷게 되었다. 무릇 발과 다리에 병이 난 아이들 누구나 이 사구게를 염송하면 모두 
영험이 있다. 만약 총명과 지혜를 구하는 사람으로 능히 이 사구게를 염
할 수 있으면 모두 다 효과를 볼 것이다. -《관음자림집觀音慈林集》

 

11. 만스님의 출가 전 이야기
수나라 때 만이라는 스님이 계셨다. 그는 안정지방의 사람이었다. 그
가 아직 속가에 있었을 때 돌림병에 전염이 되어 두 다리를 펴고 움츠릴 
수가 없었다. 항상 관세음보살님을 염하였다. 어느 날 돌연 스님 한분이 나타났다. 그 스님은 아주 깨끗한 병 하나
를 들고 그 앞에 서 계셨다. 만은 그에게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셨어요?스님이 대답하셨다. 네가 항상 나를 찾기에 그래서 온 것이다. 너는 전생에 생물의 생명
을 너무 많이 살생을 하여 그 재앙으로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눈을 감아라. 내가 너의 병을 치료해 주겠다.
만은 그 스님이 시키는 대로 치료를 부탁하였다. 그런데 돌연 그의 
무릎에서 각각 한 치 남짓 되는 못 몇 개를 뽑아내는 것 같았다. 이에 
발은 정상이 되었다. 그가 눈을 뜨고 감사인사를 하려는데 그 스님은 온
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로부터 만은 더욱 정진하며 정성껏 관세음보살님을 신봉하였다. 결
혼도 하지 않겠다고 맹서하였다. 후에 홀연 선관禪觀을 자통自通하여 좌선
하고 앉아 일 주일 동안을 움직이지 않았다. 개황 원년(581) 무렵에 출가하여 구도사라는 절에서 살았다. -《고승전》2집

~~~~~~

18. 대회의 눈병을 낫게 한 관세음보살님
송나라 순희 5년 무렵 요주지방에 도순검이라고 하는 관리로 있는 나
생이란 사람이 있었다. 홍수를 피하여 왕무재의 집에서 임시 살고 있었
다. 홍수를 피해 온 나생의 가솔들 중에는 대희라는 시녀가 하나 있었다. 그 시녀는 눈이 안 보인지 오래되고 통증이 심하여 몹시 고통스러웠다. 어느 날 밤 꿈에 한 노승이 그녀를 불러 깨우더니 말하였다. 대희야! 네게 좋은 인연이 있음을 축하한다. 만약 네가 여기에 오지 
않았으면 반드시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기 위해 약을 가져왔다.
노스님은 말을 마치고 곧 그녀에게 약 한 사발을 주었다. 시녀는 그
것을 받아 마셨다. 그녀의 두 눈이 당장 밝아진 것 같았다. 시녀는 곧 스
님께 감사하다고 절을 하며 물었다. 노대사께서는 어디에서 오셨습니까?스님은 대답하였다. 나는 이 집에서 산 지 오래되었다. 네가 고통을 참지 못해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특별히 너를 구하러 온 
것이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시녀의 눈은 과연 회복되어 잘 보이게 되었다. 통증도 없어졌다. 모두들 괴이하게 여기며 자초지정을 물었다. 시녀는 꿈
속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낱낱이 고하였다. 집주인 왕무재는 그의 어머니께 여쭈었다. 그의 어머니가 말하였다.

그분은 바로 관세음보살님이시다. 우리 집에는 여러 해 동안 관세음
보살님을 모시고 예배드리고 있다. 위급하고 곤란한 일이 있을 때마다 정
중하게 예를 올리고 구하면 영험을 보이지 않는 적이 없었다.
-《영험기》

 

23. 처도스님에게 전수한 법게
태주지방에 처도라는 스님이 한 분이 계셨다. 그가 중년에 이르렀을 
때 돌연 눈에 병이 났다. 그는 항상 대비주을 지송하였다. 어느 날 밤 꿈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그에게 한 가지 법게法偈를 
전수하시며, 매일 아침 청정수 한 잔을 떠다놓고 향을 사루고 이 게를 7
번 외운 후, 그 물로 눈을 씻으라고 하였다. 처도스님은 관세음보살님이 이르신 대로 그 방법대로 하였더니, 눈병
이 곧 치유되었다. 그리고 88세까지 사셨다. 이 이야기를 기록한 사람도 한 달 이상 눈병을 앓았는데 손진원이라
는 의사가 이 방법을 가르쳐주어 그대로 하였더니, 역시 신통하게도 참 
영험이 있었다. 그래서 이 신통한 게송을 비밀로 묻어 놓을 수가 없어 
그 내용을 수첩에 적어 세상에 알렸다. 

그 게송은 아래와 같다. 

구고관세음救苦觀世音: 고통을 구제해주신 관세음보살님, 

사아대안락賜我大安樂: 저에게 크게 안락을 내려주시고, 

여아대방편與我大方便: 또 저에게 큰 방편을 주시어, 

멸아우치암滅我愚癡暗: 저의 어리석음과 어두움을 소멸시키셨고, 

현겁제장애賢劫諸障碍: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겁 동안의 모든 장애를 소멸시키시고, 

무명제죄악無名諸罪惡: 무명의 모든 죄악을 소멸시키시어, 

출아암실중出我暗室中: 저를 어두운 암실 속에서 나와,

사아시물광使我視物光: 저로 하여금 세상만물을 다시 보게 하셨습니다. 

아금설세법我今說洗法: 제가 이제 씻는 방법을 설명하여, 

참안석죄상懺眼釋罪狀: 눈병을 참회하고 죄상을 씻어내고, 

보방정광명普放淨光明: 보살님께서 맑은 광명을 두루 비추시어, 

원도미묘상願睹微妙狀: 안질 환자들이 모두 우주의 미묘한 현상을 다 볼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영간필기纓艮筆記》

 

31. 백의관음주를 염송한 왕경조
이 이야기는 청나라 왕어양王漁洋 선생께서 강술하신 내용이다. 경성지방의 보저현에 왕경조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이 17살 때 어쩌
다 눈이 멀게 되었다. 그러나 항상 백의관음주를 염송하였다. 강희 기사
년(1689) 4월 26일 밤 꿈에 한 부인이 소박한 단장으로 흰옷을 입고 나
타나 손가락으로 경조의 왼쪽 눈을 벌리더니 자그마한 집개로 눈에서 한 
치 가량의 핏줄을 끌어냈다. 그리고 또 그의 오른쪽 눈에서도 역시 핏줄
을 꺼내서 중간부분을 잘라버렸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눈은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니 물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다만 오른쪽 눈
이 조금 장애를 받을 뿐 멀쩡한 눈이 되었다. 이로부터 전 가족이 주문 
외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모두 지성으로 관세음보살님을 공경하였다. 반산의 졸암선사께서《왕경조전王敬祖傳》이라는 책자를 저술 발행하여 
이 일을 자세히 기록하셨으니, 모두가 그러한 영험사적을 널리 알려 많은 
사람이 교화를 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 주문은 이러하였다.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다지다 옴 가라바다 가라바다 가하바다 라가
바다 라가바다 사바하!
-《거이록居易錄》

 

32. 정전선생의 조모인 공태군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청나라 정전丁傳 선생이 자기 조모인 공태군孔太君의 이야
기를 강술한 것이다. 양 눈이 보이지 않은 지가 대략 20년이 되었다. 건
륭 임자년(1732) 봄이었다. 홀연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를 향해 말하였다. 나는 다만 한쪽 눈에 한 치의 광명만 있다해도 이 늙은 것의 바람은 
그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이어서 들려오는 말이 대답했다. 관음 대비주를 지송하는 사람은 무엇이나 바라는 바를 반드시 이룰 
수 있다 하지만 대비주는 주문이 너무 많아서 간단히 입으로 전수하여서
는 익숙히 외우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차라리대비관세음보살님7자 
성호만 일심전심으로 염송하면 눈은 틀림없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의 할머니께서는 그 말을 깊이 믿고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지
성으로대비관세음보살님일곱 자를 꾸준히 반복하여 외웠다. 한 달이 
다 되지 않아서, 어느 날 한쪽 눈이 과연 다시 보였다. 자기의 손바닥의 
손금도 다 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식구들에게 계단 아래에 서 있어보라
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자기는 이층에서 난간을 기대고 내려다보고 기뻐 
웃으면서 말하였다. 두 손자며느리가 들어왔는데도 이 늙은이는 한 번도 그 얼굴을 보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손자들 머리 땋은 것까지 다 볼 수 있게 되었구나. 이 모두가 부처님의 가피가 아니겠느냐? 대자대비하신 가피력은 이것 뿐
이겠느냐?

할머니는 이 이야기를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에게도 널리 광고하라고 
하였다. -《관세음지험기觀世音持驗記》

 

40. 대흥택 모친의 보시
안휘성 무원현 서향암 앞에 대홍택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의 
모친은 등씨였으며 평소 관음대사를 신봉하고 늘 예배하였다. 해마다 정
성으로 구고신고救苦神膏라는 고약을 만들어 널리 보시하였다. 도광 17년 6월 무렵 대홍택 집안의 조카 아모게라는 애가 나이 6살
인데 천연두에 감염되어 이미 왼쪽 눈은 실명하였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어느 날 밤 꿈에 한 노부인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 노부인은 아이 어머니께 말하였다. 이런 두창은 세상 사람이 능히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오직 
관세음보살님께 빌어야 구제되는 병이다.
어디에서 보살을 모시고 있는가 물으니 정씨가 마음이 매우 정성스러
워 이미 감통한 지가 3년이 되었다. 왜 등씨 댁에 가서 구고신고를 구해
다 쓰지 않으냐고 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그녀는 곧 대홍택의 집에 찾아
갔다. 결국은 관음보살께 매달려 약을 찾았다. 의사가 함부로 다뤄 등불로 안 보이는 눈을 치료한다고 하다가 갑자
기 눈알이 밖으로 튀어나와 힘줄이 매달려 있어 떨어지지 않았다. 온 식
구들이 몹시 놀랐다. 의사는 달아나고 말았다. 아이 엄마가 또 관음대사에게 애걸하고 기도하였다. 그날 밤 꿈에 또 
전에 보았던 노부인이 나타나 그녀에게《심경》을 2천 번을 계속 외우라
고 하였다. 그것도 이틀의 기한을 두고 다 읽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애 엄마는 글을 몰라 읽을 수가 없었다. 대홍택의 모친 등씨가 대신하여

알려준 회수대로 2천 번을 읽었다. 한편 아이는 여전히 구고신고라는 고
약을 붙이고 있었다. 왼쪽 눈알이 점점 눈 광속으로 들어갔다. 실명했다
가 다시 광명을 찾았다. 두창도 모두 완치가 되었다. -《해남일작海南一勺》

~~~~~~

10. 법교스님의 감응
남조의 양나라 때 법교라는 스님이 계셨다. 그는 중산지방의 사람이
었다. 그는 일찍이 소년 시절에 출가하여 경전 읽기를 좋아하였다. 그런
데 경 읽는 발음이 똑똑하고 시원스럽게 나오지 않았다. 이에 그는 식음
을 전폐하고 자기의 죄과를 참회하였다. 칠일 칠야가 지났다. 일심일의로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고 경건하고 
정성을 다하여 보살님의 명호를 염하였다.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
다. 그는 지성으로 간절하게 관세음보살님이 감응하여 나타나시기를 기도
하였다. 도반들이 단식하는 것만은 그만 두라고 권유하였으나, 그는 그의 
원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7일이 지났다.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그는 곧 물로 입안을 헹구었다. 그리고 말하였다. 나는 감응을 받았다!
이로부터《삼계경三契經》을 하였다. 즉 경전을 독송할 때 삼단으로 소
리를 절도를 넣어 독송하는 법으로 경을 읽었다. 그리하여 수리 밖에 떨
어져 있는 곳의 사람들도 독경 소리를 아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몰려와 그가 경 읽는 것을 찬탄하며 매우 기이하게 여
기며 칭송하였다. 후에 매번 수십 만 자의 경을 독송하였다. 또 관세음보
살님을 외우는 것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염송하였다. 그의 목소리는 비분감개하기도 하고 신명나기도 하였다. 그는 90세까
지도 그의 목소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고승전초집》

 

13. 몸 약한 법통스님의 기도
당나라 때 법통이라는 스님이 계셨다. 속가의 성은 관關씨이고 경성의 
악현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 출가하였고 몸이 매우 여이고 바람이 불어
도 넘어질 정도로 약하였다. 동료들도 모두 그를 업신여겼다. 그래서 법
통은 늘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관세음보살님 상 앞에서 기도하였다. 관세음보살님 제가 듣건대 보살님께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없다고 들
었습니다. 어떠한 서원이라도 곧 영험을 보이신다고 들었습니다. 바라옵
건대 보살님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사 저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저의 몸이 
건장해서 사람들이 저를 멸시하고 업신여기지 못하게 해주시옵소서!
그 후로 법통은 주야를 가리지 않고《관음경》을 송념하였다. 일 년 여의 시간이 지났다. 법통은 어머니를 뵈러 집에 갔다가 꿈을 
꾸었다. 어떤 사람이 여배근驢背筋 3개를 가져왔다. 그 중의 하나를 막 
먹고 났는데 그때 어머니가 깨워서 잠을 깨었다. 그때부터 법통은 체력이 
강해지고 근육이 단단해졌다. 법통은 혼자서 남몰래 커다란 나무토막이며 
돌덩이 등을 들어보았다. 전혀 무겁지 않았다. 같은 절 안에 감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 절 안에서 가장 기운이 
세서 늘 힘자랑을 하고 뽐내었다. 하루는 법통이 가사를 기둥을 들고 그 
밑에 놓아두었다. 그것을 감스님은 법통스님이 거기에 가사를 놓아둔 것
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귀신의 장난으로 생각하였다. 그때 법통스님이 웃으면서 기둥을 불끈 들고 가사를 꺼냈다. 그것을

본 감 스님이 매우 놀랐고 동시에 법통스님을 부러워하였다. 그 후로는 
아무도 법통스님을 무시하지 못했다. -《고승전》2집

 

6. 현조스님의 출가
유송 시대에 현조라는 비구니 스님이 계셨다. 스님의 속성은 노가이
고, 오군 사람 노안순의 딸이었다. 현조스님은 10살 때에 중병에 걸린 일
이 있었다. 가지가지 양약을 복용해 보았으나 병세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
지 않고 도리어 병세가 날로 가중될 뿐이었다. 당시에 태현대사라는 절에 석법제라는 스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아이 
아버지 노안순에게 말하였다. 따님의 이러한 병은 아마 업장의 소치로 보통 의약으로 치료될 병이 
아닙니다. 불경에 이르기를,『만약 사람이 위난에 처하였을 때 삼보에 귀
의하고 참회하고 부처님의 가피를 구하고 새로운 결심을 하면 능히 구원
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따님더러 깨끗이 목욕하고 전심일의로 정성껏 청원하도록 하
시면 반드시 질병은 완쾌될 것입니다.
노안순은 그 말을 믿고 집안에 관세음보살님상을 모셔놓고 자기 딸에
게 깨끗이 목욕하고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비록 환자의 몸이지만 관세음
보살님 앞에 엎드려 절하고 전심전력 일심으로 관세음보살님을 염하게 
하였다. 칠일 칠야를 멈추지 않고 관세음보살님을 염하였다. 일곱째날 밤이었다. 홀연히 일척이 넘는 한 분의 금불상이 나타났다. 그 금불상은 여아의 몸을 3번 어루만졌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만져주시
니, 그 여아는 오래 동안 낫지 않던 큰 병이 일시에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의 딸은 영험에 크게 감응되어 후에 출가를 청하였다. 출가한 후에

도 부지런히 정진하고 분발하여 해태심을 내지 않고《법화경》을 송념하
고 37년 동안 채식을 하며 항상 간절히 상념하며 발원하였다. 내세에는 도솔천에 태어나겠다고 소원하였다. 원가 16년(439)에 그녀
는 경을 조성하겠다고 도성을 떠났는데 그 후로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종적을 알 수 없었다. -《비구니전比丘尼傳》

 

2. 도태에게 찾아온 흰 빛
원위元魏시대(즉 북위. 효문제는 자기 나라를 원위라 하였다.)에 도태라는 사
람이 있었다. 그는 상산의 형당정사에서 살았다. 어느 날 밤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의 수명은 42년간이오. 42살까지 살다가 사망할 것이요.하였다. 그가 42살이 되었을 때 과연 그는 큰 병이 났다. 자기 스스로도 이제
는 꼭 죽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자기 소유의 모든 재물을 대부분 남
에게 보시하였다. 그때 한 친구가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그 친구가 말하였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62억의 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는 사람과 관세
음보살님의 이름을 한번 외워 부르는 사람이 받은 복과 은혜는 똑 같다
고 하던데, 자네 그런 말 들어봤는가?
도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 그는 그 길로 지성으로 관세음
보살님을 송념하였다. 밤이고 낮이고 가리지 않고 쉬는 짬도 없이 관세음
보살님을 송념하였다. 정성을 다하여 분발하여 나흘 낮 나흘 밤을 계속하
여 염송하던 날, 그가 앉아 있는 침상에 둘러진 휘장 밑으로 돌연 한 줄
기 백광白光이 문밖에서 비춰 들어왔다. 그 빛 속에는 관세음보살님의 금
색의 두 발이 보였다. 흰 빛은 온 방안 전체를 밝게 비추었다. 도태는 주저하지 않고 곧 휘장을 젖히고 밖으로 나와 관세음보살님의 
발 앞에 엎드려 큰절을 하였다. 한참이 지난 후 흰 빛은 사라졌다. 그는 
두렵기도 하고 기쁘기 한량없었다.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러

나 곧 몸은 가볍고 개운하게 느껴졌다. 발생하였던 병도 말끔히 치유가 
되었다. -《고승전2집》

 

25. 서명보의 아들 광의 치유
명나라 때 오군지방에 서명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평소에 관음
대사를 모시고 받들었다. 예배하고 공경하기를 정성을 다하였다. 그에게
는 광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아이가 열 몇 살이 되었을 때 아주 위독한 병에 걸렸다. 그들 부
부는 관세음보살님 상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하였다. 기도한지 7일
이 되었을 때, 그날 밤 꿈에 관세음보살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아이는 내일 아침이면 그냥 털고 일어날 것
입니다.
그때 보살상 앞의 공양물 차려놓은 상위의 물건들이 떨어지며 크게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탁자 위에 과일이며 공양물
을 담은 그릇들이 떨어졌는데 살펴보니 하나도 깨지지는 않았다. 그때 동
시에 아들의 입에서 자그마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어보니 보살님 저를 살려주세요. 보살님 저를 살려주세요!하였다. 곁에서 그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으나 대답이 없었다. 날이 샌 후 
아이에게 간밤에 왜 그랬느냐고 다시 물으니 그의 아들이 대답하였다. 어제 밤에 제가 혼미에 빠져 숨이 곧 끊어지려고 할 때에 관세음보
살님께서 제 침대 앞에 오셔서 말씀하셨어요.내가 너를 구해줄 것이다. 하시고 물 한 잔을 저에게 마시게 하셨어요. 그 물은 골수에 사무치도
록 차가웠어요. 그리고 온몸에서 땀이 났어요. 그 후 아주 기분이 상쾌하
였어요.그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과연 병이 나았다. -《서씨정훈徐氏庭訓》

 

20. 관세음보살님과의 약속을 지켜 출가한 천암선사
원나라 때 천암이라는 선사가 계셨다. 절강성 소산현 사람으로 속가
의 성은 동씨이었다. 어릴 적에 자주 병치레를 하여 그의 어머니가 관세
음보살님 신상 앞에 나가 기도하였다. 병이 치유되면 출가를 시키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의 병은 과연 치유되었다. 그는 처음에 영지율사를 따
라 계율을 학습하였고, 후에 또 중봉스님을 따라 심인을 전수 받았다. (달마가 서쪽에서 와서 불입문자不立文字하고 단전심인單傳心印하여 직지인심直指人
心하고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법) 천룡사에 머물렀다. 하루는 두 마리의 뱀이 
법사가 앉아있는 자리를 휘감았다. 스님은 그들을 위하여 삼귀오계의 도
리를 설하였다. 그 두 마리의 뱀은 머리를 들어 끄덕끄덕 고맙다 인사를 
하는 듯 하더니, 춤을 추며 떠나갔다. -《석씨계고략釋氏稽古略》

 

34.《남해자항南海慈航》의 연기
저경견褚景堅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남해자항南海慈航》의 서문에 
이렇게 기술하였다. 나는 평소에 경을 읽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망상이
라고 생각했다. 나는 결혼한 지 8년이 되었으나 아이가 없었다. 장인어른
이《관음경》을 법보시하고, 관음재觀音齋를 지키는 사람은 모두 분명한 
감응이 나타났다고 말하였다. 내 처는 그 말을 믿고 실행하였다. 그런 인연으로 꿈에 태몽으로 선몽하더니, 이듬해 생산을 하게 되었다. 그때 또 꿈에 한 노파가 집사람에게 아이 하나를 안겨주었다. 뿐만 아니
라 <적積>이라는 아주 좋은 이름까지도 지어주었다. 아이를 낳고 보니 과연 꿈과 일치하여 그대로 이름도 지었다. 그래도 
나는 그 당시에는 웃으며 믿지를 않았다! 후에 병이 나서 위험할 때도 
기도하고 또 간절히 빌었다. 매번 영험하게도 맞았다. 그러나 그때에도 
나는 여전히 의심하며 반신반의였다!
갑술년에 내 둘째 아이가 토사광란이 났다. 약을 입에 넣을 수가 없
었다. 사지가 굳었고 눈까풀은 아래로 내리 깔렸다. 이미 다시 소생할 희
망이 없었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울어서 지치고 목이 쇘다. 나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구할 길이 없었다. 이에 나는 관세음보살님상 앞에 나아
가 가슴을 치며 충심으로 기도하였다. 그리고《남해자항南海慈航》이란 책을 
한 부 펴내고 앞으로 선행을 하겠다고 보살님께 서원하였다. 그렇게 충정으로 기도할 때 아이의 구토와 설사가 곧 멈추었다. 차차

젖을 먹겠다고 젖을 찾았다. 더욱 신기한 것은 집사람이 평소 젖이 부족
하였었고, 더욱이나 아이 병 때문에 수심에 차서 며칠 동안 먹지도 못하
고 잠도 자지 못하였는데 어디에서 젖이 나오겠는가?!
내가 기도를 한 이후 젖은 홀연 샘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내 스스로
가 덕이 없고 어질지 못하였음을 뉘우칠 수밖에! 오직 한 줄기 널리 교
화하시는 심정으로 관음보살께서 내리시는 자비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경을 독송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은 확실하고 절대 거짓이 아니다. 다
행한 것은 능히 이 책을 편집하여 발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기회에 
이 사실의 자초지종을 기록하여 두루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남해자향南海慈航》

 

39. 정승소 며느리 황씨의 목 종기
청나라 때 정승소라는 사람이 있었다. 별호는 실봉이고 광동성 광주
시 사람이었다. 일찍이 삼귀의 오계를 수계하였다. 강희무신년 5월 그의 
큰 며느리 황씨가 갑자기 목구멍에 쌍거위(혹같이 생긴 종기)가 생겼다. 그
로 인해 괴롭고 고통스럽기 그지없는데 이미 십여 일이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홍찬화상이 산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타고 그의 동
네를 지나게 되었다. 이에 정승소는 스님께 며느리 일을 하소연하였다. 우리 큰 며느리가 병이 위독하여 큰일 났습니다. 스님! 무슨 방법으
로 구해야 하겠습니까?
스님은 그에게 대답하였다. 관음대사의 위신력과 신통한 영험은 참으로 불가사의 한 것입니다. 능히 대무외大無畏의 정신으로 중생을 구제하십니다. 지금 당장《관음구생
경觀音救生經》열 구절을 가르쳐 드릴 것이니, 지성으로 외우십시오.《관음
구생경》: 관세음觀世音 나무불南無佛 여불유인與佛有因 여불유연與佛有緣 불
법승연佛法僧緣 상락아정常樂我淨 조념관세음朝念觀世音 모념관세음暮念觀世
音 염념종심기念念從心起 염념불이심念念不離心
(역자주: 주문을 풀어서 외우면 안 되지만 궁금증을 푸는 뜻으로 내용을 번역하
면:관세음보살, 나무불, 부처님과 인이 있고, 부처님과 연이 있고, 불법승과 인연
이 있어 나는 항상 기쁘고 청정합니다. 아침에도 관세음 저녁에도 관세음, 생각은 
마음에서 일어나고, 생각은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정승소는 그것을 받아가지고 돌아가 며느리에게 가르쳐 스스로 지속
적으로 외우게 하였다. 그 경구를 써 가지고 온 초본을 침상 앞에 놓고 
지송하였다. 환자가 밤중에 일어나 보니, 그 경구의 글자가 빛을 발하고 
몇 배나 크게 보였다. 이튿날 몸이 아주 상쾌하였다. 정신도 안정되었다. 경구를 둘째 날도 계속 외웠다. 그날 밤중이 되었다. 그녀의 목구멍에 난 
종기가 저절로 터졌다. 짙은 피고름이 모두 입안으로 흘러나왔다. 그녀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내 병이 다 나았다!
며느리는 이에 물을 달라하여 입안을 헹구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 
상 앞에 나가 지성으로 머리를 조아려 예배를 올렸다. 건강이 평상시와 
같이 회복되었다. 온 집안이 축제 분위기로 대경사가 났다. 이 일을 주변 
인근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관세음보살님 자비역량과 그 영감보
응의 신속함을 널리 선전하였다. -《관음자림집觀音慈林集》

~~~~~~

15. 지익스님의 참회
당나라 때 지익이라는 스님이 계셨다. 호남성 장사 지방의 사람이었
으며 속가의 성은 오吳씨였다. 그는 스님이 되기 전에 자주 지방의 변방
족속들을 정복하기 위한 군 복무를 하였다. 그리고 평소 고기잡이와 사냥
을 좋아하였다. 한번은 하얀 거북이 한 마리를 잡아 그것을 삶아 먹었다. 그 결과 온 몸에 종기가 나서 차차 곪기 시작하였다. 눈썹이며 수염
이며 손톱 발톱도 다 곪아 빠졌다. 아무 것도 남아나지 않았다. 아파서 
비명을 지르나 구원의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곧 죽지도 않았다. 결국 군
복무도 할 수 없어 오직 거지로 떠돌아다녔다. 밥을 구걸하기 위해 안남
시에 이르렀다. 한 스님이 그의 가련한 모습을 보고 그에게 말하였다. 여보세요. 이제 마음을 돌려 전심으로 참회하고 대비주를 외워보세
요. 내가 그 주문을 가르쳐주겠소. 만약 당신이 부지런히 정진만 할 수 
있다면 반드시 좋은 업보가 있을 것이오.
지익은 과연 그 스님의 말대로 대비주를 전수받아 전심전력 대비주를 
송념하였다. 그 때부터 몸에 난 종기는 조금씩 낫기 시작하였다. 손톱과 
발톱도 다시 자라났다. 그리고 드디어 병이 완치가 되었다. 이에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다. 바로 복파장군의 낡은 옛집을 수리
하여 아주 정교한 정사로 꾸미어 주지가 되었다. -《태평광기 및 전인록》

 

14. 허엄의 참회
당나라 인덕연간에 경성의 영흥방에 허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고기
잡이를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후에 그에게 큰 병이 났다. 그는 병
이 깊어 마치 다 죽은 사람 같았고 의식이 없었다. 온 몸이 빨간 색으로 
변하여 마치 불에 데어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그러더니 그가 깨어나서 말하였다. 저승에 갔었는데 활활 타는 숯불을 실은 차가 밀고 와서 내 몸을 태
웠다. 염라대왕이 나를 꾸짖으며 고기 잡은 죄업이 커서 이제 내가 산 
채로 벌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하였다. 여러 날이 지났다. 그는 병이 심하여 죽었다가 또 살아나고 살아났다
가 또 까무러치고 하였다. 그의 친척들이 모두 그에게 공덕을 조금 쌓으
라고 하였다. 이에 그는 관세음보살님 상을 두 분을 주조하여 모셔놓고 
자기의 죄과를 깊이 참회하였다. 그리고 전 가족이 다 같이 채식을 하였
다. 그랬더니 그의 병이 곧 나았다. -《법원주림法苑珠林》및《전인록轉因錄》

 

11. 만스님의 출가 전 이야기
수나라 때 만이라는 스님이 계셨다. 그는 안정지방의 사람이었다. 그
가 아직 속가에 있었을 때 돌림병에 전염이 되어 두 다리를 펴고 움츠릴 
수가 없었다. 항상 관세음보살님을 염하였다. 어느 날 돌연 스님 한분이 나타났다. 그 스님은 아주 깨끗한 병 하나
를 들고 그 앞에 서 계셨다. 만은 그에게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셨어요?스님이 대답하셨다. 네가 항상 나를 찾기에 그래서 온 것이다. 너는 전생에 생물의 생명
을 너무 많이 살생을 하여 그 재앙으로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눈을 감아라. 내가 너의 병을 치료해 주겠다.
만은 그 스님이 시키는 대로 치료를 부탁하였다. 그런데 돌연 그의 
무릎에서 각각 한 치 남짓 되는 못 몇 개를 뽑아내는 것 같았다. 이에 
발은 정상이 되었다. 그가 눈을 뜨고 감사인사를 하려는데 그 스님은 온
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로부터 만은 더욱 정진하며 정성껏 관세음보살님을 신봉하였다. 결
혼도 하지 않겠다고 맹서하였다. 후에 홀연 선관禪觀을 자통自通하여 좌선
하고 앉아 일 주일 동안을 움직이지 않았다. 개황 원년(581) 무렵에 출가하여 구도사라는 절에서 살았다. -《고승전》2집

 

26. 불살생 계를 서원한 담응거사
명나라 때 담응거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왕응길이었고, 평소 
아주 정성스레 관세음보살님을 모셔 받들었다. 만력 임인년(1602)에 가래
가 끓어오르는 병이 났다. 한 방울의 물도 넘길 수가 없었다. 7일이 지났
다. 9월 초하룻날 밤중에 꿈을 꾸었다. 꿈에 자기가 가마를 타고 강가를 따라 가다가 돌연 가마가 넘어지면
서 그의 몸이 튕겨 나와 강물에 떨어졌다. 비늘달린 어류들 예를 들면 
고기, 새우, 거북이 뱀 등 가지가지 어족들이 앞을 막았다. 이것들은 모
두 내가 늘 먹던 것들이란 것과 오늘 그들이 이 기회에 나를 괴롭히려는 
것이란 생각이 얼른 들었다. 그때 황홀하게 누군가가 내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나를 불끈 들어 건
너편 바위에 내려놓았다. 정신을 가다듬어 머리를 들어 쳐다보니 아주 맑
은 날씨에 해는 하늘에 떠 있었고, 관음대사께서 언덕 바위 위에 앉아 
계시고 선재동자, 용녀, 앵무새, 그리고 정수병 등이 모두 함께 나타나 
보였다. 손으로 자기 옷을 만져보니 조금도 젖어 있지 않았다. 이에 머리
를 조아려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관음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원래 한 선지식이었는데 윤회 전생하여 태어난 몸이다. 평소에 
정성들여 나를 공양하였다. 그래서 특별히 너를 구하러 왔다. 그런데 너
는 전생에 살생으로 많은 악업을 지었으니, 이러한 병을 얻어 고생을 하
는 것이다. 만약 불살생 계를 잘 지키면 너의 병은 곧 낫게 될 것이다.
왕거사가 대답하였다.

그것은 바로 제가 늘 원하던 일입니다. 앞으로 삼가 계명을 준수하
겠나이다.
대사는 또 말씀하셨다. 이것은 제호醍醐(우유에서 짜낸 술로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술이다. 가져가서 마셔라.
왕거사는 두 손으로 잔을 받들어 한 입에 다 마셨다. 그 잔은 유리로 
만든 듯 내외가 투명하였다. 제호주의 색깔은 황색으로 녹색 빛이 조금 
났다. 마시고 난 뒷맛이 아주 맑고 향기로웠다. 세상에서 맡을 수 있는 
그런 짙은맛이 아니었다. 왕거사는 다 마시고 나서 또 머리를 조아려 감사의 예를 올렸다. 그
리고 순간에 꿈에서 깨어났다. 감미로운 향기가 아직도 입가에서 풍겼다. 온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하였다. 한참 시간이 지나니 온 몸이 시원하고 가슴은 확 틔어 상쾌하였다. 이제 죽을 마실 수 있었다. 기운도 곧 회복되었다. 이 일이 있는 후로 
명심하여 불살생 계를 지키기로 서원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겪은 이야기
를 글로 써서《기영계살충언記靈戒殺衷言》라 하였다. -《자심보감慈心寶鑑》

~~~~~~

16. 계충법사의 치유
송나라 때 계충 법사가 계셨다. 그의 별호는 법신이었으며, 절강성 영
가 지방 사람이었으며 속가의 성은 구邱씨였다. 애초에 그의 부모가 부처
님 전에 아들 점지를 기도하여 얻은 아들이었다. 어느 날 두 부부가 동시에 같은 꿈을 꾸었다. 꿈에 한 스님이 아이를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계존자螺溪尊者(사람 이름으로 천태 형계존자荊溪尊者의 6대손의 법을 이은 
법사法嗣임)의 양육을 부탁하니 잘 돌보기 바라오.
당시 어머니가 회임을 하자 저절로 곧 육식과 훈채를 멀리하게 되었
다. 그는 어릴 적부터 불상을 보면 꼭 절을 하였다. 8살 때 부처님의 은총을 입어 득도하여 곧 호남 지방에 가서 광지화
상에게 의지하여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너무 고생하고 과로를 하여 
병이 났다. 이에환음삼매를 구하느라 정근하였더니, 관세음보살님이 
감동하여 방광하였다. 그리고 정수淨水를 그의 머리에 부어 관정灌頂하였다. 그의 병은 즉각 
치유되었으며, 그 후 교관敎觀(즉 교상敎相과 관심觀心)을 크게 깨달아 아무
런 장애도 받지 않았다. -《불조통기》

 

19. 해월법사의 환생인 진정스님
원나라 때 진정이란 스님이 계셨다. 별호가 여암이며 강소성 화정지방
의 요姚씨 가문의 자제였다. 그의 어머니께서 환한 보름달이 그녀의 품안
으로 떨어진 꿈을 꾸고 스님을 회임하였다. 스님이 태어난 후 어느 날 어
떤 기이한 스님 한 분이 지나다가 집에 들려 아이를 보더니 말씀하셨다. 이 아이는 해월법사께서 환생하여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하였다. 스님은 9살 때 곧 출가하였다. 무극도법사에게 귀의하여 먼저 성리학
을 모두 공부하였다. 태정연간(1324~1327)에 재상 탈환의 천거로 하천축下
天竺에 옮겨가 살게 되었다. 스님이 병이 나서 매우 고통을 느끼고 있을 
때 어느 날 꿈에 백의대사가 정수병을 들고 나타나 그의 입에 정수를 부
어넣으며 말하였다. 그대의 병은 저절로 낫게 될 것이니 약을 먹을 필요 없다.
꿈에서 깨어난 후 과연 병은 곧 완치되었다. -《고승전》4집

 

28. 수길화상의 치유가피
명나라 숭정 11년 무인년(1638)에 양주에 수길화상이란 스님이 한 분 
계셨다. 겨드랑이가 아파서 침상에서 구르며 소리치고 비명을 하며 부르
짖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지 30여일이 되었다. 한 친구가 와서 그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평일에는 항상 남에게 관세음보살님을 외우라고 권하면서 이
제 와서 자네가 이렇게 중병으로 고생하면서 왜 관세음보살님께 명을 맡
기고 구원을 청하지 않는가?
수길스님은 거의 혼절상태에서 그 말을 듣고 크게 반성하였다. 급히 
향과 초를 갖추어 놓고 큰 소리로 목청껏 관세음보살님 명호를 계속적으
로 지송하였다. 한밤중 사경 쯤 되었을 적에 염불소리가 갑자기 멈추었
다. 혹 스님이 기절하지나 않았나 하고 모두들 놀라고 의심스러웠다. 문
을 살그머니 열고 안을 살피니 수길스님은 한참 달게 주무시고 계셨다. 오후가 되어서야 스님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며 호
통을 쳤다. 속히 음식을 준비하여 올렸다. 공양이 끝난 후 그는 곧 일어
서서 걸어 다녔다. 모두들 놀라서 물었다. 어떤 연고로 통증이 치유 되었습니까?
수길스님이 대답하였다. 내가 처음 관세음보살님 명호를 칭념했을 때는 겨드랑이 통증이 마
치 칼로 찌르는 듯 아프더니 계속 염하니, 한참 후에 공중에 홀연 한 떨
기 상서로운 구름이 나타났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께서 나타나셔서 감로

병속의 감로수를 내 머리정수리에 부어주셨다. 차가운 기운이 가슴과 뼛
속까지 스며들었다. 이어서 물이 흐르듯 땀이 났다. 나는 지쳐서 잠이 들
고 말았다. 깨어보니 뜻밖에도 병이 없어졌다.
-《관세음지험기觀世音持驗記》

 

1. 축법의 스님의 화병
중국 위진남북조시대에 한 스님이 계셨는데 이름은 축법의이며, 흥녕
골 시년산에 살고 계셨다. 모든 불경을 아주 정통精通으로 자세하게 연구
하였기 때문에 그를 따라 공부하는 학승이 항상 수백 명에 이르렀다. 동진東晋 함안 2년(372)이었다. 그가 까닭 없이 마음에 화가 치미는 
병이 생겼다. 병은 곧 낫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그래서 그는 한 마음 한 
뜻, 경건한 마음으로 지성으로 관세음보살님께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기이한 꿈을 꾸었다. 한 사람이 나타나더니 그의 
배를 가르고 그의 내장을 모두 꺼냈다. 그리고 오장육부를 깨끗이 씻었
다. 자세히 보니 한 덩어리 한 덩어리로 뭉쳐진 더러운 덩어리들이 많았
다. 그런 것을 그가 깨끗이 씻어내더니 다시 내장을 배속에 집어놓고 원
상대로 배를 봉합하였다. 그리고 축법의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병은 이미 제거되었소.
그가 깨어났을 때 과연 병이 말끔히 치유되었다. 송나라 상서령 관원이었던 부량이란 사람이 이 이적의 이야기를 기록
하였다. 그리고 그는 항상 말하였다. 자기 선친이 살아계실 때 늘 축법의 
스님과 함께 산천을 유람하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축법의 스님은 
항상 이 기적적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누구나 숙연하여 존경심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태평광기太平廣記》

 

30. 아버지의 덕화를 입은 아들 양여운
청나라 때 양여운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항상 자기 아버지가 생전
에 명망이 대단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늘 그렇게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성격이 강직하고 보시하고 선행하기를 좋아하였으며, 지성으
로 관세음보살님을 공양하였다. 나이 마흔 몇 살이 되었을 때 우연히 배가 붓는 증상이 생겼다. 복부
의 청근靑筋이 부풀고 근육이 뒤틀리고 아팠다. 각가지 방법으로 치료를 
해 보았으나 별 효험이 없었다. 하루는 꿈에 한 노파가 손에 침을 들고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병을 치료할 약이 없을 것을 알고 내가 오늘 병을 제거해 주려
고 왔다.하고 곧 침으로 복부에서 청근을 치켜 올렸다. 점점 올라가 목 부위를 거쳐 머리정수리까지 이르렀다. 이에 예리한 
가위로 청근을 잘랐다. 그때 깜짝 놀라 깨어나며아야!하고 큰 소리를 냈다. 그때 식구들이 몰려와 왜 그러느냐? 고 물었다. 그는 하나하나 꿈에 
본 장면을 자세히 말하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복부의 청근이 없어졌다. 정말로 잘려나간 것
이다. 배가 붓는 증상도 곧 치유되었다. -《면계절요록勉戒切要錄》

 

8. 담영화상의 피부병
유송 시대에 장간사라는 절에 담영화상이란 분이 계셨다. 그는 회계 
사람이었으며 소년시절 출가하여 근신하고 부지런히 수행하며 계행을 지
켰다. 불경 10여 만 자를 독송하였으며 항상 절 안에서는 착한 일을 행
하며 늘 다른 사람이 편하게 베풀고 도왔다. 불법을 선양하고 무량한 중
생을 교화시켰다. 그런데 담영스님에게는 심한 피부병이 있어 항상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별 방법을 다 써보았으나 치유되지 않았다. 선방 안에는 항상 
관세음보살님 상을 모셔놓고 조석으로 정례로 예배드리며 피부병 좀 낫
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하루는 돌연 뱀 한 마리가 벽을 타고 천정으로 기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뱀이 모습을 감추었을 때 잠깐 후에 쥐 한 마리가 천정에서 바
닥으로 떨어졌다. 쥐의 온 몸은 모두 뱀의 진한 침으로 덮여 있었다. 죽
은 것 같았다. 담영스님은 마음속으로 측은한 생각이 들어 쥐를 살려주고 
싶었다. 곧 대나무 가지를 주워서 쥐의 온몸에 덮인 뱀의 침을 긁어냈다. 그 때 홀연 언제인가 들은 말이 생각났다. 뱀에게 삼켜진 쥐의 몸에 
덮인 뱀의 침이 피부병을 치유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담영스님은 쥐의 몸에서 긁어낸 타액을 자기 피부에 발랐다. 돌아가
며 옴 자리를 찾아 타액을 발랐다. 쥐는 다시 살아나서 곧 어디론가 달
아났다. 하루 밤을 지나고 나니 스님의 피부병은 말끔히 나았다. 그때 뱀과 쥐가 모두 기도한 덕으로 나타난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임을

깨달았다. 이로부터 원근 각처를 돌아다니며 그 이야기를 선전하고 다녔
다. 스님의 이야기가 널리 퍼져 왕공 대인들까지도 불교를 믿게 되었으
며, 스님은 81살까지 살다가 바로 장간사에서 왕생하였다. -《고승전초집》

 

3. 정지선사의 반야심경 독송
당나라 때 정지선사가 계셨다. 속가의 성은 조趙씨고 옹주 고릉지방의 
사람으로 88세까지 살았다.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관상하기를 좋아하였다. 늘 경문에 따라 수지 학습하였다. 천성이 출가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정관초년(627)에 광화사에 은거하였다. 대략 십 수 년을 살았다. 곧잘 
움막에 들어가 좌선하고 승방에서 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면팔방에서 
그를 숭배하여 모여드는 대중이 200여명이나 되었다. 주야 육시로 신구의 삼업을 닦으며 분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였다. 촌음도 헛되이 허송하지 않았다. 당시 그의 코 안에는 혹 같은 살덩이가 
있어 코를 막고 있었다. 백 가지 약을 써보았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그때 어느 스님이 그에게 말하였다. 《반야심경》을 일만 번만 읽어보시오.
그 말대로《반야심경》을 일만 번을 독송하였더니, 코 안에 혹이 떨어
져나갔다. -《고승전》2집

~~~~~~

12. 신지스님의 대비주수
당나라 때 신지라는 스님이 계셨다. 무주 의오지방의 사람이었다. 그
는 매일 한 끼의 식사만 하였다. (많은 스님들이 매일 한 끼만 먹는 것을 수행
으로 한다. 소위 과오불식過午不食은 대자비를 나타내는 수행법의 한 가지인 것이
다.) 그는 또 항상 찻잔에 깨끗한 정안수를 떠 놓고 대비심주를 염송하여 
그 대비주수로 수많은 병을 치료하였다. 누구나 병이 난 사람이 그가 대비심주를 염송한 대비주수를 마시면 
병이 곧 나았다. 그래서 당시 민간인들 사이에는 한입 건너 두입 건너 
많은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가 전파되었다. 이에 끊임없이 그에게 대비주
수를 구하러 오는 사람이 있었다. 매일 그가 제공한 대비주수를 마신 사람이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당시 그 지방 사람들은 그를 대비주 화상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 대중연간(847~859)에 배휴라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귀신이 
들려 병이 났다. 신지화상이 그녀를 위하여 7일 동안 대비주를 염송하였
다. 그 결과 귀신은 정복되었고, 그 여자아이는 병이 나아 정상인이 되었
다. 이에 그 지방 도청에 진정하여 신지스님에게 [대중성수大中聖壽]라고 
네 글자를 쓴 편액을 하사하였다. -《고승전》3집

 

9. 지근스님의 효심으로 나뭇잎에 나툰 부처님
당나라 때 지근이란 스님이 계셨다. 속가의 성은 주朱씨였으며, 어린
시절부터 자기를 잘 억제하는 극기능력이 뛰어나 사람들과 참 잘 어울렸
다. 사람들과 사귈 때 말하는 것이 항상 상대를 잘 배려하고 아주 편안
하게 하여 분위기를 늘 융화하고 부드럽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항
상 스스로 연구 성찰하였고, 정성스럽게 용맹 정진하였다. 그래서 그가 
기도하고 서원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는 일이 없었다. 

원래 그의 모친이 정신이 흐리고 늘 기운을 차리지 못하며 행동이 자
유롭지 못하였다. 그는 자기 어머니를 위하여 정성을 다하여 관세음보살
님 성호를 염송하여 어머니께서 하루 속히 기운을 차리도록 기원하였다. 그의 집 뜰 안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의 기도와 정성에 감동
하여 그 나무의 무수한 나뭇잎마다 그 위에 부처님이 현신하여 나타나셨
다. 온 집안 식구들이 모두 그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의 병도 씻은 듯이 사라지고 건강을 회복하였다. -《고승전》2집

 

29. 타향에 있는 정조희가 고향 모친을 위한 기도
임강 지방에 정조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천성에 가서 장사를 
하였다. 그때 그의 어머니 엽씨가 집에서 각기병이 생겼다. 몇 년이 되어
도 치유하지 못했다. 그런데 정조희는 멀리 계신 어머니를 직접 찾아가 
병간호는 할 수 없었지만 사천에서 정성으로 관음보살에게 축도하였다. 후에 자기 고향에서 사천에 온 사람으로부터 집안 소식을 얻어듣고 
그의 어머니가 관세음보살님이 꿈에 나타난 일이 있었는데, 그날부터 병
이 다 나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은 바로 그 사람이 사천에서 정성껏 
기도를 시작하던 날이었다. 말하자면 사천에서 고향까지는 수 천리 떨어
져 있는 곳인데 이렇게 먼 거리까지도 일시에 영감이 응험한다는 것이다. 정유년에 그가 고향에 돌아갔다. 마침 그의 어머니 환갑잔치가 있었
다. 목욕재계하고《관음경》일장一藏(5048번)을 경송하여 그의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빌었다. 후에 그의 어머니는 정신도 매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정조희의 장사도 매우 번창하였다. -《면계절요록勉戒切要錄》

 

~~~~~~~~~~~~~~~~~~~~~~~~~~~~~~~~~~~~~~~~~~~~~~~~~~~~~~~~~~~~~~~~~~~~

제2편 재앙과 재난을 구제해 줌 (구액난救厄難)

 

1. 여송의 부친 이야기
진나라 때 여송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별호는 무고이고 산동성 
연주지방 사람이다. 집은 시풍현에 있었다. 현성의 남쪽에 한 시내가 있
는데 흐르는 물살이 매우 세고 양쪽 강기슭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으
며, 물은 구불구불 돌아서 흘렀으며 또 많은 큰 돌들로 되어있어 대낮에 
그 곳을 지나는 사람들도 너무 위험하여 모두 두려워하였다. 여송은 자주 사람들에게 자기 아버지가 항상 그 험한 개울을 지나다
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어느 날 집으로부터 십여리나 더 떨어진 여정에서 날이 저물었다. 또 
홀연 심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어두워서 동서남북 방향을 구분할 수가 없
었다. 그 때 혼자서 마음속으로 틀림없이 엎어져 빠져죽겠구나 하고 생각
하였다. 그러나 정신을 차려 오직 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님께 의지하여 성호
를 소리 내어 외웠다. 그러는 순간 돌연 강기슭에 불빛이 나타났다. 어떤 
사람이 불을 들고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불빛은 멀리 강 속과 주위를 비추어 주위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불
빛은 계속 배의 앞뒤를 비추며 배에서 십여보 떨어져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주 안전하게 집에 돌아올 수가 있었다. 여송의 친구 희가빈은 이 이야기를 듣고 아주 상세하게 이 일을 기록
하였다. -《명상기冥詳記》

 

2. 서영의 가피
진나라 때 서영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산동성 낭야현 사람이었
는데, 그는 자주 동양東陽에 갔다가 돌아올 적에는 정산을 지나서 왔다. 그런데 배를 조종하는 사람이 그 지방 물길을 잘 몰라 잘못하여 물이 돌
아가는 소용돌이 가운데로 들어갔다. 배가 빨려들어 곧 침몰하게 되었다. 서영도 당시 아무런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직 지심으로 정성껏 
관세음보살님 명호를 부르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자 잠깐 사이에 몇 십 
명의 장정이 나타나 힘을 모아 배를 소용돌이에서 끌어내는 것 같았다. 배는 강물의 흐름에 따라 내려갔다. 그때 해가 저물어 천지가 깜깜해
지며 비바람이 몰아쳤다. 배는 앞으로 나가지만 어디를 향하여 가는지 방
향을 분간할 수 없었다. 풍랑이 심하여 큰 배가 거의 뒤집힐 지경이었다. 그때 서영은 더욱 지성으로 불경을 송념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때 홀연 산위에서 불빛이 환하게 비추는 것이 보였다. 이에 배가 
불이 비추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안전하게 육지에 도착할 수가 있
었고, 또 강기슭을 따라 육지에 올라섰다. 그때 불이 더 이상 보이지 않
았다. 이튿날 서영은 포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제 밤 산에서 환히 비추던 
불은 무슨 불이었느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은 모두 놀라며 말하였다. 어제 
밤 비 바람이 그렇게 세게 몰아쳤는데 산에 무슨 불이 있었다는 말이냐
고 반문하였다. 이에 그것은 불력의 보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서영은 후에 회계지방의 독호관이 되었다. 당시 사부라는 명사가 항

상 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었고, 그때 서영과 한 배를 탔던 사람
으로 지도온 화상이 계셨는데 인품이 아주 근엄하시고 심중하시고 독실篤
實하신 분이셨다. 그 어른도 이 일을 경험하셨던 바라 가끔 처음부터 끝
까지 자세하게 말씀하시는데 서영이 말하는 내용과 완전히 같았다. -《명상기冥詳記》

 

3. 축법순스님의 가피
진나라 때 축법순竺法純이라는 스님이 계셨다. 산음지방 현의사리에 
거주하였다. 원흥 연간에 배를 타고 태호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폭풍을 만
났다. 배는 작고 물까지 들어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다른 방법이 없
어 일심일의 관세음보살님께 매달렸다. 입으로는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보살의 성호를 송념하였다. 마치 그때 큰 배 한 척이 자기들이 탄 배 앞으로 떠 내려오고 있었
다. 그때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발판을 놓고 큰 배 위로 올라갔다. 대중
들이 모두 올라탔을 때 머리를 돌려 보니 자기들이 탔던 작은 배는 바로 
눈앞에서 침몰하였다. 큰 배는 파도를 타고 곧 육지에 도착하였다. 정신을 차려 배 주인을 찾았다.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 순
간 타고 왔던 큰 배도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스님과 함께 배를 탔던 사
람들이 모두 경탄하며 신의 감응이라고 하였다. -《고승전》초집 및《법원주림法苑珠林》

 

7. 삼부자를 구한 서희재 모친 정씨의 신심
송나라 때 서희재라는 사람의 모친 정씨가 있었다. 평소에 관세음보
살님을 독실하게 믿었다. 소흥 4년에 서희재가 팽대인 집에 서당을 차렸
다. 그는 자기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살았다. 그들이 휴가를 얻어 집에 돌아갈 때에 배를 탔는데 도중에 폭풍우를 
만났다. 성난 파도가 크게 일어 하얀 물결이 공중까지 솟구쳐 올랐다. 서희재가 배에 함께 탄 사람들을 이끌고 소리를 맞추어 관세음보살님
의 명호를 불렀다. 한참 시간이 흘렀다. 커다란 뽕나무 하나를 만나 대중
들은 힘을 모아 그 나무를 붙들고 급히 배를 나무에 묶었다. 이에 겨우 
배가 정박할 수 있었다. 이튿날 날이 밝아 밖에 나가보니 배가 모래사장 위에 정박해 있고 뽕
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무사히 집에 돌아갔다. 그의 모친이 웃으며 맞이
하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어제 밤 꿈에 한 노파가 너희들 삼부자를 집에 데려다주시더니 과연 
오늘 너희들이 돌아왔구나!
그제야 보살님의 영험으로 우리가 구제되었음을 알았다.-《이견지夷堅志》

 

15. 귀신도 해치지 못하는 관음재일을 지키는 사람
청나라 강희 2년 무렵 고기잡이배들이 정박해 있는 소고산 아래 밤중
에 산신이 그의 부하들에게 명령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일 하척의 소금배가 이곳을 지나갈 것이니, 너희들은 신속히 그 
배를 처리해야 할 것이다.
아침이 되었다. 과연 한 척의 소금배가 돛을 높이 올리고 그 곳에 이
르렀다. 홀연 풍랑이 크게 일어났다. 몇 차례나 배가 전복될 것 같았다. 그러나 끝까지 버티어 전복되지는 않았다. 그날 밤 어선은 여전이 원래 
그 곳에 정박하고 있었다. 또 산신이 그의 부하들이 자기 명령을 어겼다
고 질책하는 소리가 들렸다. 귀신 무리들은 대답하였다. 우리가 명령을 받고 소금배를 처리하러 갔었는데 소금배 뒤 가판 위
에는 관세음보살님이 앉아 계셨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감히 가까이 가서 
해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튿날 어부들이 소금을 실은 배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바로 
가판 위 뒤에 키수가 있었는데, 그가 관음재일을 지키는 사람이었기 때문
이었다. -《만선선자萬善先資》

 

4. 가피로 목숨을 건진 도형스님
유송시대에 도형이라는 스님이 계셨다. 섬서성 부풍지방의 사람이었
다. 홍치 18년에 그의 사부이신 도의선사가 병이 났다. 도형 등 네 사람
을 확산의 동굴에 파견하여 굴속에 들어가 종유를 따오라고 명하였다. 동
굴 속으로 수리를 들어갔다. 가는 도중에 외나무다리를 건너기도 하였다. 같이 갔던 세 사람은 모두 물에 빠져 익사하였다. 횃불도 꺼졌다. 도
형은 평소에《법화경》을 지송하였었다. 그리하여 그 곳에서 오직 경건하
게 선업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또 관세음보살님을 지속적으로 염하였
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반딧불 같은 불빛이 나타났다. 그 불빛을 좇아갔
다. 그러나 불빛을 따라 잡을 수는 없었다.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그
러나 계속 불빛을 따라가니 동굴 입구가 나와 살아날 수 있었다. 이에 그 후 계속 선업禪業을 닦고 자주 보현재普賢齋를 지켰다. 그리고 
상서로운 감응도 있었다. 후에 그는 네 사람의 도반들과 밤중에 언 강을 
건넜다. 그런데 중간쯤 이르렀을 때 얼음이 깨어졌다. 세 사람은 모두 익
사하였다. 오직 도형스님 혼자서 남았다. 도형스님은 그때 지성으로 관세음보살님께 의지하였다. 이에 발밑에 
무슨 물건이 있어 받쳐주는 것 같았다. 또 한 줄기 빛이 눈앞에 나타났
다. 또 그 불빛을 따라 육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고승전》초집

 

9. 혜산 스님이 들려준 왕씨 노파 이야기
동대현에 왕씨 노파가 있었다. 나이가 이미 60여세였다. 손자를 데리
고 강을 건너는데 실족하여 물속에 빠졌다. 당시 마침 강물이 불어 도도
히 급히 흐르고 있었다. 노파는 손자를 안고 물 위로 번쩍 일어섰다. 마
치 평지에 서 있는 것과 같았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급히 배를 
불러 그들 할머니와 손자를 육지로 무사히 옮겨 놓았다. 사람들은 노파에게 물었다. 노파는 자기가 어떤 위험한 처지에 있었
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른다 하였다. 다만 그 순간 관세음보살
님 성호만 쉬지 않고 외웠다고 하였다. 물론 그녀는 평시에도 끊임없이 
외우고 있었다. 실로 보살의 보우로 살아난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금릉
의 서천사 혜산 스님이 직접 하신 이야기다. -《관세음지험기觀世音持驗記》

 

22. 오사계 집안에서 전하는 이야기
하서의 육도지방에 오사계라는 사람이 있었다. 필생동안《관음경》을 
정성으로 송념하였다. 나이 80여세가 되었을 때 그가 사망하였다. 그 후 
그가 읽던 경전들을 빈 누각 위에 놓아두었다. 그의 손자들이 늘 그 누
각 위에 올라가 장난을 치고 놀았다. 가끔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누각이 아주 높아서 떨어지면 다칠 수 있는데 애들이 하나도 다
친 일이 없었다. 집안사람들에게 연유를 물어보니 이러하였다. 그들이 떨어질 때면 한 
할머니께서 공중에서 그들을 안아서 내려주기 때문에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비로소 관음대사가 보호해주심을 깨달았다. 이에 온 식
구들이 모두《관음경》에 예배하고 염송하였다. -《관음경근징觀音經近徵》

 

10. 유곡현을 구한 물고기
명나라 때 유곡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황주지방의 사람으로 
호분좌위군이라는 무관직에 있었으며, 항상 정화대감을 수행하였다. 해외
로 나가 여러 변방 나라들을 순회하였다. 한 번은 배가 큰 바다를 지나갈 때에 그가 홀연 실수하여 발을 헛디
뎌 바다에 떨어졌다. 그 때 배는 순풍에 돛을 달아 아주 빠른 속도로 계
속 앞으로 나갔기 때문에 그를 구제할 수가 없었다. 정화대감이 선원들에
게 돛대 위 망대에 올라가 멀리서 사람을 찾아보라 명령하였다. 사람이 하나 보였다. 파도 속에서 떴다 가라앉았다 수 십 리 떨어져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다시 살아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얼마 후에 유곡현이 배 주변에까지 따라왔다. 배 안의 사람들은 크게 환
영하고 기뻐하였다. 화급히 줄을 던져 그를 구조하여 배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돌아서 보니 한 길이나 되는 커다란 고기 한 마리가 천천히 해엄 
쳐가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참으로 괴이하게 여겼다. 유곡현이 말하였다. 바로 저 물고기가 나를 태워가지고 왔어요. 여러 차례 물속으로 미
끄러져 가라앉았는데, 저 물고기가 지느러미로 나를 떠 받쳐 올렸어요. 그래서 물이 한 번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배위의 사람들은 너도 나도 물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당신은 평소에 무슨 선행을 하였기에 이
런 좋은 보응을 받는다는 말이요?

유곡현이 대답하였다. 평상시 저는《관음경》을 지송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염불을 
중단한 일이 없었습니다. -《선여당필기善餘堂筆記》

 

19. 채사양 집안의 대비주 송념의 가피
청나라 때 채사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수로운수의 감독과 관리의 
명을 받고 파견되었다. 황하의 하구 동서로 제방이 있는 근처에 거주하면
서 민간인의 집을 빌려서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사방에 담벽이 없
고 일반 백성의 주택과 서로 접하여 이웃하고 있었다. 5월 11일 날, 서쪽 인근 집에 불이 났다. 각자 자기 집 물건을 챙기
느라고 부산하였다. 다만 채사양은 그냥 움직일지 않았다. 그의 집 식구
들이 와서 잠시 몸이라도 피하라고 몇 번씩이나 권하였으나, 그는 가만히 
앉아 요지부동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빠르게 불길이 타 올라오고 있었
다. 그런데 채사양의 사무실 건물을 건너서 또 몇 집을 태운 후 불이 비
로소 꺼졌다. 사람들은 무슨 법술法術이 있어서 화재를 면할 수 있었느냐
고 물었다. 그는 대답하였다. 저는 아주 지성으로 관세음 대비주를 송념하여 화재의 액난을 넘겼
습니다.
사람들이 말했다. 신주가 영험하다 하지만 만약에 영험이 빗나가면 괜히 목숨만 헛되
게 잃을 것 아닙니까!
채사양은 말하였다. 우리 집에서는 고조부 이래로 대대로 선조들이 모두 대비주를 지송
하여 능히 도병수화刀兵水火 급난急難 등의 액운을 면하였습니다. 영험한 
실화들을 일일이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저 자신도 이미 20년

이상 대비주를 지송하고 있습니다. 무릇 급난을 당하였을 때 성심성의껏 
공경한 마음으로 송념하면 감응이 영통하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건륭 29년의 봄에도 우리 집이 경성의 괴장호동에 살고 있었는데, 남
쪽 집에서 불이 났지요. 마침 남풍이 불어 불길이 아주 사납고 빨랐지요. 물건을 챙길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 때도 저는 대비주를 송념하였습니다. 대비주를 한 번 다 외우기도 전에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불길이 남쪽으
로 향하였지요. 이에 우리 집만이 유일하게 재앙을 면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신주는 모든 액난을 다 구제할 수 있다고 깊이깊이 
믿게 되었지요. 만약 저의 믿음이 진실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감히 가볍게 
목숨을 버리는 그런 위험한 모험을 범하겠습니까! -《신심록信心錄》

 

21. 불길을 돌린 주문치의 관음주 송념 
주문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별호는 소선이고 강소성 여요현 사
람으로 청나라 가경 연간에 과거에도 급제했던 선비이었는데 사람됨이 
효순과 솔직함을 퍽이나 따지던 사람이었다. 해녕주의 장학관으로 임명되
었었고 저서도 있었다. 그가 저술한 《철소루익수쇄언기鐵簫樓益壽瑣言記》에 이르기를 도광4년 갑신 9월 7일 북쪽 방향의 이웃집에 불이 났다. 그가 거처
하는 동쪽의 철소루와 가까운 곳이었다. 나는 항상 백의대사白衣大士(바로 
관세음보살님)주를 지속적으로 송념하는데 종래에 한 번도 중단한 일이 없
었다. 그래서 급난의 화염 속에서도 송념하였다. 불길이 곧 방향을 북쪽으로 돌렸다. 서쪽의 이웃집 십여 가옥이 한순간
에 모두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또 그 때 미친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화
염의 불길이 또 남쪽으로 향하여 바로 내 서루로 번졌다. 그 기세가 흉
흉하여 저지할 수가 없었다. 나는 또 주문을 염송하였다. 맑은 하늘에 돌
연 소나기가 들어붓듯 쏟아졌다. 바람은 곧 멎었다. 그 다음 동네 사람들
이 몰려와 곧 큰 불길은 잡혔다. 온 집안 식구들이 모두 혼비백산하였다. 그 날 산위에 있던 사람들이 멀리서 바라보니, 흰 옷을 입은 두 사람
이 키는 약 한 길이나 큰데 우리 집 동루와 서루의 지붕에 서서 지붕을 
가리고 보호하는 듯 했다고 한다. 또 한 차례는 무진년 겨울 어느 날 해창海昌(지명)의 존경각尊經閣(건물
명)뒤에 살던 민간인 집에 불이 났었다. 서북풍이 불길에 가세하여 곧장

존경각의 처마 변에 이르렀다. 당시 매우 추운 겨울이었으나 창문들이 모
두 화염의 열기로 아주 뜨거웠다. 그 때 나는 각루의 밑에서 주문을 외
우고 있었다. 삽시간에 바람은 멈추고 불은 꺼졌다. 나는 부처님의 가피
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오늘은 두 번째로 당하는 화재였다!
-《섭운공경심재수필聶雲公耕心齋隨

 

20. 소봉화상의 출가 전 이야기
예박로이라는 사람은 본성은 예씨인데 그를 소박한 노인이라는 뜻으
로 사람들이 그를 박로라고 불렀다. 당시 공부工部(중앙정부 기구)의 어떤 
사기꾼의 꾐에 빠져 감옥에 하옥된 일이 있었다. 그는 날이고 밤이고 쉬
지 않고 정성으로 관음대사에게 예배하며 정진하였다. 또 참회경을 지송
하였다. 홀연 감옥 안의 벽에 연화가 자라났다. 그러더니 오래지 않아 곧 
석방되었다. 후에 출가하여 랑인스님의 지도하에서 머리를 깎았다. 후에 
청원사의 주지가 되어 호가 소봉화상이었다. -《현과록現果錄》

 

24. 송흥스님의 가피
유송시대에 승홍이라는 스님이 계셨다. 예주지방 사람으로 경성의 와
관사의 주지였다. 소년 시절에 몸가짐을 매우 정결하게 하더니, 후에 스
님이 되었다. 그가 사미승을 데리고 인연을 따라 권선하며 모연하였다. 모아진 은전으로 일장육척의 금신불상을 주조하였다. 불상용주가 완료되었으나 개모開模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그 당시
는 진나라 말기시대로 백성들이 구리로 무엇을 주조하는 것을 엄히 금지
하던 시기였다. 만약 명을 어기는 자는 반드시 극형에 처하였다. 그 때문에 승홍스님도 범죄자로 체포되어 상부에 감금되었다. 그러나 
스님은 감옥 안에서도 오직 소리 없이 관세음경을 묵송하였다. 그리고 일
심으로 조성한 불상에 귀명하였다. 그날 밤 꿈에 주조한 불상이 나타나 
스님을 찾았다. 손으로 승홍스님의 머리를 만지며 말하였다. 걱정하지 말라!
그 때 승홍스님이 고개를 드니 불상의 앞가슴이 보였다. 약 한 자나 
되었다. 구리의 색이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사형을 집행할 때가 되었다. 상부의 참군이 사형집행관이었다. 승홍스
님을 소달구지에 태워가지고 교외 사형 집행장으로 가고 있었다. 도중에 
소가 달구지를 엎어버리고 달아났다. 수레가 심히 망가졌다. 이에 사형집
행일을 변경시켰다. 그 사이에 팽성(지명인데 한고조가 도읍으로 정한 후 역대 
황제들이 팽성에서 많이 거주하였다)에서 임금의 명령이 상부에 하달되었다. 승홍스님의 사형집행을 중지시키라는 명령이었다. 승홍스님의 죄는 용

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스님은 사형을 면하였다. 그리고 안전하게 
절로 다시 돌아왔다. 불상을 개모하였다. 불상의 앞가슴을 보니 과연 꿈
속에서 본 것 같이 화상 흔적이 있었다. -《고승전》초집

27. 경전 송념으로 목숨을 건진 왕현모
유송시대에 왕현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산서성 태원 사람이었다. 영삭장군을 위해 군대를 이끌고 홀대지방을 공격하였는데, 위주魏主 척발
도가 대군을 통솔하여 진격해 왔다. 왕현모의 군대는 모두 흩어지고 도륙 
당했다. 위주의 장군 소빈이 왕현모를 살해하려고 하는데 심경지가 거듭
거듭 달래서 죽이지 않았다.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말을 처음 왕현모가 
들었을 때, 꿈을 꾸었는데, 꿈에 한 사람이 그에게《관음경》을 1천 번 
송념하면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또 그에게 어떻게 읽
는지 읽는 법까지 가르쳐 주었다. 왕현모는 꿈을 깨자마자 곧 일천 번을 송념하였다. 그리고 형장에 나
가 형이 집행되려 할 때에도 그는 계속 그치지 않고 송념하였다. 그때 
홀연 형 집행을 정지하라는 소리가 전해왔다. -《송사宋史》및《남사南史》

 

23. 두전의 기도가피
진나라 때 두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남성 하내현 사람이었는데, 영화년에 적군과 싸우다가 적군의 포로가 되었다. 동료 7사람이 함께 잡
혔다. 모두 한 감방에 갇혔다. 수갑을 단단히 채우고 엄히 감시하였다. 그 때 도산이라는 한 스님이 계셨는데 두전과 평소에 절친하였다. 그
가 포로가 되어 잡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위문 차 방문했다. 감옥 안에
서 철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말을 하였다. 두전이 말하였다. 이제 저의 명이 경각에 달였으니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도산스님이 말씀하셨다. 만약 그대가 정말 지성으로 일심으로 관세음보살님께 생명을 걸면 
반드시 감응이 있을 것이오!
두전은 이전에도 여러 번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기만 하시면 곧 찾아가 고난과 재난을 구해주시는 것이 사실이라는 말
을 들었다. 오늘 또 도산스님으로부터 그 말을 들었다. 그는 이에 전심일
념으로 관세음보살님 성호를 묵념하였다. 밤낮으로 쉴 짬도 없이 계속 불
러 지심성의로 관세음보살님에게 매달렸다. 사흘 낮 사흘 밤이 경과하였다. 그 때 그의 수갑이 느슨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전과 느낌이 달랐다. 그는 시험삼아 수갑을 밀어보았다. 돌연 
수갑이 열리며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두전은 그 
때 같이 감옥에 갇힌 동료들을 생각하였다. 차마 혼자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관세음보살님의 대신통력으로 널리 구제를 베풀어 그
의 동료들도 함께 그 위급한 상태에서 구제되기를 빌었다. 이에 그는 다른 동료들의 수갑을 잡아 당겼더니 모두 수갑이 풀리었
다. 그들은 밤의 어둠을 타고 함께 감옥을 몰래 빠져 나왔다. 지키는 사
람이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다시 성을 빠져나와 수십 리를 걸었다. 날이 밝자 그들은 숲속에 숨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추격병이 
뒤를 좇아 나와 사방을 수색하였다. 다행히 두전 등이 숨어있는 근처에는 
시종 수색 오는 사람이 없어 모두 난을 면할 수 있었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다. 그 때부터 모두들 관세음보살님을 공경하며 
받들고 신앙하며 다른 일반 사람들과 다른 생활을 하였다.
 도산스님은 후
에 강을 건너 남쪽 동진東晋으로 넘어와 사거사謝居士라는 사람에게 이 
기적적인 사건 전말을 이야기 하였다. 
-《명상기冥詳記》

 

28. 장흥아 처의 기도
유송시대에 장흥아라는 사람이 있었다. 광동성 신흥 사람이었다. 그는 
평소 집에서 불교를 믿었다. 그는 늘 승융 담익 등의 스님으로부터 팔계
八戒를 전수 받았다. 원가 초년에 강도 무리의 무고로 체포령이 내려 그는 외지로 피난을 
나갔다. 관청에서 그의 처를 체포하여 감옥에 수감하였다. 그런데 당시 
현청 건물에 불이 났다. 그래서 수감자들을 모두 끌어내 대로변에 놓아두
었다. 그 때 승융과 담익 두 스님이 함께 죄수들 곁을 지나가는 것을 장
흥의 처가 보았다. 그녀는 갑자기 큰소리로 스님 저를 좀 구해주세요!하였다. 승융스님이 대답하였다. 빈도는 보살님을 구해드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보살님이 정근하
여 지성으로 관세음보살님의 성호를 암송하시면 혹 보살님이 면죄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오직 그렇게 하시기만을 바랍니다.
그 말을 듣고 장흥의 처는 곧바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하고 관세
음보살님을 송념하였다. 대략 10일이 경과하였다. 홀연히 꿈에 한 스님이 
발로 그녀를 툭 차면서 말하였다. 빨리 빨리 일어나라!
그녀가 꿈을 깨었을 때 수갑이 저절로 풀리었다. 

그렇지만 옥문이 굳
게 닫혀있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행여 다른 사람에게 발각될까

두려웠다. 차라리 그전대로 수갑을 차고 잠이나 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
하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또 그 스님이 나타나 그녀에게 옥문이 이미 열렸다
고 말하였다. 그녀는 꿈에서 깨자마자 곧바로 감옥을 빠져나왔다. 지키던 
위병들도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 틈에 그녀는 안전하게 감옥을 
나와 도망하였다. 그러나 아직 깜깜한 밤중이라 방향을 가늠할 수 없었
다. 다만 더듬더듬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가는 대로 걸었다. 몇 리를 걸었을 때 돌연 저쪽에서 사람이 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두려워 그냥 땅에 엎드렸다. 한참 후 상대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 서로 
확인해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남편이었다. 부부가 
서로 만나니 희비가 교차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그 밤으로 함께 담익스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담익 
스님은 갖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엄밀히 보호하였다. 이에 그들 부부는 모
두 위험한 난을 면할 수가 있었다. -《명상기冥詳記》

 

~~~~~~~~~~~~~~~~~~~~~~~~~~~~~~~~~~~~~~~~~~~~~~~~~~~~~~~~~~~~~~~~~~~~

제 3편 복과 지혜의 혜택을 줌 (흥복혜興福慧)

 

3. 선각선사와 배휴
당나라 때 담주 지방의 화림암에 선각善覺선사라는 대사가 계셨다. 배휴(당시 유명한 학자)라는 고관이 찾아 온 일이 있었다. 배휴가, 평소 시봉 드는 시자가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스님은 한 두 사람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대공과 소공 두 호랑이를 
불렀다. 두 호랑이는 암자 뒤에서 나왔다. 스님은 그들에게 당부하였다. 손님이 내방하셨으니, 너희들은 잠시 피해 있거라!하였다. 두 호랑이는 으르렁거리며 나갔다. 배휴가 또 물었다. 무슨 법문을 정근하시는데 능히 이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까?
스님은 염불하며 돌리는 염주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산승은 오직 관세음을 염송할 뿐입니다.
 -《산당사고山堂肆考》

 

41. 혜공스님과 혜원스님
북주시대에 익주지방 초제사招提寺에 혜공慧恭이라는 법호를 가진 스님
이 계셨다. 혜원이란 도반과 아주 친숙하였다. 혜공은 후에 형주 양주 등
지를 운수행각하고 돌아와 혜원스님을 만나니 헤어진 지 30년만이었다. 밤에 옛 이야기를 하는데 혜원스님이 언변이 아주 능란하고 유창하였
다. 혜공이 아무 대꾸를 하지 못하고 있으니, 혜원스님이 말하였다. 왜 경을 한 권이라도 독송하지 않는가?
혜공스님이 대답하였다. 오직 관세음보살님《보문품》1권을 읽을 뿐일세. 내 자네를 위해 읽
을 것이니, 지극한 마음으로 들어 보게나!
이에 송경단을 설치하고 올라 앉아 소리를 내어 경의 제목을 막 읽기 
시작하는데 곧 그윽한 향내가 풍겼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또 하늘음악이 
울려 퍼지고 공중에서 꽃비가 흩어져 내렸다. 경을 다 읽고 나서 쉬는데 
혜원스님이 곧 경례하고 사례하였다. -《고승전》 2집

 

 

12. 구나바타라 스님의 기도
송나라 때 구나바타라라고 하는 스님이 계셨다. 그는 계빈국의 왕족
으로 학문에 밝고 박식하였으며, 불교의 경장에 조예가 깊었다. 더욱이 
대승불법에 크게 달통하였다. 원가년 중에 동쪽인 중국으로 왔다.《화엄경》을 널리 강의하여 홍법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중국어를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창피하게 생각하
면서 개탄하였다. 조석으로 예불하며 참회하고 정성으로 관세음보살님께 
명명중 감응을 내려주시기를 기도드렸다. 하루 밤에는 꿈에 한 신인이 보검을 들고 나타났다. 다른 한 손에는 
사람 머리를 들고 왔다. 자기 머리와 교환하려고 하였다. 그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그 후로부터 중국어에 달통하여 능숙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즉각《화엄경》 강설을 시작하여 수 천 번을 강설하였다. 강
경을 듣는 대중들은 탄복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고승전》초집

 

13. 온제스님의 몽중가피
송나라 때 온제라는 스님이 계셨다. 절강성 전당 사람이었으며 속가
의 성은 주씨였고 별호가 청변이었다. 스님은 늘 돌림병에 감염되어 헤어
나지를 못하였다. 백약이 무효였다. 이에 그는 관세음보살님 성호를 수행
일과로 매일 힘써 행하였다. 하루는 꿈에 한 사람이 끌을 가지고 와서 그의 가슴을 벌리고 그의 
심장을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손을 몇 번 문질러 주었다. 꿈에서 깨어난 
후 그의 고질병은 완전 치유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 읽은 적이 있는 
모든 경전을 한 경전도 빼놓지 않고 전부 새롭게 기억할 수 있었다. 또 
붓만 들면 문장이 슬슬 나왔는데 모두들 우아하고 수준 높은 글이라 하
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그의 변재가 막임이 없는 증거라고 하였다. -《불조통기》

 

14. 담진문집을 남긴 명교대사
송나라 때 영은사에 명교대사란 분이 계셨다. 이름은 계숭契嵩이고 자
는 중령이었으며, 광서성 등현 담진지방 이씨 가문의 자제였다. 7살에 출
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항상 머리에 성상을 이고 다녔으며, 대비관세음의 
명호를 송념하였다. 매일 10만성을 염하였다. 경전도 널리 낭독하였는데 기억력이 아주 좋았다. 일찍이《보교론輔敎
論》십만자 및《선문정조도禪門正祖圖》,《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와 기타 교
리 이론을 보조할 수 있는 여러 편의 글을 저술하였다. 한충헌공 구양문
충공 등 당대의 대문호들이 모두 칭찬하였다. 희소 4년 6월에 입적하셨는데, 육근 중 다비식 후에도 괴멸되지 않은 
것이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눈이고, 둘째는 혀고, 셋째는 동정童貞이 
훼손되지 않았으며, 그 외에도 정골의 여러 사리 등 다섯 가지가 모두 
그대로 존재하였다. 또 남겨진 사리들은 홍색 백색이 모두 정교하고 번쩍
번쩍 광이 나고 깨끗하며 모양이 커다란 콩알 같았다. 그의 유저遺著로 
《담진문집鐔津文集》20권이 세상에 전하고 있다. -《불조통기》

 

15. 중회법사의 게송
송나라 희녕 연간에 중희법사라는 스님이 계셨다. 그는 회계지방 사
람으로 집안이 곤궁하였으며, 소년시절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하여 글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매일 조금도 쉬지 않고 관세음보살님을 송념하여 
후에는 글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능히 게송도 지을 수 있었다. 그의 게송 중에는 이런 게송이 있었다. 지로地爐에는 불이 없어 빈 주머니인데, 신령은 버들 꽃처럼 떨어져 
세월을 재촉하는데, 모시 베 얻어다 헌 누더기를 기우니, 몸이 고요함 속
에 있음을 모르는구나!
실로 그는 관세음보살님 지혜의 힘을 얻어 깨달은 것이었다. -《견호집堅瓠集》

 

 

 

49. 보살명호로 용모가 바뀐 여환법사
명나라 때 여환如幻법사라는 스님이 계셨다. 그리고 또 그의 친한 친
구로 하치시夏治時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전에 통달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하치시가 여환스님께 말하였다. 스님 관상이 입술이 치켜 오르고 이빨이 노출했으니 장수하는 상이 
아닙니다. 마땅히 관음대사께 기도하시고 보살님의 명호를 열심히 송념하
여 수를 구십시오.
여환스님은 그의 말대로 실천하였다. 보살 명호를 3년간 지송하였더
니 용모가 이미 변하였다. -《고승전》 4집

 

 

~~~~~~~~~~~~~~~~~~~~~~~~~~~~~~~~~~~~~~~~~~~~~~~~~~~~~~~~~~~~~~~~~~~~

제4편 극락에 왕생하여 성인이 되게 함 (도생사度生死)

 

9. 정토수행으로 평생을 보낸 도씨 부인

원나라 때 도씨라는 부인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녀를 16(16째 아가

)이라 불렀다. 강소성 상숙현 서씨집성촌 마을 사람이었다. 나이 26

과부가 되어 자식도 없었다. 그래서 정토에 왕생하기를 서원하였다. 항상

관음경 보문품을 지속적으로 송념하였다. 홀연 어느 날 밤 꿈에 흰옷을 입은 백의인이 손에 한 떨기의 연꽃을

가져와 그녀에게 먹으라고 하였다. 그녀는 꿈에서 깨어난 후 마음과 정신

이 평상시와 달리 좀 이상하였다. 곧 자그마한 누각을 하나 만들고 서방

을 향하여미타경을 염송하였다. 염불로 날을 지새우며 그렇게 3년이 지난 어느 날 부처님의 광명이

나타났다. 작은 누각 안의 경을 넣어둔 함 위에 불덩이가 생겼는데 구슬

만 하였다. 도씨는 행여 경이 불에 탈 새라 손으로 그 불을 껐다. 이에

그 자리에서 사리 한 과 얻었다. 그리고 명이 다하여 임종 시에 부처님

께서 영접 오셔서 대중들과 작별하고 왕생하였다. -정토선인영淨土善人詠》

 

13. 경지도인의 접인을 받은 하씨녀

청나라 때 남호지방에 비구니 스님이 계셨다. 성은 왕씨였고 법명은

경지도인이었다. 그녀는 원래 이경희란 이의 후처로 시집을 갔었으나,

26세에 과부가 되어 세상을 떠나겠다 발심하여 보살계를 받았다.

에 불법으로 마을 사람들을 선도하니, 그를 따라 신심을 일으킨 사람이

백 여인이 되었다. 그녀는 혀를 찔러 피로법화경》《아미타경》《범망계

등을 사경하였다. 38살 때 이질병을 얻었다. 하루는 일어나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합

장하고 가부좌로 앉아 염불하며 세상을 떴다. 그때가 건륭 49년이었다. 3년이 지난 후 같은 마을 하씨녀가 병이 나서 비몽사몽간에 말하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빨간 동불을 들고 나타나 그녀를 커다란 가마에

태워갔다. 그리고 커다란 전당에 이르렀다. 청색 얼굴을 한 왕이 중간에

좌정하고 작은 귀졸들이 쇠고랑 이를 들고 혹은 쇠망치를 들고 좌우에

시립하고 서 있는 광경이 나타났다. 곧 쇠망치로 나를 치라는 명령이 떨

어졌다.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차 홀연 금동옥녀가 나타났다. 각종

깃발을 들고 내전에서 나왔다. 중간에 한 도인을 옹호하고 있었다. 그녀

와 약 한 길 쯤 거리가 있었다. 머리에는 청색두건을 쓰고 몸에는 옷을

치렁치렁 걸치고 손에는 흰색 백불白拂(흰색 말꼬리 채)을 들고 구름을 타

고 다녔으며 결백장엄하기 비할 데가 없었다.

자세히 보니 만년교 다리 근처의 이 마마님이었다. 마마님은 그녀의

집에서 하루 밤 머문 일이 있었다. 그래서 어렴풋이 기억이 있었다. 그러

나 그의 모습은 전에 뵈었을 적하고는 천양지판이었다. 마마님이, 멈추어라! 멈추어라!하자 곧 행동을 멈추고 무릎을 꿇고 답하였다. 저희는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나를 석방하실 때에 마마님은 손을 뻗어 나를 데리고 내전으로 들어

가셨다. 거기는 대낮 같이 밝았다. 좌석이 여러 개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

, 책상 위에는 불경이 놓여있었다. 나에게 과일과 청차를 내다주라고

하였다. 사과 같았다. 너무 맛있고 달았다. 그리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자기는 서방에서 왔다고 하시며 나를 데리고 지옥을 참관시켰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사람 몸 얻기 어려운데 왜 염불하고 계를 지켜 서방정토에 왕생할

생각을 하지 않느냐?고 하시고선, 너는 빨리 돌아가 염불 잘하고 재와 계를 잘 지켜서 일심으로 서방

을 염하고 경과 주를 공부하고 있으면 때가 되면 내가 다시 와서 접인해

가겠다.고 하시며 계속 격려하고 면려하였다. 그리고 가마에 태워 나를 돌려보내라 명령하였다. 그래서 놀라서 깨

어났다고 말하였다. -일행거집

 

14. 호씨녀의 왕생

호주지방에 호씨녀가 있었는데 항주의 반 아무개의 처가 되었다.

아무개는 일찍부터 계속 채식을 하고 있었다. 결혼 후 부인도 그를 따라

채식을 원하였다. 얼마 후 반아무개가 병이 나서 죽고 말았다. 식구들은 가난에 어찌할

수 없이 잡 안의 모든 옷가지와 장식품을 모두 내다 팔았다. 겨우 매일

일전으로 두부를 사다가 덥혀 먹고 끼니를 때워 배고픈 줄은 몰랐다. 호씨녀는 관음보살상을 공경스럽게 모시고 범주梵咒를 송념하였으며, 법명을 숙념이라 하였다. 매일 나가 남의 바느질을 하여 생활을 꾸려나갔

. 다소라도 남은 돈이나 옷감은 스님들께 보시하였다. 그녀는 일찍부터

자기가 들어갈 감관龕棺을 사다가 집 밖 다른 곳에다 준비해 놓아두었다. 강희 신미년 6월 중순에 그 관을 집으로 들여왔다. 그리고 영봉 노법

사를 모셔와 점화를 부탁하였다. 먼저 향탕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웃 아주머니들이 그녀를 부축하여 감관에 넣어주었다. 손에는 향을 3가지 받쳐 들었다. 삽시간에 불이 감의 위에 옮아 붙었

. 오색의 무지개 연기가 피어올랐다. 또 향기가 사방으로 전달되었다. 그녀를 전송하려는 사람이 남녀 수백 명이 되었다. 모두 너무도 기이하다

고 감탄하였다. 당시 그녀는 41세였다. -광원신지曠園新志

 

15. 원간재가 전하는 조모의 왕생이야기

청나라 때 원간재라는 사람이 말하였다. 우리 할머니 시대부인께서는 항상 자기 외조모 탕씨에 대해서 말씀하

셨다. 노인께서 나이가 들도록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그 노부인의 딸 홍

부인의 말에 의하면 노부인이 97세에 별세하셨는데, 평소에 항상 한 누

각 위에서 거주하셨으며, 관세음보살님 상을 정성으로 모셨다. 또 경을

독송하시느라 한 시도 쉬시는 일이 없으셨다. 또한 30년 동안 발로 땅을 밟지 않았다. 본성이 아주 자상하시고 착

하셨다. 돌아가시기 3일 전에 물을 달라고 하셔서 발을 씻으셨다. 시녀가

항상 나무대야에 물을 담아다 들였다. 그런데 그날은 노부인이 안 된다고

하였다. 내가 이번에는 한 번 가면 연화를 밟고 가야하는데, 반드시 얼굴을

씻는 구리대야에 물을 담아야 한다.하셨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전단 묘향의 향내가 풍겨 나와서 방안 공기에

서 감돌았다. 노부인은 단정히 가부좌로 앉아 왕생하였다. 향기는 밤 낮

3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사라졌다. -사재해斯齋諧》

 

21. 승가대사의 좌탈왕생  ->6편 널리 이적을 드러내심 (보시현普示現):

당나라 때 승가대사라는 분이 계셨다. 그는 서역사람이었다. 용삭 초
년에 중국에 관광 나왔다가 안휘성 사주 임회션 신의방에 땅을 한 필지 
샀다. 그리고 거기에 푯말을 세우고 사원을 창건하였다. 푯말 비석을 세
우려고 땅을 팠는데, 거기에서 옛 향적사명기香積寺銘記와 금불상 한 존을 
발굴하였다. 금불상에는보조왕불普照王佛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
었다. 이에 거기에 사원을 건조하였다. 경룡 2년 중종황제가 사신을 파견하여 대사를 영접하여 내정에 모셔
와 국사라 존칭하며 곧 뒤이어 천복사에 계시게 하였다. 그때 혼자서 방
안을 거처하였다. 방안 천정 위에 구멍이 하나 있어서 항상 솜으로 그 구
멍을 막아놓았다가 밤이 되면 곧 솜 마개를 빼놓았다. 향을 피우면 향내
가 그 구멍으로 매우 짙게 풍겨 퍼져나갔다. 다음 날 날이 새면 구멍을 
다시 막아놓았다. 그러면 향내가 나가지 못하여 그냥 천정에 선회하였다. 대사가 평상시에 발을 씻은 물은 사람들이 대부분 가져가 음료수로 
마셨다. 많은 불치의 고질이 이 물을 마시고 모두 나았다. 하루는 중종황제가 내전에서 대사에게 말하였다. 경성 부근에 몇 개월째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대사께서 대자비를 베
푸시어 제 고민을 좀 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에 대사가 병 안의 물을 공중에 아무렇게나 뿌렸다. 잠시 후 단비
가 내렸다. 황제가 매우 기뻐서 대사가 수도하는 절 편액을 내렸다. 대사
가보조왕普照王이라 지어 달라 부탁하였다. 그러나 황제는 천후묘의

휘명을 피하기 위해보광왕寶光王이라 바꾸어 편액을 내렸다. 경룡 4년 3월 2일 대사가 장안의 천복사에서 앉은 채 좌탈왕생하였
다. 대사의 유골을 모신 탑이 지금도 임회에 아직 남아 있다. 후에 중종이 유명했던 만회에게 대사에 대해 물었다. 승가대사는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만회가 대답하기를, 그 어른은 관세음보살님 화신이십니다.《보문품경》에 이르듯이, 『응당 비구 비구니 등 신으로 득도할 사람은 곧 비구 비구니 등 신으
로 나타나셔서 그에게 설법한다.』그렇게 현신한 것입니다.
대사가 처음 장안에 도착했을 때 만회가 배알하고 매우 공경하였다. 대사는 자주 그의 머리를 가볍게 치며 말하였다. 작은이는 왜 이런 곳에 오래 머무르려 하느냐, 가도 되지 않겠느냐!
하였다. 대사가 왕생한 후 몇 달이 되지 않아서 만회도 산뜻하게 왕생하였다. 그 외에도 대사와 관계된 이적이 많이 있는데, 모두 그의 본전에 기재되
어 있다. -《고승전》 3집

 

10. 영명연수 선사의 정토수행  ->3. 흥복혜興福慧
송나라 때 지각智覺스님 영명永明선사가 계셨다. 별호는 연수延壽이셨
다. 그는 천공소天公韶 국사國師에게서 법을 전수받았고, 자주 21일간의 
법화참매를 거행하셨다. 어느 날 꿈에 관세음보살님이 감로수를 입에 부
어주셨다. 이에 막힘이 없는 변재를 얻었다.《종경록宗鏡錄》일백권을 지
으셨는데, 제법諸法을 융합관통하여 공동으로 심종心宗에 포함시켰다. 또《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3권을 저술하여서 공유성상空有性相의 취지
를 발명하시고, 진정한 수행을 제창하시고 중도中道에 귀착시켰다. 매일 
일과로 10만성의 염불을 하시고 전문으로 정토를 수행하셨다. 영명사에 15년 동안 거주하시며 1700여 명의 제자를 제접하여 모두
에게 보살계를 내리셨고 시식과 방생을 하시고 모두 정토에 회향하였다. 개화 8년 2월 26일 때가 되었음을 미리 아시고, 이 날 새벽에 기상하
여 목욕재계 하시고 분향하고 대중에게 알리고 가부좌의 자세로 왕생하
셨다. -《무림고승사략武林高僧事略》

 

11. 자운참주라 불린 준식선사  ->3. 흥복혜興福慧
송나라 때 준식遵式 선사란 분이 있었다. 태주의 엽씨댁 자제였다. 그
의 모친이 일찍이 아주 지성으로 관음에게 기도하여 스님을 출생하였다. 스님은 학문이 높고 깊었으며, 능히 고행을 감내하고 오직 뜻을안
양安養에 두고 항상반주삼매般舟三昧의 수행공부를 하였다. 또 90일
의 기한을 정해놓고 고행수학을 하여 피를 토하기에 이르렀다. 항상 도량
에 있을 때면 두 발이 터져 피가 흘렀으나 스님은 죽음으로서 서원을 하
고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하루는 홀연히 꿈에서 백의관음이 나타나셔서 손으로 스님의 입을 벌
리고 입에서 벌레 몇 마리를 잡아냈고, 또 손가락 끝에서 감로를 흘려 
입속에 넣어주셨다. 몸과 마음이 너무도 청량하고 시원하였다. 이에 스님의 오래된 질병이 완전히 치유되었으며, 그 후로 더욱 참회
하여 머리가 위로 한 치 이상 커졌고, 두 손은 무릎을 지나 아래로 내려
갔으며, 소리는 종소리 같이 쨍쨍 울리는 등 여러 가지가 이 전과 달라
졌다. 대중들은 모두 스님을 찬탄하고 흠모하였다. 스님은 일찍이 천축사의 건물들을 확장시켜 승방 수 백 칸을 건축하
였으며, 광명당을 건립하였다. 매번 기둥을 하나 더 세우거나 기와 한 장
을 더 덮을 때는 반드시 친히 대비주를 7번 소리 내어 송독하였다. 세 차례나 도적떼의 난동으로 저질러진 화재도 그때마다 스님이 직접 
나서서 화재 진압을 하였다. 이것은 모두 스님의 큰 원력이 견고한 덕이
었다.《정토결의행원이문淨土決疑行願二門》및《정토참법금광명관음淨土懺法

金光明觀音》등을 저술하여 여러 권의 참의懺儀가 간행되어 세상에 유포되
고 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호칭하여 스님을자운참주慈雲懺主라 
하였다. -《무림고승전》

 

10. 등령스님의 정토수행  ->5. 광권징廣勸懲
청나라 때 등령이라는 법호를 가진 비구니가 계셨다. 광동성 번우현 
사람으로 속가의 성은 등씨였으며, 예불 송경에 부지런히 분발 정진하였
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전혀 쉬는 짬도 없이 간절히 정토를 
염하였다. 더욱이나 관세음보살님 큰 이름을 입이 쉴 참도 없이 줄곧 지
송하였다. 

경인년 7월 23일 밤중에 예배하며 염불하고 있는데 사방이 조용하여 
모든 세상이 텅빈듯하였다. 오직 자기 혼자 존재하는 듯 싶었다. 황홀한 
가운데 손에 무엇이 잡히는 것 같아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입에 넣
고 삼켰다. 그리고 손을 벌리고 보니 아직도 세알이 남아 있었다. 그 색
깔이 선홍색으로 주사朱砂 같았다. 그로부터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러나 
배가 고프지 않았다. 염불하고 예불하고 독경하고 평상시와 같이 하였다. 후에 절기 따라 새로 나는 과일을 조금씩 먹었다. 그 외에 세상의 열
을 가한 음식은 일체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몸과 피부와 겉모
습은 여전하였고. 오히려 정신은 더욱 맑고 건강하였다. 광주 엄정암에서 
살았다. -《관음자림집觀音慈林集》

 

 

~~~~~~~~~~~~~~~~~~~~~~~~~~~~~~~~~~~~~~~~~~~~~~~~~~~~~~~~~~~~~~~~~~~~

제5편 권선징악의 과보를 보임 (광권징廣勸懲) 

 

3. 청상과부 주덕정 여거사의 수행

명나라 때 주덕정이라는 여거사(중국에서는 여자신도도 거사라 칭함)가 있

었다. 우강지방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느 양반집 셋째 딸이었다. 어릴 적

에 가정교육을 잘 받아 성정이 매우 효순하였다. 8살 때 부모님의 명으

로 의위지방 왕정경의 아들 중현과 약혼하였다. 그런데 10살이 되었을

때 약혼자 왕중현이 사망하였다. 그녀는 부음을 듣고 곧 상복을 입고 채

식을 하였다. 스스로 관세음보살님 상을 자수刺繡로 수놓아 모시고 조석으로 향을

피우고 묵념하고 기도하였다. 20세가 되었을 때 구혼자가 있었다. 그녀는

곧 부모 앞에 꿇고 앉아 말하였다. 소녀는 왕씨가의 며느리입니다. 왕중현이 사망 후부터 저의 뜻은 개

가하지 않겠다고 바로 다짐하였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매우 화를 내며 책망하였다. 그녀의 뜻은 더욱 요지부

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만약 미망인으로 있지 않으면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고 식음을 사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라고 발원하였다. 그녀

의 부모는 놀라서 다시는 결혼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천계 신유년 가을 왕중현의 일주기가 닥치니 먼저 자기 양친께 하직

하고 조상 사당에도 고별인사를 하고 829일 왕씨댁으로 돌아갔다.

복과 지팡이를 짚고 추모하는 제사상을 차리고 제사를 지냈다. 그 후로

깨끗한 방을 정리하고 삼보에 귀의하였다. 매일 새벽에보문품과 대비

주를 송독하였다. 밤에는아미타경과 왕생주를 염송하였다. 이로부터 일체 시문을 다시는 읽지 않는다고 맹서하였다. 시부모의

생일이나 왕중현의 기일이 닥치면 그때마다 차례를 지내고 참회예불을

올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법에 소홀한 법이 없었다. 이에 그녀의 시

부모도 감동하여 마음을 다해 채식을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시부모의 의

복과 음식 등 일체를 직접 챙기고 봉양하였다. 혹 병이 나면 더욱 극진

히 보살폈다. 갑자년에 그녀의 친정아버지가 병이 나서 위중했다. 그녀는 허벅지

살을 도려내 약으로 드렸다. 그의 아버지 꿈에 관음대사가 현몽하여 말하

였다. 너의 딸의 효심으로 너의 수명이 연장 되었다.

과연 병이 완전히 치유되었다. 우강지방 사람들은 그녀의 효심을 칭

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현정야승賢禎野乘관세음지험기觀世音持驗記》

 

~~~~~~~~~~~~~~~~~~~~~~~~~~~~~~~~~~~~~~~~~~~~~~~~~~~~~~~~~~~~~~

~~~~~~~~~~~~~~~~~~~~~~~~~~~~~~~~~~~~~~~~~~~~~~~~~~~~~~~~~~~~~~

부록1 - 대비수(大悲水)

 

대비수를 구하는 법과 복용법

 

삼보제자로서 우선 구업을 정갈하게 하고 경건하고 정성스러운 몸

가짐을 하는 불자는 누구나 대비수를 빌어 얻을 수 있고, 또 대비수로

써 많은 질병을 치유할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대비수를 보시하여 많은 중생과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다.

대비수를 구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먼저 불단 앞에 향을 피우고 정례를 한다.

2.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 한 잔을 불전에 올리고 정례를 한다. (이 때 물의 양은 많고 적고 상관이 없다.)

3. 헌향게를 외운다. (또는 향찬)

4.정구업진언을 외운다.

5.나무대자대비구고구난광대영감관세음보살1번 외운다.

6.천수천안무애대비심다라니라고 3번 외운다.

7. 대비주를 49회 외운다.

8.보궐진언을 외운다.

9.나무대비관세음보살10번 외운다.

 

위와 같이 기도를 하여 얻은 대비수는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탁된

물임으로 능히 모든 크고 작은 까닭 모를 질병들을 치유할 수가 있다.

 

이 대비수를 마시는 사람은 반드시 육식을 피하고 입을 깨끗이 하

고 먼저나무대비관세음보살을 열 번 외운다.(만약 어린이나 혹은 환자로

서 소리를 내어 외울 수 없을 때에는 관계있는 사람이나 함께 자리한 사람들이 환자

를 대신하여 염()해도 된다.) 염불을 하고 난 후 마시면 즉각 효험이 나

타난다.

만약 이 대비수를 마시는 사람이나 혹은 그 가족들이 능히 발원하

여 방생을 하거나, 혹은 매월 며칠이라도 정해놓고 채식을 하면 그 공

덕이 커서 효험이 더욱 두드러진다.

만약 남몰래 큰 덕을 닦은 선지식이 공을 들인 대비수가 있다면 그

대비수의 공력은 무한량이며, 그분이 보시한 공덕 또한 한량이 없다. 이때 그 발심자의 공덕여하에 따라 그 대비수의 공력도 정해진다.

 

 

대비주로 화재를 예방하는 법

 

위 방법과 같이 기도하여 구한 대비수를 거주하는 집에 뿌려서 화재를

예방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황원지(노란 색 종이. 노란 화선지가 좋

) 한 장을 준비한다. 대비주를 염하는 의식은 위에 설명한 순서대로 하

면 된다. 그런데 대비주을 한번 외울 때마다 황원지 위에 빨간색 동그라

미 도장을 하나씩 찍는다. 대비주를 마흔 아홉 번 외우니 동그라미 도장

도 마흔 아홉 개를 찍는다. (한 줄에 일곱 개씩 일곱 줄을 찍는다.)(빨간색 동그

라미는 주사를 갈아 쓰면 더욱 좋다.)

그리고 빨간 동그라미가 일곱 줄이 있는데 가로 세로 모두 일곱 줄이

. 그 때 전체를 보면 정사각형이 된다. 다시관세음보살영감진언

한 번 외우고, 작은 빨간색 동그라미 하나를 사각형 네 귀퉁이 동그라미

속에 또 찍어 넣는다. 그러니까 한번 외우고 한 귀퉁이 동그라미 속에 작

은 동그라미를 하나 찍어 넣고 또 한 번 외우고 다른 귀퉁이 동그라미

속에 작은 동그라미를 하나 찍어 넣는다.

이렇게관세음보살영감 진언을 네 번 외워 각 귀퉁이 동그라미 속에

작은 동그라미를 하나씩 찍어 넣는다. 큰 빨간 동그라미 마흔 아홉 개, 작은 빨간 동그라미 마흔 아홉 개를 다 찍은 후 이 대비주 황원지를 각

자의 집 조왕신(부엌을 지키는 신) 앞에서 소각하면 능히 한 집의 화재를

예방할 수 있다. 만약 이 주문을 외우는 사람의 공덕이 원만하면 내 집

뿐 아니라 이웃들까지도 그 덕을 보아서 화재의 재난을 면할 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