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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튤(캄툴,캄뚤) 린포체---조계사 법문 (2012.06.07)-(전체)***

아미연(阿彌蓮) 2019. 3. 31. 15:23

(원글: http://cafe.daum.net/dharmalamp/Ij8b/644 )

캄튤(캄툴,캄뚤) 린포체-조계사 법문 (2012.06.07(목) 오전11시)
:녹음 녹취(약1시간)
*좋은 법문이라서 ,불완전한 녹취이지만 다른 분들도 보시면 좋을 듯하여 글을 올립니다.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아, 최대한 노력했으나 군데군데 알아듣지 못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읽으시는 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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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문하시는 제9대 캄튤 린포체님

1. 오늘 여러분들 먼저 처음 뵙게되고, 더군다나 우리 --- 뵙게되서 너무 기쁘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또 같이 도와주신 스텝분들께도 아주 감사을 드리고, 여기 ---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린포체 당신께서 한국을 방문한 것이 두 번째입니다. 두 번째인데 첫 번째 작년도 그렇고, 한국이 깨끗하고 조용하면서도 활발한 느낌이 들어서 아주 좋았고, 또 동시에 당신이 한국의 ---을 많이는 아직 보지는 못하셨지만, 한국의 ---들을 보면서 이 모습이 이 불사가 이루어졌던 이루어지게 만들었던 한국의 모든 스님들과 ---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리고 또 오늘 오셔서 특히나 ---과 같이 앉아서 말씀을 나누시고 하면서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알게 되어서 기뻤고, 동시에 조계사에 들어서니까 어떠한 기운이 웅장함이 있음을 느껴서 기뻤고 감사했다고 하십니다.

2. --- --- ---
귀의와 발보리심 염송(린포체께서 염송) --- --- ---

3. 불법을 닦는 모든 사람들은 결국 근본불교와 대승불교, 금강승불교 세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본불교를 지지하고 있는 미얀마나---, 대승불교를 지지하고 있는 한국 대만 중국 홍콩 등등, 그리고 대승불교입장에서 또다른 많은 방편들을 설하고 있는 금강승불교는 티벳에서 법맥을 이어왔습니다.
우리가 이름은 다 다르나, 세가지 다 우리의 스승들은 우리의 아버지인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이며 같은 도반이며 같은 형제입니다. 이러한 --- 우리는 한 형제라고 생각합니다.

4. --- --- --- --- --- ---

근본승 근기에서 그분들에게 고집멸도 사성제를 설하시고 돌고도는 윤회세계에서 염리심을 일으키기 위해서 법문을 하셨으며,

그다음에 --- 보리심과 사랑의 마음을 일으키게하기 위해서 대승의 가르침을 설하셨습니다.

그런다음에 문수보살님의 청원에 의해서 금강승의 가르침을 설하셨습니다.

일체모든 중생의 필요에 의해서 앞으로 법을 설하셨는데, 대승에서도 두가지 종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현교와 밀교의 가르침을 설하시고 있습니다.

5. 이 우주상에 일반적으로 흰두교 기독교 더 많은 종파가 있습니다. 그들 모두의 가르침을 그 가르침대로 그대로 그 정수를 제대로 이해하고 수행을 하고 실천을 한다면, 그 가르침 속에서 그 일상 속에서 분명히 자애와 연민과 인과에 대한 가르침들을 다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일은 하시고 나쁜 일은 하지 말라는 가르침들은 수행될 것이며, 그래서 그 모든 수행 방편들은 그 모든 종파는 그 나름대로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며, 일시적으로도 편안하고 궁극적으로도 궁극적 행복을 얻을 수 있게 할 것입니다.
당신이 생각하건대, 모든 핵심은 모든 법의 정수는 자애 사랑 그리고 측은적인 마음 연민,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닌 줄을 아는, 모든 것이 집착함이 없는 것을 아는 궁극적인 공성, 우리의 불성 우리의 자성,
그리고 또한 그 모든 법을 다 알고 존재의 본질적인 궁극적인 것이 아닌 줄을 알면서도, 또한 우리는 현상계가 있는 연고로 그 현상계에 합당하게 행위을 할 줄 아는 그러한 모든 것,

그래서 분명히 ---- 열반 공성은 있으되, 그러나 이것 또한 --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지 않고 --지 않고, 그것대로 다 쓸 수 있는 그 모든 가르침이 법의 진수라고 생각하십니다.

6. 부처님께서는 열반하셨지만, 당신의 가르침은 어디에나 없는 곳이 없습니다. 모든 중생이 일시적으로 궁극적으로 완전한 행복와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 항상 법은 설해지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셨던 것은, 마치 의사가 환자의 상태와 환자의 병에 따라서 약을 또 시간을 달리 실천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원리로, 우리들의 상황에 맞게 우리들이 그 가르침을 들어서 정말 행복할 수 있게 자유로울수 있게 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팔만사천 이라고 표현되는 다양한 법이 있게 되는 것이고 그 다양한 방편이 있게 된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수행하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 그 사람의 마음씀에 따라서, 상중하 그리고 작고 중간이고 크고하는 그 사람의 상황에 따라서, 우리는 법을 만날 수가 있겠지요.

7. 법을 설하신 이유 역시 우리가 법을 의지하는 이유 역시 병이 낫기 위해서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당신이 얼마나 아는 지 얼마나 수행하셨는 지 얼마나 위대한 지를 보이기 위해서 법을 설하신 것이 아니라,
그 법의 상태 모든 만법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를 당신이 잘 알기 때문에 그 잘 아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기 때문에, 알아야만 깨쳐야만 우리가 해탈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사람들을 위해서 중생을 위해서 마음가진 물질가진 그 모든 일체중생을 위해서 당신이 설하셨던 것이지, 당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8. 그래서 의사가 중생들에게 약을 주는 것도 병을 없애기 위해서고, 모든 스승들이 법을 설하신 이유도 병을 없애기 위함 이었습니다
그러면 병은 뭡니까? 우리의 병이 뭐예요?
--- 병이 마음이예요? 마음이 모든 걸 다 갖고 있으니까?
자 그러면 우리 마음에 있는 병의 핵심은 무엇이냐? 우리들의 마음에 흐르고 있는 실체가 없는 아(我)라는 생각이죠 내것 나, 그 다음에 마음껏 나라고 싶어하게 만드는 무명, -의 실체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 그 무명에 의해서 아(我)가 생기고 아(我)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번뇌 탐진치 그 모든 번뇌 그것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데, 우리마음은 본래 그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흐름은 우리마음에 반복되어서 그래서 그것을 쓰고있다는 거죠 그것이 무명이다.
그래서 그 병을 없애기 위해서 설한 것이 모든 수행방법이 되겠습니다. 모든 방편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수행으로 어떤 이름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의 마음에 흐르고 있는 우리의 본마음이 아닌 탐진치와 무명과 아집이라는 그 흔적들이 그 흐름들이 그 습기들이 사라지게 되면 그러면,
우리들은 수행을 제대로 하는 것이고 방편들을 제대로 쓰는 것이고 약을 먹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9. 의사가 약을 준다고 하긴 하는데, --- 제 시간에 안 먹고 적당히 자기마음대로 버리고 이런 일을 하지요. 그런 적이 많나요 안 많나요? 그렇습니다 똑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법을 가르침을 주셨는데, 우리가 제대로 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그래요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듯이 부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을 보인다. 여러분들에게 방법을 일러준다. 그러나 그것을 하고 안하고는 너희들에게 달려있다.” 왜냐하면 --- 너희들도 똑같은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 길은 보이되, 그 길을 체득하냐 안하냐 목적지에 도착하냐 안하냐는 여러분에게 달려있다.
그래서 길을 보일 때 제대로 해라. 그 길을 보여주는 의미와 --와 --을 확실히 파악하라. 그리고 그 --만큼 완전하게 해야만이 우리가 약의 효과를 보고 궁극적인 길의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10.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도에 오셔서 법을 설하시고 많은 가르침을 설하셨지만, 그 많은 가르침을 우리가 다 실천할 수가 없고, 그것을 다 배워 익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시는 말씀이 “정수를 알아라. 그 모든 법의 가르침의 핵심을 알아라. 그러면서 그것을 가슴에 잘 새겨서 그것을 실천하라.”
그러면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공통점이 뭐냐하면, “아무리 작은 선이라도 행하고, 아무리 작은 악업이라도 행하지 말고, 그리고 스스로의 마음을 조복하는 것 그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고 하신 것이 모든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모든 선을 행하라. 그리고 모든 악을 금하라.
모든 선과 모든 악의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에 있습니다. 그죠. 마음에. 마음이 스스로 조복하게 해야 된다. 그러면 내 마음은 나만이 알지 그 누구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수행의 핵심은, 내 마음을 내가 보고 자연히 나스스로 그 경지를 -- 나를 -- 경지를 스스로 창조하느냐 창조하지 않느냐 그것이 모든 법의 핵심이고 정수인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체득한 것만큼 자신의 마음을 --한 것이라면, 어떤 방법도 수행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타인에게는 어떻게 보이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은 문제가 안됩니다. 얼마든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자기를 죽이는 것 자기를 옭아매는 것은, 찰나찰나 자기가 어떤 마음을 썼느냐 하는 것, 그것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를 옭아매는 -- 그것을 잘 알고 자기의 마음을 온전히 청정하게 하라. 자기의 마음에 온전히 깨어있으라고 하는 것이 법의 정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1.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법들도 다 자유와 연민과 보시와 지계 인욕 정진 등등을 가르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실천하고 있게 됩니다 그 모든 분들이. 그런데 그 모든 일반적인 가르침은 다른 종교도 있고 우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불법 석가모니 부처님의 유일한 가르침, 어디에도 없는 그 가르침, 우리스스로 어떠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르침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가르침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바로 진정한 그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그 사랑하는 나 그리고 그 사랑을 받는 대상 이 세가지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공성과 또 사랑이 하나인 자리, 우리마음의 본실체 그 자리, 그것을 하나로 쓰라고 하는 것이지요. 공성이 뭔지 여러분들 이해하시지요.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 보십시오. 잡지도 못하고 알 수 없습니다. 보이지도 않죠. 없다고 할 수 있겠죠. 그것을 공성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비어있다고 해서 온전히 빈 것이 아닌, 왜냐 비어있고 아무 것도 없는 그 자리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번뇌에 의해 우리의 본모습을 가리고 헷갈리고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항상 영롱한 소소영롱하게 비어있는 자리에서 영롱한 안을 계속 --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지 않고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미워하는 것은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이 안되니까 미워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잘 살펴보십시오 우리마음을. 공성과 모든 --와 따뜻한 사랑은 동시에 하나인 것입니다. 우리의 본모습이 하나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길 또한 하나를 써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고 --일을 하고 또 모양을 만들어낼 때, 그 일어나는 모양에 우리의 공성이 가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가 공성을 체득하고 있을 때 그 근본 명료한 그 에너지가 그 기운이 그 앎이 그 지혜가 가려질 수 없다 라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을 동시에 쓰는 자리 그 자리, 좋고 나쁘고 밉고 안밉고 너 나라고 아는 두 변 어느 변에도 치우치지 않는 그 자리, 그 자리를 그대로 쓰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가르침이 진정 어느 법보다 다른 법이고, 또한 그 크리스찬들이 이시대에 그렇게 많이 하고 있다고 하지만, 질 수가 없는, 스스로 너무나 있는 그대로 당당한 것, 있는 그대로 온전한 승리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부처님의 완전한 가르침입니다. 자유의 가르침.
우리가 수행을 해서 열반적정에 이른다고 하지만, 열반적정이라는 한 변에 빠지게 되면 그것은 진정한 열반적정이 아닙니다. 열반적정에 있으면서도 윤회계를 놀 수 있어야 합니다. 윤회계를 놀면서도 친구와 싸움하고 장난을 치면서도 그것이 본래있지 않은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온전한 바른 가르침은 하나로 써라. --도 하나고, 쓰는 것도 하나다.

12. 우리는 신구의 삼업을 쓰고 있죠 그죠. 몸과 말과 마음을 쓰고 있는데, 제일 핵심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죠 마음이죠. 몸과 말은 마음에 따라서 움직이니까, 그래서 마음이 핵심이고 마음을 조절할 수 있어야 되고 --- 때문에, 마음이 깨끗하냐 안하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보리심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타인을 향해 자애와 연민의 마음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그리고 또 큰 불사를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그 일을 하는 동기가 마음이 얼마나 깨끗하냐 안하느냐에 따라서 그 일의 결과가 결정되어 집니다.
겉으로는 볼 때는 아 이생에 잘했고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다고 하겠지만, 동기가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생으로 끝날 수 있고, 또 아시다시피 동기가 바르지 못하다면 그것은 결국 고통을 불러오는 일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참된 선업이 되려면, 궁극적인 기쁨과 해탈은 나만의 기쁨과 해탈에서 오는 것이 아닌 줄 여러분들 잘 아실 겁니다. 그래서 궁극적인 대자유와 행복과 기쁨을 누리려면, 우리의 마음이 일을 하는 마음의 동기가 청정해야만이 그것이 궁극적인 그 결과를 이루어낼 수가 있습니다.

13. 보시의 경우를 보더라도, 우리가 보시를 하거나 또 타인을 위해서 일을 할 때, 일시적으로 볼 땐 이익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 볼 때는 손해가 되게 하는 경우가 있고요.
예를 들어서, 담배같은 경우 권할 때 지금 당장은 스트레스 풀고 마음이 이완되게 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것이며,
자식을 가르치는 데서도 지금 당장 아이를 참 좋게 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그 아이를 상하게 하는 잘못되게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를 제대로 못 가르치게 될 때 어떠한---.
그래서 일시적으로 볼 때 그것이 선업이 될 수 있다고 보지만, 궁극적 악업이 될 수 있는 쪽에서 잘 생각을 해보셔야 되며, 또 돈이나 보물이나 이런 것을 타인에게 주는 경우도, 그것이 결과적으로 어떤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까지 우리가 깊이 생각을 해야할 것이라고 봅니다.

14. 그렇다면은 핵심적으로 우리가 외적인 행위와 내적인 동기가 맞아야만이 결과가 좋습니다. 행위와 말의 그 드러난 부분과 내적인 부분이 맞다면,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불안하거나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수행이나 행위나 일이 어떠한 결과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얘기하기 위한 수행방편이 무엇이냐, 그것이 바로 보리심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동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하는 마음이 섞여져 있다면, 그 양만큼 우리는 그 동기가 순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어떠한 찰나에도, 온전히 타인의 이익을 위한 마음이 쓰여질 때 그 때, 우리의 모든 일은 최상의 결과를 냅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진정한 불과를 증득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께서 이 보리심을 일으키는 수행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수행이든간에 그 수행에 보리심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궁극적인 목적이 그것이어야 되는 것이고, 그것이 되어져 있으면 남을 때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보리심을 일으킨다라고 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마음이 커야하는 것입니다. --이 크고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를 얘기할 수가 있는데, 하근기라는 것은 상중하의 크기나 몸의 크기나 그 사람의 --의 크기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간에 우리는 다 스스로가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의 크기죠. 사람의 크기고 덕의 크기입니다.

15. 그래서 소승의 사람 즉 하근기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때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선업 나쁜것은 안하고 좋은일을 다해서 이생에 다 --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근기의 사람으로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중근기는 하근기의 인간계의 행복과 그 기쁨이 영원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근기는 이생의 행복 그리고 천상에 태어날 수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목적으로 은근히 그때는 아니라고 하는데, 속으로는 그걸 지향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럴 경우는 스스로 살펴보면 내가 조금 하근기구나 생각하시면 될 것 같고.

 

그다음에 천상계와 인간계의 행복과 권력과 이 모든 것 재산 이런게 무상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 이게 지금은 조금 나에게 힘이 될 수 있고 기쁨이 될 수 있고 의지가 되긴 하지만, 이것이 결국 사라진다라는 것을 아는 사람 그래서 결국은 --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중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까 하나 빠뜨린 게 있는데요. 그렇게 천상계와 인간계의 행복과 기쁨 고난을 볼 때에도 그것도 무상하다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중근기인데, 그것이 무상하기 때문에 궁극적인 수행을 못하지만 그 수행 못하는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보면 이런 생각이 있다는 거죠. --- 그래서 그 마음이 좀 강한 사람은 중근기라고 볼 수 있고요.

16. 상근기는 무엇이냐 하면, 이 모든 천상계의 행복과 기쁨과 고난마저도 무상하다라는 걸 무상하기 때문에 행복이 될 수 없고 의지처가 될 수 없다 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서 수행을 원하는데 원하면서 타인과 내가 똑같다라는 것을 아는 사람, 내가 행복과 사랑과 정말로 편안함을 원하듯이 타인도 그렇다 라는 것을 아는 사람, --- 있는 사람, 그러기 때문에 타인도 행복과 사랑을 원하고 당신도 사랑과 행복을 원하면 어느 쪽에 더 힘을 더 줄 것인가를 생각해볼 때, 어느 쪽에서죠? 어떤 순간순간 우리가 투자를 해야 될 것인가 생각해 볼 때,
수학적으로 볼 때 타인이 훨씬 많지요. 타인이 훨씬 많기 때문에 타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 --- 타인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그것을 -- 모든 중생을 위해서 성불하고자 하는 사람은 상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 부처님과 중생의 차이는 무엇인가 하면,
부처님은 오로지 완전히 타인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부처님이고, 누구나 타인을 위해서 일하면 부처가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우리 자신을 위해서 지금까지 모든 걸 투자하고 사는 사람들은 중생이 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일체 중생을 위하는 이 마음, 이 마음 타인을 위한 이런 마음, ---.
그래서 보리심이 있으면 수행은 다 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보리심이 없다면 어떠한 수행도 수행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수행을 하든 무엇을 하든,
타인을 위해서 그것을 하고자 하는 좋은 동기로 좋은 마음으로 --하면,
모든 수행이 원만하리라 보아집니다.

18. 옴마니반메훔 진언 염송(린포체께서 직접)-약 5분간--- --- ---.

(법문 끝)

 

 

(->관련글: 

*캄툴 린포체의 한국 방문 http://cafe.daum.net/amitapa/T3G/37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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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글)

캄튤린포체님 서울 조계사 법문 요약 

석가모니 부처님은 중생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팔만사천 처방전을 내려주셨지만,

그것을 믿고 행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요즘 처방전대로 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도와 공성을 알아야 한다.

해탈과 적멸 마저도  집착하지 않고 자유로와야 한다.

 

내가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연민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 그리고

수행자에게 가장 중요한것은 보리심이다.

어떤 선행도 그 마음 동기가 나를 위한 것이기 보다는

남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마음 동기와 겉으로 들어난 행위가 같으면

거리낄것이 없다.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않으면

불안과 두려움이 없어진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 소심해서는 안된다.

마음이 우주처럼 크고 강해야 한다.

사랑의크기, 덕의크기를 한없이 넓혀야 한다.

 

하근기는 자기가 선행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현재삶에서 또는 천상에서 돈, 권력, 명예와 같은 복락을

누리고 사는 것을 즐겁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중근기는 현생이나 천상의 행복도 무상하며

언젠가는 없어질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를 위한 집착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상근기는 진정으로 타인과 내가 같다는 것을 알면서

행복과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나의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이다.

남이 나보다 숫자가 많기 때문에

나보다 남을 위하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하는 길이다.

 

부처는 오롯이 남을 위하고,

중생은 자기 자신을 위해 행동한다.

 

진정으로 남을 이롭게하는 보리심만 있으면

어떤 수행을 해도 잘 할수있다.

 

 

출처: 다음카페 대복사https://cafe.daum.net/ja-bi/Q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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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캄튤린포체 상도선원 초청 법문(2011.5.22)https://m.cafe.naver.com/khamtashiring/9

 

캄튤린포체 상도선원 초청 법문(2011.5.22)

캄튤린포체 상도선원 초청 법문(2011.5.22) * 깜뚤(Khamtrul)린포체는 달라이라마 존자가 계신 북인도 다람살라 인근 따시종의 깜빠갈 사원에 주석중인 제9대 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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