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지대사 왕생집(전7권) ---(모음)
연지대사 왕생집 1 :: 인과응보 (tistory.com)
제1권 비구의 왕생(沙門往生類)
연지대사 왕생집 2 임금과 신하의 왕생 :: 인과응보 (tistory.com)
연지대사 왕생집 3 처사의 왕생 :: 인과응보 (tistory.com)
연지대사 왕생집 (4~7) :: 인과응보 (tistory.com)
제4권 비구니의 왕생(尼僧往生類)
제5권 부녀의 왕생(婦女往生類)
제6권 악인의 왕생(惡人往生類)
제7권 축생의 왕생(畜生往生類)
연지대사 왕생집 속록(續錄) :: 인과응보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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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주굉(1535-1615)스님의 왕생집 ---(모음)아미타불과 함께하는 마음의 고향 무주선원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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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생집 서(序)
출처: 연지대사 왕생집 1 연지대사 왕생집 1 :: 인과응보 (tistory.com)
●연지대사 왕생집 1(전7권)
왕생집 목록(往生集目錄)
서문
제1권 비구의 왕생(沙門往生類)
제2권 왕과 신하의 왕생(王臣往生類)
제3권 처사의 왕생(處士往生類)
제4권 비구니의 왕생(尼僧往生類)
제5권 부녀의 왕생(婦女往生類)
제6권 악인의 왕생(惡人往生類)
제7권 축생의 왕생(畜生往生類)
속록(續錄)
항주 운서사 사문 주굉 모음 (古杭雲棲寺沙門袾宏 輯)
• 서(序)
세존(世尊)이 처음 정각(正覺)을 이루었을 때에는, 모든 중생을 위하여 불승(佛乘)을 널리 말씀하셨다.
그후 근기가 모두 투합하기 어렵게 되자, 일승(一乘) 중에서 삼승법(三乘法)을 보이셨고,
다시 삼승 중에서 정토(淨土)의 한 문(門)을 드러내었다.
오늘날은 부처님이 가신 지도 오래되었고, 중생의 번뇌도 날로 더하고 있다.
그러므로 저것(三乘)에 의지해서는 신묘한 견해를 개발하여 성인의 지위를 초월하기 어렵고,
이것(淨土)을 버리고서는 허둥지둥 타락할 위험이 있다.
그러니 이 문(淨土)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재빨리 생사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위대하다! 참으로 말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신효(神效)한 영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효험이 많았으나, 지금은 드문 것은 그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입으로는 정토를 부르면서 마음은 사바를 떠나지 못하여, 굳게 깨달음을 구하는 선배들의 열정에 미치지 못할 따름이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예전에는 왕생했다고 전해오는 자가 있었다고 하나,
세월이 오래되어 이젠 없어져 다시는 볼 수 없고, 간간이 내외백가(內外百家)의 문장의 일부분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다.
내가 본 것 중에서 그 인과因果가 분명한 것만을 발췌하고 보니,
어느듯 11년 동안에 천여 가지의 이야기를 모우게 되었다.
금년 갑신(甲申), 삼가 중봉(中峯) 화상의 우거(寓居)를 본받아, 산자락에 한 칸 초옥을 얽고 문을 닫아 걸고 왕래를 끊었다.
그리하여 이것들을 가지고 같은 부류대로 앞 뒤를 나누고,
또한 모든 성인들이 한 곳으로 돌아갔음을 증명하였고, 살아서 감응을 얻은 사실에도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
이리하여 모두 166 가지의 사실을 정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간간이 숨은 뜻을 밝히고자 하여 찬(贊)을 붙이고는, 제목을 왕생집이라 하였다.
그리고서 스님네와 신도들에게 이 책을 보이면서,
아무개는 이렇게 해탈하여 왕생하였고, 아무개는 이렇게 순일(純一)함으로 해서 왕생했으며, 아무개는 이렇게 지극한 정성으로 왕생했고, 아무개는 이러한 대자대비로 왕생했고, 아무개는 이렇게 잘못을 뉘우치고는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업(業)을 바꾸어 왕생하였다.
그리고 아무개는 이렇게 상생(上生)했고, 아무개는 이렇게 중생(中生), 혹은 하생(下生)하였다.
이렇게 옛적의 일을 고증하여 오늘에 증거해 보면, 정업(淨業)을 닦는 자를 위한 확실한 증명이 되지 않겠는가 하고,
일일이 지적해 가면서 일러 주었다.
어떤, 내 곁을 지나가던 객이 몇 가지의 이야기를 읽어보지도 않고 발끈 화를 내면서,
‘정토(淨土)는 마음일 뿐, 마음 밖에는 국토가 없소. 정토에 왕생한다는 말은 우언(寓言 어리석은 말)일 따름이오. 그대는 진정 왕생한다는 사실을 의심치 않는 것이오? 어찌 태어남이 없다[無生]는 뜻에, 어긋나는 말이 아니겠소.’ 하였다.
나는 그의 얼굴빛이 안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이렇게 말하였다.
“어찌 그렇게 쉽게 단정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태어남이 없는 것이라고 못 박는다면, 모든 것이 단멸(斷滅)이어서 오히려 마음뿐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못합니다.
과연 태어남이 없는 이치를 깨달았다면, 태어난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태어남이 이미 본래 없는 것이므로, 늘 태어나되 태어난 적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대는 이미 번뇌를 다했습니까?”
“그러지 못했소.”
“아! 번뇌를 아직 없애지 못했다면 다시 태어나는 인연도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다시 태어나는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면 몸을 의탁해야 할 곳이 반드시 있어서 삼계(三界)의 넓은 고해(苦海) 속에서 헤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진대 정토에 태어나지 않고, 어느 곳에 태어나겠습니까?
육도(六道)에서 헤매는 것과 구품(九品)에서 노니는 것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로움과 해로움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입니다.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까?
부질없는 이론으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짓은 나도 하려면 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않는 까닭은 함부로 진리를 천착하는 우를 범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가십시오. 그대가 진정으로 나의 말을 그르게 여기지 않는다면, 정토에 태어나 불승(佛乘)에 오를 것입니다.
털 끝 만큼의 의심도 갖지 않았으면서, 그렇게 되지 못할 리는 없습니다.”
객이 공손히 자리에서 일어나 정신을 잃은 듯 어리둥절해 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슬피 울었다.
그러다 다시 옷깃을 가다듬고 남은 부분을 마저 읽고는, 절을 하며 이 책을 출판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이제 출판에 즈음하여 이와같이 시말의 경위를 적어두는 바이다.
만력(萬曆) 12년[1584] 여름, 항주 사문 주굉 적다.
* 주굉(袾宏 1535-1615). 명나라 때 스님으로, 자백진가(紫栢眞可), 감산덕청(憨山德淸), 우익지욱(藕益智旭)과 함께 명나라 4대 고승의 한 분이다. 항주인화(杭州仁和 : 절강성 항현) 사람으로 자(字)를 불혜(佛慧), 호(號)를 연지(蓮池)라 했으며, 17세 때부터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학행(學行)으로 명성이 있었다.
이웃집에 할머니가 계셨는데, 날마다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물으니, “먼저 간 남편이 부처님 명호를 수지하여 임종시에 병없이 죽었다. 때문에 염불의 공덕이 불가사의함을 안다”고 말하였다. 그는 그 말에 감화를 받은 이래 마음을 정토에 의지하고 생사대사(生死大事)란 네 글자를 책상머리에 써 놓고 스스로 경책하였다.
27세에 부친상을, 32세에는 모친상을 당하였기에 그해(1566년), 마침내 결심하여 출가하였다. 북쪽으로 유람하다가 편융스님을 만났는데, 편융은 그에게 ‘명예와 이익을 탐하지 말고 오직 일심으로 도를 찾고 지계염불(持戒念佛)하라고 깨우쳐 주었다. 이에 감격을 깊이 받았으며, 고봉원묘(高峰原妙) 계열의 소암덕보(笑巖德寶)의 법을 받아 크게 깨달은 뒤 선종(禪宗)의 조사가 되었으며, 변융(徧融)의 뒤를 이어 화엄(華嚴)의 종사로써 이름을 떨치기도 하였다.
융경5년(1571) 항주 운서산에 들어가 산수가 그윽하고 절묘함을 보고 이를 좋아하여 거처를 산속에다 정하고 염불삼매를 수행하기 시작하였고, 가까운 곳과 먼 곳의 사람들을 교화했기 때문에 승려와 재가신자가 운집하여 일대총림을 이루게 되었다.
만력12년(1584)에는 [왕생집]을 편찬하여 옛날부터 지금까지 왕생한 사람들의 행적을 기록하여 전하였다. 20년 동안 항주 정자사에서 법회를 열었고, 그때 또 계단을 만들어 자서수계(自誓受戒)의 법을 행하였으며, 산중 및 성의 안팎에 방생하는 연못을 만들었고, 계살방생문戒殺放生文을 지어 중생의 생명을 해치는 것을 경계하였다.
또 항상 정토를 주장하여 아미타경소를 저슬하였고, 참선하는 무리들의 자만심을 통렬히 꾸짖었다. 만력 44년(1615) 7월에 병이 깊어 제자들에게 성실하게 염불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81세로 입적하였다.
세상에서는 그를 운서대사(雲棲大師) 또는 연지대사(蓮池大師)라 부르며 존중하였고, 그를 연사(蓮社: 정토종) 제8조로 추앙한다.
저서에는 아미타경소초 4권, 왕생집 3권, 정토의변 1권, 선관책진 2권, 죽창수필 2권, 치문숭행록 1권 등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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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
운서연지 주굉대사의 왕생이야기
연지대사는 연종 제 8조이며
명나라 때 항주 인화현 사람으로, 성은 심씨, 이름은 주굉, 자는 불혜이고,
호는 연지이다. 대사는 40이 넘어서 출가하였는데
세상에서 연지대사 또는 운서화상이라 불렀다.
처음에 대사의 이웃집에 한 노파가 있어서
부처님이름을 수천번 부르는 것을 일과로 하므로
그 까닭을 물으니 노파가 말하기를, 남편이 염불하다가
병없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염불공덕이 불가사의함을 알고
그후부터 정토에 마음을 두고 책상위에
생사대사 넉자를 써서 스스로 경책하며,
정토수행을 널리 퍼뜨려 염불을 권장하였다.
대사가 만력 40년 7월 7일 저녁에 말하기를 나는 내일 가겠다 하더니,
이튿날 저녁에 약간의 병이 있어 눈을 감고 앉았다가 다시 눈을 뜨고
대중에게 하는 일을 확실하게 염불하라 하고
서쪽을 향하여 염불하면서 앉아서 열반에 드셨다. 그 때 나이 81세이다.
(출처 / 연종집요)
출처: 가장 행복한 쉼터 | 운서연지 주굉대사의 왕생이야기 - Daum 카페
(*참고 : )
27. 연지대사 운서주굉의 발원 < 고명석의 발원문 세계 < 2020 연재모음 < 지난연재 < 기사본문 - 법보신문 (beopbo.com)
[인물로 읽는 선이야기] 21. 운서 주굉 ? < 정운 스님의 인물로 읽는 禪이야기 < 지난연재보기 < 기사본문 - 현대불교신문 (hyunbu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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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왕생집
연지주굉(1535-1615)스님의 왕생집 https://cafe.daum.net/mujuseonwon/CC2K
--->연종집요
홍인표거사님의 글 https://cafe.daum.net/mujuseonwon/CMh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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