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왕생하다 (동영상모음) ---***
염불하며 선 채로 극락왕생하신 노 보살님 (2017년 5월1일)중국 항주 (사진 첨부)
중국 항주에서 2017. 05.01 새벽 4시에 노 보살님이 선 채로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하셨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의 48서원은 참으로 진실하십니다.
많은 분들께서도 이 기쁜 소식 전해지길 바랍니다.
정토 삼부경의 수지독송 , 그리고 일상 생활속에서도 염불을 하시고,
염불로 삼매에 드는 계정혜 삼학, 8정도를 닦아 극락정토에
백이면 백명, 만이면 만명 모두 왕생하시길 기원합니다.
평범한 노 보살님께서 일구월심 한 마음으로 정진하시어 이런 놀라운 모습을
직접 시현하시고 보여주시고 가셨습니다.
선채로 입적한다는 문구를 경전상에서나 보았으나 2017년 현대시대에 스님도 아닌
일반 우바이(재가 여신도)가 염불하다가 선 채로 입적하셨읍니다.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직접 뵈니 환희심이 절로 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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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이하여 새벽 4시, 동천목산 미타촌 노인 염불당에서
80여세의 노보살 한분께서 감격하여 모두에게
“서방삼성(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께서 오셨다!”라고 말씀하시고 앞당겨서 모두에게
“자신은 서서 왕생할 것이다” 말씀하시고 계속해서 15분간 염불한 후
곧 근처에서 서서 가셨습니다. 이때가 4시 경이었습니다.
時逢五一勞動節(5月1日):凌晨3點多,東天目山彌陀村老人念佛堂一位八十多歲的老菩薩激動地告訴大家:
「西方三聖來了!!」,並提前告訴大家「自己要站著往生」,繼續念佛一刻鐘,她便站在旁邊走了,是時4點左右。
노보살께서는 수행정진하시면서 동천목산에서 머물며 수행한지 5년에 두 차례 부처님을 친견하셨습니다.
제소평齊素萍 거사께서는 매우 찬탄하셨고 그녀가 대중을 위해 표법하시고 모범을 보여주시길 희망하였습니다.
老菩薩修行精進,住東天目山修行五年,曾經兩度見佛。齊素萍老居士很是讚嘆,希望她能夠為大眾表法,做一個榜樣。
노보살께서 왕생하시기 2시간 전 주변에 동수분에게 “자신은 서서 왕생하겠다”고 말하셨습니다.
착실히 염불하면 “가는 때를 미리 알아 생사가 자재함을 실천하는 것”이 어렵지 않음을 알 수있습니다.
她往生前兩個小時,告訴身邊的同修:「自己要站著往生」。
可見,老實念佛要「做到預知時至、生死自在」是不難的。
동천목산은 수행을 힘들게 하고 옛날 총림의 유풍을 지켜가서 대량으로 수행하여
공부가 있는 염불인이 출현하여
“극락세계의 신입생을 모집하는 사무실”이라는 찬탄을 받고 있습니다.
東天目山修行艱苦,保持古時叢林遺風,出現過一大批修行有功夫的念佛人,被譽為“極樂世界的招生辦”。
번역 (허만항님)
해당 동영상 바로가기1. https://youtu.be/MvitESn7UBs
해당 동영상 바로가기2. https://youtu.be/h8JYI487p6s
그 외 https://youtu.be/aRMqEGD8G0s 東天目山80歲老人繞佛中高呼西方三聖來了,站著往生了!
동천목산 80세 노인께서 요불(걸어다니면서 염불하는 일)중에 소리높여 서방삼성께서 오셨다"라고 외치고 왕생하셨습니다.
출처: 염불하며 선 채로 극락왕생하신 노 보살님 (2017년 5월1일)중국 항주 (사진 첨부) http://cafe.daum.net/MRSB/RCsr/6
http://cafe.daum.net/bangseng/RK0d/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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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하며 선 채로 극락왕생한 노 보살님 (2017년 5월1일) http://cafe.daum.net/amtb/ZEF/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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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서서 왕생한 거사님:
[동영상] 서서 염불왕생(站著往生)한 모습 http://cafe.daum.net/MRSB/RCsr/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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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향將軍鄕의 한 노파, 서서 극락왕생하다
근대, 약 30년 전에 저는 불광산佛光山에서 개최한 대전불학강좌大專佛學講座에 참가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 저녁에 열 사람이 넘는 동학들이 방생지放生池 옆에서 불법에 관한 토론을 하였습니다. 당시 불광산은 공사가 많았기 때문에 1년 동안 고용된 장기 근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근로자가 우리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더니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습니다.
그가 사는 장군향將軍鄕에 한 노파가 있었는데, 그 노파는 마음이 선량하고 자비하여 남을 도와주는 것을 아주 좋아하셨답니다. 그 노파는 살아계실 적에는 무엇이 부처인지, 무엇이 신이지를 분간할 줄 몰라 사묘寺廟가 있는 곳에 가기만 하면 늘 언제나 향에 불을 붙이고, 신에게 절하고 부처님께 절하였답니다. 3년 전에 불법을 아는 며느리를 얻었는데, 그 며느리가 집에 불당을 마련해놓고는 노파에게 집에서 성실하게 아미타불을 불러 정토에 태어나길 구하라고 권하면서, 앞으로는 여기저기 아무 곳에나 절하지 마시라고 하였답니다.
이 노파는 선량하고 순박한 분이어서 며느리의 말을 들은 후로는 아무 곳에나 여기저기 절하지 않았으며, 일심으로 아미타불만을 염불하셨으며, 3년을 염불하셨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밥을 먹을 때, 노파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말하길, “나 기다리지 말고 너희들 먼저 저녁 먹어라. 나는 우선 목욕을 하련다.”고 하였답니다.
노파가 비록 그렇게 말했지만, 아들과 며느리는 효심이 지극한 사람들이어서 그래도 노파가 와서 밥을 먹기를 기다렸답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서 살펴보았답니다. 노파는 목욕을 한 것은 분명하였지만, 욕실에는 사람이 없었으며, 방안에도 사람이 없었답니다. 마지막에 노파가 작은 불당에 계시는 것을 보았는데, 해청(海靑: 법복)을 입고 계셨고, 손에는 염주를 들고 있었으며, 얼굴은 불상을 향한 채 그곳에 서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으며,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아 자세히 살펴보니, 이미 서서 극락왕생하였답니다.
염불하여 왕생할 때가 이르렀음을 미리 알고, 서서 가고, 앉아서 가고, 자재하게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모든 인연을 다 내려놓고, 일심으로 부처님을 흠모하면 성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이는 마장魔障입니다. 마장은 염불하는 것을 방해하고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처럼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 귀로 직접 들은 극락세계에 왕생한 실례는 열 분이 넘게 있습니다.
정공법사, 임종조념답문(臨終助念答問)
출처: 장군향將軍鄕의 한 노파, 서서 극락왕생하다https://cafe.daum.net/amtwjungjong/etrD/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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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땜장이가 서서 왕생하다:
솥땜장이
체한諦閑노스님은 금산사에서 여러 해 주석하였다. 스님께서 금산사에서 원주소임을 보고 계실 때 하루는 고향에서 아는 사람이 찾아왔는데 어릴 때 같이 놀던 친구였다. 이 사람은 손재주가 있는 사람으로서 흔히 ‘솥땜장이’라고 불렀다. 즉 쟁반·접시·사발·도자기 등이 깨어졌을 때, 거물장하여 재사용(지금은 사라졌다)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체한노스님도 본래 장사하는 사람 이었는데, 외삼촌을 따라 의술을 배웠었다. 이때 마침 금산사에서 원주소임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고향친구가 스님을 찾아온 것이었다.
사발을 거멀장하던 이 고향친구는 스님을 찾아와서 출가를 하겠다며 스님을 스승으로 삼겠다고 하였다. 이에 체한노스님은 “자넨 안 돼! 지금 이 나이에! 40년이 넘도록 글공부를 한 적이 없었으니 교리공부는 할 수도 없을 것이고 고행도 자네는 견딜 수가 없을 거야. 자네가 출가를 한다는 것은 스스로 골칫거리를 만드는 게 아닌가?”라며 여러 차례 타일렀으나, 그는 출가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친구와 어려서부터 잘 아는 사이였고 또 동향인이었기 때문에 체한노스님은 어쩔 수 없이 “자네가 꼭 출가해야겠다면 내 말을 들어야 하네. 그럼 자네를 제자로 받아 주겠네!”라고 말했다.
“당연한 말씀! 내가 스님을 스승으로 모신 이상, 스님이 뭐라고 말하든 무조건 듣겠네!”
“자네가 내 말을 듣는다면 곧바로 수행을 하게나”
“내가 출가만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이든 다 듣겠네!”
“예전에 자네 같은 사람이 출가수행하여 도를 이룬 적이 있지! 자네도 그 사람을 따라 배우게나”
“나를 제자로 받아만 준다면야 무슨 말이든 다 듣겠네”
“자네는 출가를 한 뒤에 계를 받지 말고 내가 자네에게 작은 암자 하나를 찾아줄 테니 암자 밖으로 나가지 말고 노실하게 염불만 하게나. 내가 자네 뒷바라지를 해줄 공덕주 몇 명을 찾아서 자네에게 공양을 제공하겠네.”
체한노스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남방 영파지역에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서 거의 지방마다 작은 암자가 있고 불교를 믿고 부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이 있네. 나도 가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꼬박 3년을 지냈었네. 내가 자네에게 작은 암자 하나를 찾아 줄 테니 그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오로지 ‘나무아미타불’만 부르면 된다네. 염불하다가 힘이 들면 좀 쉬고, 쉬고 나면 다시 염불하고. 밤낮으로 끊임없이 염불만 하게나. 아무 일도 상관 말고 때가 되면 밥 두 끼를 먹으면 되네. 내가 좋은 공덕주를 찾아주겠네”
체한노스님은 그 당시에 아주 유명하여 많은 신도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을 잘 처리하도록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였다. 그에게 가르쳐준 수행방법을 폐관수행, 또는 방편관이라고도 부른다. 작은 암자에 혼자 살면서 매일 노보살 한 명이 때가 되면 그를 위해 두 끼 공양을 해결해주었기에 장사를 하지 않았다. 체한노스님으로부터 이 수행방법을 듣고 나서 그는 마음속으로 ‘틀림없이 좋은 수행일 거야, 이 수행만 하면 틀림없이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도대체 어떤 이익이 있는지는 몰랐다! 그러고 나서 체한노스님은 금산사로 돌아갔다.
그 뒤로 그는 두문불출하고 3,4년 동안 오로지 염불만 하였다. 그때 마침 초발심일 때여서 용맹정진하였다. 속담에 “출가한지 1년이면 부처님은 눈앞에 계시고, 출가한지 3년이 지나면 부처님은 영산에 계신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초발심 때는 마음은 매우 진실하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태해져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체한노스님의 말씀을 듣고서 잠에서 깨어나면 곧장 염불을 하였다. 그가 예전에 장사를 할 때 물건을 메고 다녔기에 두 다리에 힘이 있어서 요불을 하면서 염불하였고, 힘이 들면 앉아서 염불하였다. 체한노스님도 그의 염불이 어떠한지를 몰랐다. 이렇게 3,4년을 염불하였다.
하루는 그가 공양을 준비하러 온 노보살에게 “내일은 저를 위해 공양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요. 저는 점심공양을 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노보살은 ‘내일 틀림없이 누군가가 점심공양을 대접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요 3,4년 동안 어디를 가는 것을 보지 못했기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 물어봤다.
그가 말하기를, 현지에 친척과 친구 두 명이 사는데 가서 한 번 만나보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돌아온 후, 그가 노보살에게 “내일 아침에 밥하러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노보살은 그가 외출 한번 하더니 내일 또 누군가 공양을 대접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튿날 스님이 걱정된 노보살은 공양시간이 다 되어 스님이 돌아왔는지 보러 암자로 갔다. 암자가 가난하여 도둑걱정이 없었기에 문이 있지만 잠그지 않았다. “스님, 공양 드시고 돌아오셨어요?” 몇 번을 불러도 안에서 인기척이 없었다. 방안에 들어가서 보니 그는 침대 옆에 서서 얼굴을 창밖으로 하고 손에 염주를 들고 있었다. 노보살이 다시 한 번 불러보았으나 대답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스님이 벌써 죽은 것이었다. 서서 죽은 것이었다. 염불하며 서서 죽은 것이었다! 노보살은 깜짝 놀라서 인근 마을로 달려갔다. “스님이 서서 죽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보러 왔다.
문득 보니 스님이 한손에는 염주를 들고 있고, 다른 한손에는 재를 한줌 쥐고 있었다. 손가락을 펴보니 그 손에는 은화 8,9개가 있었다. 그때 남방사람들이 가래를 뱉는 타구는 법랑으로 되어있지 않았고 그 속에는 재가 조금 들어있었다. 그것은 재를 담은 작은 합이었는데, 네모난 쟁반에다 합 속에 재가 들어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재에다 가래를 뱉고 이튿날에 버리고 다시 새 재로 바꾸었다. 가래를 뱉는 재합을 얼핏 보면 안팎으로 전부 재였고, 다시 자세히 보니 그의 손에 재 한줌을 쥐고 있었는데 손에는 은화 8,9개를 쥐고 있었다.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가 장사를 할 때 모아둔 돈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죽고 나서 사람들이 아무도 모를까봐 두려워서 돈을 손에 쥐고 서서 염불하며 왕생한 것이었다. 그는 이 돈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서 이 돈으로 자신의 장례를 치러달라는 미리 준비해둔 것이었다.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이것은 체한노스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나중에 그의 신도 몇 명이 체한노스님에게 편지를 보냈다. “스님의 제자께서 서서 죽었습니다!”
이튿날 체한노스님은 배를 타고 오셨다. 와서 보니, 그가 2,3일 동안 줄곧 이렇게 꼿꼿이 서 있은 것이었다. 체한노스님은 이제야 그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노스님께서는 “장하구나! 자네 이번 출가가 결코 헛되지 않았네. 저 대법사·방장·주지들보다 훨씬 뛰어나네! 자네같이 이런 성취가 있는 사람도 보기 드무네!”라며 아주 칭찬을 하였다.
내가 말한 체한노스님의 두 제자는, 하나는 참선을 한 사람이고 하나는 염불을 한 사람이다. 여러분들이 한번 비교를 해보시라. 참선을 하던 제자는 수년간 고행을 닦았지만 죽어서 토지신이 되었고, 이 손재주가 있던 솥땜장이는 3,4년 염불해서 서서 왕생하였으니, 어쨌든 진정한 공부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체한노스님으로부터 이 얘기를 두 번을 들었다.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로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다.
오늘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에게 염불이라는 이 법이 참선·지관·밀종보다도 실제로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것이다. 염불법문은 누구나 닦을 수 있어서 교리를 낱낱이 다 알아야하는 것도 아니다. 기꺼이 염불하며 의심하지 않고 뒤섞이지 않으며 끊어지지만 않으면 틀림없이 불국토에 왕생할 수 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스님과 거사 여러분들은 재가자든 출가자든 막론하고, 염불법문의 진실한 이익을 알고 틈만 나면 염불해야 한다. 효과가 있든 없든 상관 말고 때가 되면 분명히 이익이 있을 것이고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내가 이것까지 말할 시간은 없지만 내가 직접 본 사례만 몇 개가 되고, 직접 들은 사례도 몇 개나 된다. 옛날 또는 오래전 일들이 아니라, 전부 요즘에 일어난 일들이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염불을 많이 하는 것만 못하다! 여러분들의 염불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 (담허노스님의 불칠법문)
출처:순정시대 純淨時代 | 솥땜장이 - Daum 카페
https://cafe.daum.net/sunsujeongto/ds4T/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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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장이 황타철(왕타철)의 염불왕생---(이야기모음)https://blog.daum.net/ntassabas/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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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애니) 바보가 염불해, 합장하고 서서 왕생하다 (愚痴念佛 合掌立化) - 왕치두의 염불왕생기
https://youtu.be/eLZKBSR9p20
바보가 염불해, 합장하고 서서 왕생하다 (愚痴念佛 合掌立化) - 왕치두의 염불왕생기
왕치두
청나라 때 ‘왕치두’라 불리는 도인이 있었다. 왕치두는 북경사람으로, 성품이 지극히 우둔하여 조실부모하고 나서 항상 입을 옷과 먹을 음식이 부족하였으며, 생계를 꾸려나갈 방법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돈을 조금 주면 그 돈의 액수조차 분별하지 못했다.
그를 불쌍히 여긴 진도인이 그를 제자로 받아들여 매일 바닥을 쓸고 땔감을 주워오게 하였고. 저녁기도시간에 ‘나무아미타불’을 수백 번씩 부르면서 향 한 자루가 다 탈 때까지 절을 하도록 하였다.
왕치두는 저녁기도 시간에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데 운율을 맞추지 못했을 뿐더러 매번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때마다 진도인은 긴 막대기로 그를 때리면서 “너는 이렇게 어리석으면서도 부지런히 정진할 줄 모르느냐?”고 꾸짖었다. 이렇게 삼년이 지났다.
어느 날 저녁, 왕치두가 갑자기 하하 하고 크게 웃는 것이었다. 진도인이 또 때리려 하자 왕치두는 “오늘은 저를 때릴 수 없습니다”고 말하였다. 진도인이 그 이유를 묻자 왕치두는 “스승님은 18년 동안을 덧없이 앉아만 있을 뿐, 수행방법을 모르셨습니다. 만일 저처럼 노실하게 염불하셨다면 벌써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부처님을 친견하셨을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진도인은 매우 이상하게 여겼으나 그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이튿날 왕치두는 가파른 낭떠러지에 올라 서방을 향해 합장을 한 채로 왕생하였다.
화장을 한 후, 사리 두과를 얻었다. (『염향집』『정토성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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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던 왕치두스님의 염불삼매와 선 채로 극락왕생:
왕치두스님
왕치두란 본명(本名)이 아니고 별명(別名)으로서 너무나 어리석어서 치두란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이 스님은 청(淸)나라 때 사람으로 직예란 지방(地方)에 사시던 스님이시다. 어려서 일찍이 조실부모(早失父母)하여 아무데도 의탁(依託)할 데가 없어 걸식(乞食)을 하면서 세상(世上)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어리석어서 남의 집 심부름꾼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리하여 처음엔 다니면서 얻어먹다가 나중에는 그것마저 하기 싫어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다 거적대기로 움막을 매고는 행인(行人)들에게 한푼 두푼 얻어 가지고 겨우 연명(延命)을 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주는 돈의 액수(額數)조차 전혀 몰랐다 참으로 불쌍한 아이였다.
그러다가 어떤 스님이 그 광경(光景)을 보시고는 불쌍하게 여기시어 절로 데려가서 제자(弟子)를 삼았으니 이에 그 스님은 그 지방(地方)의 절에 계시는 진도인(道人)이라는 스님이시다.
너무나 우둔(愚鈍)하고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가르칠 수가 없으며 또한 일도 어려운 일은 시킬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공부로는 아미타불(阿彌陀佛) 염불(念佛)을 시키니 그것은 그대로 하기는 하나 그나마도 업장(業障)이 두터워서 노상 잠이 와서 조느라고 옳게 하지를 못하였다.
그리하여 진도인(道人)께서는 왕치두를 위하여 회초리를 하나 해다 놓고는 졸기만하면 그 회초리로 때려주면서 하는 말씀이
“네가 업장(業障)이 두터워서 그처럼 어리석으면서도 부지런히 염불(念佛)을 하지 않고 졸고만 있으면 어찌 되느냐”
고 꾸지람을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는 일이란 낮으로는 도량(道場) 소제(掃除)와 산(山)에 가서 나무를 조금씩 해오는 것이며 밤으로는 부처님께 예배(禮拜)를 드리게 한 것이다.
그와 같이 해나가기를 삼년(三年)이란 세월(歲月)이 흘러간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제는 염불(念佛)을 제대로 잘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하루저녁에는 염불(念佛)을 하다가는 크게 웃어대는 것이었다. 그래서 진도인(道人)께서 회초리로 때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전일(前日)에는 때리면 그냥 맞고 있었는데 이상(異常)하게도 그날 저녁에는 두 손으로 회초리를 막으면서 하는 말이
“전일(前日)에는 스님께서 저를 위하여 때려 주셨지만 오늘 저녁에는 제가 스님을 위하여 한 말씀 해드릴까 합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이상(異常)스럽고 의심(疑心)스러운 것이었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십팔(十八)년(年) 간이나 앉아 수행(修行)을 하신 것이나 아직도 닦는 법(法)을 제대로 모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만일 스님께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속(速)히 친견(親見)하고자 하려면 저와 같이 노실(努實) 염불(念佛)을 하시어야만 할 것입니다”
라고 말을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진도인(道人)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또한 어떻게 된 영문인 것인지를 잘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실은 진도인(道人)께서도 염불수행(念佛修行)을 하고 있는 것이었으나 아직 아무런 가피(加被)를 못 입고 있는 처지(處地)인 것이었는데 왕치두는 삼매(三昧)를 얻어 부처님을 친견(親見)하여 지혜안(智慧眼)이 열리게 된 것이었다.
그 이튿날이었다. 왕치두는 전일(前日)과 같이 산(山)에 나무를 하러 가더니 종일(終日)들어 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진도인(道人)은 매우 궁금하게 생각하여 들로 찾아보러 나갔다. 사방(四方)을 둘러보아도 보이지를 않는 것이었다. 때는 석양(夕陽)이 지나 어둠이 찾아들 무렵이었다. 저 멀리 언덕에서 서기(瑞氣)가 비치고 있었다. 그곳에 달려가서 보니 왕치두가 그곳에 있는데 서(西)쪽을 향(向)해서 합장(合掌)을 하고 서 있었다. 그런데 그 몸에서는 아름다운 광채(光彩)가 빛나고 있었으며 이상(異常)한 향취(香臭)가 온 들에 풍기고 있는데 이 세상(世上)에서는 맡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향취(香臭)인 것이었으며 서있는 모습(模襲)은 마치 보살(菩薩) 상호(相好)처럼 거룩해 보이기만 하였다.
왕 치두는 서(西)쪽을 향(向)해 합장(合掌)하고 서서 그대로 이 세상(世上)을 떠나고 만 것이었다. 이 얼마나 장(壯)하고 거룩한 모습(模襲)이 아닌가! 이를 본 진도인(道人) 자신(自身)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화장(火葬)을 하고나니 백옥(白玉)같은 사리(舍利)가 이과(二顆)가 나왔는데 찬란(燦爛)한 광채(光彩)가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처럼 어리석고 둔한 분도 염불(念佛)한 공덕(功德)으로 지혜안(智慧眼)이 열리게 되었으며 또한 그와 같은 훌륭한 왕생극락(往生極樂)을 하게 된 것이며 이에 훌륭한 사리(舍利)까지 나오게 된 것이니, 염불공덕(念佛功德)이 얼마나 수승(殊勝)한 것이며 또한 염불(念佛)에 위신력(威神力)이 얼마나 위대(偉大)한 것인가를 가히 알 수가 있는 것이며 이러한 왕치두 같이 어리석고 둔한 분도 염불(念佛)하여 그처럼 훌륭한 왕생극락(往生極樂)을 한 것이어늘 그 누가 염불(念佛)하여 왕생극락(往生極樂)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인가.
* 출처: 염불법사, <왕생록> (보련각출간)
출처: 연지해회蓮池海會 원문보기 글쓴이: 원왕생
출처:순정시대 純淨時代 | 어리석던 왕치두스님의 염불삼매와 극락왕생 - Daum 카페
https://cafe.daum.net/sunsujeongto/EWd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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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1: )
내불사 세 성인을 영원토록 사모하며 15:제7장. 노덕화상: 한 차례 맑은 바람 소리 우주에 가득 하네-112세 해현노화상이야기https://cafe.daum.net/bangseng/RgWK/20
(*참고2: )
무여 큰스님께서 직접 보고 들으신 체험담
현재 조계종 기초 선원장이시며 축서사 조실이신
무여 큰스님께서 직접 보고 들으신 체험담을 소개해 드립니다.
『삼십여 년 전에 지리산 실상사에 객으로 하룻밤을 유숙한 적이 있었습니다.
객실 옆방에 자기 나이도 모르는 한 12, 3세 가량이 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자기 나이를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말도 거의 못 하고
겨우 밥이나 먹고 그저 변소나 다니는 참 어리석고 둔한 불쌍한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에게 무엇을 시킬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주지스님이 "너는 관세음보살님만 써라."고 해서
하루종일 관세음보살을 쓰고 있었습니다.
한글도 모르는 아이라 관세음보살을 쓰는데, 쓴다기보다 그린다고 할까요?
그 글씨는 자세히 보아야 알아볼 정도였어요.
처음에는 그렇게도 흉내를 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둔재 중의 둔재라 사람이라기보다 때로는 짐승을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게 둔한 사람이지만 전혀 때묻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그 아이에게 뭘 시키면 기억하는 한 시키는 대로
아주 끈질기게 하는 그런 장점이 있었어요. 시키는 그것밖에 모르는 아이예요.
그러나 성의는 아주 대단해서 하루종일 관세음보살을 쓰고 기도했습니다.
그 사람은 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라는 대로만 할뿐이었어요.
그런 바보지만, 그렇게도 못 쓰는 관세음보살이지만 계속쓰면서,
염하고 쓰면서 염하고 끈질기게 하니까 일념이 되었는 거예요.
드디어 3년만에 머리가 터져버렸어요.
아주 명석한 두뇌가 되어서 기억력도 좋고
창의력도 보통사람보다 훨씬 우수한 머리가 되었어요.
훗날 수계(受戒)를 합니다. 즉, 스님이 되었어요.
스님이 되고는 강원(講院)이라고 스님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어요.
그러고는 전라도 어떤 절의 주지노릇을 잘 하다가 스님답지 않게 여자복이 있는지,
두 보살하고 인연을 맺어서 두 여자몸에서 아들딸을 5남매나 낳고 복많은 중님,
팔자좋은 중님으로 살다가 지금은 미국인가 어디로 이민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도는 그 실상사의 행자처럼 지극하게, 성심성의껏 해야 됩니다.
기도할 때는 오직 그것뿐이듯이, 최선을 다하듯이 해야 돼요.
좋은 일도 생각하지 말고 나쁜 일도 생각하지 말며
아주 급하고 중요한 일이 아니거든
일체를 다 놓고 쉬어서 마음을 텅텅 비워서 오직 기도만 지극하게 하십시오.
기도는 가급적이면 쉬지 말고 하시고 끊임없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즉,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말하거나
말이 없거나 움직이거나 고요히 있거나
항상 관세음보살님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자칫 사회에서 버림받으며 평생을 고통속에서 살뻔했던 한 소년이
관세음보살을 염하므로써, 그 운명이 바뀌어 버린 실화입니다.
(축서사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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