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 염불/정토공부2-*소동파의 사례

후신(後身), 대호귀인(大豪貴人) -운서주굉(연지대사) [죽창수필]中에서 ----(모음)

아미연(阿彌蓮) 2020. 5. 15. 15:08

후신(後身), 대호귀인(大豪貴人) -운서주굉(연지대사) [죽창수필]中에서 ----(모음)

 

 

운서주굉 대사  "죽창수필" 中 대호귀인 (大豪貴人)

대호귀인 (大豪貴人 )

 

세간에 큰 부를 누리고 있는 이들은, 모두 전생에 수행함으로 해서 온 것으로

여기에 세 가지의 차등이 있다.

 

그하나는 계를 지키고 복을 닦아

반야정지(般若正智)*를 생각마다 잊지 않은 이들로서, 

금생에 비록 고위에 처해 있고 오욕*에 묻혀 살고 있으나, 마음은 늘 도에 두고있으니 이른바 '머리 기른 스님' 이라 할것이다.

 

다음은 비록 계행을 지키고 복을 닦긴 했으나 

반야의 생각이 조금 소홀했던 이들로서, 

금생에 법문(法門)에 유희할 뿐인 자들이다.

 

세번째는 계행을 지키고 복을 닦았으나

반야는 까마득히 마음에 두지 않았던 자들로서, 

금생에 순경(順境)*에 빠지고 선을 등지고 악을 좇으며, 심지어 삼보(三寶)를 헐뜯고 멸하려 하는 자들이 이것이다

 

그 인지(因地)를 살펴보면 한결같이 모두 수행했던 자들이었으나,

그 차등은 이와 같으니 내생과 그 다음 내생은 또한 어떠하겠는가.

생각하면 섬뜩한 일이다.

 

.........................................................................

* 반야정지(般若正智) - 마하반야바라밀의 참다운 지혜.

* 오욕 - 재물욕,색욕,음식욕,명예욕,수면욕의 다섯 가지 욕심.

* 순경(順境) - 자기의 몸과 마음에 알맞는 경계.

 

_ 운서 주굉 스님 _

 

출처: 정림사랑방 | 원통스님 법문교재 "죽창수필" 中 대호귀인 (大豪貴人)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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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신(後身) 1 * 죽창수필 중에서..

 

어떤 서방(西方)을 예찬하는 자가

"계 선사(戒禪師)의 후신은 소동파요, 청초당(淸草堂)후신은 증노공(曾魯公)이며, 손 장노(孫長老)의 후신은 이시랑(李侍郞)이요, 남암주(南庵主)의 후신은 진충숙(陣忠肅)이다.

 

또 지장사의 아무개 스님의 후신은 장문정(張文定)이요, 엄 수좌(嚴首座)의 후신은 왕구령(王龜齡)이다.

 

그 다음으로 승 선사(乘禪師)는 한씨의 아들이 되었고, 경사(敬寺)어느 스님은 기왕(崎王)의 아들이 되었다.

 

또 다음으로 선민(善旻)의 스님은 동사호(董司戶)의 딸이 되었고,

해인(海印)스님은 주방어(朱防禦)의 딸이 되었으며,

심지어 안탕산의 어느 스님은 진씨의 아들 회()가 되어 권세를 잡아 갖가지 악업을 저질렀다. 

 

이 스님들이 만약 전에 정성스럽게 정토를 구했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 하였다.

 

나는 말했다

 

"영수(靈樹)와 같은 이는 대원대력(大願大力)으로 세세생생에 스님이 되었으나,

운문 선사는 세 번이나 국왕이 되었다가 마침내 신통을 잃어 버렸다. 하니,

운문만한 이는 몇 명이나 될 것이며 더욱이 영수 같은 분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겠는가.

 

상인(常人)이 되고 여인이 되고, 또 악인이 되어 갈수록 하열해 졌으니,

명신(名臣)이 되는 것만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 당연한 일이구나. 서방에 가서 태어남이여!"

 

출처: 정림사랑방 | * 후신(後身) 1 * 죽장수필 중에서..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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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신(後身)*2

 

어떤 이가 말했다.

"여러 스님들의 후신(後身) 중에

명신(名臣)이 된 것은 제호(우유로부터 제조하는데 맛중에 제일이며 약 중에 제일이다)가 도리어 연유가 된

것과 같으니, 그런 대로 당연하다 하겠으나,

상인(常人)이 된 것은 타락(;우유로 부터 끓여 만든 음료)이 된 것과 같고,

여인이 된 것은 우유와 같으며, 

내지 악인이 된 것은 독약과 같으니, 평생 수행한 것이 전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수행이 어찌 귀하다 하겠습니까?"

 

그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무릇 수행인은 이력(二力)을 닦는다.

 

하나는 복력(福力)으로서

계행을 굳게 지키면서 갖가지 유위공덕(有爲功德)을 짓는 것이요,

 

또 다른 하나는 도력(道力)으로

정관(正觀)을 굳게 지니면서 모든 생각을 반야 가운데에 두는 것이다.

 

도력이 영수(靈樹)와 같은 이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도력(道力)이 복력보다 수승한 이는 부귀에 처해 있으면서도 미하지 않을 것이요,

복력(福力)이 도력보다 수승한 이는 부귀에 탐착하여 보전치 못하는 것이다.

 

그 중에 탐욕이 무거우면 여인이 되고, 

탐심과 진심이 모두 무거우면 악인이 되는 것으로, 

그것은 복력만 닦으므로 해서 도력이 점차 가벼워진 탓이다. 

만약 스님들이 도력에만 전념했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부지런히 도력을 닦으면서,

동시에 원력으로 이것을 도와서 모든 상선인(上善人)의 뒤를 따를 수만 있다면, 어찌 악인뿐이랴.

명신(名臣)도 또한 되지 않을 것이다.

 

! 당연한 일이구나. 서방에 가서 태어남이여!

 

출처: 정림사랑방 | *후신(後身)*2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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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대사는 죽창수필에서

홍각범이 말하기를, 동파거사는 문장과 덕행이 뛰어났고, 또한 불법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마음속에 장생술(長生術)을 잊지 못하더니, 끝내 그 공을 이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이 때문에 병들어 죽었다.” 하였다.

동파도 그러한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이랴.라고 하였다.

 

출처: 6. 정토법문(144)http://mujuseonwon.tistory.com/782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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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신(後身) 3

 

고인이 말하기를 “수행인이 심지를 밝히지 못하면, 흔히 수륙의 신령스런 귀신이 되기 일쑤다.”하였다. 반드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하생(下生: 극락세계 구품연대 중에서 마지막 하품하생을 말한다)만 하더라도, 천궁보다 나아서 하늘도 어쩌지 못하는데, 더욱이 귀신이겠는가?

 

“아! 당연한 일이구나, 서방에 가서 태어남이여!”

 

 

숙명(宿命)

 

옛날 영수 선사는 세세생생 스님이 되어 신통을 잃지 않았으나,

운문 선사는 3생에 국왕 노릇을 하다 이로 인하여 숙명을 알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어찌 운문 선사의 현명함이 요즘 사람들보다 못하다 하겠는가?

 

 

정토는 믿기 어려운 법문 1

 

정토를 천시하는 자가 “이것은 어리석은 남녀들이나 행할 수행법이다.”하니,

 

천여(天如)화상이 꾸짖었다. “어리석은 남녀들이나 닦을 수행법이라고 업신여기지 마라. 이것은 바로 마명이나 용수·문수·보현보살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아! 부처님께서 “이 경은 믿기 어려운 법문이다.”하시더니, 정말 빈 말이 아니었구나!

 

 

정토는 믿기 어려운 법문 2

 

아! 법화경은 세상을 다스리는 언어를 사용하여 모두 실상에 맞게 했으나,

이 미타경은 생사를 가로질러 바로 불퇴의 지위에 오르게 한 것이다. 어찌 세상을 다스리는 언어보다 못하겠는가?

 

 

정토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임종에 본 정토는 모두 자기 마음에서 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정토가 없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고금에 염불왕생한 자의 임종에 많은 성인들이 와서 맞이해가되, 하늘 음악과 기이한 향기와 깃발과 누각 등도 함께하였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저 한 사람만이 보았다면 자기 마음에서 본 것에 불과하다 하겠으나, 한꺼번에 온 대중이 모두 보았던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어떤 이는 하늘 음악이 은은히 서쪽을 향하여 사라져 가는 것을 들은 적도 있고, 어떤 이는 기이한 향기가 온 방안에 머물러 여러 날 흩어지지 않는 것을 본 자도 있었다.

하늘 음악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서쪽을 향해 갔고, 저 사람이 이미 죽었음에도 향기가 아직 남아 있었으니, 이러고도 정토가 없다 하겠는가?

원조 본 선사의 이름이 연품에 적혀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본 적이 있었으니, 어찌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원조의 마음을 알 수 있었겠는가?

 

또 그대에게 묻노라.

“임종에 지옥의 모양이 나타나는 것은 마음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마음입니다.”

“그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는가?”

“지옥에 떨어집니다.”

“그렇다면 지옥이 있는 것이 분명하니, 어찌 유독 정토만이 없다 하겠는가?

마음에 지옥이 나타나는 자는 실제로 있는 지옥에 떨어진다면,

마음에 정토가 나타나는 자는 실제로 있는 정토에 태어나지 않겠는가?

차라리 수미산과 같다고 말할지언정, 개자(芥子: 겨자씨와 갓씨의 통칭)보다 못하다고는 말하지 마라.”

 

(출처: 불광출판사, 연관스님 역, 죽창수필)

출처: 정토종 (홍원염불회) | 운서주굉 대사의 『죽창수필』 중에서...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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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 인광대사 가언록 - 중에서 :참선 공부를 하여 설령 확철대오했다 할지라도~

 

참선 공부를 하여 설령 '확철대오'했다 할지라도

예컨대 오조(五祖) 사계(師戒) 선사나 초당(草堂) 선청(善淸) 선사나 진여(眞如) 모철(慕喆) 선사나 단애(斷崖) 료의(了義: 1265~1334) 선사 같은 대가들도, 오히려 생사를 해탈하지 못했다오.

그리하여 다음 생을 받는 날이면,, 도리어 후퇴하여 미혹하고 마니, 전생에 비해서도 크게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오.

하물며 우리 같은 범부야 말할 게 있겠소? 
 
 정토 법문은 여래께서 중생들을 두루 제도하기 위해서 특별히 베푸신 까닭에, 가장 원만하고 빠르며, 가장 넓고도 간단하며 쉬운 지름길이라오. 무슨 근거로 이렇게 말하겠소?

그밖의 일체 법문은 모두 보고 생각하는 두 미혹[見思二惑]을 완전히 끊어야, 비로소 생사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오.

보는 미혹[見惑]만 완전히 끊기도, 폭이 40리나 되는 큰 강물 흐름을 차단하는 것만큰 어려운데,

하물며 생각하는 미혹[思惑]까지 끊기야 오죽하겠소? 
 
 보는 미혹[見惑]을 완전히 끊으면 초과(初果: 수다원)를 증득하는데, 원교(圓敎)로 치면 초신(初信)에 해당하오.

생각하는 미혹[思惑]까지 완전히 끊어야 사과(四果: 아라한)를 증득하게 되는데, 원교로는 칠신(七信)에 해당하오.

초과나 초신의 수준에서는 아직 생사윤회가 있고,

사과나 칠신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생사를 끝마치게 되오. 
 
천태(天台) 지자(智者) 대사는 오품(五品)에 거주함을 보이셨소. 비록 깨달음이 부처와 똑같고 오주번뇌(五住煩惱)를 원만히 조복시켰지만, 보는 미혹[見惑]조차도 오히려 일찍이 끊은 적이 없다오.

그렇지만 지자 대사의 본래 경지는 실제로 헤아릴 수가 없소.

임종에 단지 "오품에 오른 것은, 말세의 수행자들이 미혹을 끊어 '진리를 증득[斷惑證眞]'하는 데까지는 힘쓰지 않고,

오직 마음을 밝혀 '성품을 보는[明心見性]은, 이른바 확철대오'를 가리키오.

만약 최상상(最上上)의 근기라서 깨닫는 즉시 '증득'까지 한다면, 동시에 생사까지 해탈할 수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다면, 설령 미래세를 죄다 훤히 알지라도, 오히려 다음 생 받는 것을 피할 길이 없소. 
 
 오조(五祖) 사계(師戒) 선사가 소동파(蘇東坡)로 태어나고, 초당(草堂) 선청(善淸) 선사가 노공(魯公)으로 태어난 것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오.

그러나 해인(海印) 신(信) 선사가 주방어(朱防禦)의 딸로 태어난 것은 이미 참기 어려운 타락이오. 또 안탕(雁蕩) 스님이 진회秦檜)로 태어난 것은 정말 몹시 불쌍하고 딱한 일이오.

( ->*참고: [진회(秦繪: 10901155): 남송(南宋) 투항파의 대표 인물. 강녕(江寧: 지금의 南京) 출신으로, 정화(政和: 徽宗의 네 번째 연호. 11111117) 때 진사가 되고, 북송 말기에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됨. 정강(靖康) 2(1127) 포로로 금()나라에 끌려가 태종(太宗) 아우의 측근이 되었다가, 건염(建炎) 4(1130) 금군(金軍)을 따라 초주(楚州)까지 왔을 때 쫓겨났는데, 수비병사를 살해하고 배를 빼앗아 도망왔다고 거짓말하여 남송(南宋)에 빌붙음. 소흥(紹興: 高宗 두 번째 연호. 11311162) 때 두 번이나 재상이 되면서 19년간 집정함. ()에 투항을 주장하며, 항전파 악비(岳飛)를 처단하고, ()에 신하로 조공을 바치자고 화의(和議)를 주도하여, 백성들의 원한을 크게 삼.]   -출처:오로지 부처님 힘에 의지하길 권함 (tistory.com) )

 

 얼마나 막심하게 어려운 줄 아오? 자기 힘으로 미혹을 끊고 진리를 증득하여 생사를 해탈하기가!

여래께서 한평생 설하신 보통의 수행 증득 교리는, 비록 법문이 여러 가지로 다양하지만, 미혹과 업장을 지니고 있으면서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없소. 
 
 오직 정토 법문 하나만이,

단지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을 갖추고 지성으로 부처님 명호를 지송하여, 극락왕생하는 유일한 길이라오.

미혹과 업장이 얼마나 두텁고 무거운지를 가리지 않고, 수행 공부의 정도가 얼마나 깊고 내실이 있는지도 따지지 않으며, 임종 때 부처님의 자비력에 의지하여 업장을 그대로 짊어진 채 극락왕생하는 거라오. 
 
 일단 왕생하기만 하면,

그 즉시 범부를 뛰어 넘어 성인의 경지에 들고, 생사윤회를 이미 벗어나게 되오. 그때부터 점차 수행 정진하여 몸소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고, 부처님 과보까지 원만히 성취하게 된다오.

이것이 바로 여래께서 말세의 어리석고 열악한 근기의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어서, 누구나 현생에 생사윤회을 단박 벗어날 수 있도록 열어 놓으신 특별 법문이라오.  
 
- 인광대사 가언록 -

 

출처: 각의 - 참선 공부를 하여 ... : 카카오스토리 (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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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대사] 임사체험 통해 견성見性만으로는 생사해탈의 어려움 절감 아미타불과 함께하는 마음의 고향 무주선원 | [연지대사] 임사체험 통해 견성見性만으로는 생사해탈의 어려움 절감 - Daum 카페

 

[연지대사] 임사체험 통해 견성見性만으로는 생사해탈의 어려움 절감

홈 뉴스 연재 김성우의 ‘염불각자열전’ 견성의 생사윤회, 염불로 해탈하다 ③ 정토종 제8조 연지(蓮池)

cafe.daum.net

- 중략 -

선사의 가르침대로 여실히 수행을 해나가다가 얼마를 지난 후, 연지 대사는 산동 지방을 지나가다가 홀연히 마음이 열려 심오한 진리를 깨닫고 이렇게 오도송을 읊었다.

“20년 전 일이 의심스럽다 하여

30리 밖에선들 무슨 기특한 일 만나랴

선과 악이 모두 '꿈'인 걸

마(魔)와 부처 공연히 옳다 그르다 다투네.

 

염불수행으로 마음이 밝아지자 드디어 본래성품을 깨달아 초견성(初見性)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명심견성(明心見性)도 어렵고 어려운 일이지만,

견성했다 하더라도, '미혹과 업장을 완전히 끊지 못해' 여전히 생사윤회를 거듭하는 구도자가 대부분이다. 이런 사실은 연지 대사의 임사(臨死)체험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대사는 견성체험 이후, 강소 땅 와관사라는 절에서 주석하던 중 우연히 병에 걸렸는데, 병이 낫지를 않고 점점 심해져 마침내 숨이 끊어지고(絶命) 말았다. 그런데 대중이 다비를 하려고 시신을 관 안에다 넣고 운반하려고 하는데, 관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대중이 관을 열고 보니, 연지 대사가 아직 살아계시더라는 것이다.

 

대사께서 깨어나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당신은 그동안 도(道)를 깨쳐 안심하고 살아온 것인데,

이제 이러한 죽음을 당하고 보니, 그런 정도의 도력(道力) 가지고는 생사에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임을 크게 깨닫고, 앞으로는 오직 염불수행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염불로 호랑이 조복시키고 가뭄에 단비 내려
그리하여 운서(雲棲)산을 찾아가 그곳에서 평생 염불수행을 하고 갈 것을 발원하고, 송나라 때 호랑이를 조복(調伏) 받으셨다는 복호 선사가 지은 암자에서 살기로 하셨다. 그런데 그 산중에는 호랑이가 많아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매년 수십 명이 호식(虎食)을 당했고, 그 지방 사람들은 해만 지면 삽작의 문을 걸어 닫고서 출입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말을 듣고도 연지 대사는 홀로 그 깊은 골짜기에 있는 암자를 찾아가셨고, 거기서 며칠 동안 높은 소리로 경을 독송하고 염불을 하고 많은 고혼(孤魂)을 위해 시식(施食)을 하니, 그 후부터는 일체 호환을 당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

 

이 어찌 염불의 위신력(威神力)과 가피력(加被力)이 아닐 것인가. 이 일로 그 고을 사람들은 연지 대사를 위대한 도인으로 믿어 받들게 되었는데, 여기에 또 하나의 이적이 일어난다.

 

연지 대사가 운서산에 주석한 지 얼마가 지나 날이 가물어 곡식이 말라 죽고 산천에 초목까지도 시들 정도여서 온 농민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과 그 지방 관리들과 유지들이 모여 연지 대사가 계신 암자에 찾아가서 무수히 예배 드리고는 비가 오게 해달라고 지성으로 간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대사는 “나는 단지 염불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며, 아무런 도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여기까지 찾아오신 성의를 생각해서 염불이라도 해드리겠나이다” 하시고는, 목탁을 들고 그분들과 같이 들로 내려 오셨다.

가물어서 먼지가 푸석푸석 나는 논과 밭을 다니시면서 목탁을 치며 높은 소리로 “나무 아미타불”을 부르시면서 한시 바삐 비를 내려달라고 기원을 하셨다. 그랬더니 갑자기 먹구름이 온 하늘에 가득히 덮이고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치면서, 바라고 바랐던 비가 오기 시작했다. 흡족하게 비가 내리자 농민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뻐했다.

이를 계기로 연지 대사의 도력은 온 천하에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나라에서도 대사를 위해 절을 하나 크게 지어 드렸다 한다.

 

부처님 말씀과 행만 실천
연지 대사는 그 후 정토총림을 만들어 많은 스님들과 신도들을 교화해 문하인만 천여 명이 넘었다고 하며 도력 높은 제자들이 14명이나 되었다. 스님의 저술로는 유심(唯心)으로 종지를 삼아 사(事)와 리(理)를 융회하며 아미타경을 해설한 〈미타경소초〉와 선정쌍수(禪淨雙修)의 관점에서 고인들의 기연과 어록을 기록한 〈선관책진〉, 염불과 참선, 보살행 등의 일상 수행법을 안내한 〈죽창수필〉 등 20여 종이 유명하다.


평생 분수에 넘친 생활을 하지 않아서 일찍이 ‘자신을 경책하는 32가지 조항(三十二自警)’을 지어, 늙을 때까지 스스로 빨래하고 요강을 치우며 시자를 힘들게 하지 않았던 스님은 늘 평등한 대비심으로 대중을 교화했으며, 부처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않았고, 부처님의 일과 행이 아니면 하지 않았다.

 

성품 깨닫고 염불로 보림하면 윤회 벗어나
그렇게 연지 대사의 세수가 80에 이르자, 세상 인연이 다 되어 임종의 때가 되었다. 하루는 제자들을 모아 놓고 간절히 당부하셨다.

 

“너희들은 앞으로 모든 생각을 다 버리고서, 오직 정토수행에만 전념하거라.

아미타불 일념에 무량공덕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며, 한번 왕생하게 되면 일체의 모든 원을 다 성취하게 되는 것이니, 오직 왕생극락만을 위하여 살아가야만 한다.

왕생을 위해서는 오직 간절한 마음으로 지성껏 염불을 해야만 하느니라.”

 

대사는 이렇게 유훈을 내리신 후, 서쪽을 향해 단정히 앉아 염불하시고는 고요히 세상을 떠났다.

 

- 중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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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죽창수필'집착(執着)

 

집착

 

사람들은 흔히 '집착'을 나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학문이란 '좋아함'으로 해서 '성취'되는 것으로

좋아하는 극치가 바로 '집착'인 것이다.

(*羿)는 활 쏘는 것에 집착하였고,

(*)는 선술(仙術)에 집착했으며,

(*)은 거문고에 집착하였다.

 

심지어 바둑에 집착하는 자는

병풍이나 장막, , 창문 등이 모두 흑백이 널려 있는 것 같이 보이며,

독서에 집착하는 자는

산중의 나무나 바위가 모두 검은 글자로 보이며,

말 그림을 배우는 자는

말이 평상이나 침대에서 금방 뛰쳐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후에야 그의 예술이 천하에 울리고

후세에까지 명성이 남게 되는 것이다.

어찌 도를 배우는 일이 예외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참선하는 자는

차를 마셔도 차인 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밥인 줄 모르며,

걸어가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은 줄 모르며,

설합을 열었다가도 문 닫는 것을 잊어버리며,

변소에 갔다가도 바지를 올리는 것을 잊어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러야 하며,

염불하는 자는

눈을 감거나 뜨거나 간에 관하는 것이 눈앞에 있어야 하며,

마음을 거두거나 흩거나 간에 생각하는 것이 항일(恒一)한 지경에 이르러,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며 의심치 않아도 저절로 의심이 되는 것이

'집착'인 것이다.

 

만약 뜻이 지극하고, 공력이 깊어지면

부지불식 간에 홀연히 삼매에 들게 되는 것이니,

마치 나무를 비벼 불을 일으키는 자가

비비는 작업을 그만 두지 않아야만 불꽃이 일어나며,

쇠를 단련하는 자가

담금질을 쉬지 않아야만 강철을 이룰 수 있는 것과 같다.

 

다만 집착에 유의할 점은,

'만법이 모두 환(幻)인 것'인 줄 알지 못하고

이루려는 마음이 너무 급하거나,

'일체가 모두 식(識) 뿐'인 줄을 알지 못하고

모양을 탐하는 마음이 깊은 경우로서,

이는 다만 장애가 될 뿐이다.

 

그러나 '집착'을 두려워하여

그럭저럭 물이 바위를 깎듯이 한다면, 몇 겁을 지낸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집체(執滯)하는 집착'은 가져서는 안될 것이지만,

'집지(執持)의 집착'은 꼭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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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羿); ()나라 유궁씨(有窮氏)의 이금으로 궁술의 명인,

또는 요임금 때의 사관(射官)

*(); 전설에 요동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영호산(靈虎山)

가서 도를 배워 신선이 되었다가 천년 후에 학을 타고

요동으로 돌아왔다 한다.

*();미상

 

_ 운서주굉 스님_

 

출처: https://cafe.daum.net/jeonglimsarang/8ouk/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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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창수필'사유수 (思惟修)

 

사유수 (思惟修)

 

선나(禪那)는 중국어로 사유수라고 번역한다.

그러므로 인도어인 선()자와 중국어인 사()자를 합하여, 선사비구(禪思比丘)라고 하는 말도 있다.

이것은 사유하는 것을 소중히 여긴 것이다.

 

그러나 경에

"사유심이 있으면, 마침내 여래의 대열반해(大涅槃海)들어가지 못한다" 하시고

또한 "이 법은 사유분별로는 미칠 바가 아니다" 하셨으니,

이것은 사유하는 것을 염려하신 것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면,

대개 사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정사유(正思惟)로서,사유함이 없이 사유하는 것이요,

둘째는 사사유(邪思惟)로서, 사유함이 있으면서 사유하는 것이다.

 

사유에 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밖으로부터 '안'을 사유하는 것으로 번뇌를 등지고 '깨달음'에 합하는 것이요,

하나는 안으로부터 '밖'을 사유하는 으로 깨달음을 등지고 '번뇌'와 합하는 것이다.

 

안으로부터 '밖'을 사유하는 것은,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거듭 생각하여 생각이 끝이 없어서, 더욱 진()멀어지는 것이요,

밖으로부터 '안'을 사유하는 것은,

생각하고 생각하고 다시 거듭 생각이 다하여 근원에 돌아가는 것이다.

 

또한 '생각'으로 인하여 '생각이 없는 데'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염불로서,

'생각'하면서 '생각이 없는 데'에 들어가는 것이다.

 

- 운서주굉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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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수필 " 염불은 한결 같이 해야 한다 "

 

내가 예전에 선원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 때 방장 화상이 대중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중원일(中元日)이니, 우란분재를 지내도록 해야 한다" 하였다.

나는 공양을 올릴 것으로 생각했으나,

잠시 후에 보니 공양을 올리지 않고 다만 염불을 3일 동안 할 뿐이다.

 

또 들으니, 예전에 어떤 원주가 관사(官司)에 구금을 당한 일이 있었는데,

당중(堂中)에 제일좌가 대중을 모으고 그를 구호하러 하면서, 대중은 누구나 경을 지송하리라고 생각했으나,

역시 큰 소리로 염불하게 할 뿐이었다 한다.

이 두가지 일은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었으나, 대인의 계략이 있어서 였을 것이니 참으로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되었다.

 

염불을 한결같이 닦아야 한다.

심지어 수명을 빌기 위해서는 [약사경]을 외다가,

업장을 풀기 위해서는 [양황참]을 읽고,

액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소재주(消災呪)]를 외고,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는 [관음문]읽으면서,

전에 하던 염불은 꽁꽁 묶어 높은 다락 속에 쳐넣어 두고 아무 짝에도 쓸데 없는 양 한다.

 

저 부처님의 수명은 무량하시거든, 하물며 백년의 수명이랴.

저 부처님을 생각하면 능히 80억 겁의 생사중죄를 면할 수 있거든, 하물며 목전의 업장이나 액난이랴,

저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혜의 광명으로써 널리 무량한 세계를 비춘다" 하셨거든, 하물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지혜 따위랴.

아가타약(阿伽陀藥)이 만병을 다스리건만, 마음이 변덕하여 믿고 따르려하지 않으니,

신성(神聖)의 교묘한 솜씨인들 이를 어찌 하겠는가.

 

- 운서주굉 스님 -

 

출처: 정림사랑방 | 원통스님 법문교재 죽창수필 中 " 염불은 한결 같이 해야 한다 "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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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죽창수필] -저자운서주굉  역자연관  출판불광출판사

 

술이나 식초 따위는 오래 갈무리할수록 더욱 좋은 맛이 나는데,

그것은 단단히 봉하고 깊이 저장하여 다른 기운이 전혀 스며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인이 말하기를 “20년 동안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런 후에 네가 어찌 부처를 얻지 못하랴!” 하였다.
아름답다, 이 말씀이여!
-74쪽

 

진후산(陳後山)이 말하기를 “시(詩)를 배우는 것은 선(仙)을 배우는 것과 같이, 때가 되면 뼈가 저절로 바뀐다.” 하였다.
나도 또한 “선(禪)을 배우는 것은 선(仙)을 배우는 것과 같이, 때가 되면 뼈가 저절로 바뀐다.” 하고 말하리라.
그러므로 배우는 자는 선(禪)을 이루지 못할까를 근심할 일이 아니라,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을 근심할 뿐이며,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배움이 정성스럽고 부지런하지 않음'을 근심할 뿐이다.
-45쪽

 

뜰에 백합꽃이 피어 있다. 낮에도 비록 향기가 있긴 하지만 담담할 뿐이고,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진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코가 낮에는 둔하다가, 밤이 되어서야 예리해진 것이 아니다.

한낮은 시끄러워서 모든 경계가 복잡하므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더라도 '코의 힘이 귀나 눈으로 분산되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쓰는 것'도 분산되지 않아야, 정신에 집중한다는 것을 깊이 믿을지라!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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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서주굉 대사 " 죽창수필 " 中 자신과 남을 위하다

 

자신과 남을 위하다

 

고인이

"자신을 위하기 전에, 먼저 '남'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

보살의 발심이다" 하신 말씀은, 실로 감로와 같은 귀한 말씀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도리어 독약이 되고 만다. 

시험삼아 자신을 돌아보라.

내가 보살인가. 더욱이 발심했다 할 수 있는가실제로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자신의 깨달음'을 충실히 한 후에, 다른 이를 깨닫게 한 것이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신 본보기이다" 하신 말씀을 듣지 못했는가.

 

 

어떤 이는

"자신을 충실히 한 후에 남을 이익되게 한다면, 

이는 영영 불가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병'을 고치지 못했으면서

남을 구하려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서, 

반드시 보살의 광대한 마음을 발하고, 게다가 부처님의 진실하고 간절한 가르침을 확고히 간직한 연후에야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는 격이 될 것이다.

보살을 자부하려 하다가

나와 남을 모두 그르치게 한다면, 이것은 무엇이라 불러야 할 것인가.

 

- 운서 주굉 스님 -

 

출처: 정림사랑방 | 원통스님 법문교재 " 죽창수필 " 中 자신과 남을 위하다 - Daum 카페

 

 

경전에 “보살은 자신을 제도하기에 앞서, 먼저 다른 이를 제도한다.” 하니,

 

어리석은 자는 “보살은 오직 중생을 제도할 뿐, 자신은 제도하지 않는다.” 하였다.

자신도 '중생 가운데 하나임'을 알지 못한 것이다. 어찌 '중생을 모두' 제도하고서, 유독 '자기 한 중생만' 빠뜨릴 리가 있겠는가? 어찌 보살을 핑계하여, '밖'을 좇고 "안"은 잊어버리는가!
-49쪽

출처: 책[죽창수필] -저자운서주굉  역자연관  출판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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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병'을 '고통'으로 여기고 있으나,

예전의 덕행 있는 이들은 “'병'은 중생의 '좋은 약'이다.” 하였다.
무릇 병과 약은 판이하게 다른 것인데, 어찌하여 병이 약이 된다는 것일까?

 

형체가 있는 몸뚱이는 병이 없을 수가 없으니, 이는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이치다.

그런데 병이 없을 때는 즐기고 방탕하기만 하니, 누가 이를 깨닫겠는가?

오직 병고가 몸에 직접 닥쳐야만, 비로소 사대(四大)는 진실한 것이 아니요, 사람의 목숨은 무상한 것임을 알게 된다. 이때야 말로 예전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하나의 계기가 되고, 도를 배우고 수행하는 데 조그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나도 출가한 후 지금까지 크게 병이 들어 거의 죽을 뻔한 적이 세 번 있었는데, 그 때마다 뉘우치고 깨달아 정진에 더욱 힘썼다.
이로 말미암아 ‘병은 좋은 약’이란 말이, 참으로 지극한 말씀임을 믿게 되었다.
-158쪽

 

 

어떤 스님이 오랫동안 폐결핵을 앓으며 자리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대중들은 누구나 그가 조만간 죽을 것으로 여기고 있었으나,

정작 본인은 전혀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누가 머지않아 죽을 것이라고 말하면, 금방 불쾌한 기색을 보이곤 하였다.

 

내가 시자를 보내 뒷일을 생각하여 일심으로 염불할 것을 권했으나,

그는 도리어 “남자 병은 생일 전을 꺼리는 법이니, 그때를 지낸 후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더니,

그 달 열이레가 그의 생일이었는데, 그 날을 하루 앞두고 문득 죽고 말았다.
아, 부처님이 “사람의 목숨은 호흡 가운데 있다.”고 하신 것은 건강한 자를 위해 하신 말씀인데,

죽음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깨닫지 못하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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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가 변소에 살고 있는 것을 개나 양이 보고는 그 고통이 더할 나위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구더기는 전혀 고통을 모를 뿐만 아니라 도리어 즐거워한다.
개나 양이 땅위에 살고 있는 것을 사람이 보고는 그 고통이 더할 나위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개나 양은 고통을 모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즐거워한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을 천상 사람들이 보고는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은 고통인 줄 모르고 오히려 즐거워한다.
궁극까지 추구해보면 천상의 고통과 즐거움도 마찬가지다.
이런 줄을 알고 정토에 태어나기를 구하는 것은 요지부동의 상책인 것이다.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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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산 빛을 보면 푸르스름하게 푸른 것이 마치 남색 같더니,

멀리서 보면 거무스레하게 비취색인 것이 마치 남색에다 청대(쪽으로 만든 검푸른 물감)를 물들인 듯하다.

과연 이렇게 산 색깔이 변한 것일까?
산 빛은 전과 다름없으나, 시력에 차이가 있다. 가까운 곳에서 점차 멀어질수록 푸른색이 변하여 비취색이 되고, 먼 곳에서 점차 가까이 올수록 비취빛이 변하여 푸른색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푸른색은 '그럴 만한 인연'이 모여 푸르고, 비취색은 '그럴 만한 인연'이 모여서 비취색이 되었으니,

비취색이 '환(幻)과 같을 뿐'만 아니라, 푸른색도 역시 '환과 같다'.
대체로 만법(萬法)이 모두 이와 같다.
-184쪽

 

 

속담에 “그 사람을 사랑하면, 지붕 위의 까마귀도 어여쁘다.” 했으니, 이것은 애정이 지극한 경우를 두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인연이 변하고 정이 멀어져서, 사랑이 바뀌어 미움이 되고 급기야 그저 밉기만 한 경우가 허다하니, 전의 애정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미움이 바뀌어 사랑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기뻐할 일도 아니요, 미워한다고 해서 꼭 상심할 일도 아니다.

꿈속의 일이요 허공 속에 핀 꽃과 같이, 본래 진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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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산(?山) 화상이 말하였다.
“요즘은 처음 배우는 자들이 인연에 따라 나름대로 '한 순간에 이치'는 단번에 깨달았으나,

여전히 '무시광겁(無始曠劫)의 습기(習氣)'는 아직 단번에 깨끗이 하지 못했다.

현업유식(現業流識)을 깨끗이 제거하는 것이 바로 수행이지, 수행하고 지향해야 할 법이 따로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위산 스님의 이 말씀은 법(法)의 근원까지 사무친 이가 아니면, 능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은 조그만 깨달음이 있으면, 곧 “일생 스승을 찾아 배워야 할 공부를 다 마쳤다.” 하고 말하는 자가 있으니,

위산 스님의 이 말씀을 놓고 보면 자신의 공부는 어떠한가?
-50쪽

 

예전부터 도인을 칭송했던 것은

세상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가벼이 여겼고, 가벼이 여기는 것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부귀와 공명이요, 하찮게 여기는 것은 곧 마음이다.
그러나 요즘 도인은 소중히 여기고 하찮게 여기는 것이 세상 사람과 꼭 같으니, 그러고도 도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86쪽

 

업(業)을 짓는 자가 백 명이면

그 중에 선업(善業)을 짓는 자는 겨우 한둘이요,

선업을 닦는 자가 백 명이면

그 중에서 도를 배우는 자는 겨우 한둘이다.

도를 배우는 자가 백 명이면

견고하고 오랫동안 지켜 나가는 자는 한둘이며,

견고하고 오랫동안 지켜 가는 자가 백 명이면

견고하고 또 견고하며 오래하고 또 오랫동안 그 마음을 지켜 바로 보리심(菩提心)에 이르도록 퇴보하지 않는 자는 겨우 한둘에 불과하다. 이렇게 최후 사람이어야만, 진정한 도인이라 할 수 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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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연지대사의 염불수행 계기 인연이야기 :

*               *                     *               *             *             *                 *               *            *

“우담 화상은 ‘염불하는 놈이 누구인가?’를 간과하라고 했으나, 꼭 이 방법을 쓸 필요는 없다.

다만 여느 때처럼 염불하되 염불을 잃지만 않으면,

문득 경계에 부딪치면 부딪치는 대로,

인연을 만나면 만나는 대로 응접이 자재한 한 구절(轉身一句)을 얻어,

적광정토(寂光淨土)가 이곳을 여의지 않았고

아미타불이 자심(自心)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선관책진 / 운서주굉

 

대사는 명나라 때 항주 인화현 사람으로 성은 심씨(沈氏)다

이름은 주장(株宏)이고, 법명불혜(佛慧)이며 호가 연지 (蓮池)이다.
40이 넘어서 출가하였는데 세상에서 연지대사(蓮池大事) 또는 운서화상(雲棲和尙)이라 불렀다.
처음에 대사의 이웃집에 한 노파가 있어서 불명 수 천 번을 일과로 부르므로 그 연고를 물으니

노파가 말하기를
「선부(先夫 돌아가신 지아비)가 염불하다가 병 없이 죽었다.」
는 말을 듣고 염불 공덕이 불가사의함을 알고는

그 후부터 정토에 마음을 두어 안두(案頭 화두)를 만나 진리를 깨달았으나

더욱 연종을 널리 퍼뜨려 실행되게 함에 전력하여 널리 염불을 권장하였다.
대사는 계살문(戒殺文) 등을 지어 계율을 다시 일으키고

중선(衆善)을 널리 닦아서 정업에 자(資)하고

또 아미타경소초(阿彌陀經疏抄)등의 저서가 많이 있는데,

후세의 사람이 집록(集錄)하여 운서법휘(雲棲法彙)라 하였다.
대사가 만력 40년 7월 7일 저녁에 말하기를
「나는 내일 가겠다.」하더니

이튿날 저녁에 미질(微疾)이 있어 눈을 감고 앉았다가 다시 눈을 뜨고 대중에게 말하기를
「진실하게 염불하라.」
하고 서향하여 염불하면서 앉아서 화(化)하니 나이 81세이다.

<蓮宗集要>

 

출처:아미타불과 함께하는 마음의 고향 무주선원 | 연지당 붓글씨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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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

11.어떤 비구스님의 전생 기억 -적공(寂空)스님의 전생과 극락왕생발원 (최근 실화)https://ntassabas.tistory.com/486

 

***11.어떤 비구스님의 전생 기억 -적공(寂空)스님의 전생과 극락왕생발원 (최근 실화)***

(원본: http://cafe.daum.net/MRSB/Rj7P/5 ) 11.어떤 비구스님의 전생 기억 -적공(寂空)스님의 전생과 극락왕생발원 (최근 실화)  여러 수행자들이여, 이글은 내가 석가모니 부처님께 예배드리며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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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팔아먹은 진회秦檜의 전생과 현생 이야기 - 영명연수대사, 사료간 강의 중 -정전스님 법문, 구미법회https://youtu.be/i5VmM-Dp-sI

 

 

[隔陰之迷]무정설법 깨친 소동파가 말년에 염불하고서도,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까닭은->관련글모음입니다***https://ntassabas.tistory.com/341

 

***[隔陰之迷]무정설법 깨친 소동파가 말년에 염불하고서도,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까닭은->관련

(원글: http://cafe.daum.net/MRSB/RCtG/56 )[隔陰之迷]무정설법 깨친 소동파가 말년에 염불하고서도,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까닭은->관련글모음입니다***  [隔陰之迷] 무정설법 깨친 소동파가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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