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中國) 청(淸)나라 땅에 한 노인(老人)이 있으니 본 성명(姓名)은 자세(仔細)히 모르겠고 별명(別名)이 백불관노인(百不關老人)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백불관(百不關)이란
일체(一切)에 간여(干與)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노인(老人)이 백불관(百不關)이란 별명(別名)을 붙이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사유(事由)가 있다.
이 노인(老人)이 하루는
자기(自己)의 앞날을 생각해 보니 이제는 떠나갈 날이 그다지 멀지 않은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일생(一生) 동안 해온 것을 회고(回顧)해 보니,
아무것도 닦아놓은 것은 없고
오직 죄(罪)만을 지어온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자기(自己)가 사후(死後)에 갈 곳을 생각해 보니 앞이 캄캄하고 막연한 것이었으며, 아무래도 죄(罪)를 많이 졌으니 필연(必然)코 지옥(地獄)으로 갈 것만 같았다. 지옥(地獄)에 갈것으로 생각을 하니, 갑자기 두려움과 공포(恐怖)가 하늘에서 내리 덮는 것만 같으며 태산(泰山) 같은 수심(愁心)이 마음에 가득히 차오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음이 조급(躁急)해져서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근처(近處)에
효자암(孝慈庵)이라는 절이 있어 그 절에 수행(修行)이 장(壯)하신 도원 스님이란 분이 살고 계셨다. 그리하여 그 노인(老人)이 부랴부랴 그 스님을 찾아갔다. 자기(自己)를 구원(救援)해주기를 청(淸)하러 간 것이다.
공손(恭遜)히 예배(禮拜)드리고는 하는 말이 "저는 일생(一生)을
아무것도 선도(善道)를 닦은 것은 없고 오직 죄(罪)만 짓고 살아온 것인데, 이제라도 수행(修行)을 하여 악도(惡道)를 면(免)할 수 있는 법(法)이 있으면
저에게 가르쳐 주시면 대단히 감사(感謝)하겠습니다."
라고 간청(懇請)을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들은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러한 법(法)이 있기는 하나
그대가 나의 말을 믿고 그대로 행(行)할 수가 있을런지,
만일 그대로만 행(行)한다면,
이 삼계(三界) 고해(苦海)를 영원(永遠)히 벗어나서
다시 생사(生死)를 받지 않고
무량겁(無量劫)에 무량(無量)한 즐거움을 받게 될 것이니라.
그대가 이제까지 아무리 많은 죄업(罪業)을 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뉘우치고
선심(善心)을 발(發)하여
수행(修行)을 한다면 늦지 않으니,
결정(決定)코 악도(惡道)를 면하여
영원(永遠)한 안락(安樂)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니라." 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을 들은 노인(老人)은 구원(救援)의 배를 만난 듯 무척 반가운 어조(語調)로 "스님의 말씀을 진실(眞實)히 믿겠사오며 또한 가르침을 여실(如實)히 받들어 행(行)하겠사오니 가르쳐 주시옵소서." 하고 다시 간청(懇請)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 스님께서 진중(鎭重)한 태도(態度)로 정토법(淨土法)에 대하여 대강 말씀해 주시고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염(念)할 것을 권(勸)하시면서 하시는 말이 "염불(念佛)하는 자(者)는 많으나 왕생(往生)하는 자(者)는 드물며,
염불(念佛)하기는 쉬운 것이나 성취(成就)하기는 극(極)히 어려운 것이니
염불(念佛)하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오래 지속(持續)하기가 어려운 것이며
또한 오래 지속(持續)함은 과히 어려운 것이 아니나, 일념(一念)으로 하기가 어려운 것이니라. 일념(一念)이 되어야만이
성취(成就)를 할 수가 있는 것이니라."
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노인(老人)이 감사(感謝)한 인사(人事)를 드리고는 집에 돌아와서 즉시(卽時) 가족(家族)들을 모아 놓고는 하는 말이 "나는 이제부터 살림은 하지 않겠으니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너희들이 다 알아서 잘 처리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당부(當付)를 해놓고는,
그 즉시(卽時)로 조용한 방사(房舍) 하나를 정리(整理)해서 그 방(房)에는 일체(一切)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오직 염불(念佛)에 전력(專力)을 하였다.
그렇게 일년(一年)이란 세월(歲月)이 지나 갔으나 오래 지속(持續)을 하여 염불(念佛)은 하여도,
일념(一念)만은 되지를 않는 것이었다. 일념(一念)이 되도록 해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봐도, 도저히 되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부득이(不得已) 또다시 그 스님에게로 찾아가서 하는 말이 "살림을 안하고
염불(念佛)만을 계속(繼續)했으나 일념(一念)만은 도저히 되지를 않으니, 스님께서 다시 일념(一念)되는 법(法)을
가르쳐 주옵소서."
하고 가르침을 청(請)하였다.
그러니 그 스님이 말씀하시길 "그대가 비록살림은 안하고
염불(念佛)만 했다 하더라도,
아손(兒孫)들에 대한 생각은 끊어지지 아니 했을 것이다. 이는 애근(愛根)을 뽑지 못한 것이니 그 어찌 일심(一心)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그대가 만일 일심(一心)이 되도록 하려면
먼저 아손(兒孫) 권속(眷屬)에 대한 애정(愛情)을 끊어버리고, 일체(一切) 모든것을 다 놓아버리고 마음에 아무것도 두지 말아야만이, 일심(一心)을 얻게 될 것이니라." 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후부터는 자녀들과 모든 권속(眷屬)들에 대한 관심(關心)을 일체(一切) 두지 않고, 일체(一切) 모든 것을 다 잊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로부터는 백불관(百不關)이란 삼자(三字)를
항상(恒常) 염두(念頭)에 두고는 일체(一切) 모든 것에 마음을 쓰지 않고 일체(一切)를 간여하지 않으며, 오직 염불(念佛)에만 주력을 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것이 잘 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자손(子孫)들에 대한 걱정이 되면
얼른 백불관(百不關)을 외우고는
그 생각을 물리치며, 혹(或)은 어떤 일에 대하여 마음이 일어나려고 하면 또 얼른 백불관(百不關)을 외우고는
이에 그 생각을 물리치는 것이었다. 이 백불관(百不關)은 그러한 잡념(雜念)을 물리치는 데는
아주 좋은 약(藥)이 되었다.
그와 같이 얼마 동안을 계속(繼續)하여, 마침내는 일념(一念)이 되게 되었으며 얼마 후엔 삼매(三昧)까지 얻게 되어 왕생(往生)할 날짜까지 알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하루는 그 스님에게 찾아가 인사(人事)를 드리고는 하는 말이 "스님 참으로 감사(感謝)합니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그 법(法)은 하나도 헛된 것이 없었습니다. 스님의 덕택으로 악도(惡道)에 떨어질 제가
이제는 영원(永遠)히 고해(苦海)를 벗어나서 극락세계(極樂世界)로 왕생(往生)을 하게 되었나이다. 이제 며칠후(後)면 왕생(往生)하게 될 것이므로 스님에게 인사(人事) 드리고 갈까 하여
온 것입니다."
하고는 공손(恭遜)히 예배(禮拜)드리고는
집에 돌아와 며칠 후(後)에
하나도 아프지 않고 편안(便安)하게
이 세상(世上)을 떠나 왕생극락(往生極樂:육도윤회를 벗어난 정토에 화생함)을 하게 되었다.
이 노인(老人)은 스님에게 백불관(百不關) 법문(法門)을 듣고 나서는 그 즉시(卽時) 그대로 실천(實踐)을 한 것이며,
그 후부터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백불관(百不關)"하고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로 인하여 백불관(百不關) 노인(老人)이라는 호(號)를 듣게 된 것이다.
그 누구도 이 백불관 노인(百不觀老人)처럼
굳은 결심(決心)으로 냉정(冷情)하게 모든 애착(愛着)을 다 끊고 백불관(百不關)이 되지 않고는, 결코 이 사바고해(娑婆苦海)를 버리고 영원(永遠)한 안락처(安樂處)를 얻지는 못할 것이다.
백불관노인(百不關老人)이 만일 굳은 결심(決心)이 없어 그 애착(愛着)을 끊지 못했었다면, 그는 반드시 악도(惡道)에 떨어져 무량(無量)무수겁(無數劫)에 그 극심(極甚)한 고통(苦痛)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잠시(暫時)간의 애착(愛着)을 끊음으로, 영원(永遠)한 안락(安樂)을 얻게 된 것이다.
염불하는 스님에게 묻기를, 내가 보니 바라문은 고행 수도하는데, 스님들은 다만 편안히 염불만 하고 있으니 어찌 서로 틀립니까?
스님이 답 왈,수도 하는 것은 몸에 괴롭고 괴롭지 않는데 있지 않고, 생사심이 간절하냐 간절하지 못하냐에 있는 것입니다.
스님 네는 비록 한가히 염불하는 것 같으나,
생사를 벗어난다는 마음이 간절해서 육근을 막아, 눈은 색을 보지 않고 귀는 소리를 듣지 않아 육근이 밖의 경계에 반연치 않습니다.
왕이 듣고 믿지 않았다.
스님이 그 뜻을 알고 왕에게 아뢰되, 대왕은 내일에 궁녀들을 두 반으로 나누어서 한반은 동쪽 길가에 춤을 추게 하고 한반은 서쪽 길가 길가에 노래를 부르게 하고,
사형수를 시켜 기름을 한 병 넣어 가지고 말하되, 너의 죄는 당연히 죽을 것이나, 네가 이 기름을 가지고 네거리로 가라하고 네 사람을 시켜 칼을 가지고 따라가면서 만일 기름이 기울어 흐르거든 곧 목을 베고, 만일 기름이 흐르지 않으면 그의 죄를 풀어 고향에 보내주라고 하였다.
사형수가 생각하기를, 오늘의 내 생명은 저 기름에 달렸다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네거리를 지나갔는데, 기름이 조금도 흐르지 않고 왕의 처소에 돌아오니 왕이 그 죄를 놓아 주었다.
스님이 왕에게 청하여 죄수에게 묻기를,
네가 동쪽거리에서 무슨아름다운 것을 보았는가? 대답하되, 보지 못했습니다.
서쪽 거리에는 무슨 소리를 들었는가. 대답하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왕이 성을 내어 가로되, 나쁜 놈아 동쪽 거리에 궁녀의 춤추는 것과 서쪽 거리에 여자의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듣지 못했느냐?
대왕이여 내가 일심으로 기름병만 보았는데, 어찌 다른 마음이 있으리오. 그러므로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왕이 스님의 말씀한 '일심으로 염불하여 생사 해탈을 구하면 육근이 모두 거두어 진다'는 말이 헛되지 않음을 깨달았다.염불하는 사람이 생사심이 간절해야, 참으로 염불인 이라 할 수 있다. - 중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