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은 스스로 짓는 것이다 - 백일법문과 성철스님 - 佛書cafe-願樂欲聞(원요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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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정성과 부처님 가피>
-광우스님-
얼마 전에 소나무 애청자인 불자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연세가 팔십이 넘으신 거사님입니다.
당신의 어머니가 체험한
불보살님의 영험담을
꼭 전해주고 싶다는 바램으로
저에게 연락을 하신 겁니다.
수화기 너머로
거사님의 울음 섞인 이야기를
경청하였습니다.
아~!
저 또한 한 사람의 자식이요,
한 사람의 불제자로서,
마음 뭉클한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느낌이었습니다.
이 가슴 떨리는 소중한 이야기를
여러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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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전화가 왔다.
최00거사님이다.
평소 소나무(http://www.btn.co.kr/pro/Program_contents.asp?ls_StSbCode=CATPR_01&PID=P938)의 애청자이다.
소나무를 보면서
어머니가 체험하셨던 기도 가피가
자꾸 생각이 났다.
불자님들과 꼭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광우 스님에게 연락을 했다.
그 이야기를 풀어본다.
부모님은 나주 근처에
작은 마을에서 살고 계셨다.
어머니가 아들 넷을 낳았는데 모두 죽었다.
아들을 낳기만 하면,
낳는 차례대로 5~6살을 못 넘기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아이 넷을 떠나보냈다.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가슴을 치면서
전생의 업보가 두꺼워
팔자가 더럽다고 한탄하셨다.
아버지는 홧병이 나서
매일 술에 빠져 살며 폐인처럼 지냈고
항상 어머니를 구박했다.
어머니는 불심이 깊었다.
틈만 나면 절에 가셨고,
매일 염불을 하셨다.
항상 관세음보살을 염불하셨다.
어머니는 홀로 품팔이를 하며
근근이 끼니를 때우셨다.
그 퍽퍽한 살림 속에서도
조금씩 모아둔 쌀을 쥐고서
절에 가 불공을 올렸다.
어머니가 다니시던 절이
나주에 있는 복암사라는 절이었다.
집에서 절까지 10킬로미터를 걸어 가야했다.
어머니는 절에 가면
부처님 앞에서
아들 낳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늘 관세음보살을 염불했다.
어느 날이었다.
새해 첫 날을 맞이하였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설날부터 집 안 물건을 다 때려 부수고
난동을 부렸다.
어머니는 서러워 우셨다.
그리고 다음 날도 아침 일찍 절에 가셨다.
법당에 앉아 부처님 앞에서
숨죽여 울면서 눈물을 흘리며
하염없이 염불을 하셨다.
합장한 손으로
입으로는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한없이
부처님께 빌고 또 빌었다.
그러다가,
순간 비몽사몽이었다.
염불하다가 깜빡 졸았나보다.
꿈을 꾸었다.
꿈에, 왕관을 쓴 보살님이 나타났다.
잉어 2마리를 주면서 말씀하셨다.
“집에 가져가서 잘 키워라.”
화들짝 놀라며 치마폭에
잉어 2마리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잉어를 키웠다.
갑자기 큰 집의 형님이 찾아왔다.
큰 집 형님이 잉어 한 마리만 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한 마리를 건네 주었다.
며칠 후 큰 집 형님이 다시 찾아왔다.
자기가 키운 잉어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어머니가 급히 고개를 돌려
자기가 키우던 잉어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생기 활발하게 펄펄 살아있었다.
어머니는 잉어를 보며 안심 하였다.
순간,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법당 안이었다.
“희한한 꿈이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법당 안에서 잉어 꿈을 꾸고 나서
얼마가 지난 뒤에 임신을 하였다.
신기한 것이 비슷한 시기에
큰 집 형님도 임신을 하였다.
달이 차서 어머니는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지금 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최거사님이다.
같이 임신했던 큰 집 형님도
아들을 낳았는데
얼마 안 되어 아기가 세상을 떠났다.
법당에서 꾸었던 꿈 그대로였다.
아들을 낳은 어머니는
다시 삶의 희망을 되찾았다.
남편이 술 마시고 구박해도 이겨낼 수 있었다.
의지할 수 있는 아이가 생긴 것이다.
마지막 낳은 아들도 5살을 못 넘길까
잠시 걱정도 했지만,
꿈에서 관세음보살이 점지해준 자식이니,
이번에 낳은 아들은
끔찍한 저주의 굴레에서 벗어나
불보살이 보호해주실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
매일 새벽에 기도를 올렸다.
오십 여 가구가 사는 시골 마을에는
우물이 두 개가 있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첫물을 뜨고
정안수를 올린 뒤에 손을 비비면서
하염없이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관세음보살님, 부디
우리 아들 건강히 자라게 해주시고,
하는 일 모두 다 잘 풀리게 해주십시오.
그저 우리 아들 건강하고
잘 되게 해주십시오.”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오직 아들이 잘되기만을 빌었다.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한 적이 없던 분이었다.
어머니 나이가 40대 즈음,
아들의 나이가 7~8살 때였다.
어머니 젖가슴에 큰 혹이 자랐다.
지금 생각하니 유방암이었던 것 같다.
병원 없는 시골 마을
가난한 주부였던 어머니는
아들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시신을
방 안 한구석에 두고
장례 준비를 하러 나갔고
어린 아들은 차가워진
어머니 품에서 엄마 몸을 주무르며
울고 있었다.
어머니가 숨이 끊긴 뒤였다.
어머니는 꿈을 꾸었다.
어머니가 저승길을 걷고 있었다.
길을 걷다 고개를 넘으려는데
갑자기 왕관을 쓴 보살님이 나타났다.
“어디 가느냐?”
어머니가 왕관 쓴 보살님을 쳐다보니
하얀 닭을 안고 계셨다.
왕관을 쓴 보살님이
닭을 어머니에게 주며 말씀하셨다.
“이 닭을 놓지 말고 잘 갖고 있거라.”
그리고 보살님은 사라졌다.
어머니는
얼떨결에 닭을 받았는데
가슴에 안은 닭이 갑자기
부리로 어머니의 젖가슴을 마구 쪼아댔다.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지만
놓지 말라 했기에 꾹 참고
닭을 계속 안고 있었다.
어머니의 젖가슴을 마구 쪼던 닭이
갑자기 어머니의 목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꼬끼요!!!”
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어머니는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딘가, 정신은 몽롱한데
멀리서 아들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들이 자신의 옆에서
목이 찢어질라 울고 있었다.
사랑하는 어린 아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어머니는 생각했다.
“내 아들 두고 이대로 갈 순 없다.
이대로 갈 순 없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고
정신을 차렸다.
마을에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고 난리가 났다.
어머니는 그 시대,
가난한 집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으로 민간 치료를 했다.
기껏해야 약초를 찧어서
가슴에 바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였다.
어머니의 혹이 난 한쪽 가슴이
저절로 터져버렸다.
터진 가슴에서 피고름이 줄줄 쏟아졌다.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피고름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어머니의 병이
완전히 자연 치유되었다.
40대 후반 죽을 고비를 넘긴 어머니는
평생 건강하게 살다 돌아가셨다.
103세까지 사셨다.
103세.
어머니의 태몽과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이야기를
아들은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의심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어머니가 체험한 삶의 기록이다.
나이 드신 어머니의 가슴을 보면
한쪽 가슴이 완전히 일그러지고
찢어진 자국이 선명했다.
어머니는 평생 돌아가실 때까지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아들은 너무 가난해서
학교를 다닐 수 없었고,
제대로 공부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열악한 상황에도
아들은 좌절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 말씀대로
관세음보살이 점지해준 아들이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관세음보살님이 분명히 도와주실 것이다.
난 분명히 성공할 것이고,
어머니와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
아들은 사회에 나가
각고의 노력을 하였다.
모든 일에 한 치의 틈도 없이
성실하게 살아갔다.
아버지 때문에 술이라면
덜덜 떠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담배도 피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살았다.
아들은 자수성가하였다.
어느 제약 회사의 임원이 되었고,
중국의 대학에 명예교수가 되었고
국내 지방 대학에 총장을 지냈다.
부모님을 애타게 그리며 쓴
시집으로 문학계의 상을 받았다.
평소 효성이 지극했던 아내는
나라에서 주는 훈장까지 받았다.
이 모든 영광이 불보살님의 가피요,
어머니의 정성과 헌신이었다.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거사님이 자꾸 우는 것이다.
왜 우냐고 물으니,
자꾸 어머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추운 겨울 한 새벽에 정안수 떠놓고
오직 아들만을 위하여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염불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늙은 아들 눈에는 선하다.
거사님이 울면서 내게 간곡히 부탁했다.
“지금 들려드린 이야기는
결코 한 치의 거짓도 없으며
모두 어머니께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부디 불자 분들에게 전해주시오.
부처님은 분명히 계시고
보살님은 분명히 계시다.
불보살님의 가피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 증거가 우리 어머니이다.”
_()__()__()_
지금 이야기를 올린
거사님은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사진과 프로필이 등재된
유명인사입니다.
다만,
거사님의 소중한 사생활을 위해
개인 정보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거룩하신 부처님
거룩하신 보살님들이여,
귀의합니다.
부모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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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힘 (아들을위한 어머니의기도)
*기도의힘..
소승이 해인사에서 공부할 때일입니다.
대구 약전골목에 가면 대남한의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주인 여동명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경북신도회 회장을 지냈으며 그당시 전국에서 제일유명한 한의원이었습니다. 진맥은 대남에서 하고 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유명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동명 거사의 뒤에는 어머니의 지극한 기도가 받쳐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찍 남편을 여읜 보살은 외아들을 한의사를 만들기로 작정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지 않고 한약방의 종업원으로 취직시켜 한의학을 익히게 했습니다. 당시는 한의학과 대학이 없었고 한약방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첫 번째로 들어간 한약방에서 더 배울 것이 없게 되자 다른 한약방으로 보내 의술을 더 익히게 했고 그 곳에서 배울 만큼 배우면 또 다른 한약방으로 보냈습니다.
그렇게 여러 곳을 다니며 두루 의술을 익혀 마침내 한약방을 차려 독립해도 되겠다면 스승이 의술을 인정하자 어머니는 아들에게 한의원을 차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충청도 연기군의 조그만 마을에 개업한 한약방은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어머니는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남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한밤중에 일어나 찬 물에 목욕한 다음 맑은 물을 깨끗한 사발에 떠서 뒤뜰의 장독대에 올려놓고 아들이 잘되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목욕재계를 하고 정성껏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화수를 떠 뒤뜰로 가는데 물 사발이 손에 척 달라 붙는 듯했습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순간 그릇을 놓았는데 물 대접이손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물 대접을 잡은 자리에 손가락 자국이 나 움푹 파여 있었습니다.
그런 신기한 체험을 하고 더욱 정성껏 기도를 했으며 마침내 백일기도가 끝날 무렵 꿈을 통해 계시가 있었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가다가 큰 대자가 든 도시에 머물러라. 그곳에 가면 너의 아들은 크게 성공을 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들과 함께 고향을 떠난 어머니는 대구로 왔고 대구에서 여동명 거사는 과연, 한의사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대구에 자리를 잡은 뒤 여동명 거사의 어머니는 반월당에 있는 보현사에 다녔는데 이곳저곳 다니지 않고 오직 보현사만을 고집했습니다.
절에서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잡담하기보다는 오로지 기도하고 법문듣는 데 정성을 다했습니다. 노년이 되어 거동이 불편해 집에서만 지내게 되자 '나무아미타불'을 일념으로 염송하면서 왕생발원을 했습니다.
임종을 앞두고 단주를 굴리며 염불하던 어머니는 비몽사몽간에 꿈꾼 얘길 했습니다. "스무살쯤 되는 아름다운 처녀들이 깨끗하고 화려한 꽃가마를 들고 와서 나를 타라고 하는 걸 보니 그만 갈 때가 됐나보구나." 하더니 손에 든 단주를 떨어뜨리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때가 약 30년 전에 일이니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사후에 특별한 이적을 남겼습니다. 이 부분은 어머니의 생전 이야기입니다.
여동명 거사는 대구 불로동 동화사 들어가는 입구에 태국식으로 절을 창건했는데 그 절 주변에 있는 200평 정도의 밭을 어머니의 산소터로 정했습니다.
살아생전에 땅을 사 어머님께 확인시키고 싶었던 거사는 땅주인에게 팔 것을 제안했지만 시세의 몇 배를 준다고 해도 팔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 안타깝게 여기던 거사는 임종 직전 '어머님을 어디에 모실까요?'하자, '내가 숨지면 산소 터가 생기니 걱정하지 마라.'고 하고는 밤중에 어머니가 숨을 거두었는데 새벽이 되자 땅주인이 찾아와서는 무슨 까닭인지 제발 땅을 사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적은 49재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여동명 거사는 워낙 불심이 강했던 어머니였기에 혼자 정하지 않고 어머니께 49재는 어디서 모실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오대산에가면 복 지을 일이 있을 것이라는 유언이있었던 터라 49재를 지내기 위해 오대산 상원사로 갔습니다.
마침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가 완전히 전소해버려 스님들이 거처할 곳이 없어 근심에 쌓여 있었습니다. 거사는 어머니가 예언한 복 지을 일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고 요사채 불사를 했습니다.
세 번째는 여동명 거사의 집에 불이 났을 때의 일입니다. 거사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몇 년 동안 집안에 위패를 모셔두었는데 어느날 목조 가옥에 불이나서 가재도구를 모두 태워 버렸습니다.
그런데 위패만은 그을음도 없이 멀쩡했다고 합니다. 거사의 어머니는 지극한 기도로 아들을 성공시켰고 평온한 말년을 보내다가 극락세계로 왕생하더니 죽고 난 뒤에도 이적을 남겼습니다.
이 모두가 기도의 힘입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한 힘은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합니다
. 관음경에 '큰 고난이 중생에게 생겨 끝없는 괴로움을 당할지라도 지극한 마음로써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신묘한 힘으로써 세간의 온갖 고통에서 구제하나니 생각생각에 의심치 말라. 관세음은 거룩한 성인 온갖 고뇌와 죽을 액운에서도 구해주리라.'고 했습니다.
일념기도의 경지에 가면 지혜가 샘솟는 기도 성취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평화.행복.지혜.복덕은 어느 누구도 주지 않습니다. 오로지 내 자신이 닦아 성취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시작해 보시기바랍니다. -철환스님 법문중에서-
출처: 다음 나무아미타불 카페 수선화바람에님 글
출처:*기도의힘 (아들을위한 어머니의기도).. *중국 오대산에 나투신 문수보살..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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