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 염불/왕생사례1-*중요 정리

***고생 끝에, 극락정토왕생하다 ---(모음)

아미연(阿彌蓮) 2020. 10. 14. 15:33

 

 

 

고생 끝에, 극락정토왕생하다 ---(모음)

 

 

눈 먼 노파의 왕생 이야기 (염불감응사례)-혜정법사님 중국어 법문/정전스님 한글 통역https://youtu.be/StkCR-mH-Bw

 

(왕생사례) 눈먼 노인이 갈 시간을 미리 알다 - 정전스님 법문(양산염불당 개원법회)https://youtu.be/7axvNRL2C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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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씨湯氏, 인내하며 염불하여 앉은 채로 왕생하다!

 

 

“탕씨湯氏 작랑雀郎은 결혼한 후 아이를 낳지 않고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입양하였다. 자식들이 장성한 후 성격이 매우 나빠 탕씨에게 전혀 효도를 하지 않고 여러 가지로 학대하였다. 

탕씨는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경건하고 정성을 다해 부처님을 받들었고, 매일 아침저녁 공과功課를 실천하였다.

 

문화혁명 시기에 종교정책으로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 자식들은 여러 차례 어머니 탕씨를 공과본功課本 및 염주를 빼앗아 죄의 증거로 삼았고, 반란파와 사귀어 탕씨에게 갖은 고초를 다 겪게 하였다. 

탕씨는 살생을 금하고 채식을 하였는데, 이 자식들은 강제로 그의 어머니에게 고기를 먹게 하였다.

 

……

 

탕씨는 극단적으로 고통을 받는 환경에서 자살을 도모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수백 수천 번 인내하고 염불을 굳건히 지켜서 정토에 태어나길 구하여야 한다는 조언을 받고서, 

탕씨는 그 말을 따라 드디어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참고 견디어 내었다.

 

매우 나쁜 환경 속에서 신심을 더욱 견고해졌다. 극락세계를 좋아하고, 사바세계를 싫어하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채식하고 염불하며 더욱 더 정진하였다.

 

1981년 음력 3월 14일에 점심을 올릴 때에는 여전히 건강하였다.

저녁 무렵에 이르러, 그 딸은 곧 양씨가 작은 방에서 앉은 채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특히 기이한 것은 의자에 등받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양씨는 몸을 편 채 단정하게 앉아 있었고, 얼굴색은 살아 있는 듯하였다.”

 

 

《왕생수문록往生隨聞錄》

 

출처: 탕씨湯氏, 인내하며 염불하여 앉은 채로 왕생하다!https://cafe.daum.net/amtwjungjong/etrD/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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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도 부처님의 구제를 가로막지 못한다

---(석연명 구술, 석정종 정리. 2001년 5월)

 

담란대사의 [왕생론주] 첫 시작 부분에서 자력수행은 난행도라면서 다섯 가지 난점을 들어 설명하였는데,

그 중 세 번째가 무뢰한 악인이 타인의 수승한 공덕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 의미는 오로지 자력수행에만 의지할 뿐 아미타부처님의 원력의 섭지가 없다면

설사 법요를 잘 아는 지혜가 있고 대보리심을 발하는 자비가 있더라도 실천수행을 할 때,

악경(나쁜 경계) 악연(나쁜 인연) 악인 악업의 파괴를 당하면 모든 수승한 공덕을 성취할 수 없고 여전히 생사윤회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어서 염불왕생은 이행도로서 부처님의 원력에 승탁하기 때문에

일체의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고 걸림 없이 자재하게 왕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난행도의 세 번째 난점인 무뢰한 악인이 타인의 수승한 공덕을 파괴한다와 비교해 보면,

이행도인 염불법에서는 비록 악경 악연 악인 악업의 방해를 받을지라도 염불공덕이 다른 모든 공덕보다 뛰어나고 수승하여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자재하게 왕생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귀의 은사는 북경 범원사의 진명鎭明 노스님이시다. 나와 같은 고향인데 모두 사천성 재동현 사람이고 일생동안 오로지 정토수행만 하신 분이다.

1992년 내가 아직 출가하기 전이다. 나에게 전수염불을 권하기 위해 노장께서는 늘 나의 손을 잡고서 벽에 써져 있는 연지대사의 법어 한 단락을 가리키며 나에게 읽어주시곤 하셨는데, 지금까지도 그 법어를 기억하고 있다.

대장경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계 정 혜에 지나지 않는다. 염불이 바로 계 정 혜인데 어찌 따로 문장을 찾고 글귀를 쫓을 필요가 있겠는가!

세월이 신속히 흐르고 목숨 또한 견고하게 오래가지 못하나니, 모든 수행자들은 정업을 급선무로 삼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직접 나에게 당신이 어렸을 적에 고향 재동현 자강진에서 발생한

비록 악인의 파괴를 만났으나 여전히 염불왕생한 실제 사례를 말씀해 주셨다.

이 사례는 굉장히 설득력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깨우침과 신심을 줄 수 있기에 지금까지도 기억이 선하다.

다만 그 당시에 감동적인 이야기만 듣느라 당사자들의 이름에 대해 유심히 듣지 않았고, 또 스님께서 1996년에 왕생하셨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름에 대해 자세히 조사할 수가 없어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사천성 재동현에 농촌 부부 한 쌍이 있었는데, 나이는 대략 마흔 살 정도였고 자식은 없었다.

하루는 아내가 몹시 기뻐하며 집에 돌아와서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아주 기쁜 소식 하나를 말할께요!”

무슨 좋은 일인데?”

내가 오늘 사람들의 권유를 받았는데, 이제부터 채식하며 염불해서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려고요.”

 

평소에 부처님을 믿지 않았기에 금은보화와 같은 재물을 얻었다는 기쁜 일인 줄 알았던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듣고서 몹시 탐탁치 않게 생각하였다.

내 마누라는 반드시 나와 같아야지 어떻게 남들처럼 무슨 부처를 미신한단 말인가! 안 돼! 내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야겠어.’

남편은 마음속으로 작정을 하고 나서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둘은 한 밥솥의 밥을 먹는데, 당신이 채식을 한다면 설마 가마솥과 부엌을 따로 나눈단 말인가! 아무튼 나는 고기를 먹어야 하니까 당신이 나에게 시집와서 내 마누라가 된 이상, 내가 육식을 할 수 있게 해줘야 돼.”

걱정 마세요. 당신에게 피해주지 않을 테니까!”

 

아내는 식사 준비를 할 때 먼저 남편의 몫을 만들어서 밥상 위에 올려놓고 다시 본인 몫의 채식을 준비하였다. 이를 본 남편은 돼지기름 한 숟가락을 퍼서 아내의 채식에다 넣어 그녀가 깨끗한 채식을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매번 식사를 마치고 나서 일부러 입을 닦으면서 말하였다. “고기를 먹은 사람은 죄가 없지만, 고기로 요리를 만든 사람은 죄가 있어!” 이렇게 두 번 세 번 반복하자 결국 아내는 채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계획이 뜻대로 되자 매우 기뻐하며 입으로 중얼거렀다. “당연히 그래야지! 부부가 잘 살고 있는데 무슨 채식을 하고 무슨 염불을 한단 말이야! 부처를 믿으면 서로 할 말도 없게 되는데 얼마나 재미없을까!”

또 생각하기를, ‘채식은 내가 이미 막았으니까 이젠 염불을 못하게 할 방법을 찾아야겠디. 그런데 염불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걸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구나.’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마침내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바로 그거야! 내가 그녀에게 나쁜 일을 시켜서 죄를 짓게 만들면 분명히 염불도 못하게 될 거야 남편이 비록 부처님을 믿지 않았지만, 그래도 염불하는 사람은 선행을 닦고 공덕을 쌓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염불할 자격이 없는 게 아니겠는가! 채식을 못하고 좋은 일도 못한면서 염불만 한다면 부처님께서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을 테니, 그렇다면 그녀가 스스로 염불을 포기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뒤로 남편은 돼지를 잡아서 고기를 파는 일을 시작하였는데, 매일 이른 아침마다 강제로 아내더러 자신을 도와 돼지다리를 꽉 누르게 하였다. 아내는 어쩔 수 없이 무서워서 벌벌떨면서 돼지다리를 눌렀다. 돼지를 다 잡고 나서 남편은 또 일부러 말하였다. “돼지를 잡은 사람은 죄가 없고, 돼지를 누른 사람은 죄가 있어!” 이 말을 들은 아내는 마치 간장이 찢어지는 듯 가슴이 아팠다.

정말로 그날부터 아내의 염불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영험한 이 방법이 마음에 든 남편은 매번 돼지를 잡을 때마다 예전대로 아내에게 돼지다리를 누르게 하였다. 그 뒤로 돼지가 죽어가며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염불소리를 대신하였으며, 다시는 아내의 염불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이렇게 3년이 지난 어느 날, 아내는 집안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고 가지런하게 정리를 하였는데, 마치 명절을 보내는 것처럼 한껏 기뻐하였다.

남편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물어보았다. “당신의 행동을 보니 마치 먼 길을 떠나려는 것 같은데, 대체 뭘 하려는 것인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고요.”

아내의 말을 들은 남편은 무슨 말인지 몰라서 다시 물었다. “당신의 부모님은 일찍 다 돌아가셔서 친정집에는 이미 사람이 없어! 여기가 당신 집인데 어느 집으로 돌아간다는 거야?”

당신에게 솔직히 말하겠는데, 내가 돌아갈 집은 당신이 말하는 집이 아니라, 서방극락세계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당신이란 사람은 심보가 너무 나빠서, 내가 본래 채식하는 염불인이 되고 싶었는데 채식을 못하게 만들었고, 채식을 못하더라도 염불만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신은 또 나더러 당신을 도와 돼지다리를 누르라고 했어요. 게다가 매번 돼지를 잡은 사람은 죄가 없고, 돼지를 누른 사람은 죄가 있다고 말했으니, 일부러 내가 염불을 못하게 만들 작정이었어요.

나는 당신의 심보가 말로 타이를 수 없을 만큼 고약하다는 것을 보고, 다시 무슨 나쁜 일을 저지를지 몰라서 다시는 당신이 보는 앞에서 염불하지 않았어요. 요 몇 년 동안 나는 줄곧 마음속으로 염불하면서 기도했어요. 돼지야! 내 죄업이 너무 두터워서 너를 구해줄 수 없으니, 아미타부처님께서 빨리 너를 정토로 데려가도록 해야겠다! 그러면서 돼지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 염불을 했지요.

그러나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은, 요 몇 년 동안 내손으로 눌렀었던 돼지들이 전부 이미 극락세계에 왕생을 했다는 거예요. 내가 그들에게 염불을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3일 뒤에 그들 모두 다 아미타부처님과 함께 와서 나를 영접하여 서방극락세계로 왕생하겠다고 했어요.“

 

남편이 들어보니 그야말로 허황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아내의 정신이 잘못되었나 싶어서 손으로 아내의 이마를 만져보며 말했다. “지금 고열이 나서 혓소리하는 거 아니야? 아니면 3년 동안 염불을 못해서 답답해 미친 거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내가 모를까봐! 내가 돼지를 잡을 때 당신이 다리를 눌러놓고선, 그러고도 극락세계에 간다고?”

남편은 아내의 말을 우스갯소리로 여기면서 밖에 나가 온 동네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 마누라가 돌았나봐. 자기가 3일 뒤에 무슨 극락세계를 간다도 말하질 않나, 또 돼지들도 극락세계에 갔는데 다시 부처와 함께 와서 자기를 데리러 온다고 하질 않나. 정말 금시초문이야. 어느 누구도 죽는 걸 원치 않고 모두 잘 살고 싶어 하는데, 무슨 사람이 그것도 기쁘게 죽으려 한단 말인가!”

호기심이 맣은 시골사람들이라 이 말을 듣고는, 모두 그때 가서 도대체 무슨 일인지를 구경하고자 하였다.

 

3일 째 되는 날, 기상을 하자마자 온 방안에 가득한 기이한 향내를 맡은 남편은 아주 궁금하여 온 집안을 살펴보았으나 이 향기가 어디서 나온 것이지 알 수가 없었다. 문득 오늘이 바로 아내가 간다고 했던 날이라는 생각이 났다. ‘설마 정말로......’ 몰래 아내를 쳐다보니 몸치장을 하고 있는 것외에 별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별다른 점이 없는 가운데 계속 일종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가 그로 하여금 평소와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하였다. “내 평생 마누라의 말을 진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오늘만큼은 한 번 믿어보자. 도대체 어떻게 극락세계 고향으로 돌아가는지를 봐야겠다! 그래서 남편은 계속해서 은밀히 관찰을 하였다.

마을에서 구경을 하려던 사람들도 당연히 그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다. 내 고향의 집은 모두 사합원 형식의 집들인데, 이날 아침부터 길을 지나가는 척하면서 문틈과 담 위로 머리를 내밀어 들여다보는 이들이 있었다.

 

몸치장을 마친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의자 하나를 들고 문 앞의 중앙에다 놓고 앉았다. 얼굴은 구경꾼들을 향하였고 두 발은 가지런히 내려놓았으며 두 손은 합장하고 눈을 감고서 염불하였는데, 열 번도 채 안 돼서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앉은 자리에서 바로 왕생하였다.

이를 지켜 본 남편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한동안 멍청히 바라보기만 하였다. 본래 아내가 말로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정말로 자신을 버리고 갈 줄이야!

생생하게 갑자기 닥쳐온 눈앞의 현실은 그로 하여금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하였다 순간적으로 부처님의 위대함과 부처님께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한 가닥 번쩍이는 광선처럼 그의 마음속 깊이 비쳐 들어, 자신이 잔인하게 생명을 죽이고 남의 수행을 파괴하며 부처님을 비방하고 믿음이 없는 등등의 죄악을 남김없이 환하게 드러냈다. ‘!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곧바로 지옥에 떨어지지 않겠는가? 이제 어떡하지? 내 마누라도 채식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가 돼지를 잡을 때 그녀도 다리를 누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염불하고도 불국토로 갔으니, 그럼 내가 염불해도 갈 수 있지 않겠어! 안 돼! 나도 더 이상 이 일을 해서는 안 되겠어. 지옥을 간다는 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야, 나도 내 마누라를 따라가야겠어.’

그 뒤로 남편도 염불인이 되었다.

 

나는 지금 그 당시 들었던 풍성한 법의 요리를 동행 염불하는 사람들에게 남김없이 바쳐서, 여러분들로 하여금 아미타부처님의 무조건적인 구제를 함께 누리도록 하였다.

극악한 사람도 염불하면 필히 구제하니, 이것이 바로 아미타 부처님의 자비이다!

 

(석연명 구술, 석정종 정리. 2001 5)

 

 

출처: 악인도 부처님의 구제를 가로막지 못하다 순정시대 純淨時代 | 악인도 부처님의 구제를 가로막지 못하다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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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행문趙行汶거사, 숱한 고통 끝에 염불로 왕생하다

 

 

중국 청나라 조행문趙行汶 거사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작은 아버지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 작은 아버지 집안이 가난하여 여섯 살 때부터 일을 해야 했으며, 숙모한테는 갖은 서러움을 당하였다.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집안 형편 때문에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밥을 배불리 먹어 본 적이 없었다. 품성은 착하고 너그러워서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어떻게든 도와주려 애썼다.

 

28살 때 점포의 점원으로 취직이 되어 조금이나마 돈을 벌게 되었지만, 생활이 어렵고 궁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중국은 영국군이 쳐들어오고 태평천국운동이 일어나는 등 나라는 그야말로 대혼란의 시대였다. 굶주린 사람들이 사람을 죽여서 먹는가 하면 부잣집과 고관들의 집이 수시로 약탈당하였고 관리들의 부패와 학정은 극에 달하였다.

 

조행문 거사는 이러한 세상에서 살고픈 생각이 들지 않을뿐더러 결혼하겠다는 뜻도 접었다. 대신 아무런 연고도 없는 먼 지방에 가서 막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10여년을 갖은 고생을 하면서 돈을 모아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어느 날 모처럼 집에 있는데, 탁발을 하던 어떤 스님이 조거사를 보더니 혀를 차면서 불쌍히 여기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 거사가 그 연유를 묻자, 그 스님이 “당신을 보아 하니 많은 풍파를 겪었소 그려. 하지만 앞으로도 10년은 더 고생을 해야 할 상相이오.” 그러면서 “전생에 닦아 놓은 공덕이 거의 없어 그러는 것이오. 그런데 3생生 전에는 높은 벼슬살이도 하였고, 공덕도 제법 쌓아 놓은 걸 보니 말년에는 좋은 일이 있을 것이오. 마지막으로 일러둘게 있소. 틈날 때마다 부처님 이름을 부르시오. 이왕이면 나무아미타불이 좋겠소. 그러면 필경 감응感應이 있을 것이오. 그대가 심성이 착하여 남을 도와주길 애쓰니 하늘이 그대를 돕는 거라오.” 하였다.

 

조 거사는 그 스님의 말씀을 뼈에 새기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가면서 염불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모함으로 관청에 끌려가 매질을 당하기도 하였고, 산길을 걷다가 굴러 떨어지는 돌에 깔려 다리를 크게 다치기도 하는 등 고통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부처님 명호를 입에서 놓지 않았고, 그의 나이 62세가 되던 어느 날, 그는 자기가 죽을 날짜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게다가 호법신장들이 자기를 따라다니면서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를 보는 사람마다 그한테서 향기가 난다고 하였으며,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빛이 서려 있다고도 하였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더욱 열심히 부처님 이름을 불렀다.

 

임종이 다가오자 그는 모든 미련을 버린 채, 오직 부처님 이름만 불었다. 그리고 사람들한테도 부처님 이름을 늘 부를 것을 권하였다. 저 멀리서 부처님과 수많은 보살님들과 성중들이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광경이 보였다. 옆에서 수발을 들던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는 온화한 표정을 지은 채 조용히 떠났다.

 

출처: 조행문趙行汶거사, 숱한 고통 끝에 염불로 왕생하다https://cafe.daum.net/amtwjungjong/etrD/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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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달嚴智達 거사 왕생사적 기록

 - 보리원을 실천하여 온몸으로 범부에게 가르침을 보이시다

 

쓰촨四川/ 가련佳蓮

 

엄지달 거사()는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 조미료 본공장에서 퇴직한 근로자입니다. 

출신이 가난하였지만, 일찍 상근기를 갖추어 19세에 발심하여 오랫동안 채식을 하였고, 평생토록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20여 년간 일을 하면서 곳곳마다 몸소 모범을 보였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의 원망을 겁내지 않았습니다. 당장 손해를 보아도 보수를 따지지 않았으며, 매년 고루 좋은 평가를 받는 모범일꾼이었습니다. 한평생 근면 알뜰하였고, 소박하였으며, 몸가짐이 고상하고 깨끗하였습니다.

 

만년에 정토법문을 전수專修하였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것을 능히 참아내었고, 행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행하였으며, 복덕자량을 구족하였습니다. 임종에 정념이 분명하였고, 미소를 머금고 왕생하셨으니, 나이가 76세였습니다.

 

 

그녀는 1990년에 삼귀의를 받았고, 거사 보살계를 받았으며, 그 후 오계五戒를 엄수하였고, 십선十善을 봉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수행이 아직 궤도에 오르지도 못했고, 날마다 잡수雜修를 하여서 여러 경전과 주문을 염송하였으나 공부가 득력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1996년 정공 노법사께서 강해하신 대승무량수경大乘無量壽經 (무량수경 선본) 녹음테이프를 들은 후 문 으로 곧 깨달았고, 다른 경전과 주문을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매일 경전을 듣는 것 외에는, 곧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였고 8시에서 12시까지 수학하셨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기도일과 때 먼저 무릎 꿇고 아미타경을 한번 염송하고, 부처님 명호를 1만 번 소리내어 염하였으며, 연이어 대승무량수경 녹음테이프를 들었습니다. 

또 날마다 아침 4시에 바로 일어나 염불하였습니다. 연이어 식사를 하고 청소하며 집안일을 하였으며, 또 계속 경전을 들었습니다. 수년을 하루같이 여기고 한 시라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습니다.

 

경전을 듣고서 초보적인 명리(明理; 이치를 밝힘)를 통과한 후, 그녀는 정토법문은 부처님께서 말법시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양약임을 깊이 알았습니다. 날마다 한 부의 경전한마디 부처님 명호를 행지行持하여, 일문에 깊이 들어가 일생에 성취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어르신은 한평생 검소하고 소박하여 의주 행을 막론하고 물과 전기를 쓸 때 최대한 절약하였으며, 스스로 최저수준의 생활로 살아가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녀의 퇴직임금은 매월 4백여 원이지만, 매월 생활비는 1백 원을 넘지 않았습니다. 

남은 돈과 조카아들, 조카딸들이 효행으로 준 돈을 전부 자선사업을 하는데 썼습니다. 경전 인쇄와 방생은 물론이고 최대한 삼보에 공양하려고 했습니다. 아낌없이 주머니를 털어 남을 도왔습니다.

 

매번 1백 원이든 혹은 1천 원이든 지금까지 마음속에 두거나 입에 올린 적이 없었으며, 단지 몸과 마음으로 즐겁고 기뻐하였으며 만족스러운 느낌이 흘러넘쳤습니다. 

왕생하기 며칠 전, 그녀는 자신이 가진 나머지 돈 5천여 원 전부를 도반에게 좋은 일에 써달라고 인계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2백 원은 낙지樂至현 보국사報國寺에 주어 불사를 하였고, 2천원은 정공 노법사에게 공양하였습니다.

 

어르신은 재와 계를 청정히 수지하여 계정혜를 부지런히 닦았습니다. 1996년 그녀는 낙지현 보국사 창진昌臻 노법사에게 가서 팔관재계(八關齋戒 ; 여덟 가지 계행)를 전수받았을 때 수계를 결심하였고, 그 수승한 이익을 깊이 알고 나서 날마다 팔관재계를 목숨이 붙어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지하였습니다. 

계행戒行에 빈틈이 없었고, 일심으로 정진하여서 정혜定慧가 현발하였습니다. 마침내 언제 어디서나 한마디 부처님 명호가 뚜렷하게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욕망일체 망상을 일으키지 말고, 

법에 집착하지 말라(不起貪瞋癡欲諸想.不著色聲香味觸法)”,

 무량수경에서 말씀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녀는 모두 실천하고, 삼보의 가지加持를 깊이 얻어 지혜가 열렸습니다.

그녀는 본래 글자를 몰랐지만, 요 몇 년간  아미타경을 암송할 수 있었고, 불교 바로 알기(認識佛敎)와 정공 법사께서 강술하신 조모과송백화해朝暮課誦白話解를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한번 보면 다 알지 못하지만, 여러 번 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실로 불가사의한 감응으로 불법은 인생을 개선하는 진리임을 그녀가 검증해 보였습니다

 

 

계행을 수지하고 용맹정진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예전에 지은 죄업의 무거운 과보가 가벼운 과보로 바뀐 것을 느꼈습니다. 유방암을 5년 남짓 앓았으나, 오히려 놀랄만한 굳센 의지로 지금까지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견뎌내었습니다. 

특히 근래 2년간 경전 설법을 듣고 난 후에 그 이치가 갈수록 밝아지고, 그 마음이 더욱 열려서 철저하게 자신의 육체를 내려놓고 일심으로 극락정토에 나길 빌었습니다.

 

유방암을 5년 남짓 앓았지만 단호하게 수술을 받지 않았으며, 임종 전 반년까지 비밀을 지켰습니다. 종양 덩어리가 빠르게 커졌고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이 수차례 반복되어도, 그녀는 묵묵히 참아내고 일심으로 염불하였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고 그녀를 만나 검사를 받게 하니, 종양 덩어리는 어린아이 머리만큼 이미 크게 자라 있었고, 울퉁불퉁하고 평평하지 않았으며, 그 질은 단단했습니다. 터진 곳에서는 누른 물과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으며, 또 겨드랑이 아래 림프선으로 전이되었는데, 전이된 종양 덩어리는 비둘기 알만한 크기였고, 그 질은 단단했습니다.

 

당시 저의 마음은 찢어질 듯했습니다. 어르신이 이렇게 중한 병을 앓고도 이처럼 수행에 정진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야간에 통증으로 잠들 수가 없으면, 일어나서 요불을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통제나 진정제를 한 알도 먹지 않았습니다. 고통을 이 정도로 참아낼 수 있는 인내력을 가진 분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피와 살이 있는 범부로 누가 능히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상지(허리 위쪽 부분)을 들어 올릴 수도 없기 때문에, 일하면서 장애가 많았습니다.

 

저는 공경심과 다급한 마음과 견딜 수 없이 괴로운 심정으로, 낙지현 보국사 창진 노법사께 전화로 물어보았습니다. 

법사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욕상인(離欲上人 ; 욕심을 여윈 상인)께 항암약을 복용하라고 하세요.” 약물을 복용한 후 통증이 뚜렷이 경감되었고, 단지 이틀 만에 상지를 곧 완전히 위로 올릴 수 있었고, 림프선 전이된 곳은 뚜렷하게 축소되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삼보의 가피를 비시고, 이욕상인을 가지하여 주시길 기도하세요.” 어르신은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과거 생에 지은 업보가 현전하는 것으로, 내가 기꺼이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이 색신은 또 나()가 아닙니다.”

 훌륭한 불자로서 그녀는 진정으로 환아幻我가 공임을 간파하였고, 진정으로 나의 것을 완전히 내려놓았습니다. 

 

사형들은 가슴 아파하며, 그녀에게 이불모기장 등을 가져가서 세탁기로 씻으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그대로를 고수하면서,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불보살님께서 저에게 이 두 손으로 씻도록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저의 힘으로 씻는 것은 이미 오래전 변함없이 그대로입니다.”

 

그녀는 경건하고 정성을 다해, 끊임없이 요불염불하였습니다. 

종양 덩어리가 터져 피가 흘러 저고리와 바지가 흠뻑 젖을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문득 몸이 차가워지고 끈적끈적해졌음을 느끼고서 손으로 만져보면, 손에 가득 피로 물들었습니다. 그녀는 곧 저고리와 바지를 갈아입었습니다. 피 덩어리가 이미 옷에 덩어리로 응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손으로 씻었는데, 2시간이 되어서야 깨끗이 씻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빈혈이 왔고, 종양 덩어리는 늑막투골骰骨에 까지 전이되어 신경을 압박하여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수들이 강력히 권해서 마지못해 병원에 8일간 입원했다가 자발적으로 퇴원하였고, 일심으로 염불하여 부처님께서 접인하여 주시길 기도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진실한 현신 설법입니까! 우리처럼 그날그날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임종시에 그는 줄곧 사람을 따라 염불하였고, 멈추지 않고 부처님께 합장하며 인사하였으며, 입을 떼서 염불하였습니다.

2000 11 21 11시는 우리 동수들에게 영원한 기념일입니다. 그녀는 금빛 연화대에 올라서서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녀는 매우 편안하였고, 미소 가득한 얼굴로 우리들과 작별하셨습니다.

24시간 후 그녀를 위해 옷을 갈아입혔는데, 그녀의 정수리는 따뜻했고, 사지는 부드러웠으며, 눈썹은 검게 변해 있었습니다. 동수들은 그녀를 위해 5 7일을 조념하였습니다.

 

그녀는 한 부 무량수경, 한마디 나무아미타불 만덕홍명萬德洪名에 의지하여, 

40여 개월 가까이 오로지 부지런하고 진실한 수행(眞修)으로 성취하셨습니다.

 

그녀는 서면으로 위촉하였습니다.

 “저의 유골은 창진 노법사님께 부탁하여 보국사에 뿌려서 벌레들에게 보시하도록 하십시오.”

얼마나 위대한 정신입니까! 얼마나 숭고한 본보기입니까!

 

어떻게 보살께서 중생에게

여래지견을 열어보이시어 깨달아 들어가게 하실까?

이렇게 교화하신 자취를 드리우시어

몸으로 어리석은 범부를 가르치시는구나!

 

 

- 2001 12 불타교육佛陀教育 12기에서 옮겨 적다

출처: 엄지달嚴智達 거사 - 보리원을 실천하여 온몸으로 범부에게 가르침을 보이시다https://cafe.daum.net/amtwjungjong/etrD/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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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 中 길림성 장춘시 불서佛瑞 보살, 미소지으며 자재自在 왕생youtu.be/jEMi87jkBMQ

글쓴이: 무량수여래회-자항 김성우

 

 장춘시 불서佛瑞 보살,

미소지으며 자재自在 왕생

 

2019 10 27, 중국 길림吉林성 장춘시長春市의 불서佛瑞(속명 조문예祖文銳) 보살이

스스로 법복을 입고 침상에서 아미타부처님의 접인(接引)을 기다린 후, 미소를 띤 채 왕생극락하였습니다. 세수 52.

 

그녀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폐암과 난소암으로 투병생활을 해왔으며, 

스스로 이생의 고통을 끝내고 윤회를 벗어난 극락세계에서 성불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로지 아미타불 염불만 하면서 왕생을 발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왕생 시간을 미리 예지하고 편안하게 임종하였으며, 숨을 거둔 지 한참 후에도 온몸이 부드러웠다고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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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황타철(왕타철)의 염불왕생---(이야기모음)https://ntassabas.tistory.com/432

 

대장장이 황타철(왕타철)의 염불왕생---(모음)

대장장이 황타철 : 염불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다 / 원영대사 송나라 담주땅에 황타철은 대장쟁이 직업을 하여 식구 네 사람이 근근히 생계를 유지 해서 하루도 쉬지 못하고 심한 고생을 하였다

ntassaba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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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하여 서승(西昇)한 욱면비(郁面婢)

 

 경덕왕 대에 강주[康州; 지금의 전주로서 강주(剛州)로도 되어 있는데,

지금의 순안(順安)임]의 선사(善士) 수십 명이 서방정토(西方淨土)를 구하여 주(州)의 땅에 미타사(彌陀寺)를 창건하고 1만 일을 기약하여 계(契)를 하였다.

 

 그때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 욱면(郁面)이란 여종이 있었는데, 그의 주인을 따라서 절에 도착하여 뜰 가운데 서서 승려를 따라 염불을 하였다.

그런데 주인은 그가 일을 잘하지 않는다고 미워하여, 매일 곡식 2석씩을 주어서 하루 저녁에 찧게 하였다.

그러면 여종이 1경(更)(:19시~21시까지)에 찧기를 마치고, 절로 돌아와서 염불하기를[속담에 ‘내 일이 바쁘니 대가(大家)의 방아를 서두른다.’고 함은 대개 여기서 나온 듯함] 아침 저녁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녀는 뜰 좌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바닥을 뚫어서 새끼줄로 꿴 다음, 말뚝 위에 매달아서 합장하고 좌우로 흔들며 격려하였다.

 이때 하늘에서 외치기를, “욱면랑(郁面娘)은 법당으로 들어가서 염불하라.”고 하였다.

절 사람들이 듣고 여종을 권하여 법당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예(例)에 따라 정진하도록 하였다.

얼마 후 서쪽 하늘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오자, 여종이 솟아올라 지붕을 뚫고 나가 서쪽의 교외에 이르러서, 육신을 버리고 진신(眞身)을 드러내더니 연대(蓮臺)에 앉아서 광명을 내며 천천히 갔는데, 공중에서는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법당에는 지금도 뚫고 나간 구멍이 있다고 한다(이상은 향전임).

 

 

《승전》을 살피건대,

동량(棟樑) 팔진(八珍)이란 자는 관음의 현신(現身)으로서,

승도(乘徒) 1000명을 모아 무리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노력하고 하나는 정수(精修)를 하였다.

 

그 노력하는 무리 가운데, 일을 맡아보는 자가 계(戒)를 얻지 못하고 축생도(畜生道)에 떨어져서 부석사의 소가 되었다.

소는 일찍이 불경을 싣고 가다가, 불경의 힘을 입어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 여종으로 태어나니 이름을 욱면이라 하였다.

 

 욱면은 일이 있어서 하가산(下柯山)에 이르렀다가 꿈에 감응을 받아 도심(道心)을 발하였다.

아간의 집이 혜숙법사(惠宿法師)가 창건한 미타사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므로, 아간이 매양 그 절에 가서 염불을 하였는데, 여종도 따라가 뜰에서 염불을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하기를 9년째 된 을미년 정월 21일에, 예불하다가 지붕을 뚫고 나가 소백산에 이르러서 신발 한 짝을 떨어뜨리니 그 자리에 보리사(菩提寺)를 세우고, 산 아래에 이르러서 그 육신을 버렸으므로 그곳에 제2의 보리사를 짓고 그 전의 이름을 욱면등천지전(郁面登天之殿)이라고 하였다.

지붕에 뚫린 구멍이 10여 위(圍) 남짓 되었는데, 폭우와 눈이 내려도 새지 않았다. 후에 호사자(好事者)가 금탑(金塔) 1좌를 모조하여 그 구명을 막고 먼지를 받게 하여 그 신이(神異)를 기록하였는데, 그 방탑(榜塔)이 지금도 있다.

 욱면이 간 후, 귀진 또한 그의 집이 이인(異人)이 의탁하여 살던 집이라며 희사하여 절을 삼고 법왕사(法王寺)라고 한 후 전민(田民)을 주었는데, 오래 후에 폐허가 되었다. 그러다가 대사 회경(懷鏡)이 승선(承宣) 유석(劉碩), 소경(小卿) 이원장(李元長)과 함께 발원하여 중건하였는데, 희정이 몸소 토목일을 맡았다.

 

 처음 재목을 옮기는데 꿈에 노인이 삼으로 엮은 신과 칡으로 만든 신을 각각 한 켤레씩 주고, 또 옛 신사(神社)에 가서 불리(佛理)를 유시하였으므로, 그 옆의 재목을 베어 5년 만에 일을 마쳤다. 또 노비를 더 주어 동남의 유명한 가람이 되었는데, 사람들이 회경을 귀진의 후신(後身)이라고 하였다.

 평론하기를, 향리의 고전을 살피건대 욱면은 바로 경덕왕 대의 일인데, 징[徵: 징은 진(珍)의 오자인 듯하며 아래도 같음]의 본전에 의거하면 원화(元和) 3년 무자, 즉 애장왕(哀莊王) 때라고 하였으니, 경덕왕 이후 혜공(蕙恭)․선덕(宣德)․원성(元聖)․소성(昭聖)․애장 등 5대를 거쳐서 모두 60여 년이다. 징(徵)이 먼저요, 욱면이 나중에 되어 향전과 서로 다른데, 그러나 의심되는 대로 둘 다 기록해 둔다. 다음과 같이 찬한다.

 

 서쪽 이웃 고사(古寺)에 불등(佛燈)이 밝은데

 방아찧고 돌아와서 예불하니 밤 2경이네.

 스스로 한 염불소리로 부처가 되길 기약하며

 손바닥 뚫어서 새끼줄 꿰니 형체를 잃어버렸네.

 

[출처] 염불하여 서승(西昇)한 욱면비(郁面婢)|작성자 미타행자

출처: 염불하여 서승(西昇)한 욱면비(郁面婢) :(삼국유사 감통 제7)https://blog.naver.com/muju5/5004468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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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좌탈입망(坐脫立亡), 염불 왕생한 정보살

 

충남 연기군 서면 봉암리에 정보살이 살고 있었다.
지금부터 36년전 월현사에 찾아와서 스님께 하는 말이

"나는 자손도 없이 늙은 영감하고 사는데 영감도 오래 못 살 것 같고, 내가 만약 늙고
병들어 오래 고생한다면 물한모금 떠 넣어줄 사람도 없는데 누가 병간호를 하며, 제일
큰 일은 죽음인데 어떻게 해야 죽을 때 남의 신세지지 않고 고생않고 자는 듯이 가야
할텐데, 그러한 방법은 없습니까?’ 하고 어쭈었다.

월현사 스님은 부처님 말씀에 ‘생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하시며,
"아미타경에 보면, 누구를 막론하고 나무아미타불 열번만 불러도 생사를 해탈하고
왕생극락을 한다고 하였으니,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서쪽을 향하고 합장하고 서서
나무아미타불을 열번 부르고 자신의 왕생극락을 축원하며,
이렇게 죽는 날까지 일생동안 염불한다면 임종시에 고생하지 않으며 아미타부처님이
연화대로 모셔간다’고 일러 드렸다.

정보살님은 36년간을 염불을 하며 근래에는 법회도 열심히 잘 나오시고, 식사도 잘하고,
건강을 유지하였다. 그러던 중 90세 되던 1994년 12월 24일 오전 12시경, 이웃집 사람이
부엌에 앉아있는[좌탈입망(坐脫立亡)] 모습이 이상하여 가서 불러보니 대답이 없기에

만져보니 수족이 차고 정신이 없었다. 구급차를 불러와 진찰을 하였다. 진찰한 의사는
‘약 한시간 전에 심장이 멈추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죽기를 원하고,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한 공덕으로 누구에게도 괴로움을 끼치지 않고,
한시간 만에 이 세상을 고통없이 떠난 것이었다. 월현사 신도들과 함께 장례도
잘 모셔드리고, 칠재와 49재를 성대히 잘 지내드렸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염불공덕이며 부처님의 원력이라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누구를
막론하고 무슨 소원이든 원을 세우고, 지성으로 노력만 한다면 백발백중 다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하셨다. 공은 들이지 않고 공짜로 바라기만 하니 소원이
성취 안되는 것은 정한 이치다.

사람들은 이승살이는 연구하고 노력하면서도 저승살이는 소홀히 한다. 저승살이는
선사공덕을 많이 행하고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염불한다면, 세세생생 좋은 국토에
태어나 좋은 인연을 만나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살도를 행하여 마침내
자성미타를 성취하게 된다.

‘나무아미타불’을 열번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 극락에 왕생하며, 아미타경 한번 읽은
공덕으로 멀거나 가까운 일가 친척들이 극락왕생하고, 아미타 경을 수지 독송한다면
8만 4천 지옥문이 부서지고, 8만 4천 자비광명을 얻어 3계 4생 6도 중생이
마침내 부처를 이룬다고 하였다.

유형태로 제일 큰 것은 바다요,

무형태로 제일 큰 것은 허공이며,

공덕중에 제일 큰 공덕은 아미타경을 수지독송함이라.

나무아미타불을 일생동안 염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큰 공덕은 없을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출처 -- 
http://www.manbul.tv/subject03_03_09.html

 

출처: 주변에서 좌탈입망(坐脫立亡), 염불 왕생한 정보살https://cafe.daum.net/amtb/ZEF/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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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육랑의 극락왕생

 

중국 원나라때 서호지방에 살았던 도씨집안의 십육랑은 26세의 젊은 나이로 남편과 사별을 하였습니다. 아이마저 없었던 그녀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 멍하니 살다가, 부근 사찰에 계신 스님의 권고로 아미타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혼자만의 삶이 가져다주는 외로움,두려움,슬픔 등을 아미타부처님께 모두 바치고 의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아미타경을 한 번씩 읽었습니다. 그리고 틈나는대로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1년 가량 된 어느 날, 흰 옷을 입은 노인이 흰 연꽃 한 송이를 들고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너에게 먹이기 위해 이 꽃을 가지고 왔다. 어서 먹으려무나."

 

십육랑은 공손히 꽃을 받아먹고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이 가뿐하고 마음이 즐겁기 짝이 없었습니다. 홀로 된 이후 언제나 자기를 짓누르고 있던 외로움,두려움,슬픔 등도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은 십육랑은 자기의 방에 아미타불상을 모신 다음 더욱 열심히 아미타경을 읽고 나무아미타불을 염하였습니다. 그런데 만 3년이 되는 날, 방안에 모셔놓은 아미타불상이 방광을 하더니, 경상 위의 아미타경에 불덩어리 같은 것이 놓여 있었습니다.

 

십육랑은 경이 타는 줄 알고 황급히 불을 끄려 하였으나 꺼지지 않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은 한 알의 사리였습니다.

 

그날 이후부터 십육랑에게는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였습니다. 그녀는 항상 부드러운 미소와 따스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아미타불을 염할 것을 권하며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었을 때 주위 사람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극락세계의 아미타부처님께로 갑니다. 부디 염불을 잘해서 극락세계의 연화대에서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그리고는 단정히 앉은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출처: 김 현준저 도서출판 효림발행 미타신앙,미타기도법

 

출처: 십육랑의 극락왕생https://cafe.daum.net/amtb/ZEF/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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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입에 염불하니... 이렇게 쉽게 생사해탈하는 법이 시방세계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노는 입에 염불하면...


금강산 유점사에 사시는 어느 스님 한 분이 길을 가다 보니
나이 드셔서 얼굴에 검버섯이 피고, 눈에는 촛점을 잃고
마치 가실 날만 기다리는 듯한
돌담 밑에 쪼그리고 앉은 노보살 한 분을 만납니다.
스님은 측은한 생각이 들어
하루 왠 종일 저렇게 앉아 계시다가 저승사자가 오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따라 나서실 것이 딱해
염불을 가르쳐 드리려 마음을 먹습니다.
보살님! 보살님!
몇 번을 불러도 미동도 하지 않던 보살님은
한참만에야 고개를 돌려 스님을 봅니다.


“보살님은 어찌 이러고 앉아 계십니까. 가족들은 어디 가고요.”
스님이 말을 붙이니 노보살은 초점이 없는 눈동자를 크게 해
말 붙이는 이가 누구인가를 확인하려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아니 웬 스님이 내게 이렇게 말을 거시나요.
나는 자식마저 집을 나가서 생사도 모르고
아무 낙이 없어 이제 갈 날만 기다리는 사람이요.”
노보살은 관심이 없다는 눈치입니다.


스님이 말했습니다.
“혹시 보살님 소원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그러자 대답할 것 같지 않은 노보살이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저 자는 듯이 가는 것이 소원이요,
하루라도 빨리 가서 먼저 간 우리 집 양반 만나는 것이 소원이요.”
“그런 소원이 있으면 왜 소원을 이루려는 노력은 안 하세요.”
“거기에 무슨 노력이 힘이 된다 말입니까.”
“하하, 보살님 옛말에 노는 입에 염불을 한다는 소리를 들어 보셨을테니
지금부터라도 염불을 하여 보세요.”


“나는 염불할 줄도 모르고 어깨며 허리며 안 아픈 데가 없는데다
염불할 기력마저도 없으니 모든 일이 다 허사로 밖에는 안 들립니다.”
“그럼 염불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면 염불을 해 보실 생각은 있으신가요?”
그러자 노보살은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립니다.
“그럼 제가 염불하는 방법을 일러 드릴테니 잘 따라 들으시고 시키는대로 하세요.
보살님 생일이 언제인가요?”
“시월 초이레지.”
“그러시군요.”


“그럼 이제부터는 내가 염주를 하나 드릴테니
염주를 한 알 굴리면서 이렇게 염불하여 보세요.
어깨가 몹시 아프시면 금강산 어깨보살 나무아미타불.
시월이라 초이렛날 나무아미타불.
자는 듯이 데려가소 나무아미타불.
허리가 아프실 때는 금강산 허리보살 나무아미타불.
시월이라 초이렛날 나무아미타불.
극락세계 가옵소서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몇 번이고 일러 드리고 스님은 길을 떠나고 그날 이후로
노보살 홍천댁은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두통보살, 치통보살, 다리보살 해가면서
나무아미타불 염불이 입에서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이렇게 염불을 하기 시작하면서 무엇인가 목적이 생기고 마음을 써 가니
서서히 홍천댁은 기력을 찾고 염불 공덕으로 소식이 없던 자식도 기별이 오고,
금방이라도 돌아 갈 것 같던 보살님은 십여 년을 건강하게 잘 사시다가
시월이라 초이렛 날 목욕재계를 하고는,


나 이제 갈라네
동네 사람들아 나무아미타불.
열심히 염불하여 나무아미타불.
서방정토 극락세계 나무아미타불.
우리 같이 만나보세 나무아미타불,


하고는 정말 자는 듯이 몸을 벗으니, 방안에는 처음 맡는 향내가 진동을 하였답니다.
중생들이 무량겁을 윤회하다가
이렇게 쉽게 생사해탈하는 법이 시방세계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중생들이 쉽게 윤회를 벗어나 생사해탈할 수 있는 것은
아미타부처님이 조재영겁兆載永劫(무한 겁의 세월)동안 난행고행하셔서
그 공덕을 우리들에게 회향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공경심으로, 감은심으로
가장 환희롭게 노는 입에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면 불가사의한 기적이 열립니다.
만덕홍명 나무아미타불 염불!!!
- 해월스님 글입니다

 

출처: 노는 입에 염불하니... 이렇게 쉽게 생사해탈하는 법이 시방세계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http://cafe.daum.net/MRSB/RCsf/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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