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병을 고치지 않고, 극락왕생 발원하다 ---(사례모음)
[정전스님 법문]
왕채근의 언니의 극락왕생
나의 속가 집은 감숙성 휘현 유림진에 살고 있다. 같은 동에 사는 왕채근 노거사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는데, 독경과 송주·몽산시식·법기 두드리고 염불하는 것·토지신과 조왕신을 알맞은 위치에 자리잡게 하는 것 등 모르는 것이 없었으며, 또 늘 『대비주』를 지송하여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주는데 아주 영험이 있었다. 오가는 스님들도 자주 그녀의 집에 들렀었고, 나도 어려서부터 그녀를 따라 불법을 배웠다.
왕거사에게 언니(이름은 이미 잊었음) 한 명이 있었는데, 우리와 10리 정도 떨어져있는 강구촌에서 살았다.
그녀는 글을 몰랐고 오로지 염불만 하였는데, 아주 정성스러워서 매번 부처님 전에 꿇어앉아서 염불하였다. 설사 마지막에 병이 위중하여 걸을 수 없음에도,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부처님께 예배를 하였다.
1987년 음력 2월 5일, 왕거사는 당신의 언니한테 가서 함께 염불을 해주자며 나를 불렀다. 왜냐하면 왕거사의 언니가 식도암에 걸려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거사의 언니가 왕거사에게 말했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관세음보살님께서 염수병을 들고 나에게 염수링거를 맞으라고 했다.
내가 보살님께 ‘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노릇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괴롭습니다. 저는 더 이상 치료를 받고 싶지 않습니다. 보살님께서 좀 일찍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더니,
보살님께서 ‘좋다! 그럼 2월 초파일 아침 5시에 너를 데리러 오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이틀간 나와 함께 지내면서 염불해줬으면 한다”
이 말을 들은 왕거사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나는 독경과 송주 뭐든지 다 할 줄 아는데도, 왕생에 대해 아직 확신이 없다.
그런데 일자무식한 언니는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이 오로지 아미타불만 부를 줄밖에 모르는데, 어떻게 미리 갈 시간을 알 수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언니를 좀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도 그렇지 않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서 손자에게 밥을 해줘야한다는 핑계로 남지 않았다.
초파일날 아침에 왕거사의 언니가 딸에게 말했다. “네가 빨리 가서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절을 하라. 관세음보살님과 대세지보살님께서 나를 데리러 오셨다”
그래서 딸이 향을 피우러 갔다. 향을 피우기도 전에 벌써 방안에 짙은 향냄새가 났다.
향을 다 피우자 왕거사의 언니가 물었다. “지금이 몇 시냐?”
딸이 거짓말을 했다. “이제 겨우 4시가 넘었으니 아직 5시가 안 됐어요”
이에 그녀는 “거짓말하지 마라. 시간이 다 되었으니 나는 가야겠다”라고 말하고는, 몇 마디 염불을 하고 나서 곧 숨이 끊어졌다.
누가 소식을 전하러 오자 왕거사는 몹시 후회하였다. 그녀의 언니를 얕보다가 마지막 가는 길에 언니를 배웅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감개하여 말했다. “나의 언니는 일생동안 좋은 사람이었지. 남의 덕을 보려하지 않았고, 일자무식하여 오로지 한 구절 명호만 부를 줄 알았는데 이렇게 좋게 가셨다!”
왕거사의 언니가 왕생한 뒤, 딸이 줄곧 그녀가 보고 싶어서 늘 염불하면서 눈물을 흘렸었다. 하루는 꿈속에서 어머니가 사자를 타고 구름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덥석 어머니의 다리를 잡고 울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너도 착실하게 염불을 잘 하거라. 3년 뒤에 내가 너를 데리러 오겠다”라고 말하고는 그녀를 밀어내고 사자를 타고 날아가 버렸다.
꿈에서 깨어난 딸은 너무 놀라서 “제 아이가 아직 어려서 3년 후에 갈 수가 없어요. 애가 크면 그때 갈게요”라고 말했다.
이제 벌써 15년이 지나 애도 다 컸지만 그녀는 아직 남아있다. 서방정토에 미리 다 예약해놓은 자리를 본인의 어머니가 직접 데리러 오겠다고 시간까지 정해놓았기 때문에 대답만 하면 될 텐데 그녀는 정토에 왕생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세상에 남아서 고통을 받고 있으니 정말로 너무나 어리석었다.
사실 어리석은 사람은 그녀뿐만이 아니다. 아미타부처님은 시방중생들의 진정으로 자비하신 부모이시고 극락세계에는 모든 사람들의 자리가 있다. 부처님께서 직접 “하루에서 이레 동안” 착실하게 염불하면 목숨을 마칠 때 직접 마중을 나오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단지 대답 한 마디하고 염불만 하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어코 믿지 않고 가기를 원치 않아서 공연히 윤회의 고통을 받고 있다. 또한 믿고 가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나치게 긴장한 탓에 자신이 염불을 잘 못해서 아미타부처님께서 데리러 오지 않아 왕생할 수 없을 거라고 걱정하고 있다. 이는 부처님이 우리의 부모이고 부처님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왕노거사 딸의 경우, 만일 가겠다고 대답하고 안심하고 염불만 하였다면, 3년 뒤에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데리러 오지 않았겠는가? 정말로 전혀 불필요한 걱정이다.
작년 봄에 내가 속가로 돌아갔다가 왕채근 거사를 만나봤는데, 거의 80세가 다 되어 정신도 이미 맑지가 않았다. 그래서 왕거사에게 “거사님은 연세도 많으신데 전수염불을 하셔야 합니다. 다른 것은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타일렀더니, 왕거사는“오가던 스님들도 전부 다 이렇게 저를 타일렀지만 저는 여전히 다른 것을 버리기가 아깝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녀도 일자무식한 그녀의 언니가 전수염불하여 아주 좋게 간 것을 봤지만 본인은 지금도 여전히 잡행잡수를 버리기를 아까워하고 있으니 정말로 안타까울 노릇이다.
이것이 바로 범부의 마음이다. 자신의 생각에만 의지하고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에 의지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엔 그녀는 지금도 똑바로 알지 못하는데 나중에는 더더욱 그녀의 언니와 비교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도대사의 법어를 읽다가 ‘전수염불하는 자는 백 명이면 백 명이 왕생하고, 잡행잡수를 하는 이는 천 명 중에 한 명도 없다’는 대목에 이르러 문득 왕거사 자매가 생각난 것이다. (석묘진 구술, 석정종 필기 2001년 4월)
출처: 중생에게 중병이 들어 관세음보살님이 가피를 주시러 오셨을 때 중병을 고치지않고,
극락왕생을 발원하여 왕생수기 받고 극락왕생하다!!!https://cafe.daum.net/amtb/ZEF/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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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지대사 왕생집 (4~7) 제6권 악인의 왕생(惡人往生類) 연지대사 왕생집 (4~7) :: 인과응보 (tistory.com)
• 형가(瑩珂)
송(宋) 형가는 잡천(霅川)의 요산(瑤山)에서 배웠던 자였으나, 술 고기를 가리지 않았다.
어느날 홀연히 파계로 인하여 악도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함께 사는 자에게 부탁하여 계주(戒珠)선사가 펴낸 '왕생전往生傳'을 구해 읽었다. 한 분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머리를 끄떡거렸다.
그런 후에 방안에서 서쪽을 향해 선상(禪椅)을 놓고 음식을 끊어가면서 염불하였다.
3일째 되는 날, 꿈에 부처님이 “너는 10년을 더 살 수 있다. 우선 더욱 정업에 힘써야 한다.” 하였다.
그러자 가(珂)가 부처님에게 “설사 백년을 산다 해도, 이 세계는 탁악(濁惡)하여 정명(正命)을 잃기 쉽습니다.
원하는 바는 하루빨리 안양에 왕생하여, 여러 성인들을 모시고 싶습니다.”하고 아뢰었다.
“너의 뜻이 그렇다면, 3일 후에 반드시 너를 맞이하리라.”
그날이 되어 대중에게 '아미타경'을 독송하게 하고는,
“부처님과 대중들이 모두 여기에 오셨다”하고 고요히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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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淨土聖賢錄] 김광전金光前 장군과 부인 공씨龚氏의 염불왕생(무량수여래회 慈航 번역/더빙/편집)https://youtu.be/q5JoAL6ZLbo
무량수여래회-자항 김성우
#보리권속菩提眷屬왕생기往生記
무량수여래회 慈航 번역/더빙/편집
김광전 장군과 부인 공씨의 왕생
金光前。清族正黄旗人(清代的户口编制,用八种不同颜色的旗子加以区别)。起身于戎伍之间,平日若看见善事一定发心去做。并告诫一切士兵,不得随意杀人,不可奸淫任何一个妇女,不许掠夺任何一件财物,不准烧毁任何一间屋舍。
김광전金光前은 청족淸族의 정황기인(正黃旗人·청대의 호구 편성으로 8가지 색깔의 깃발로 구별)이었다.
군대의 무리 사이에서 출세하여, 평소 좋은 일을 보면 반드시 마음을 내어 행하였다. 또 모든 군사에게 임의로 사람을 죽이지 말며, 어떤 여자도 간음하지 말며, 어떤 재물도 빼앗지 말며, 어떤 집도 불사르지 말 것을 경고하였더라.
光前的妻子龚氏,也能识字诵经。清世祖顺治十年(西元一六五三年),随著军队出征到福建,取道经过杭州时,听闻具德和尚讲经说法于灵隐寺。金光前于是偕同妻子前往参访叩问,亲身蒙受具德和尚的开示,从此以后一心念佛而有所得。
김 씨의 아내 공씨龚氏도 글을 읽을 줄 알아 불경을 독송하였다.
청 세조 순치顺治 10년(서원 1653년), 군대를 따라 아내를 데리고 복건福建으로 출정하였다. 항저우를 지나다가 구덕具德 화상이 영은사靈隱寺에서 경법經法을 설법說法하는 것을 들었다. 이에 김 씨는 아내를 대동하고 참방하여 구덕 스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으며, 이후 일심염불一心念佛로 얻은 바가 있었다.
清世祖顺治十二年(西元一六五五年)夏天,返回北方之时,半途驻军于钱塘江的水边。金光前忽然现出病相,妻子龚氏准备为他延请医生。
청나라 세조 순치 12년(서원 1655년) 여름, 북쪽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전당강錢塘江 수변에 주둔하였다.
김 씨가 갑자기 병이 들자, 아내 공 씨가 의사를 불러주려 하였다.
但金光前则阻止她说:‘我以前曾经与你亲自去请教灵隐寺的具德和尚,而今正想作转身西方净土的打算,以求证明和尚所说的,还要医药作什么呢?’
그러나 김광전은 말리면서 아내에게 말하였다. “이전에 영은사의 구덕 화상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바 있었는데, 지금이 곧 서방 정토로 돌아가야 할 때인 듯 하오. 왕생극락으로 화상의 설법을 증명하려 하니, 약이 무슨 필요가 있겠소?”
龚氏于是大笑说:‘没有料想到夫君也修得此种境界。’
공씨는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부군께서도 이런 경지까지 닦은 줄 몰랐습니다.”
于是就叫人制造两个棺木,并说道:‘我与夫君您一起走,但是要稍晚一些,等到为您办完后事吧!’金光前听完这席话,即合掌而往生。
그리고는 사람을 시켜 두 개의 관을 만들며, 남편에게 말했다. “나도 부군과 함께 왕생하겠소! 다만 당신이 왕생한 얼마 뒤에 따라 가리다.”
김광전은 공씨의 말을 다 들은 후, 곧 합장한 채로 왕생극락하였다.
龚氏派遣使者到灵隐寺,请求为他们两人点灯,并且嘱咐要供斋饭僧修习忏法。
공씨는 영은사로 사자를 보내 연이어 왕생할 부부를 위해 등불을 켜달라고 부탁하고, 기도승에게 참회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到第七天完毕后,摒除断绝一切的饮食,日夜不睡觉休息,专志一心地念佛。
공씨는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7일째가 되자 모든 음식을 끊은 채 밤낮으로 잠도 안 자고 쉬면서 일심으로 염불에만 몰두하였다.
又经过七天,午后,龚氏看太阳很早就下山了,便靠著棺木而睡。一会儿,睡醒说:‘时候到了!’然后端坐,念佛而往生。(果报闻见录)
다시 7일이 지난 오후, 공씨는 해가 일찍 진 것을 보고 하산하여 관을 쓰고 잠을 잤다. 잠시 후, 잠에서 깨어나 “시간이 되었습니다!”하고는 단정하게 앉아 염불하며 왕생극락하였다.(과보문견록)
자비는 안락의 근원이자, 지혜가 머무는 곳이다. 잠시 머물다 다시 오지 않을 인생에게 의미를 갖게 한다.
论曰:‘王公大臣要悟入佛道,是比居士还要难。急求功名的人,必定以进取执著为首要。而沉溺于安逸快乐的人,必然以寂静修行为苦事。
『정토성현록』에서 논하였다.
왕공王公이나 대신이 불도에 깨달아 들어가는 것은 거사보다 더 어렵다. 공명을 급히 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집착하는 대상으로 향하는 것이 우선이다. 안일한 쾌락에 빠진 사람은 고요한 수행을 괴로운 일로 여기기 마련이기에.
若不是宿世种植的善因,并且坚持自己纯正的誓愿,哪里有不于修行之事畏难而退的呢?
숙세에 심은 선인(善因)이 아니라면, 자신의 순수한 서원을 굽히지 않고 수행하는 일에 어떻게 두려워하거나 퇴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像我们前面提到的诸公,不舍世间的尘劳,而一同归心于西方净土,这可说是现宰官身而说法的人了!
앞서 말씀드린 제공들처럼 세상의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서방의 정토에 함께 귀의했다는 것은 현재 벼슬아치의 몸으로 설법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至于如柳宗元、白居易、苏东坡、赵子昂等诸位贤人,曾经赞叹归依佛道,净土的因地是具足。
유종원, 백거이, 소동파, 조자앙 등 여러 현인들은 불도에 귀의하여 서방정토의 인지因地를 구족했다고 찬탄했다.
但是当临命终神识要脱离色身的时候,其感应的瑞相却很少听到。
그러나 임종시에 아뢰야식(神識)이 색신을 벗어나려 할 때, 그 감응의 서상은 잘 들리지 않는다.(서상이 드물다)
这实在是因为世智辩聪,而迷惑于种种的思想歧途之中;因为有贪爱执著、割舍不下而产生弊病。
세간의 지혜와 총명함 때문에 온갖 사상에 현혹되고, 탐욕과 애정, 집착을 버리지 못해 생기는 병폐다.
读书人的结习难改,从古至今都是如此。到了生死关头的时候,绝对是很难徼幸得以超脱生死的。往后的贤人君子,应当要知道引以为警戒。’
독서인의 안 좋은 습관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생사를 초탈할 수 있는 것은 결정코 어렵다. 앞으로의 현인ㆍ군자는 응당 경계할 줄 알아야 하리라.
220净土圣贤录:往生王臣第六 清 金光前、龚氏 转自《学佛网》,原文地址:http://text.xuefo.net/show1.asp?id=18...
--->(*참고 :)
대통령 여섯 분 장례담당 30년 장의사 장례명인의 이야기 :
이건희의 묘를 크게 하고 싶었던 이재용?…30년 염장이의 이야기https://youtu.be/qRva0FH458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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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 中 길림성 장춘시 불서佛瑞 보살, 미소지으며 자재自在 왕생youtu.be/jEMi87jkBMQ
글쓴이: 무량수여래회-자항 김성우
中 장춘시 불서佛瑞 보살,
미소지으며 자재自在 왕생
2019년 10월 27일, 중국 길림吉林성 장춘시長春市의 불서佛瑞(속명 조문예祖文銳) 보살이
스스로 법복을 입고 침상에서 아미타부처님의 접인(接引)을 기다린 후, 미소를 띤 채 왕생극락하였습니다. 세수 52세.
그녀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폐암과 난소암으로 투병생활을 해왔으며,
스스로 이생의 고통을 끝내고 윤회를 벗어난 극락세계에서 성불하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로지 아미타불 염불만 하면서 왕생을 발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왕생 시간을 미리 예지하고 편안하게 임종하였으며, 숨을 거둔 지 한참 후에도 온몸이 부드러웠다고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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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달嚴智達 거사 왕생사적 기록
- 보리원을 실천하여 온몸으로 범부에게 가르침을 보이시다
쓰촨四川/ 가련佳蓮
엄지달 거사(여)는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 조미료 본공장에서 퇴직한 근로자입니다.
출신이 가난하였지만, 일찍 상근기를 갖추어 19세에 발심하여 오랫동안 채식을 하였고, 평생토록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20여 년간 일을 하면서 곳곳마다 몸소 모범을 보였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의 원망을 겁내지 않았습니다. 당장 손해를 보아도 보수를 따지지 않았으며, 매년 고루 좋은 평가를 받는 모범일꾼이었습니다. 한평생 근면 알뜰하였고, 소박하였으며, 몸가짐이 고상하고 깨끗하였습니다.
만년에 정토법문을 전수專修하였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것을 능히 참아내었고, 행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행하였으며, 복덕자량을 구족하였습니다. 임종에 정념正念이 분명하였고, 미소를 머금고 왕생하셨으니, 나이가 76세였습니다.
그녀는 1990년에 삼귀의를 받았고, 거사 보살계를 받았으며, 그 후 오계五戒를 엄수하였고, 십선十善을 봉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수행이 아직 궤도에 오르지도 못했고, 날마다 잡수雜修를 하여서 여러 경전과 주문을 염송하였으나 공부가 득력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1996년 정공 노법사께서 강해하신 『대승무량수경大乘無量壽經』 (무량수경 선본) 녹음테이프를 들은 후 문聞ㆍ사思ㆍ수修 행行으로 곧 깨달았고, 다른 경전과 주문을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매일 경전을 듣는 것 외에는, 곧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였고 8시에서 12시까지 수학하셨습니다.
아침ㆍ저녁으로 기도일과 때 먼저 무릎 꿇고 『아미타경』을 한번 염송하고, 부처님 명호를 1만 번 소리내어 염하였으며, 연이어 『대승무량수경』 녹음테이프를 들었습니다.
또 날마다 아침 4시에 바로 일어나 염불하였습니다. 연이어 식사를 하고 청소하며 집안일을 하였으며, 또 계속 경전을 들었습니다. 수년을 하루같이 여기고 한 시라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습니다.
경전을 듣고서 초보적인 명리(明理; 이치를 밝힘)를 통과한 후, 그녀는 정토법문은 부처님께서 말법시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양약임을 깊이 알았습니다. 날마다 한 부의 경전ㆍ한마디 부처님 명호를 행지行持하여, 일문에 깊이 들어가 일생에 성취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어르신은 한평생 검소하고 소박하여 의ㆍ식ㆍ주 행을 막론하고 물과 전기를 쓸 때 최대한 절약하였으며, 스스로 최저수준의 생활로 살아가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녀의 퇴직임금은 매월 4백여 원이지만, 매월 생활비는 1백 원을 넘지 않았습니다.
남은 돈과 조카아들, 조카딸들이 효행으로 준 돈을 전부 자선사업을 하는데 썼습니다. 경전 인쇄와 방생은 물론이고 최대한 삼보에 공양하려고 했습니다. 아낌없이 주머니를 털어 남을 도왔습니다.
매번 1백 원이든 혹은 1천 원이든 지금까지 마음속에 두거나 입에 올린 적이 없었으며, 단지 몸과 마음으로 즐겁고 기뻐하였으며 만족스러운 느낌이 흘러넘쳤습니다.
왕생하기 며칠 전, 그녀는 자신이 가진 나머지 돈 5천여 원 전부를 도반에게 좋은 일에 써달라고 인계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2백 원은 낙지樂至현 보국사報國寺에 주어 불사를 하였고, 2천원은 정공 노법사에게 공양하였습니다.
어르신은 재齋와 계戒를 청정히 수지하여 계정혜를 부지런히 닦았습니다. 1996년 그녀는 낙지현 보국사 창진昌臻 노법사에게 가서 팔관재계(八關齋戒 ; 여덟 가지 계행)를 전수받았을 때 수계를 결심하였고, 그 수승한 이익을 깊이 알고 나서 날마다 팔관재계를 목숨이 붙어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지하였습니다.
계행戒行에 빈틈이 없었고, 일심으로 정진하여서 정혜定慧가 현발하였습니다. 마침내 언제 어디서나 한마디 부처님 명호가 뚜렷하게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탐ㆍ진ㆍ치ㆍ욕망ㆍ일체 망상을 일으키지 말고,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에 집착하지 말라(不起貪瞋癡欲諸想.不著色聲香味觸法)”,
『무량수경』에서 말씀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녀는 모두 실천하고, 삼보의 가지加持를 깊이 얻어 지혜가 열렸습니다.
그녀는 본래 글자를 몰랐지만, 요 몇 년간 『아미타경』을 암송할 수 있었고, 『불교 바로 알기(認識佛敎)』와 정공淨空 법사께서 강술하신 『조모과송백화해朝暮課誦白話解』를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한번 보면 다 알지 못하지만, 여러 번 보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실로 불가사의한 감응으로 불법은 인생을 개선하는 진리임을 그녀가 검증해 보였습니다.
계행을 수지하고 용맹ㆍ정진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예전에 지은 죄업의 무거운 과보가 가벼운 과보로 바뀐 것을 느꼈습니다. 유방암을 5년 남짓 앓았으나, 오히려 놀랄만한 굳센 의지로 지금까지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견뎌내었습니다.
특히 근래 2년간 경전 설법을 듣고 난 후에 그 이치가 갈수록 밝아지고, 그 마음이 더욱 열려서 철저하게 자신의 육체를 내려놓고 일심으로 극락정토에 나길 빌었습니다.
유방암을 5년 남짓 앓았지만 단호하게 수술을 받지 않았으며, 임종 전 반년까지 비밀을 지켰습니다. 종양 덩어리가 빠르게 커졌고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것이 수차례 반복되어도, 그녀는 묵묵히 참아내고 일심으로 염불하였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고 그녀를 만나 검사를 받게 하니, 종양 덩어리는 어린아이 머리만큼 이미 크게 자라 있었고, 울퉁불퉁하고 평평하지 않았으며, 그 질은 단단했습니다. 터진 곳에서는 누른 물과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으며, 또 겨드랑이 아래 림프선으로 전이되었는데, 전이된 종양 덩어리는 비둘기 알만한 크기였고, 그 질은 단단했습니다.
당시 저의 마음은 찢어질 듯했습니다. 어르신이 이렇게 중한 병을 앓고도 이처럼 수행에 정진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야간에 통증으로 잠들 수가 없으면, 일어나서 요불을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통제나 진정제를 한 알도 먹지 않았습니다. 고통을 이 정도로 참아낼 수 있는 인내력을 가진 분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피와 살이 있는 범부로 누가 능히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상지(허리 위쪽 부분)을 들어 올릴 수도 없기 때문에, 일하면서 장애가 많았습니다.
저는 공경심과 다급한 마음과 견딜 수 없이 괴로운 심정으로, 낙지현 보국사 창진 노법사께 전화로 물어보았습니다.
법사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욕상인(離欲上人 ; 욕심을 여윈 상인)께 항암약을 복용하라고 하세요.” 약물을 복용한 후 통증이 뚜렷이 경감되었고, 단지 이틀 만에 상지를 곧 완전히 위로 올릴 수 있었고, 림프선 전이된 곳은 뚜렷하게 축소되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삼보의 가피를 비시고, 이욕상인을 가지하여 주시길 기도하세요.” 어르신은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과거 생에 지은 업보가 현전하는 것으로, 내가 기꺼이 과보를 받아야 합니다. 이 색신은 또 나(我)가 아닙니다.”
훌륭한 불자로서 그녀는 진정으로 환아幻我가 공임을 간파하였고, 진정으로 「나의 것」을 완전히 내려놓았습니다.
사형들은 가슴 아파하며, 그녀에게 이불ㆍ모기장 등을 가져가서 세탁기로 씻으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그대로를 고수하면서,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불보살님께서 저에게 이 두 손으로 씻도록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저의 힘으로 씻는 것은 이미 오래전 변함없이 그대로입니다.”
그녀는 경건하고 정성을 다해, 끊임없이 요불ㆍ염불하였습니다.
종양 덩어리가 터져 피가 흘러 저고리와 바지가 흠뻑 젖을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문득 몸이 차가워지고 끈적끈적해졌음을 느끼고서 손으로 만져보면, 손에 가득 피로 물들었습니다. 그녀는 곧 저고리와 바지를 갈아입었습니다. 피 덩어리가 이미 옷에 덩어리로 응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손으로 씻었는데, 2시간이 되어서야 깨끗이 씻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빈혈이 왔고, 종양 덩어리는 늑막ㆍ투골骰骨에 까지 전이되어 신경을 압박하여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수들이 강력히 권해서 마지못해 병원에 8일간 입원했다가 자발적으로 퇴원하였고, 일심으로 염불하여 부처님께서 접인하여 주시길 기도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진실한 현신 설법입니까! 우리처럼 그날그날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임종시에 그는 줄곧 사람을 따라 염불하였고, 멈추지 않고 부처님께 합장하며 인사하였으며, 입을 떼서 염불하였습니다.
2000년 11월 21일 11시는 우리 동수들에게 영원한 기념일입니다. 그녀는 금빛 연화대에 올라서서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녀는 매우 편안하였고, 미소 가득한 얼굴로 우리들과 작별하셨습니다.
24시간 후 그녀를 위해 옷을 갈아입혔는데, 그녀의 정수리는 따뜻했고, 사지는 부드러웠으며, 눈썹은 검게 변해 있었습니다. 동수들은 그녀를 위해 5박 7일을 조념하였습니다.
그녀는 한 부 『무량수경』, 한마디 나무아미타불 만덕홍명萬德洪名에 의지하여,
40여 개월 가까이 오로지 부지런하고 진실한 수행(眞修)으로 성취하셨습니다.
그녀는 서면으로 위촉하였습니다.
“저의 유골은 창진 노법사님께 부탁하여 보국사에 뿌려서 벌레들에게 보시하도록 하십시오.”
얼마나 위대한 정신입니까! 얼마나 숭고한 본보기입니까!
어떻게 보살께서 중생에게
여래지견을 열어보이시어 깨달아 들어가게 하실까?
이렇게 교화하신 자취를 드리우시어
몸으로 어리석은 범부를 가르치시는구나!
- 2001년 12월 「불타교육佛陀教育」 12기에서 옮겨 적다
출처: 엄지달嚴智達 거사 - 보리원을 실천하여 온몸으로 범부에게 가르침을 보이시다https://cafe.daum.net/amtwjungjong/etrD/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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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빚 독촉을 염불로 해결하다.(상)
10년 전 2월 초순으로 기억된다. 대아의 용선사 주지스님과 대중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그분은 2월 29일 자기의 절에서 법문을 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나는 즉시에 갈 것을 약속하였다.
법회일에 나는 "무상지보"(無上至寶) 즉 극락세계의 삼존불의 그림과 염불하는 방법을 적어놓은
책과 정토법문에 관한 소책자들을 법문이 끝나고 골고루 나누어 주어
법회에 참여한 신도들과 좋은 인연을 지었다.
다음 해 2월 대중에 있는 영산사에서 7일 기도를 할 때였다.
그 날은 혜번스님이 담당하는 날이었다. 오후 3시 무렵 내가 염불당에서 염불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혜번스님이 내게 다가와 장삼을 슬쩍 당기는 것이었다.
나는 그를 따라서 밖으로 나갔더니 거기에는 50세 가량의 시골 부인이 한 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부인을 전혀 알지 못하겠기에, 물어보았다.
「당신은 어디에 살고 있으며, 무슨 일로 저를 찾습니까?」
그가 말하길...「저의 남편이 저에게 스님을 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아침 일찍 이 도시에 와서 사방으로 스님을 물어보았는데
어떤 분이 여기 계시다고 하여 이렇게 왔습니다.
한가지 일을 스님에게 알려드려서 당신의 은혜에 보답을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한 두 마디의 말로 끝나지 않을 것 같고, 또 영산사는 7일기도 중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도량에서 대화를 하기에는 불편하여 밖으로 나갔다.
그 부인이 말하길...「저는 대아의 부근 시골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스님이 작년 2월 대아의 용선사에서 법문을 할 때 저의 아들 뢰흥복도 그 자리에서 법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상지보"라는 소책자를 가지고 돌아오더니 그 날부터 불교를 믿고,
매일 예불과 염불을 "무상지보"의 방법대로 실천하였습니다.
아침과 저녁 뿐 아니라 거의 하루종일 낮과 밤 동안 부처님을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고,
마음도 부처님을 떠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너무나 신기하게 생각했다. 사바세계에 어떻게 이런 복 많은 사람이 있어서 한번 불법을 듣고, 곧바로 실천수행을 할 수 있었는지?
내가 다시 물었다.「당신 아들의 나이는 몇이며,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발심을 했는가?」
부인이 말하길...「저의 아들은 작년에 25세 였습니다. 그는 대학을 23세에 졸업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 폐결핵에 걸려서 매일 악을 먹고 침을 맞는 등 3년 동안 적지 않은
재산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염불을 시작한 뒤부터 몸은 비교적 건강해 졌고,
정신적인 것도 낙관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가끔 시내에 가서 불교서적을 구해보기도 했습니다.」
내가 또 물었다...「당신 집안에는 몇 식구가 살아요?」
부인이 말했다...「남편과 저 그리고 소실(첩)과 아들 이렇게 넷입니다.
아들이 병에 들자 우리 세 사람은 모두 정성을 다해서 간호하였고,
속히 완치 돼서 우리 세 사람의 의지처가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작년 12월 초순에 흥복이 갑자기 우리 세 사람을 함께 부르더니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님과 두 분의 어머님, 저는 오늘 낮에 서방극락세계로 가게될 것입니다.
당신들 세분은 절대로 상심하지 마시고, 아들 없는 것에 근심하지도 마세요.
우리 형님이 일본에 건너간지 수 십 년이 되어도 소식이 없었지만,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가정과 사업을 세우고,
결혼하여 아들이 있습니다. 형님은 2월 초순에 소식이 올 것이며,
일본과 왕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더 이상 적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의 남편이 말하길...『너의 몸이 이전에 비해서 아주 건강해 졌는데 왜 떠나려 하는가.
아미타불에게 너를 보호해줄 것을 기도할 것이니, 절대로 가려고 하지 말아라. 』
이때 흥복이 말하길...『나는 본래 빚을 받으러 온 것입니다.
당신들 세 사람은 과거에 저와 깊은 원한 관계를 맺었고, 저에게 많은 책무를 지고 있었습니다.
금생에 당신들의 아들이 돼서, 대학까지 나온 상태에서 바로 나쁜 병에 에 들었습니다.
3년 동안의 투병생활에 아직 책무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본래는 이 집과 소유한 땅도 다 팔아치우고 당신 세 사람이 완전히 걸인이 돼서 살아도
죽은 것만 못한 상태에 이르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목숨을 걸고 일심으로 염불하여 여러 생 동안 지었던 죄업을 소멸시키고,
극락세계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네 사람은 원한도 없고 빚도 없습니다.
당신들 세분도 지성으로 아미타불을 염하여 극락세계로 가십시오.
그런 다음 우리가 다시 만나면 영원히 함께 살면서 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히 기억해 주세요. 시간이 다 됐어요. "무상지보"를 이리 주세요.
당신들 세분도 저를 도와서 염불해 주세요.
그리고 울어서는 안되며, 저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지도 마세요.
등을 저에게 보이고 절대로 돌아보지 마세요. 저도 염불을 하겠습니다.』
흥복이 "무상지보"를 두 손바닥에 사이에 두고 합장하였고, 처음에는 큰 소리로 염불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따라서 염불했는데, 그가 돌아보지 말라고는 했지만 저는 가끔 슬쩍 슬쩍 돌아보았습니다.
대략 20분이 지나자, 흥복의 소리가 점점 줄어들더니 숨이 끊어질 무렵에 합장이 풀리고,
"무상지보"는 그의 가슴 앞에 떨어지고, 편안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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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빚 독촉을 염불로 해결하다. (하)
부인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말했다...
「저희 집은 방이 많아서 모두 여러 사람에게 세를 주었습니다.
본래 흥복이 폐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모두 전염될까보아 겁을 내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할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흥복이 임종할때의 모습을 지켜본 다음에 모두가 마음 한곳에 느끼는 바가 있었으며,
이구동성으로 불교의 영험이 불가사의 하다고 하며 이사가는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다만 그가 임종할 때 말한 큰형에 관한 이야기는 최근까지 우리들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일본에서 친척을 찾는다는 편지가 왔습니다.
참으로 흥복의 예언이 완전히 들어맞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남편이 말하길...
『만약 스님이 사람들에게 염불을 권하는 법문을 하지 않았다면,
흥복이 임종전에 어떻게 이 많은 인과의 일을 알 수 있었을 것이며,
원한을 해결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의 큰형이 일본에서 예언한 날에 맞추어 편지가 온 것을 보아
흥복이 유언한 일은 모두 믿을만 한 것입니다.』
저의 남편이 또 말하길...
『이후에 우리가 행복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스님의 공덕을 입은 것이니,
이 은혜와 이 정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데,
우선 스님을 찾아서 이 기이한 영험의 사실을 말씀드려서 기적을 알게 하고,
당신에게 기쁨을 전해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은정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내가 그 부인과 남편의 이름을 물었는데 그가 주소와 이름을 말했는데,
그동안 함께 듣던 혜번스님이 부인의 남편과는 가까운 친척이라고 말해서 한번 더 놀랐다.
우리 세 사람은 영산사의 담 밖에서 두시간 가량 시간을 보냈다.
이미 5시가 넘었다.
이상에 말한 두 가지의 이야기에서 확실히 아미타불이 계시며,
극락세계도 존재한다는 확신할 수 있다.
아미타불을 부르면 원수 맺은 업도 해결할 수 있으며,
다겁동안 지은 죄업도 소멸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미타경에 보면...『그 국토(극락세계)의 중생들은 항상 새벽마다 새 옷을 입고,
여러 가지 꽃을 모아서 다른 세계의 10만억 부처님을 공양올리고,
식사시간이 되면 본국으로 돌아간다.』라고 하였으니,
극락세계의 중생들은 왕생한 다음에 신족통(몸을 자유로이 움직이는 신비한 힘)을 얻기 때문에,
이 세상으로 자유롭게 올 수 있을 것이다.
더 자세한 일은 현명한 독자들이 나를 위하여 해석해 주길 바란다.
출처:대만의 염불 감응록 모음 http://cafe.daum.net/amtb/Jrdc/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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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중병에 시달리던 환자가, 단지 짧은 보름쯤 염불해서 극락왕생---(사례모음)https://ntassabas.tistory.com/570
신장이 망가진 사람에게 나타난 관세음보살의 나무아미타불 염불 권유와 염불치유감응 - 정전스님 법문(건천성불사법회)https://youtu.be/Xwg1sQnd_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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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혜일스님의 미타신앙 내력 :[관세음보살이 권한 가장 빠른 성불법] ---(관련모음)https://ntassabas.tistory.com/288
***왕생한 후, 가족을 구제하다---(모음)https://ntassabas.tistory.com/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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