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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절구루 죽투’의 일대기 -부탄의 현대 연화생대사심주 성취자 ---(관련모음)

아미연(阿彌蓮) 2019. 12. 4. 18:15

‘반절구루 죽투’의 일대기 -부탄의 현대 연화생대사심주 성취자 ---(관련모음)

 

 

***‘반절구루 죽투’의 일대기

-부탄의 현대 연화생대사심주 성취자

 

나는 나를 신앙하는 사람이나, 심지어 나를 신앙하지 않는 사람이나, 종래로 곁을 떠난본 적이 없다. 나의 자식들은 영원히 나의 자비심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연화생대사

이 문장은 부탄의 한 대성취자가 우리에게 말법시대 연화생대사의 수승한 법을 수지하여 성취한 일대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명불학원의 쏘다지캠보님께서 특별히 말씀하시기를: ‘오탁악세의 말법시대 자신의 수행이 순리롭게 성취되기를 바라거나,아니면 중생에 대한 이익이 원만하기를 바라거나,  일체 하는 일 모두는 모두 연화생대사의 가피를 떠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래는 정문입니다. 

 

 

  2006년 5월, 연화생대사의 성지인 부탄 경내에서, 두 눈이 실명한 한분의 성취자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고 금강가부좌의 자세로 안락하게 열반에 들었습니다. 

필자는 시일이 지나서 이 분의 사적이 세상에서 차츰 사라질까봐 졸열한 필치로나마 존자의 수승한 현현을 적으려고 합니다. 희망컨대 보고 듣고 느낀 분들께서 연화생대사님께 깊고 확실한 신심을 내시어 가피와 성취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 분 성취자는 부탄 국적의 인사로서 생전에 그를 아는 시람들은 ‘죽투’라고 불렀는데 즉 ‘성취를 이룬 사람’이란 뜻이지요. 또한 존자는 연화생대사의 심주를 염송하여 성취와 해탈을 이룬 연고로 당지 사람들도 그를 ‘반절구루 죽투’라고 했는데 즉 ‘연화생대사의 심주성취자’라는 뜻입니다.

외모가 평범하고 보기에도 옷차림이 어지러웠지만 내면은 신통 자재함을 얻은 성취자-‘반절구루 죽투’는 원래 두 눈이 실명한 사람이었지요. 그는 장애를 가진 걸인의 행색으로 부탄의 어떤 시내 장마당에서 떠돌아다녔습니다. 훗날 부탄 경내의 ‘밀주승승광명주사(密咒胜乘光明洲寺)’의 주지 우찐스승(乌金上师)과 쟝츄도제 른보체님께서 공동으로 발심하여 고달픈 생활도 달게 여기는 이분 성취자를 절에 모셔 공양하고 보살펴드리면서 최상의 복전으로 모셨습니다.

‘반절구루 죽투’의 시력은 천성적인 장애가 아니라, 듣건데 중년이 되었을 때 원한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저주의 주문을 받아 실명을 초래하게 되었답니다. 두 눈이 실명하기전, 그는 일개 평범한 농부였는데 신앙은 고향의 뵌교’였습니다. 연화생대사의 위대한 공적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으며, 심지어 한때는 우매한 사견으로 인해 악언과 비방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는 시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수많은 의사들에게 문진하였으나 별로 두움이 되지 않아, 여러 선지식들과 도반들에게 가르침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수행해야 실명된 눈을 회복할 수 있는지 고심하였지요. 드디여 어떤 선지식의 권고를 받아들여 ‘연화생대사 심주’의 염송을  유일한 수행으로 삼았는데, 끝내 놀라운 성취를 이룩한 것이었습니다.

‘죽투’는 연화생대사의 심주를 일심으로 수지한 후부터 연화생대사에 대한 신심이 차츰 무르익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두 눈이 실명한 연고로 낮과 밤은 그에게 있어서 별다른 차이가 없었기에, 그는 주야를 불문하고 심주염송에 정진하였습니다. 그가 심주 1억을 채웠을 때, 그가 평시 염송하면서 손에서 돌리던 전경륜에서 불가사의하게도 감로수가 흘러나왔습니다.

알다시피 손으로 돌리는 경륜의 성분은 건조한 두루마리 종이로 아무런 연고없이 물이 흘러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경륜에서는 이러한 기적이 일어난 것인데 ‘반절구루 죽투’의 진실한 수지 성과를 보여주었고 연화생대사의 수승한 가피를 현현하였습니다. 허나 그는 게을리하지 않고 계속 주문 염송에 정진하면서 정성 다해 연화생대사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반절구루 죽투’가 계속하여 3억의 심주 염송을 마쳤을 때 마치 환몽과도 같은 경계에서 연화생대사를 친견하게 되었고 수기를 얻어 불가사의한 성취를 얻었습니다. 
  연화생대사는 ‘반절구루 죽투’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약 네가 7년을 더 살게 되면 광명을 회복할 수 있다. 네가 실명을 한 원인은 예전에 뵌교를 신앙하면서 성자를 비방한 연고이기 때문이다. 비록 인연의 변화와 착란으로 인해 비록 나를 친히 보았더라도 장애가 뒤덮인 고로 인차 시력을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술한 원인으로 ‘죽투’의 두 눈은 그가 연화생대사를 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신기한 경계 속에서 연화생대사는 특수한 연기법으로 인해 그에게 반드시 한 구의 법관을 만들어 쓰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맹인인 ‘반절구루 죽투’는 그 어떤 사람의 도움도 없이 손수 동조각을 얻어 상술한 연화생대사께서 당부한 법관을 만들었습니다.
【도】‘반절구루 죽투’가 연화생대사께서 지시한 특수한 법관을 쓰고 방  문자들에게 염주가피를 하고 있습니다.

‘반절구루 죽투’의 내적 수행은 비록 연화생대사의 가피 속에서 수승한 신통을 가졌으나 외적으로는 실명의 장애를 가진 원인으로 그 어떤 사람들도 그를 살갑게 보살피려고 하지 않았지요. 그리하여 그는 부탄 경내의 ‘청’이라는 지방에 유락하게 되었는데 당지의 사람들은 그를 ‘연화생대사심주를 염송하는 라마’(역자주: 티벳어에서 ‘라’의 뜻은 윤회와 열반의 의지처로서 지혜의 지고지상을 의미하며 ‘마’는 일체 중생에 대해 어머니같이 자비롭게 대한다는 뜻으로 자비의 지고지상을 의미한다.)라고 했습니다.
‘반절구루 죽투’는 본인만이 아는 일종의 비밀스런 회차(回遮)(역자주:모든 부정적인 주문이나 에너지를 원래의 곳으로 튕겨 보낸다의 뜻)법을 알고 있는데 아마 연화생대사께서 친히 전수한 것 같습니다. 이 법은 신속하게 중병과 위험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지극히 특수하면서도 보기가 좀 딱하였습니다. 그것은 ‘반절구루 죽투’가 손수 일종의 ‘뚸마(多玛)’(식자:食子)를 만든 다음 특유의 의궤를 염송합니다. 그리고 옷을 다 벗고, 적나라한 나체의 몸으로 식자(食子)를 부근의 세갈래로 교차된 길목에다 내보내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지극히 불가사의하여 무릇 ‘죽투’가 직접 시행하기만 하면 모든 중병과 위험에 처했던 중생들이 재빨리 치유되거나 재난이 해소될 수 있었지요.
  이밖에도 매번 어떤 사람이 ‘죽투’에게 어떤 일에 대해 물을 때마다 그가 내린 점복의 예측도 다른 사람과 크게 달랐습니다. 그는 전혀 그 어떤 방
식의 점복 도구도 필요치 않았고 가르침을 청한 사람들의 군소리 들을 필요 없이 방문자가 오게 된 용의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사자가 처한 환경과 발생하게 된 일 및 당사자조차 모르는 내막을 말합니다. 이로부터 미루어보아 ‘반절구루 죽투’는 연화생대사의 가피로 이미 타심통을 얻은 것임에 분명하였고 이로 인해 자연적으로 ‘죽투(성취자)’라는 존칭을 얻게 되었습니다.
‘반절구루 죽투’는 내적 경계 속에서 비밀스런 성취를 이룩한 다음에도 굳이 생활적인 개선을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난과 어려움에도 걸림없이 여전히 불철주야로 연화생대사님을 기도하고 연화생대사의 심주를 지극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염송하였습니다. 따라서 적게 짐작하더라도 그가 열반에 들기전까지 6억 이상의 심주를 염송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지금 현대인들과 같이 극력 타인에게 자신의 노력과 신기한 감응을 말하는 등 행위를 종래로 하지 않았습니다. ‘반절구루 죽투’는 오로지 인연에 따라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였는데 일생동안 대다수 그를 아는 이들은 모두 그의 내적인 정신경계를 알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만 그가 여러가지 특이한 외적인 행적과 우연히 사람들에게 장애를 없애는 수행법을 현현하는 것을 보고 그가 어느 정도 쯤의 공덕을 가진 수행인으로만 여겼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밀행과 감응을 그는 오직 우찐스승과 소수의 신심을 가진 신자들에게 말했을 뿐입니다.

그는 이미 대성취자였지만 그의 옷차림은 여전히 걸인의 모양이었습니다. 남이 공양하는 데에 따라 입는 대로 입었었지요. 훗날 ‘밀주승승광명주사’에 옮겨가서 더 좋은 주거환경과 생활환경에서 지낼 수 있으나 그는 여전히 사원의 가장 초라한 한 구석을 요구했을 뿐입니다. 침구도 옛날에 쓰던 것이었는데 다 낡고 색이 바랜 이불과 베개였습니다. ‘반절구루 죽투’는 식사를 할 때도 그릇과 식기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밀레르빠존자 등 옛적에 금강승의 대성취자들이 하셨던 것처럼 두골그릇으로 식사할 때의 그릇을 대신하였고 이미 사용했어도 씻지 않았습니다.
【도】오른 쪽 콜라병의 옆에 있는 것이 바로 ‘반절구루 죽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두골 그릇입니다.

다른 사람이 공양하는 의복과 음식을 받는 외에 무릇 돈을 공양해 도움을 주려고 할 때는 그 돈에 주문을 읽으면서 입김을 불어 가피를 한 다음 되돌려 줍니다.그리고 당부하시기를 돈을 쓰지 말고 몸에 지니어 몸을 보호하는 상스러운 호신부로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카닥을 공양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로부터 보아 ‘반절구루 죽투’는 이미 돈이나 부귀영화에 대해서 추호도 바라는 바가 없었습니다. 
【도】‘반절구루 죽투’가 거처에 온 방문자에게 카닥을 가피하여 되돌려줍니다.

‘반절구루 죽투’가 열반을 하기 7일전, 사원의 주지 우찐 스승에게 “저는 곧바로 이 세상을 떠나 연화생대사를 만나러 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우찐 스승은 ‘죽투’의 몸 상황도 좋고 해서 그가 농담을 하는 줄 알고 마음에 두지 않았지요.

‘반절구루 죽투’는 극히 자신감이 넘치는 어투로 사원의 잘 알고 지내는 어떤 스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찐 스승은 아직 생사를 좌우하는 능력이 없지만, 난 있어! 내 뜻을 그가 모르고 있는거야…”

“법신은 죽는 법이 없지, 난 이미 법신을 얻은 연고로 나에게는 죽음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

전혀 경전을 배운 적이 없는 ‘반절구루 죽투’는 이와 같은 여러가지 대원만의 깨달음에 대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열반하기전 그 어떤 특이한 감도 없었지요. 오로지 그를 잘 알고 있는 스님만이 ‘반절구루 죽투’의 열반을 의심하였을 뿐 다른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가 진짜로 죽음을 예고하고 자유롭게 세상을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7일후, ‘반절구루 죽투’는 해빛이 맑은 아침, 과연 금강가부좌의 모습으로 안락하고도 자유롭게 열반을 현현하였습니다. 그때 대지가 가볍게 진동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반절구루 죽투’가 열반을 현현한 과정은 전 사원을 발칵 흔들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부근의 촌락과 지방에까지 파급되어 원래부터 인적이 희소한 불탑의 성지 ‘밀주승승광명주사’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참배를 하였는데 거의 3천여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부탄은 본래 연화생대사의 성지였는데 지금 낫놓고 기역자로 모르는, 그리고 두눈이 실명한 보기 드문 독특한 대성취자가 나타났으니 자연스럽게 대중들은 더욱더 연화생대사와 삼보에 대한 신심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보고 듣고 느낀 사람들은 참으로 희유하다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반절구루 죽투’가 열반한후 매일동안, 먼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이면 세마리의 새가 그의 유체가 남긴 곳에 나타나 그 위의 공중을 세바퀴씩 날며 돌았는데 모두들 이는 공행모가 공경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날짜를 계산해보니 ‘반절구루 죽투’가 열반을 현현한 시간이 바로 연화생대사께서 그의 두눈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시간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과연 두눈의 광명을 회복하였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그는 이미 직접 연화생대사가 계시는 불국토인 동색덕산궁의 연화광명정토에서 연화생대사를 만났으니깐요.
  끝으로 바라건대 이 문장을 읽는 일체 불자님들께서 신심을 일으키고 연화생대사님께 경건하게 기도하여 구경에는 연화생대사와 다름없는 수승한 불과를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자비롭고 심오함이 날로 더하여 깊고 넓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반절구루 죽투’의 일대기 -부탄의 현대 연화생대사심주 성취자 :부탄의 현대 연화생대사심주 성취자의 일대기 - Daum 카페 미륵암https://cafe.daum.net/mireuk-am/5hAO/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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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화생대사 금강칠구 기도문 성취자

-뻬마츠닝 정리 기술

 

  기원2000년전, 닝마 백옥 전승(宁玛派白玉传承) 지도자인 베노(诺)른보체(린포체)가 창설한 인도 난쭤린사(南卓林寺)에는 

연화생대사 금강칠구 기도문을 염송 수지하는 성취자가 한 분 있었다. 그가 바로 백발이 성성한 승려-얄마군파(雅玛滚波)이다그는 등이 굽었고, 항상 맨발을 하고 다니었다.

얄마군파는 일자무식이어서 글을 쓰는 것과 경을 읽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기에 젊어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법왕 베노 른보체의 저택에서 시종으로 있었다. 만년에 이르러서야 승복을 입고 출가의 모습을 시현하였다. 

그는  어떤 경전과 기도문도 염송할 수 없었다. 소수의 짧은 주문을 염송는 것 외에, 그가 유일하게 정통하고 또 온 심혈을 기울여 읽는 법문이 있다면 바로 연화생대사 금강칠구 기도문이다.

 

 40년전 티베트인들이 인도로 망명할 때, 그도 법왕 베노른보체(린포체)를 따라 고향을 떠나 법왕의 근위병이 되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인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필생을 법왕의 충직한 제자가 되어, 화엄 9가지 마음(华严九心)으로 스승을 지극히 모셨다.

 

 법왕을 따라 인도에 도착한 부터 난쭤린사는 토목공사를 시작하였는데, 얄마군파는 이 공사에 참여하였고 장시간 동안 힘든 노동에 종사하였다. 

 중 40년전 부터 당시의 사원과 부근의 쿠샤카 도시 사이에는 한 갈래 이 흐르고 있었다. 인도인들은 길을 단축하기 위해서 소떼를 몰고 강물을 건느기도 하였는데, 교량이 없어 소들이 무거운 짐들을 싣고 강물을 건느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사정없는 채찍질 속에서 피부가 찢기가 살이 터지기를 반복하였다.
 베노른보체(린포체)는 대중과 소들을 연민하던 끝에, 자금을 책임지고 당시 인도에서 원가가 많이 드는 시멘트 교량을 만들기로 하였다. 

얄마군파는 법왕의 지시로 3년동안 이 건설에 참여했는데, 낮에는 일꾼들과 함께 교량공사 감독을 맡았고 밤에는 혼자서 현장의 임시건물에서 지내며 건축자재들의 보관을 책임지었다. 그 때는 주위가 온통 무성한 삼림이어서 각종 야수들이 수시로 출몰하였다.

 

 위에서 말했 듯이 얄마군파는 일생동안 오직 법왕의 지시를 따라 일을 하였는데, 만년에는 법왕이 손수 대원만의 요결을 전수하였다.

그후부터 그는 주야로 장좌불와하면서 정진 수행하는 참선 수행자가 되었다. 그의 수행 경계는 가늠할 길이 없었는데 선정에 들어 자재함(自在) 얻었고, 직접 연화생대사 및 호법 성중들과 능히 소통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형상 그는 다만 여위고 볼품없는 나이 많은 승려에 불과하였다. 

만년에 그는 법왕의 특수 호법(护法殿) 밖에서 지냈는데, 시멘트로 간단하게 쌓아 올린 누추한 작은 집안에서 살았다. 집이라 해야 일반 인들이 들어가 설 수조차 없는 집이었다. 안에는 지극히 간단한 불당이 있었는데 간단하다 못해 형편없이 낡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다만 랗게 빛바래고 파손된 불화 몇점만이 있었다. 

얄마군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이래야, 한 주의 염주와  닳아빠진 방석, 그리고 다른 사람이 쓰다가 버린 커피색 중간이 둥글게 표 난  작은 유리병이 전부였다. 그것은 얄마군파가 감로환(甘露丸) 물을 섞어 담는 보배병이었다.
  얄마군파는 법왕 베노른보체와 구루른보체(연화생대사)에 대하여 비할 데 없이 견고한 신심을 갖고 있는데, 언제나 묵묵한 자세로 수행에 임하였다. 

 

처음, 사람들은 등이 굽은 이 노인이 대단한 수행자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중의 한가지 일이 발생해서야, 사람들은 그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번은 난쭤린사내 개설한 닝마파 전승의 불학원 학생들이 대전에 페인트칠을 할 때, 얄마군파가 조용히 그들 곁에 나타났다. 얄마군파는 자상하고 정중하게 그들에게 말했다. 어제 밤 연화생대사님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오늘 불학원에서 페인트칠을 하는 학생들에게 장애가 있으니 내일 잠시 일을 멈추라고 하더군요. 

학생들은 연로한 얄마군가 혹시 머리에 이상이 있지 않는냐는 표정으로 건성으로 대응하면서 그를 보내고 말았다.

떠나기전 그는 학생들에게 다시한번 당부하기를 만약 여러분들이 내일 일을 멈추고 싶지 않다면, 연화생대사님의 금강칠구 기도문과 심주 혹은 다라성모(绿度母) 의 심주를 염송하도록 하십시오.

 

 이튿날, 그중 한 학생이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다라성모의 심주 한쪽으로  염송하면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높은 구름 사다리 틀위에 서서 페인트칠을 하였다.

결과 진짜로 위험한 일이 발생하였다. 갑자기 고정된 구름 사다리 틀들이 무너지기 시작했 던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학생들이 넘어져 상처를 입었는데, 유독 다라성모의 심주를 염송하던 학생은 조금도 해를 입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방문하여 앞날에 관한 일들을 묻기 시작하였는데, 얄마군파는 일일이 대답을 해주었고 모든 일은 그가 말한대로 적중하였다.
 심지어 한번은 어떤 사람이 자신 앞날의 일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생각밖에 얄마군파는 직접 그에게 대답하기를 더 물을 것 없이, 당신은 7일 후에 곧 유명을 달리하게 됩니다.  그 사람은 듣고 나서 긴장했지만, 역시 긴가만가하였다. 결과 7일이 지나 그는 과연 죽게 되었다.
 이 일은 그야말로 모든 대중들을 떠들썩하게 하였는데, 또한 많은 사람들은 더욱더 얄마군파의 미래를 예측하는 그 신통의 정확성에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그러나 베노른보체(린포체)는 이 일을 알게 된후, 몹시 불쾌해하시면서 얄마군파에게 한 말씀을 하셨다. 왜 그렇게 쓸데없는 말을 하고 다니느냐?
  그리하여 그는 1년동안 말을 금하게 되었는데, 다시는 그 어떤 사람의 물음에 응하지 않았다.

 

훗날 법왕이 법을 전하기 위해 수시로 외출하여 사원에 계시지 않을 때, 모든 승속 대중이 일이 있어 물어 볼 사람이 없어 몹시 안달아해 하였다.

그리하여 법왕은 얄마군파가 이전 처럼 신통으로 대중들의 곤혹들을 해결하게 하였다. 법왕의 허락하에 그제서야 그는 다시 입을 열고, 대중들을 돕게 되었다. 

 

얄마군파 타인의 문제를 대답할 때, 찰나 동안 눈을 감지 않고도 깊은 선정에 들고 나오면서 그가 관찰한 것들을 대답해 주었는데, 그 어떤 점복 도구나 특별한 준비가 필요치 않았다. 

필자도 전에 행운스럽게 난쭤린사의 최초로 건립한 8 큰 불탑옆에서 얄마군파가 대중들의 문제에 대답하는 전 과정을  지켜보았는데, 실로 경이롭고 희유하기 그지없었다.

 

 언젠가 난쭤린사에서 하나의 큰 사건이 발생하였다.

인도인 한명이 피살되었는데, 이른 새벽 시체가 사원의 옆에 놓여 있었다. 절에 있던 한 승려가 살인이란 혐의를 받고,  인도경찰에 의해 잡혀 갔다. 법왕 베노른보체(린포체)는 당시 국외에 있어 급히 돌아와 이 일을 처리하기가 불편하였다. 그리하여 전화에서 절의 승속들로 하여금, 호법신을 공양 수행하게 하였다.
 결과 하루가 지나, 얄마군파가 모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살인범이 잡혔습니다. 그 살인범은 바로 인도인이지요. 지금 호법신장들이 그 살인범의 몸 속으로 파고 들어가, 그의 심장과 의식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지금 거리가 너무 멀어서, 호법신들이 그 사람을 이끌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는중입니다. 3일이 지나면 아마 이곳에 도착할거예요.

과연 3일이 지나 확실한 살인범이 잡혔는데, 그는 인도인이었다. 원인은 50루피로 인해서 분김에 상대방을 살해했는데, 살인범이 저절로 돌아 온 것이었다. 그때 이 인도인은 제 정신이 아니었는데, 입으로는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것을 승인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절 주위에 모여든 대중들에게 얻어맞기까지 하였다.

 

 모두들 얄마군파가 성취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 그에게 찾아와 이것저것 많은 문제를 물기 좋아하였다.

그 때마다 그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간곡히 당부하곤 하였다. 연화생대사 금강칠구 기도문을 염송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장애가 사라지게 되지요!

 

 그와 같은 성취자도 늘 자신이 예전에 하던 생활 품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그를 공경하든 예의를 다하든, 그는 끝까지 자신의 낡은 집안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생활적인 조건도 개선되지 않았으며, 다만 주야를 불문하고 지속적으로 스승과 삼보를 향해 기도를 다하였다.

그를 본 사람들은 모두 그가 진실하게 정진 수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누가 그에게 돈을 공양하면, 그는 시주하는 사람이 직접 법왕에게 공양하기를 원하였다. 시주의 복덕을 원만하게 하기 위해, 공양을 받았어도 그 돈을 다시 남김없이 모두 법왕에게 공양하였다.

 

 

 그가 왕생하기 2, 3년전, 그는 언젠가 이렇게 말하였다. 인생과 윤회는 참으로 고달프군요……. 나의 영원한 스승 베노른보체께서 일떠 세운 연화생대사 대전이 일단 낙성되면, 저는 갈랍니다……”.  

계속하여 그는 예전 법왕의 호위를 담당했던 직책을 다하면서, 조용히 법왕이 건설한 대전의 모든 대소공정을 일일이 돌아보고 있었다.

언젠가 그는 사적인 자리에서 익숙한 한 승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법왕께서 이 대전을 순리롭게 세우기 위해, 헤아릴 수 없는 호법신장들이 큰 장애를 막기 위해 이 공사현장의 허공과 땅위를 에돌고 있습니다.

그는 또 매일, 맨발차림으로 절의 주위를 일주일 이상 에도는데, 모두들 이 역시 얄마군파가 예전에 하던 호위 역할을 잊지 않고 계속하여, 그 자신의 능력으로 묵묵히 법왕의 일대 법사를 위해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난쭤린사의 연화생대사 대전이 낙성된 후, 어느날 법회를 열 때였다. 얄마군파는 몰려드는 어린 스님들에게 의해 무의식간에 밀려 넘어졌는데, 병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장시간 병이 낫지 못했는데, 끝내는 기원 2000년 쯤 열반을 시현하였다. 

열반에 들기 며칠전 몸상태가 허약해 침상에 누워있어야 했지만, 정신상태는 여전히 맑았다고 한다. 

열반후, 법왕은 토장의 방식으로 장례를 진행했는데, 그의 육신은 난쭤린사 부근 비구니사원의 뒤에 묻혀 있다. 법왕은 그의 백발을 잘라서 기념으로 남겼다.

 

 

 필자는 시간이 오래 지나면 예전에 보고 들었던 것들이 기억 속에서 사라질 까봐, 이렇게 얄마군파의 사적을 한번 적어 보았다. 필경 필자와 그는 몇번 만난 인연이 있었다. 또 행운스럽게 그의 손을 부축하면서 같이 난쭤린사의 주위를 둘러보기까지 하였으며, 현재 난쭤린사의 초등부 뒤켠에  함께 오후의 미풍을 맞으며 난쭤린사를 내다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무상을 보여주었다. 필자는 한편 그분을 추억하기 위해서, 또한 대중들의 연화생대사 법문 수행을 격력하기 위해서, 이렇게 2007년 8월 23일 대만 북부에서 글을 적어본다.
 얄마군파 어르신을 생각하면, 필자의 귓가에 언제나 그분이 간곡하게 부탁하시던 말이 생각난다. 연화생대사 금강칠구 기도문을 염송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장애가 사라지게 되지요.

---오명불학원(五明佛学院) 智悲佛网-《国际佛学会》-《人物传记》에서 선재----

 

출처:연화생대사 금강칠구 기도문 성취자 - Daum 카페 미륵암 | https://cafe.daum.net/mireuk-am/5hAO/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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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생대사심주 수행 성취자들

1.

짱칭라무

쨔츌라마의 구술에 의하면,

예전에 사천 석거(石渠)현에 짱칭라무라는 행자가 있었다고 한다. 이 여성행자는 일생동안 연화생대사심주를 1억번이나 읽었는데, 마지막에 몸이 모두 빛으로 화하는 성취(无余虹光身)를 달성하였다.

——摘自密宗虹身成就略记

2.

찐뤄 의사

 

써다현 다저사(达则寺) 찐뤄의사가 있었다. 평소 수행에 그닥 정진하지도 않은 편이며, 행위도 본받을 바가 못되었다. 

그러나 그는 수행에 견고한 신심을 가지고 는바, 수시로 연화생대사를 기도하며 심주를 지송하였다.

1961 원적하여 화장을 하였는데, 많은 상서로움들이 나타났다. 견고한 사리들 중에는 약사여래불과 석가모니불, 금강살타  삼존불의 상이 들어있었다. 예전에 그를 비방했던 사람들은  광경을 보고, 모두 참회를 하지 않을  없었다.

——摘自《密宗虹身成就略记》

 

3.

충화 상사

 

충와상사는 또후현(道孚县) 충화(忠瓦)사람이다. 세인들은 그를 충와상사라고 불렀다

 

젊었을  그는 인도로 순례를 갔는데, 도중에 강도를 만났다물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실수로 강도를 죽였는데, 이로하여 대참회심이 생겼고 윤회에 대하여 진실한 출리심이 생겼다. 

그리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부근의 산굴에서 일체 외부 접촉을 끊고 독거수행(闭关修行) 하게 되었다. 

 

그는  한번의《대원만룽친심수예비수행인도문(大圆满龙钦心髓前行引导文)》을 들었으며, 연화생대사에 대하여 아주  신심을 지니 있었다

그리하여 독거수행  유일하게 연화생대사심주를 염송하고, 연회생대사를 기도하며 가피를 청하였다. 그   산굴에서 외부와 단절한체 30년동안의 수행관문을 거쳤는데, 연화생대사심주를 모두 7억번이나 염송하였다. (일설에는 13억이라고 )

 

만년에는 늘쌍 자신이 만든 감로환으로 주위의 촌민들에게 베풀었는데, 당지 백성들은 무릇 병이 있는 자는  감로환을 구하여 먹었으며 의사가 없이도 병이  않는 사람이 없었다.

 

50년대에 원적하였는데 몸이 3분의 2정도로 줄어들었으며, 심주를 읽었던 염주는 훗날 룽뚸(龙多)활불의 손에 들어가 도었다활불은  염주로 다시 1억번의 연화생대사심주를 읽은 다음,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는 룽뚸활불이 구술한 이야기이다.

——摘自《密宗虹身成就略记》

 

4.

 

리탕(理塘명주불학원(明珠佛学院) 부근에는 산이 하나 있는데, 과거에  수행인이  산굴에서 연화생대사심주를 전문 수행하였다

평생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10억의 심주를 염송수행한 후, 성취를 이룩하였다. 

그가 수행하였던 산굴 옆의 샘물은 산위에서 흘러내려오는데, 그의 가피로 인해서 흐르는 물소리가 모두 옴아훙빤절거러빤마써더훙 소리로 변하게 되었다이는 아주 신기하였다.

——摘自《明灯论坛-什么是“本尊”?》

 

출처:연화생대사 심주 성취자들- Daum 카페 미륵암https://cafe.daum.net/mireuk-am/5hAO/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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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선정력을 얻었으나, 보리심이 없어 악귀가 된 수행자 :사천 아빠안취사(阿坝安曲寺)의 악귀 전설--->『 올바른 수행을 할때, 꼭 필요한 조건 3가지』---(관련모음)https://ntassabas.tistory.com/346

 

***선정력을 얻었으나, 보리심이 없어 악귀가 된 수행자 :사천 아빠안취사(阿坝安曲寺)의 악귀 전

선정력을 얻었으나, 보리심(자비심)이 없어 악귀가 된 수행자 이야기 : 사천 아빠안취사(阿坝安曲寺)의 악귀 전설 설 막(雪漠) 1. 안취사의 악귀 전설 사천 아빠주 하아빠 짱자촌(阿坝州下阿坝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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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하도겸 칼럼]'공중부양' 독덴 샤카 스리, 신비로운 죽음https://ntassabas.tistory.com/210

 

[하도겸 칼럼]'공중부양' 독덴 샤카 스리, 신비로운 죽음

[하도겸 칼럼]'공중부양' 독덴 샤카 스리, 신비로운 죽음 [뉴시스] 입력 2013.12.05 07:06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히말라야이야기’ 우리에겐 생소할지 모르지만, 꽃과 촛불 기원의식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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